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고치는 병원이 아니라 마음 고치는 병원을.
며칠 전 가게를 쉬는 휴무날,
아이를 어린이집에 등원시키고 곧장 인근의 도시로 향했다.
병원에 가고자.
지난 10월 한 달 동안 몸의 이상을 느꼈다.
예전엔 아무리 피곤해도 잠을 11시 12시까지 안 자는 아이가 잠에 드는걸
확인한 후에야 비로소 자던 나였고
아침잠 역시 많지 않은 나였다.
그러던 내가 아이보다 먼저 잠드는 날이 늘었으며,
아이랑 똑같이 하루 8~9시간 수면을 했다.
아침잠이 많아지고 푹 자고 일어났음에도
늘 잠에서 깨기 힘들었고, 약한 몸살마냥 몸이 쿡쿡 쑤시며 통증을 느끼는 날이 많았다.
잔량이 얼마 남지 않은 배터리처럼 종일 에너지가 없고, 저녁만 되면 아예 방전된 상태였다.
기분이 태도가 되는 사람이 아니라
컨디션이 태도가 되는 나라
불쑥불쑥 다가오는 우울감은
그저 몸이 안 좋아져서 그런 걸거라 치부했다.
그렇게 한 달, 도무지 나아지지 않았다.
제품들을 가지고 장터에 나가고
지역 내 청년모임에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
활력을 얻고 점점 나아져간다 생각하던 즈음,
어느 날 나의 심각성을 깨달은 계기가 있었다.
10월의 마지막 날이었다.
출근해서 한숨 돌리며 인스타그램을 보는데
마음에 닿는 글귀가 있어 스토리에 올렸다.
그러다 문득 손목에 찬 워치 화면에 뜨는
'다치치 말어♡'라는 다섯글자.
20년이 넘은 친구가 보낸 메시지였다.
그걸 보자마자 수도꼭지 튼 것 마냥 눈물이 쏟아졌다.
가게이고, 손님이 언제 들어올지도 모르는데 제어가 안되었다.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다고 느껴졌다가,
다른 이를 시샘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었다.
그러면서도 자극받아 열심히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는 자신이 너무나 못나고 별로라는 생각이 들던 차에
친구의 말이, 정곡을 찔렀다.
내가 내 마음을 다치게 하고 있었다.
앞으로 나아가려면 남들보다 에너지가 몇 배로 필요한 사람인데
육아하며 심신이 지쳐있던 상황에서
경력단절에 대한 불안, 남편의 외벌이로 인한 경제적 부담을 느끼던 중
되든지 말든지 하는 심정으로 지원했다가
선정된 군 창업지원사업이 동기가 되어 급하게 다시 일을 시작했다.
패키지나 카페 운영에 스스로 만족도가 높지 않은 상태에서
다른 이들의 발전된 모습이 나를 더 옥죄게 했다.
많은 워킹맘들이 그렇듯
시간적, 체력적으로 육아에는 소홀해지고
가치가 있다 여겨 즐겁게 하던 일을
이제는 돈을 많이 벌어야만 해! 생계수단으로
압박을 느끼니 도무지 가치를 어디 두어야 할지 모르겠고.
전과 달리 체중도 5kg이나 강제감소한 지금 체력은 안 좋아지고
집안일도, 육아도, 일도, 뭐 하나도 제대로 못하는 내가 싫고
방황하는 시기였다.
늘 하는 남편의 진심 어린 조언이나 제안조차
나에겐 더욱더 버겁게 느껴졌다.
어릴 때부터 엄격하고 잣대가 높은 부모님 아래에 커서 그런지
나는 유난히 나에게 너그럽지 못한 사람이었다.
예컨대 늘 오던 금요일의 손님들이 오지 않으셨다 하면,
남편은 "오늘 모임을 안 하나 보지"
나는 "불만족해서 다른 카페 가셨나 봐"
매출이 부진해도, 누군가와 연락이나 만남이 소원해져도
모든 게 내 잘못 같고 내가 부족해서라 느끼는 사람이다.
