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일상이 이렇게도 힘든 일이었을까
산청 산불이 난지 사흘 째다. 남편은 그날 이후로 집에 들어오지 못하고 있다. 산청 산불을 시작으로, 의성을 비롯 전국 곳곳에서 대형 산불이 잇따르면서 며칠 전 올린 <남편이 오지 않는다. 집에> 글에서
그 누구의 인명피해만은 없기를 적었건만 결국에 네분의 사망자가 생기고.. 900년 된 하동 두양리 은행나무도 불탔단다.
봄기운이 느껴지는 3월 중순, 우리는 상아당 마당에 묘목과 씨앗을 심기로 했고 그 약속은 아직 지켜지지 못했다. 남편이 주말마다 차에 실어 버리러 가던 쓰레기는 버리지 못해 뒷마당에 가득 쌓였고. 심으려던 묘목과 천리향은 받아온 그대로 마당 한켠에 널부러져 있으며, 남편이 아이를 온전히 맡아주는 토요일날 쓰려 했던 지원 사업계획서는 아직 손도 못대고 그대로 있다. 밤마다 "아빠 보고 싶어. 아빠 언제와?" 하는 아이와는 72시간 째 둘이서 투닥투닥 일상을 보내고 있다.
남편은 남편대로 집에서 편안히 등 대고 자지못하고 밖에서 사투를, 나는 한사코 무엇 하나 쉽지 않은 아이와 집에서 사투를. 어제 저녁은 또 두 숟갈만 먹고 그 두숟갈도 끝끝내 뱉었으며, 또 식사하다 응가를 눈다며 결국 밥 먹은 게 없는 아이. 그러고선 능청스럽게 오렌지를 달라 말하는 아이에게 폭발해버렸다.
"넌 엄마에게 침대도 감옥으로 만들고 식탁도 감옥으로 만드냐!!!!" 밥 먹는 것이든 잠 자는 것이든 하나만 좀 잘해달라며. 제발. 오늘 아침 일어났는데 몸이 물에 젖은 스펀지마냥 또다시 축 늘어지고 쿡쿡 거렸다. 한동안 괜찮더니 다시 미약한 몸살끼가 도지는 느낌.
하늘에선 수시로 산림청 헬기가 지나다니는 소리가 들리고. 남편의 상황을 아는 이웃이나 지인들이 괜찮냐는 연락을 해온다.
"그래서 아라씨는 괜찮아요?"
나를 챙겨주는 사람들도.
사실 괜찮지 않다. 두사람이 해도 쉽지 않은 육아였는데 지금은 한사람이서 오롯이 하고 있으니. 게다가 매일 운영해야하는 가게 일도 같이 한다는 건.
그래도 오늘은 오전에 첫 글쓰기 모임에 참여했다. 무려 2년을 눈팅만 하고 바라던. 그리고 오늘은 마침내 새 리플렛 엽서 제작을 마쳤다. 또 어려운 상황에 놓인 산청 농장에서 딸기 10kg을 샀다. 산불에 갑자기 더워진 날씨에 농장 상황도 좋지 않다고. 건강하게 키운 딸기이고 농부를 도와야지.
창문 너머로 그토록 기다리던 봄이 온 줄 알았는데 화마가 찾아왔다. 기운차게 일상을 보낼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평범한 일상을 뺏겼다. 힘은 나지 않지만 일상은 굴러간다. 그저 좋아하는 서편제 주제곡 '살다보면 살아진다.'처럼 그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