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과 여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한 십여 년 전, 주머니가 가벼운 대학생들은 종종 학교 앞 백반집에 가곤 했다.
늘 분주했던 그 식당은 좀 특이한 점이 있었는데 남자에게는 국그릇 같은 대접 공기에 밥을 담아주고, 여자에게는 작은 공기에 밥을 퍼줬다. 물론 밥값은 똑같았다.
여자인 내 앞에 놓인 밥의 양은 동년배의 비슷한 체구 여성보다 밥을 많이 먹는 나로서는 다소 부족했다. 그 순간 굉장히 불쾌해졌었는데, 우선 같은 돈 내고 차별을 받았다는 것. 그리고 여자인 내 겉모습만 보고 편견으로 사람을 판단했다는 것. 두 가지 이유에서였던 것 같다.
결국 나는 밥을 더 달라 했고 바쁜 데 귀찮다는 듯 보던 아주머니의 표정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사실 그 식당도 처음부터 밥의 양을 다르게 주진 않았을 것이다. 남자는 밥을 더 달라 하고 여자는 남기는 경우가 많았으니 밥 공기를 다르게 주기 시작했겠지. 편의를 위해 그랬겠지만 그걸 위해 그 식당은 남과 여를 차별했고 더불어 편견도 덤으로 얹어주었다. 조금 귀찮더라도 주문을 받을 때 밥을 대자로 할지 소자로 할지 선택하게 했으면 어땠을까.. 대식하는 여자 혹은 소식하는 남자들도 있을 건데... 번거롭더라도 밥 양을 선택하게 하는 편이 밥도 덜 남았을 것이다.
십여 년이 흐른 지금은 어떨까.. 과연 달라졌을까.
얼마 전 '남아 미술'만 전문으로 가르치는 사교육이 아들을 가진 엄마들 사이에서 주목받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여아들이 많은 아동 미술학원에서 미술 못한다고 구박받던 남아들이 많았나 보다. 자칭 남아 미술 전문가라는 사람의 강의에 아들가진 엄마들이 몰려와 공감의 눈물까지 보인다는데, '남아 미술'이라는 말 자체가 참 웃기다.
기존의 '아동 미술' 프로그램에 많은 수의 남아들이 불만족했다면 그건 현재 이루어지는 아동 미술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기존 미술에 대한 수정 , 보완 없이 틈새를 파고든 '남아 미술'은 아들 가진 엄마들의 불만을 겨냥한 상술에 불과하다. 이는 '또 다른 문제가 있는 아동 미술 프로그램', 그리고 '남아'와 '여아'에 대한 편견을 만들어낼 뿐이다. 여아 미술, 남아 미술이 따로 있을까?
미술 교육 프로그램은 남녀 구분할 것 없이 다양한 아이들의 성향을 고려하고, 또 다양성을 키워줄 수 있도록 골고루 마련되어야 한다. 아이들이 최대한 많은 형태의 미술을 접하고 배울 수 있도록 해준 후에 자신의 성향에 맞는 미술을 선택하여 향유할 수 있게 해주는 게 맞다.
남아 미술, 여아 미술을 구분하는 건 남자애는 파랑색, 여자애는 분홍색을 선택해야만 한다는 논리와 다를 게 뭐가 있는가. 또 '우리 애는 남자애라 파란색을 좋아하고 만들기만 좋아하니까 그것 위주로 미술을 했으면 좋겠어' 이런 마인드면 그냥 교육을 시키지 않는 게 낫다. 오히려 편견만 심어주게 될 뿐이다. 차이를 고려한다는 명목으로 '남아', '여아'를 나눠 일반화된 프로그램으로 교육한다는 건 또 다른 편견을 낳을 수 있다.
분명 남성적, 여성적 성향에는 차이가 있다. 이를 남자 사람과 여자 사람은 다르다로 일반화시켜 받아들여선 안된다. 생물학적으로는 남자지만 여성성이 두드러지는 사람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을 것이다. 남자와 여자, 이분법적으로 나눌 게 아니라 '다양성'에 초점을 맞추는 게 맞고, 남성과 여성은 다양한 성향들 중 하나로 봐야한다.
차이를 고려한다는 이유로
편견을 만들어내고 있지는 않은가?
또 다른 차별을 자행하고 있지는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