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커리어만 완성되면 ‘내’가 만들어지는 줄 알았다.
"화려한 커리어만 완성되면
'내'가 만들어지는 줄 알았다. 그건 환상이었다."
나는 심리 강의를 하고 있다.
그런 내 안에도 미처 정돈되지 못한 감정과 생각들이 어지럽게 뒤섞여 있다.
강단 위에서 정답에 가까운 말들을 쏟아내다 보면,
문득 자책이 밀려오곤 한다.
타인에게는 그토록 다정하게 건넸던 위로의 언어들을, 정작 나는 지켜내지 못하고 있다는 서글픈 역설을 마주하는 순간들이 하루하루 늘어가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내가 미웠다.
스스로도 지키지 못하는 말들로 누군가의 삶을 논할 자격이 있을까. 이런 물음표들은 나에게 족쇄가 되어 옥죄었고, 나는 더 높은 기준의 성벽을 쌓아 나를 가두었다.
완벽해지려 애쓸수록 나의 일상은 채도가 낮은 흑백 사진처럼 변해갔다.
나에게도 온전한 일상이란 게 존재할까?
나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일까?
이런 서글픈 질문들에 매몰되어, 손을 뻗으면 닿을 곳에 있던 소중한 것들을 번번이 놓치고 살았다.
오직 나로서 숨 쉬는 ‘사람’으로 살고 싶어진다.
그게 나의 존엄성이고, 여기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쩌면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무방비하게 마음을 기댈 수 있는 든든한 품을 갈구해 왔는지도 모른다.
굳건히 버텨내는 ‘의지’보다는 때론 아이처럼 무너질 수 있는 ‘의존’을, 그리고 그 연약함조차 함께 보듬어가는 관계를.
그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아 마음 구석에 꼬깃꼬깃
접어 숨겨두었다. 언젠가 이 구겨진 종이를 조심스레 펼쳐 줄 누군가를 간절히 기다리면서도, 정작 겉으로는 차가운 문을 걸어 잠갔다.
나의 고립이 ‘일에 대한 열정’이라는 그럴싸한 핑계로 포장되는 동안, 나는 밀어내고 당기는 서툰 몸짓을 반복했다. 화려하게 만들 수 있는 커리어로 그 구겨진 나의 소중한 진심을 덮어버린 채.
하지만 이제는 안다.
존재론적인 내가 사무치게 존중받고 싶어 한다는 것을.
상처가 두려워서, 혹은 내가 쌓아온 세계가 무너질까 봐 나를 방치하기엔 나의 계절이 너무도 아깝다는 걸.
나도 이제는 일상에 누군가를 함께 호흡 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가는 듯 하다.
내 삶에 소나기가 찾아온대도 홀로 젖지 않으려 한다.
비를 피할 처마 밑을 찾는 대신, 기꺼이 빗속으로 함께 걸어가 줄 ‘일상의 존재’를 꿈꾼다.
오늘부터는 타인의 시선이 아닌,
나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하루를
시작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