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과 두 번의 연애
한 달간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말이다.
'내가 결혼이라느니 그런 것을.'
결혼소식을 들은 오랜 지인들도 말한다.
"아라 네가 결혼을 한다고? 내가 아는 너 맞아?"
그도 그럴 것이
이미 몇 해 전 30대에 진입한 후
수시로 결혼 권유를 들어왔지만
그때마다 나는 받아쳤다.
"언젠가 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아니야.
내가 결혼을 한다는 건 그 사람을 위해서라면 내 일도 나 자신도 포기할 수 있을, 그런 사람이 나타난다면이야. 그런 상대는 지금도 없고 앞으로도 나타날거란 보장은 없어."
그런데 내가 결혼이라니, 그런 것을.
그러니까 그와의 첫 만남은 201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의 어느 산자락에서였다. 한 아웃도어 브랜드의 프로그램 10인에 선발되어, 1박 2일로 도봉산에서 클라이밍을 했다. 그땐 한두 마디 나누었을까. 서로의 존재는 그리 크게 다가오지 않았었다.
서울로, 부산으로.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문득 그의 카톡 프로필 사진 속 한자로 쓰인 산 정상 비석이 궁금했다. "거기 무슨 산이예요?"로 시작된 연락. 그렇게 연락하는 누나 동생 사이가 되었던. 한 달 여간의 사이버 친구를 벗어나 마침내 만난 우리는, 연인이 되었다. 교환학생을 가게 될 그와 함께 약 6개월 간의 시한부 연애를. 그리고 그가 핀란드로 가고 나서 옆에 없으면 안 될 것 같던 우리는 자연스럽게 이별하게 되었다. 그리고 점점 잊혀 갔다. 그를 떠올리면 영화 클래식이 떠오르곤 했다. 한여름에 쏟아지는 소나기처럼, 뜨겁지만 불안했고, 영원할 줄 알았지만 청춘의 한 시절이었다.
그렇게 5년이 흘렀다. 우연히 가게 된 아웃도어 브랜드의 등산 프로그램. 우리가 함께 갔던 산에서 문득 그가 떠올라 연락했다. 한 달 후, 만나자던 그. 그렇게 우리는 한 번을 이별하고 두 번을 만나게 되었다.
지극히 개인주의자던 내게 있어
시간과, 돈과, 에너지를 누군가에게 쏟는다는 것,
그런 나를 인정하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오래 속으로 고민하다 얼마 전 그에게 말했다.
"우리 헤어지는 게 어때?"
나 너무 버겁다고. 연애가 소모적이라고.
내 일에 지장을 끼치는 것 같다고.
그는 결코 그럴 수 없다며 단호하게 거절했다.
대신 우리는 연애 말고 결혼을 하기로 했다.
곧장 양가 부모님들과 상견례를 하고,
다음날 예식장을 알아보고,
그다음 날 결혼할 날짜를 정하고서
예식장을 계약하기까지.
단 3일이 걸렸다.
그리고 앞으로 4개월 후 우리는 결혼을 한다.
결혼은 이 사람이 내사람이라 생각되는
그런 운명적인 순간이 있을 거라 생각해왔다.
그런데 아니다. 그냥 물 흐르듯 그렇게
인연에서 연인이 되고 연인에서 부부가 되어간다.
타이밍 그리고 서로의 노력으로.
식장 들어갈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말,
깊이 공감한다.
다시 만나고 일 년간 단 한번의 다툼 없이
지내던 우리였는데 결혼이라는 문 앞에서
무수히 부딪히고 싸움을 반복하고 있다.
비오는 서울 동묘에서는 부대찌개를 앞에 두고
눈물을 펑펑 쏟아내며 이 결혼 못해!!! 외치기도 했다.
결혼은 '성장'이다.
30년을 너무나 다르게 살아온 그와
너-나에서 우리가 되어가는 과정은 녹록지 않다.
게다가 부모님들까지 개입하는, 집안과 집안끼리의 맺음이 바로 우리나라의 결혼이 아닌가.
서로가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배려하고 양보하는 법을 익히게 되는 것,
그러니 성장할 수밖에 없다.
나밖에 모르던 내가, 조금이라도 나를 힘들게 하거나 내 일에 지장이 있다 싶으면 관계를 잘라내는 데 스스럼이 없던. 그래서 '칼아라(칼같이 끊어낸다고 해서)'라 불리는 내가 결혼이라니, 정말 그런 것을.
믿기지 않지만 하게 된 그것.
그래서 나의 결혼이라는,
무수한 성장통을 겪을 성장기를
브런치를 통해 같이 기록해나가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