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나를 반응하게 하는 것

짧아서 더 애틋한 찰나의 계절

by 초원




#계절 사람

알게된 지 몇 년 된 세사람이서 서로 첫인상이 어땠는지에 대해 이야기 나눴다. 나에게는 ’우아하고 고급스러워 보였다’라고. 이런 이야길 종종 듣는다. 아마 요란하지 않은 말투가 한몫하겠지.


무던해 보이지만 누구보다 예민한 hsp에 컨디션이 곧 기분이 되어 롤러코스터 타듯 하루에도 몇 차례 씩 감정이 요동치는 나지만 겉으론 티 내지 않으려 무던히 애쓰며 살아와서인지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차분하다', '고요하다', '흔들림 없는 뿌리 같은 사람이다.' 단단히 오해하곤 한다. 고고해 보이지만 물속에서는 정신없이 발을 휘젓고 있는 오리나 백조의 모습 같달까 나.


그런 내가 가장 나다워질 때는 자연 속에서다. 특히나 계절에 반응한다. 누군가는 음악에, 누군가는 사람의 말에 흔들린다면 나는 햇빛과 온도, 일렁이는 바람에 마음이 움직인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좀처럼 가만히 있을 수 없다. 공기 속 계절감이 달라지는 순간,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몸이 들썩인다. 계절을 온몸으로 느껴야만 한다.


봄이면 연둣빛의 고개를 내미는 새순을 보러 길 위로, 여름이면 유난히 더 짙어지는 숲과 물속으로, 가을이면 익어가는 황금빛 들판과 억새 핀 능선으로, 겨울이면 눈부시게 파란 바다와 동백꽃 떨어진 눈밭으로. 그렇게 변화무쌍한 네 번의 계절을 따라 걷다 보면 내 안의 마음도 조금씩 채워진다.


사람은 자신이 태어난 계절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는데 그래서인가. 난 가을을 사랑한다. 짧아서 더 애틋한 가을, 가을은 계절 자체가 한정판처럼 특별하다. 30대가 되고부터 내 생일엔 의식이 있었다. 바로 '자연 속에서 온종일(또는 1박 2일) 보내기' 매년 10월 12일 그날이 오면 튼튼한 두 다리와 무거운 가방을 짊어지고서 떠난다.


가장 좋아하는 가을의 꽃, 억새 하나 보러 정선 민둥산을 오르고(2018), 20대 시절 V-train 협곡열차를 탔던 추억의 봉화에서 백두대간 & 세평하늘길 트레킹을 하기도(2019), 동해 베틀바위 산성길이 44년 만에 개방됐다는 소식에, 곧장 험준한 두타산을 오르러 가기도(2020), 하동 북천 코스모스와 메밀밭에서 누비기도(2021), 산청 구절초밭에서 비 오는 늦가을을 즐기기도(2022). 그렇게 트레킹이나 등산으로 자연 속에서 온종일 보내곤 한다. 온몸으로 찰나의 계절감을 만끽하며 말이다. 나는 자연을 온몸으로 느끼는 계절 사람. 그 속에서 웃기도, 울기도, 춤추기도 한다.


‘동해 = 바다 아닌 산’이 된 계기. 내 인생산 두타산.
산에서 술 먹는건 안되오...(논알콜이었습니다만)
지금의 차밍이가 뱃속에 있을 때 갔던 하동 북천은 이번 주말 다시 가기로!



#덜 해로운 사람

생태주의자나 자연운동가는 아니지만, 한참 노력하는 인간일 때가 있었다. 주말마다 동네 골목을 누비며 버려진 스티로폼 상자를 부서져 소각장으로 가기 직전 주워와 씻어서 다시 쓰는 것이나, 손목도 안 좋으면서 무거운 텀블러를 꾸역꾸역 들고 다니는 날 보며 주위 사람들은 "왜 불편함을 감수해? 왜 굳이 사서 고생해?" 했지만 그때마다 내 대답은 한결같았다. “내가 사랑하는 산과 바다, 자연을 오래오래 보기 위해서."라고.


출산 이후 매일의 육아전투 속 그저 하루하루 생존하는 인간이 되어 나의 애씀은 퇴색되어 있었다. 무거운 텀블러는 묵혀두고 가벼운 테이크아웃컵을, 번번이 세탁해야 하는 손수건보다는 물티슈를, 재료를 사다 해 먹는 음식보다는 포장에 절여진 온갖 밀키트에 의존하고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어떠한 계기로 다시 안에서 꿈틀거림이 살아났다. 또다시 나의 순간의 선택과 사소한 행동들로 의미 있게 내 삶이 채워지길 바란다. 너무나도 사랑하는 이 자연을, 변화하는 사계절을 오래오래 보기 위해서, 보다 덜 해로운 사람이 되어야지.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