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냐 존재냐 - 에리히 프롬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는 글과 함께 내 첫 브런치 글이 뭘 쓰면 좋을까라는 생각으로 설렘이 가득했다.
나의 이야기와 책을 엮어서 담백하게 작성해 보고 싶었다.
나는 원래 예중, 예고, 음대까지는 클래식 비올라를 전공하고, 이후 전공을 바꿔 '상담 심리'로 전공을 바꿔 대학원을 석사 졸업 그리고 현재는 박사과정 중에 있다.
상담으로 전공을 바꿨을 때, 대학원 석사 면접에서는 사람들의 심리가 궁금하고 그걸 학문적으로 풀어가고 연구하고 싶다고 말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땐 그냥 나를 알고 싶었던 것 같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진심으로 누군가와 소통하고, 함께 만들어나가기를 좋아한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나의 미해결 된 감정과 생각들을 정리하고 꼬임 없이 사람과 상황을 그대로 바라볼 줄 아는 눈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을 입 밖으로 얘기할 수 있게 되면서 나는 비로소 편안해졌다. 지금의 나도 계속 연습 중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연습 중인 나의 속은 복잡했다가 정리되었다를 매 순간 반복한다.
상담자들도 미해결 된 나의 과제를 푸는 시간들이 어렵고 힘든 경우들이 많다. 그래서 '교육 분석'을 받고, '사례회의'들을 통해 나를 계속해서 찾아가고 알아간다. 초반에 상담을 할 때, 내담자가 겪고 있는 주 호소와 그 호소에 따른 원인을 생각하고 심리검사를 통해 그 사람들의 힘든 점들을 분석하기 바빴다. 그런 생활이 오래 반복되다 보니 나는 친구들을 만날 때, 가족들을 만날 때도 그들의 아픔을 다 이해하고 싶었고, 그런 나의 욕심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이기적인 믿음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나 혼자 마음 쓰고, 나 혼자 피곤하고를 반복해 왔다.
내가 상담이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내가 평상시에 이기적으로 지냈던 나를 알 수 있고, 계속해서 부끄러울 수 있다는 수단'이 되어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생각보다 사람들도 복잡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내담자들을 만나고, 사람들의 고민을 듣다 보면 결국 사람들은 소통을 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냥 진심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함께 호흡해 주는 것, 그뿐이어도 많은 사람들은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것을 보았다.
많은 내담자들을 만나면서 느낀 건 자신이 불안한 사실 자체로도 스스로를 계속해서 테스트하고 엄격한 기준 안에서 혼내고 있다는 것이었다.(상담자의 마음 : 그 모습 자체를 받아들이시면 좋겠다...) 상담을 할 때면 그 사실들이 너무 슬펐다.
불안이라는 키워드를 이슈로 예를 든다면, 그냥 우리가 살아가다 보니 불안이라는 감정이 올라온 것뿐이고, 내 존재가 부정당할 때 또는 부정당했던 기억들이 올라온 것뿐인데, 많은 사람들은 그런 자신을 현재 행동하지 못한다고 스스로를 혼내고 무가치하다고 자신의 가슴에 비수를 꽂은 채 상담을 받으러 온다. 이 상황 자체로 화가 났던 적도, 덩달아 내담자와 함께 우울했던 적도, 화를 함께 느꼈던 적도, 말할 수 없을 만큼 많았다.
최근에 에리히 프롬의『소유냐 존재냐』책을 읽었다.
이처럼 사람들과 소통을 하다 보면 내가 소유하고자 하는 욕심과 나를 있는 그대로 보고 싶은 존재론적인 부분에서 늘 갈등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나 또한 그렇다.
책을 읽으면서 느낀 건 이 두 가지의 단어는 우리가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끊임없이 따라다닐 대치와 이를 균형을 맞추기 위한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나의 목소리를 계속해서 찾아가고, 듣고, 실천 하고를 반복하다 보면 나에게 보이지 않지만 누구보다 단단한 힘이 생길 거라고 믿는다.
이렇게 많은 사례들을 접하고 공부하면서 많은 분노와 슬픔을 동시에 느끼고 나니,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힘은 조금씩 강해지고 있는 듯하다. 이 감정은 숨통이 트이는 느낌을 준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경험을 했으면 좋겠고, 나의 의도와 다르게 오해받는다고 해도 온전히 자신의 존재는 존재하고 있다는 느낌을 통해 편안함을 느끼면 좋겠다. 우리는 분명 태어났을 때, 조건 없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가졌었고, 다만 내가 살아가면서 내가 부정당했을 때 받은 상처와 수치감들이 나를 냉정하고 엄격하게 만들었을 거다. 그런 내가 또 남에게 피해가 되고 싶지 않으니, 숨기를 반복하는 경험들을 많은 사람이 했을 거다.
하지만 상처를 받아도, 수치스러워도 나의 마음을 계속 바라보는 연습을 하며 살아가는 삶이 결국은 나를 위한 삶이라고 생각한다. 내 삶을 살아가는 건 '나'이니까. 그러니 내 세계를 더 확장할 줄 알아야 하고, 규칙과 기준 또한 나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니 사람들이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 고민을 하고 있다면, 사람들과 함께 호흡하고, 그 과정에서 스스로를 탐색하는 시간들을 보내며 의미가 가득한 자신만의 세상이 단단해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