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평균보다 늦되고, 평균보다 큰 몸을 가지고 있다.
나는 늘 모든 면에서 조금 늦되다.
태어날 때도, 예정일을 한참 지나고도 나올 기미가 없어 결국 엄마는 제왕절개로 나를 꺼내어야 했다.
그 덕에 나는 평균보다 훨씬 큰 몸을 가지고 태어났다.
아마 아기였을 때부터 나는 우유부단했던 것 같다.
과연 이 따뜻한 뱃속을 나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한참을 고민했겠지.
그런 성격은 30년이 훌쩍 지나도 전혀 변하지 않아서,
할까 말까 갈까 말까 살까 말까 그런 고민을 늘 달고 살게 되었다.
동생은 그런 내게 '아끼다 똥 만드는 재주가 있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이제 주변의 거의 모든 친구가 결혼을 한 뒤에야 '앞으로 어떤 남자와 살아야 하나'를 고민하게 되었는데...
어쨌든 그건 내가 고민하고 결정한다고 해도 당장 어쩔 도리가 없으므로 패스.
내가 할 수 있는 것 중에 미루고 미뤄왔던 것 중 하나는 프랑스였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파리 PARIS.
아아. 나의 꿈은 오랫동안 파리였다.
몽마르트르 언덕에서 빨간색 베레모를 쓰고, 그림을 그리는 것.
모네의 그림을 실제로 보는 것, 바게트를 먹으며 센강을 걷는 것.
노천카페에서 ' un cafe, sil vous plait(커피 한 잔주세요)'라고 말하는 것.
하지만 유럽은 역시 너무 비싸고, 아직은 유럽 미술사도 모르는데(응?) 여행을 가도 되나, 라는 생각에
망설이고 있을 무렵, 옆 자리에 앉은 팀원이 파리로 여행 간다고 했다.
아. 몇 달 전에 갔다 왔으면서 또? 파리가 그렇게 쉽게 가도 되는 곳이었나?
알 수 없는 배신감이 들어서 혼자 울적해졌다.
왜 나는 파리를 가는 게 그렇게 무리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첫 번째 이유는 역시 금전적인 문제.
스무 살 때 시급 2100원인(어머, 난 언제 적 사람인 거니)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하루 네 시간씩 한 달 꼬박 일해도 손에 쥐어지는 돈이 30만 원이 채 되지 않았다.
유럽여행을 가려면 적어도 1년 내내 아르바이트비를 모아야 하는데, 될 리가 있나.
이십 대의 내가 집중적으로 여행을 다녔던 것은 역시 아시아.
그 후 나의 여행 반경이란 아시아를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게다가 직장에서 근무하고 경력이 쌓일수록 자리를 비우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해져
이제는 돈도 없고 시간은 더 없는 그런 어른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역시, 모든 것은 엄두의 문제다.
스트레스로 인한 불면증과 편두통, 잦아지는 허리의 통증,
확연히 떨어지는 소화력, 봄이면 달고 사는 비염과 알레르기들.
어차피 크게 늘지 않는 통장 잔고.
그리고 옆 직원의 파리 여행.
그 모든 것들이 '이제는 제발 너도 파리로 가라!'라고 외치는 것만 같았다.
엄두를 내야 한다. 더 늙기 전에.
부장님께, 휴가를 허락받고, 나도 모르게 몇 번을 굽신거렸다.
"괜찮아요. 앞으로 또 가실 건 아니잖아요?"라는 말엔 움찔하며 얼버무렸다.
내 인생의 치트키를 이렇게 탕진하는 것인가, 라는 생각도 들었다.
아니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아끼다 똥 된 적은 많아도, 막 써서 빚진 적은 없잖아.
스스로에게 그렇게 위로했다. 비행기 값을 3개월 할부로 결제했다.
나는 평균보다 조금 늦되고, 평균보다 조금 큰 몸을 가지고 있다.
왠지 그 사실이 위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