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는 백지 위에서 존재한다.

John Locke _ tabula rasa

by 윤 솔

17세기 철학자 존 로크(John Locke)는 인간의 마음을

‘타불라 라사(Tabula Rasa)’, 비어 있는 백지에 비유했다.


로크는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의 경험을 통해 그 마음 위에 하나씩 흔적을 남겨간다고 보았다.


로크에게 인간은 태어날 때 순수했지만,

살아가며 수많은 인상과 감정,

판단이 덧칠되며 점차 ‘자신이라는 작품’을 완성해 가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우리, 예술하는 사람은 어떨까?

내가 생각하는 예술가들은 백지 위에 색을 입히고, 선을 더하며 자신만의 세계를 완성해 나간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과정은 결코 매끄럽지 않다. 색은 번지고, 선은 흔들리며, 수많은 도전과 실수가 그 위를 덮는다.

하지만 바로 그 흔적들 덕분에 그림은 깊어지고, 존재는 더욱 진해지고, 진실해진다.


예술가의 백지는 단순한 시작점이 아니다.

예술을 하는 사람들에게 백지는 매 순간 나를 다시 정의하는 세계이다.


완성된 그림을 다시 지울 수 있는 용기,

이미 알고 있는 부분조차 의심할 수 있는 용기,

그 반복의 과정이 우리를 존재하게 하고, 숨 쉬게 만든다.


우리가 해야할 것 중 하나는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 그게 '회복탄력성'이다.


계속 좌절과 만족감을 반복해서 느끼는 직업이기에

넘어졌을 때 빠르게 일어나서 도전할 수 있는 것도

예술가로써 필요한 능력이다.


그래서 백지를 다 채워서 찬란한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시작점에 다시 서있는 순백 자체의 백지인 나를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
어제의 성공도, 타인의 시선도 심지어 확신조차도 내려놓은 채,
오늘도 다시 백지 앞에 선다.


예술가는 결국 완벽한 그림을 남기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백지 위에서 존재하기 위해’ 산다.
비워내고, 채워나가며,
그 끝없는 순환 속에서 예술은 살아 있다.
그리고 그 백지 위에서
인간 또한 다시 태어난다.




그래서 다시 백지 앞에 선 모든 예술가들에게 말하고 싶다.

당신의 흔들림과 당신의 공백은 이미 아름다운 일부라고.
세상은 완성된 결과로 당신을 평가하려 하지만,

예술의 진짜 가치는 그 과정의 떨림에 살아있다고 믿어달라고.



우리 모두는 서툴고 불완전하지만,
그 불완전함 속에서 매일 새로워지는 존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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