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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원 Aug 28. 2020

여자를 여자답게 만드는 것

아니, 나를 미치게 하는 것




한 달에 한 번, 일 년에 12번, 살아가면서 적어도 4백 번….귀찮은 대자연의 그날, 바로 생리. 맨처음 시작은 초등학교 6학년 땐가 그랬다. 너무나 당혹스럽고 무서워서 엄마에게 말했더니, 엄마는 기뻐하며 당장 아빠와 오빠를 불러 그날 저녁 축하파티를 해주었다. 그 이후로 내게 생리란 존재는 아프고 불편하지만 부끄러워 감출 것이 아니었다. 대자연을 한답시면 우리집 두남자는 나를 더 챙겨줬고, 때론 생리대가 급하게 필요하면 오빠가 생리대를 사다주기도 했다. 생리가 시작되면 남자친구에겐 어김없이 "나 그날이야. 예민하게 굴더라도 이해해."  당부했다.

출처 : 표준대국어사전


구남친 현남편은 오래전 나와 함께 한 여행 중에 내 생리대를 사다주느라 이른 아침 뜬 눈으로 강릉시내를 누빈 적도 있으랴...(본인더러 생리대를 사게 한 여자는 내가 처음이라며) 유난히 생리양도 많고, 생리통도 심하고, 생리전증후군도 찾아오는 편이다. 한 번은 대학생 때 친구들이랑 간 빙상장에서 스케이트를 신나게 타다가 생리통에 주저앉고, 남사친에게 거의 업혀선 식은땀을 흘리며 택시 타고 집으로 돌아온 적도 있었다.


생리가 시작됐다하면 바닥과 한 몸이 되고, 배찜질 없인 못버틴다. 심지어 그 찜질기에 의존하다 배에 저온화상 입은 날이 얼마나 많은가. 생리혈도 많은데다 그 혈이 나오려할 때마다 자궁이 철수세미로 박박 문질러지는 듯한 고통을 느끼니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도대체 나는 이렇게 생리통이 심한가!??? 딸의 분노에 "엄마는 예전에 구급차에 실려간 적도 있어."라는 대답으로 생리는 유전이라는 가설을 더 믿게 되었다.


생리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도 있네. 신박해.



한 번은 여성병원에 갔더니 용종이 몇 개 있어(제거해야 할 필요는 없는 작은 것들) 생리양도 생리통도 심한 것이라 했다. 그리고 2주에 한 번씩 세 달 동안 생리를 무려 6번이나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의사 선생님이 "여자에게 보통 생리는 안 해야 문제지 자주 많이 한다고 문제 없어요." 해서 호르몬 조절 주사만 맞고 돌아온 적도 있다.


지난달, 생리예정일이 찾아왔다. 그런데 하루가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고, 2주가 지나도록 소식이 없었다. 원래 일정한 주기가 아니니까로 치부하기엔 너무 오래 안했다. 혹시...? 불안감이 엄습해서 검색창엔 '임신 극초기증상'을 쳐보고, 임신테스트기도 샀다. 떨리는 마음으로 한 테스트기 결과는? 다행히 한 줄. 임신이 아니었다. 테스트를 해보고 며칠, 여전히 소식은 없었고. 테스트기 정확도가 얼마나 되느냐는 남편의 질문도 있었다. 그러다 친한 언니와 점심을 먹으러 갔고, 거기서 즐겨 먹던 비빔밥에 냄새를 심하게 느끼며 도저히 숟가락을 못 들 지경이 되었다. 언니는 엄청 놀라며 "아라야 혹시...?!!!" 게다가 그날 오후엔 생리 피는 아니고 아주 연한 선홍빛 피가 나왔다. 찾아보니 임신 초기에 나오는 '착상혈' 같았다.



문제의 대게딱지장비빔밥. 단골식당의 좋아하는 메뉴인데                  이날은 도저히 입에 댈 수 없었다.



"나 정말 임신한 거 아니야?!"

그치만 테스트기는 두 번이나 아니랬다. 하루만 더 있어본 후 그래도 생리를 안하면 병원에 가보리 다짐을 했다. 다행히 그날 오후부터 피가 콸콸 쏟아져 나왔다^^;


45일 만에 했던 지난 생리, 그리고 아직 생리주기상 예정일은 2주 남았는데 오늘 갑자기 시작되었다. 이로서 요 며칠간 겪었던 증상이 이제야 이해가 갔다. 장염몸살인 줄 알았다. 변비와 설사를 오가고, 살짝 혈변도 보고, 온몸이 기운도 없었다가, 아랫배가 빵빵했다가, 식욕은 넘쳐났고, 밑도 끝도 없이 우울했다. 심지어 그제 밤엔 느닺없이 구남친한테

"너는 나를 좋아하지 않아.
나를 왜 미워해?"

하면서 전화로 서러움을 토로했다. 이유가 아예 없는 투정은 아니었지만, 울 일 까진 아니었는데. 혼자 심각해져서 이 결혼 잘한 걸까 고민하며 잠 못 이뤘다(남편 미안ㅋㅋㅋㅋㅋㅋ)



정말 밑도 끝도 없이 부린 히스테리(...)



나는 하필 선천적으로 왜 이다지도 예민한 몸을 가져선 여성 중에 40%가 겪는다는 생리 전 증후군을, 유난히 심하게 느끼는 건가. 아무튼. 해도 문제 안 해도 문제인 요놈의 생리. 생리전증후군 앓는 3일, 생리하는 7일... 한 달 30일 중 3분의 1은 나 자신을 잃는다. 이번 생리는 증후군이 심했으니 본게임은 무사히 넘어가길. 생리란? 좋게 말해서 '여자를 여자답게 만드는 것'. 그러나 필터링 없이 말해서 '나를 미치게 만드는 것'이라 할 수 있다.








p.s 생리에 분노해서 글 쓰다가 문득 인스타로 본,

'여성과 소녀를 위한 발걸음'이란 타이틀로 10km 비대면 하이킹하는 옥스팜 워크에 참가 신청했다. 오는 가을엔 더 많이 걷고, 더 많이 웃어야지.






bgm. 화조도(花鳥圖) - 심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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