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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원 Apr 09. 2022

아기를 낳고 우울증이 찾아왔다.

ENFP 인생 처음 겪어보는 우울증


출산을 하고 육아를 한지 거의 100일 지났다.

그 사이 나의 몸의 변화는 상당했다.


생각나는 대로 써보는 일련의 몸 변화들.


사라질 줄 모르는 임신선과 사라진 허리

임신 5주차부터 배 중앙에 선명하게 생긴

세로줄의 짙은 임신선은 여전히 없어질 기미가 없다.

신체 중 나름 자신 있던 부위가 허리인데,

출산하면서 벌어진 갈비뼈로 흉통이 커져

라인이 사라진듯하다(흑)


거품뇨

소변에 거품이 많다. 임산부 때도 한동안 그래서 몸에서 단백질이 빠져나가는 단백뇨일까 걱정되었지만 소변검사에서는 이상이 없었다. 출산하고 2개월이 지날 무렵 다시 거품뇨가 심해졌다. 조만간 건강검진을 받아보긴 하겠지만 찾아보니 극심하게 피로하고 컨디션이 떨어져도 그럴 수 있다고 한다.


피멍

양쪽 다리에 자절한 피멍이 엄청 생겼다. 처음엔 나도 모르게 부딪힌 거라 생각하고 넘겼는데 열군데가 넘게 생기니 덜컥 겁이 났다. 빈혈이 심하거나 혈소판 수치가 떨어져서 그런 거라고. 그래서인지 아기를 들어 올릴 때나 방투어를 할 때 한 번씩 어지러움을 느낀다. 내 빈혈은 30+a 인생 전반에 걸쳐서 함께 해온 것일 뿐 아니라 임신기간에도, 출산할 때조차 괴롭힌 것이니 말해 뭐하나.


손목 통증

거의 모든 육아맘 육아대디가 앓는 질환일테지만. 나는 가뜩이나 원래 하던 일도 손목을 많이 쓰던 일이었던 터라 수시로 아프곤 했다. 아니나 다를까. 사린다고 사렸지만 아기가 태어날 때의 무게의 두 배를 훌쩍 넘겨 7kg가 된 지금은 손목이 찌릿찌릿하다 못해 너덜너덜하다^.T


탈모&두피 화끈거림

각오했던 일이다. 머리숱 부자인 나도 피해 갈 수 없을 거라고. 주변에 육아 선배들이 말해주었고, 또 직접 보여주었다. 우수수 빠진 후 다시 자라 머리가 잔디가 된 모습에 그땐 멋모르고 웃었는데, 나에게도 머지않은 일 같다. 서리태 두유를 매일매일 마시고 있지만 백일을 앞두고 부쩍 많이 빠지고 있으며, 두피도 화끈거리기 시작했다. 슬슬 잔디머리가 오려나 두렵.


변비

원래도 있었는데 더 심해졌다. 화장실을 못 가서. 신호가 올 때란 대개 아기띠를 하고 있거나, 수유 중이거나, 아기를 달래야 할 때라 매번 타이밍을 놓치곤 한다. 그래서 안 그래도 철분약 때문에 변비인데 타이밍까지 놓치니 더 극심해졌다.


1:100 다음날의 상태

아기가 가뭄에 콩 나듯 가끔 통잠을 자주긴 하나 워낙 잠이 없는 아가라 내 평균 수면시간은 5~6시간 정도. 부족한 잠을 자고 일어나면 간밤에 누구한테 맞은 듯 온몸이 아프다. 그러면 쉴 수 있나? 아니 그 맞은 몸으로 고된 육아의 하루가 또다시 시작된다. 남편이 출근하고 퇴근할때까지 8 to 6. 최소 10시간의 독박이 눈물겹다.



나는 엔프피(ENFP)이다.

긍정의 아이콘. '좋은 게 좋은 거~' 아무리 슬프고 힘들어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넘어간다. 그래서 살면서 우울증을 느껴본 적이 없다. 오죽하면 입덧으로 하루에 여섯일곱 번을 토하고, 나중에는 피까지 토해내던 임신기간 조차도 '그래 이 힘듦은 다 차밍이(아기 태명)만나려는 거니까 기꺼이 받아주지' 생각한 긍정긍정왕.



