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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오 Jul 23. 2016

의미가 된다는 것

나오의 그림에세이

나오nao_의미가 된다는 것_29.7×21cm_Water color and Acrylic on paper_2016

매년 한창 꽃이 필 때마다 내가 사는 지역에서는 꽤 유명한 꽃 축제가 열린다. 지역 발전에 굉장한 도움이 되는 축제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축제 기간이 달갑지 않다. 하나 둘 자연스럽게 피어나 만발한 꽃들이 사람들로 다 묻혀버리기 때문이다. 아마 오랜만에 만난 엄마 때문이 아니라면 행사장 근처는 가지 않았을 것 같다. 엄마는 좋아하실 수도 있으니까. 또 이 지역의 상징과 같은 행사이니까.


더운 날씨에 사람들 틈을 비집고 들어가 꽃벽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급히 번잡스러운 그 곳을 벗어나려는데, 태권도 행사가 있는지 도복을 단정하게 입고 걸어가는 아이들 틈으로 가뭄의 단비처럼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우리 반 까불이였던 남학생을 보니 나도 모르게 목소리 톤이 높아진다. 2년 만에 훌쩍 커버려서 하마터면 못 알아볼 뻔했다. 그 아이도 대열에서 벗어나 얼른 가야했고 나도 일행이 있어 금방 헤어져야 했지만 더 이야기하지 못해 매우 아쉬웠다.


돌아서는데 문득 이렇게나 사람들이 많은데 그들이 나에게는 생기 없는 조화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겐 나의 가족, 또 내 앞에 나타난 그 아이만이 의미있었기 때문이다. 전시장 안과 밖으로 색색의 아름다운 꽃들이 있었지만 인위적으로 장식되어 있는 그것들은 나에게 싸늘한 느낌을 주었고, 마치 그 꽃들처럼 이 수많은 사람들 역시 나에게 그 어떤 의미도 주지 못했다. 같이 간 일행도 나와 같이 느꼈는지 우리는 여백없는 그림과 같은 그 곳을 얼른 빠져나왔다.


집에 돌아와 키우고 있는 화분들을 돌보는데 치자 꽃봉우리가 조금씩 열리고 있었다. 갓 피어나는 치자를 보고 있자니 이 아이는 화려한 색도 없이 그냥 흰색이고 어찌보면 모양도 참 평범한데 향이 그렇게 예술일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특별한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치자향을 음미하다 보면, 아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이 향과 함께하면 두렵지 않겠구나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미친듯이 빠져들곤 한다. 다 좋은데 꽃을 피우기까지 관리도 힘들 뿐더러 금세 져버리니 너무 아쉽지만.. 그러기에 더 그 향이 귀한 것이겠지.


여하튼 확실한 건 나에게 있어 그 어떤 휘황찬란한 꽃보다도 순백의 치자가 의미를 지닌다는 것이다. 나의 취향, 기억, 선택 등이 향과 뒤섞여 황홀함을 가져다 준다. 나에게 치자꽃과 같은 나의 사람들.. 막상 같이 있을 때는 그 의미를 잊어버리다 오늘 같은 날에, 문득 바람결에 담겨오는 치자향처럼 다시금 그 의미를 생각해보게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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