그래서 남편이 일하던 나에게 "이건?"이라는 말만 해도
어떻게 이런 것조차 놓칠 수 있지? 하는 자책이 상당했다.
“이번주 당직이야?” 물으면
“그때 말해줬잖아."라는 그의 말에는
듣고도 잊어버린 내가 수치심이 들었다.
그러던 중 지식인사이드라는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놓치기 쉬운 우울증 초기 신호>
라는 영상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성격으로 치부하기 쉬운 우울증 증상에
수면 이상 (잠을 잘 못 자거나 너무 많이 잔다)
체중 변화
신체 에너지 감소
집중력 저하
부정적인 생각
말이나 행동의 변화 (평소보다 말이나 행동이 느려진다.)
모든 게 내 이야기였다.
우울해서 기력이 하나도 없고,
성격이 급해 말과 행동이 빠르던 내가 급격히 느려지고,
I am worthy(나는 가치 있는 사람이야)라는 생각 대신
'이 세상에 나는 쓸모없다.'라는 생각까지 들었던 것이다.
인간은 자율성이 없으면 우울해질 수밖에 없다고.
지금껏 주로 해야 하는 일보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온 나.
수능점수로 좀 더 네임벨류 있는 대학교에 갈 수 있었는데
하고 싶은 전공(광고홍보학)을 쫓아 하향지원해 대학교로 들어가고,
대학교 다니면서도 취업에 유리한 토익점수나 자격증을 따기보다는
가치 있게 여겨지는 다양한 대외활동으로 이력서를 채워나갔고,
다들 취업 전선에 뛰어들 때 나는 좀 더 방랑하고 싶다고
세계 일주 크루즈 선원 모집에 도전하고(4차 최종면접에서 떨어졌다)
남들이 선망하는 서울의 대기업 산하 미술관에 입사해 다니다가도
오너의 가치가 나랑 안 맞는다는 이유로 2년만에 사직서를 던지고 나왔다.
그리고 사람들의 식탁 위에서의 시간을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있다는 게
좋아서 잼 만드는 잼머가 되었다.
그런데 아기를 낳고는
나를 반짝이게 했던 것이 더 이상 나를 반짝이게 하지 않는다.
I choose to(내가 하기로 했어)가 되어야 하는데
자꾸만 I have to(내가 이걸 해야만 해)가 되었던 것이다.
특히 먹이고, 재우고, 씻기고 하는
일상의 일련의 과정 하나하나가 순탄하지 않은 예민한 아이라 더욱더.
오죽하면 아이 밥 먹이기 전이 전쟁터에 나가는 군인 같고
하원시간이 다가오면 심장이 두근거린다고, 버겁다고 말할까.
영상 속 정신심리학자가 말했다.
I choose to에서 한발 더 나아가서 I get to(~할 수 있어서 좋다)가 되어야 한다고.
'오, 내가 이런 걸 할 기회가 있다니'
'애한테 맨날 밥 해줘야 해'가 아니고
'오, 내가 애한테 밥을 해줄 수 있다니.'
애 말 안 듣는 거 징징거리는 게 왔다면
'우리 말 안 듣는 애랑 이렇게 징징거리면서 상호작용을 할 수 있다니.'라고.
친정엄마가 그동안 수차례 말해왔던 것이다.
"징하게 까다롭고 잠 안 자고 별종인 아이 키우느라 힘들겠지만
힘들다고만 생각하지 말고, 안 아프고 건강한 것만으로도 감사히 생각하라."라고.
수화기 너머로 숱하게 들었던 말.
그래 감사한 삶을 살아야 한다.
그렇지만 지금의 나는
한 달 넘게 과수면의 늪, 심각한 부정적인 생각, 불안장애 등에 시달리고 있는 중.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할 시점이라 생각했다.
"아프다"하면 "병원에 가."
"체력이 안좋다"하면 "운동을 해."
하던 대문자T인 남편이,
내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같이 가주겠다 했다.
병원에 간 이야기는 다음 편에 이어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