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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원 Feb 19. 2024

더이상 여자가 아니라는 선고를 받았다.

한 번의 출산 이후 180도 변한 내몸, 그리고 조기폐경.



어느 날과 다름없이

점심을 차려 먹이고, 설거지하고,

엉망이 된 식탁과 바닥을 치우고,

이이를 씻기고, 양치시켰다.

이어 “띠리리 띵띵~” 알림음을 울려대는

건조기에서 꺼낸 아기 수건을 개고서

세탁기를 새로 돌리는 참에


“엄마!!! 이거 같이 읽자!”


화가 잔뜩 난 25개월 차 작은 인간.

그래 양치만 하고 보기로 해놓고

양치만이라던 게

“차밍이 수건 좀 개고. “

수건만 갠다던 게

“세탁기만 좀 돌리고. “

세탁기 돌리고라고 하던 게

화장실까지 다녀왔으니.

생강빵아이 책 펴놓고 오래도 기다렸지.

읽어주려고 자리에 앉는 동시에,

한 시간 만에 들여다본 휴대폰에서는

부재중 전화 세 통과 함께 문자가 와 있었다.





조기 폐경이라고...?

내 눈을 의심했다.

4달째 생리가 감감무소식이라

병원을 가야지 가야지 하다가

내가 사는 시골엔 산부인과가 없어서 도통 못 가고 있다가

지난주 금요일에 남편이 연가를 내서

같이 인근 도시의 병원투어를 했다.

팔이 아픈 그는 통증의학과로,

생리를 안 하는 나는 여성병원으로.


오래전 20대 때

생리를 자주, 많이 해서(세 달간 한 달에 두 번씩)

엄마와 함께 처음으로 산부인과에 간 적이 있다.

그때 의사로부터 들은 답은 그랬다.

“안 하면 문제지만 생리는 많이 한다고 문제없어요.”

그러니 지금 안 한다는 건 확실히 문제인 것이다.


모유수유를 하는 동안은 대개 생리를 안 하거나

적어도 출산한 지 1년 후에 다시 시작한다.

그런데 왕년에 알아주는 생리양과 생리통을 가진

나라 그런지 출산한지 불과 5개월 만에 시작되었다.

주변 여성 동지들은 놀라며 회복력이 좋은가보다, 자궁이 건강하다는 증거라며 위로 아닌 위로를 했고

난 이 지긋지긋한 생리에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다시 시작되었는데 걱정과는 달리

전보다 양도, 하는 일수도 훨씬 줄고

평생을 괴롭히던 생리통마저 깨끗이 사라졌길래

그래도 이 정도의 생리라면 할만하다 생각했다.

그런데 지난 해 10월을 끝으로

한달에 한 번 찾아와야 할 그분이 오시지 않는다.


“임신은 아니세요?”

“아마도 아닐 거예요.”

이미 집에서 임신테스트길 해봤다. 한 달쯤 전에.

가능성도 없었지만 아마라는 건 없다고

임신여부부터 확실히 해야한단다.

소변 제출 후 잠시동안의 긴장,

혹시나 역시나 아니였다.

이어 초음파 검사를 했다.

출산 후 2년 만에 들여다보는 내 자궁 속.

오랫동안 나는 자궁 속 용종으로

생리양도 어마어마, 생리통도 심했던 터라.

아마 이번에도 용종이 영향으로 반대로 생리를 안 하는 거겠지라 가볍게 생각했다.


그런데 자궁은 깨끗하단다.

“출산할 때 피를 많이 흘리거나 하진 않으셨죠?”

“엄청 흘려서 수혈받았어요. 태반도 분리되지 않아

제거수술받았고요. “

“아...”

표정이 살짝 변한 의사가

생리를 안 해도 생리혈을 만들어내는 흔적이 보이면 단순 생리지연인데, 전혀 기미가 없단다.

4 달이면 오래되었으니 호르몬검사를 해보자 한다.

출산할 때 피를 많이 흘려 호르몬 이상으로 뇌하수체로 생리를 잠시 중단시킨 걸 수도 있고,

갑상선 쪽에 이상이 생긴 걸 수도 있고

경우의 수는 다양하다고.


로비에서 기다리는 남편과 아이와 함께

수납 후 피검사를 했다. 결과는 다음 주 수요일에 나온다고 했고.

약속된 수요일이 아닌 오늘은 화요일이었다.

그런데 온 검사 결과 문자.

마치 이곳만 확대한 것 마냥 확 들어오는 부분.

‘조.기.폐.경’

상상도 못 한 네 글자에

잠시 멍해지며 눈앞이 캄캄해졌다.


가장 먼저 초록 창에 검색을 해보았다.

조기 폐경은 40세 이전의 폐경으로 정의된다.
즉, 난소 기능의 저하란 난포가 발달하지 않고 배란이 일어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여성의 약 1%에서 발생한다고 알려졌으나
점점 증가하는 추세이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하다.



여성의 1%라고?

그런데 왜? 무엇 때문에 내가?

알려진 조기폐경 원인은 몇 가지가 있다고 한다.



1. 염색체의 문제 (전체의 5%)

2. 자가면역 질환 (전체의 10%)

3. 가족력과 관련된 경우 (전체의 20%)

4. 의인성 요인



4가지 중 어떠한 것에도 해당하지 않았다.

모든 병이 그렇듯

알 수 없는 조기폐경의 원인도 있다고 한다.



1. 극심한 스트레스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여성들의

난소 기능 수치 AMH가 뚜렷하게 낮아진다고.