엔프피에게 부정의 타격이란 전혀 없다고ㅋ.ㅋ


그런 내가 요즘은 웃음을 잃고 우울해져 있다. 정확하게는 아기 앞에서만 웃는다(연기의 웃음이 대부분. 광대가 된 느낌이다.) 아무래도 산후우울증이 온 것 같다. 끝나지 않는 육아 사이클에 지쳤고, 싸울 일 한 번 없던 남편과도 자꾸 부딪히고, 생활의 활력이나 낙이 없어서. 괜찮다 괜찮다 하다가 안 괜찮다가 된. 그다지 자기희생적인 사람이 아닌데 좋든 싫든 나보다 먼저 아기를 위해야하는 상황이 자주 있어 이런 것 같다. 그토록 좋아하는 술도, 커피도 (임신을 알고부터는) 마시는 걸 포기했다. 등산을 좋아하는데, 임산부일 때는 위험하다고, 출산하고는 100일까지는 몸에 무리가 간다고 못하고 있다. 아마 100일이 지나도 지금처럼 유축 없는 완모를 하는 이상 긴 등산은 불가능할 테지. 즉흥적인 약속이나 일을 벌이기 좋아하는 터라 예상 가능한 반복적인 루틴의 육아는 더욱 고행이다. 집순이가 아닌 나라서 더더욱. 좋아하는 전시회나 공연 보는 것 역시 아직은 꿈도 못 꾼다. 시골살이라 그런 것도 크겠지.


그래도 나만 그런게 아니라는 조동이 있어서 참 다행이다


예전엔 아침을 맞이하면서 "오늘은 어떤 예상치 못한 즐거운 일이 생길까."는 생각이었다면, 이제는 "아, 오늘은 또 어떻게 버텨야 하나."로 하루를 시작한다. 낙이 없다 보니 좋아하지 않는 쇼핑으로 풀어도 봤다. 남들 많이 한다는 '우울하니 쇼핑이나 하자!'라고. 그러나 사고 보니 다 아기용품이다. 안 되겠어서 오늘은 오롯이 날 위한 책 쇼핑을 했다.



뭐 죄다 아기용품이여.


쓰고 보니 많이 우울한 것 같네 찡. 사실 힘든 것만 있는 건 아닌데. 며칠간 손목의 통증이 극에 달한 나머지 어깨까지 아프고, 또 육아 동지와 일련의 갈등이 생겨 더 그런 것 같다. 또 할 일들이 밀려서도. 봄맞이 집 대정리도 그렇고, 브런치에 쓰려던 글들도 매번 적다가 미완성된 채 임시저장 글로 남아있다. 멀티가 되지 않는 터라 글쓰기도 한두 시간 바짝 집중해서 써야 하는데 쓰다가 아기가 칭얼대면 달래주고, 수유 시간 되면 맘마 먹이고. 그렇게 쓰다 말다한 글은 원래의 감정이나 쓰고자 했던 단어들이 흐릿해져 버린다. 또 성격이 급한 편이라 빨리빨리 하는 걸 좋아하는데, 내 뜻대로 되지 않아 아기와 외출이라도 할 때는 세 배로는 걸린다. 아무래도 아기가 들어온 일상에 아직은 적응하지 못해서 인 것 같다.


미완성 글들ㅋㅋㅋㅋㅋ :')


다사다난한 임신기간 중에도 먼저 육아한 사람들이 지금이 가장 좋을 때라고, 태어나면 뱃속에 다시 넣고 싶어 지니 즐기라 했다. 이해하지 못했다. 실은 지금도 다시 돌아가래도 임신기간만큼 몸이 힘들었던 적은 없기에 안 돌아갈 거다. 게다가 지금은 힘들어도 눈에 보이는 행복(아기)이 있지만 그때는 막연한 불안감뿐이었다.


그래도 엔프피에겐 감정이란 손바닥 뒤집듯 자주 뒤바뀌는 것. 아마 이 우울함도 오래가진 않겠지. 나에게 희로애락을 모두 주다니 아기란 정말 대단한 존재다. 지금도 이 글을 쓰면서 내 옆에서 짧은 잠을 자고 있는 아가를 보면서 사랑이란 단어가 목구멍까지 탁 차오른다. 수유하며 늘 하는 말이지만,

"내 아들로 와주어서 고마워. 사랑해."



공부중인 너의 옆태
이렇게 꽉 끌어안고 자면 심쿵하지
치명적인 너의 꿀벅지
함께한 첫 밤산책, 우리만의 센느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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