2. 밤낮이 바뀌는 생활 & 만성적인 수면 부족

자는 동안 뇌에서는 성호르몬이 분비되고

손상된 난소 세포들이 복구되는 작용이 일어난다.

뇌에서 성호르몬의 분비가 가장 활발하게

분비되는 시간이 밤 10시부터 새벽 3시 사이인데

수면의 질이 나쁘거나 수면 시간 자체가 부족하면

호르몬 분비나 난소의 세포 복구가 제대로 되기 어렵다.



아... 두가지 모두 너무나도 해당했다.

출산 후 스트레스와 육아우울증이 극에 달해

공황발작도 몇 번 겪었을 정도다.

또 태어나 지금까지 우리 아기에게 ‘잠’은 그 무엇보다 가장 힘든 일이다. 신생아 시절은 2~3시간마다 수유를 해야 했던 건 육아를 해본 사람은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그러나 보통 남편과 번갈아가면서, 또는 평일 당번 주말 당번을 정해 새벽보초를 선다고 한다. 완모(분유 없이 완전 모유수유)를 한데다 잘때 아빠를 거부하는 아기로 인해 나는 365일 나홀로 새벽을 지새웠다. 게다가 1. 잠이 없고 2. 자는 걸 죽어라 싫어하고 3. 잠 오면 엄마 외엔 거부하는, 잠거부 트러플 아이는 지금도 여전히 재우기가 힘든 일이다. 낮잠을 재우건 밤잠을 재우건 한시간에서 한시간 반씩 전쟁을 치른다. 그러니 내가 잠을 잘 잘 수가 있겠나.


조기폐경의 대표적 증상들을 읽다보니

이제야 몇 달간의 내 증상들이 한 번에 설명되었다.

‘무월경, 불면증, 식욕저하, 우울증, 감정기복’

평생 누우면 3초 만에 잠들 던 내가

왜 지독한 불면증이 시달리고 있는지.

나름 긍정적이던 내가 남편에게

“아무래도 나 화병인 거 같아” 하며

특히면 불쑥불쑥 올라오는 화와 분노를

참기 힘들었는지.

스스로 생각해도 지나친 감정기복이었다.

그리고 식욕 감퇴도.

먹는 것이 중요한 사람이고 ‘먹고 싶다’ ‘하고 싶다’

병 가진 나였는데

언제부턴 특별히 먹고 싶은 게 없었다.

오죽하면 배고플 때  하나 먹으면 배불러지는 약 있으면 좋겠다는 사람들의 심정이 이해가 갔달까.


육아의 힘든 점은 ‘틈’을 안주는 것이다.

잠깐 집안일할 여유,

잠깐 휴식을 취할 여유,

잠깐 책을 읽거나 글을 쓸 여유.

특히나 사고형 아기* + 엄마 껌딱지인 아기를 키우는 나에겐 더욱이.


*사고형 아기 : 아이의 기질 유형 중에는 ’다람쥐형’과 ‘사고형‘ 이 있다. 장난감이나 놀이에 집중하고 관심이 큰 아이가 다람쥐형, 장난감보다는 사람의 표정이나 행동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사고형. 사고형 아이는 혼자 장난감을 가지고 놀기보다 양육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을 끊임없이 요구한다.


문자를 보고 병원에 전화를 걸어

결과 내용을 듣는 1분 남짓의 시간에서도

아이는 그 틈을 용납하지 않았다.

“이거 하자!!“

“엄마 같이 퍼즐 맞추기 하자!!!!“

소리 지르며

퍼즐을 눈앞에 들이미는 아이로 인해

의사 선생님께 더 궁금한 걸 물을 틈도,

통화를 끊고 나서 더 이상 슬퍼할 겨를이 없다.


요즘 퍼즐에 빠져있는 작은 인간. 24피스쯤은 거뜬히 해낸다.



폐경이라는 걸 처음 들은 건

나의 엄마가 50대 후반 무렵이었다.

몸에 열이 오른다고, 자꾸 감정이 오르락내리락,

갱년기가 온 것 같다며 우울해했다.

그런 엄마에게 아마도 아빠는 꽃을 선물했고

난 갱년기에 좋다는 영양제를 사드렸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처음 15살인가 16살에 첫 생리를 했다.

기족들에게서 축하한다며 생리파티도 받았다.

(그땐 쥐구멍에도 숨고 싶었지만)

생리양이 어마어마해 제일 큰 대형 생리대를 해도 어떤 날은 푹 젖어 새어 나오기 일쑤에,

자궁을 면도칼로 긁어내는 듯한 고통의 생리통.

그리고 생리 전 후로 식욕과 감정기복이 엄청난

호르몬의 노예였던 나.

잊지도 않고 28일마다 찾아오는

지긋지긋한 생리가 끝나기만을 바랬었다.

그럼에도 앞으로 최소 20년은 더할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삼십 대인 내가 폐경이라고?

헛웃음이 나왔다.


그토록 바라던 생리이별인데

첫 생리를 축하했던 그날처럼

생리 끝 파티를 해도 부족한데

좋아하기는 커녕 왜 눈물이 날 것 같은지.

마치 나에게 더이상 여자가 아니라고

사형선고가 내려진 것 같았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래도 나는 미혼이 아니다.

그래도 나는 임신과 출산을 겪었다.

그래도 나에겐 이미 한 아이가 있다.

그나마 수술을 해야 하는(암이라던지)

결과는 아님에 감사하고.

30대에 조기폐경이 왔다고

더는 우울해하지 않기로 한다.


그나저나 이 사실을 남편이나 가족들에겐

알려 말아? 그건 천천히 생각하기로.



good bye forever, 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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