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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창연 May 10. 2017

커다랗고 멋진 파리

놀라움이란 좋은 것!


파리의 수많은 문 중, 어딘가로 나는 들어왔을 것이다.

공항버스에서 내려 무거운 캐리어를 받고 낑낑거리며 고개를 들었을 때,

바로 옆에 개선문이 있었다.

근사한 말을 생각하고 싶었는데  파리의 첫인상은 '와, 진짜 크네'라는 생각뿐.

개선문도 크고, 나무도 크고, 대문도 크고, 조각상도 크고, 다 크다.

멀리서 봐도 크고, 가까이서 봐도 크다. 다 크다.


프랑스의 일러스트레이터인 상빼의 그림을 볼 때마다,

'사람들이 조그마해서 너무 귀여워!'라고 감탄했는데,

이제 보니 사람들이 작은 게 아니라, 건물들이 비현실적으로 큰 거였다.


에펠탑을 보면 어떤 생각을 할까 기대했지만, 

(아. 어쩌면 나는 울지도 몰라, 이런 생각을 했는데)

나란 인간의 첫 생각은  '오. 역시 크네'였다. 

촌스럽다.






그러고 보니, 이런 내 모습. 언제더라.

이십 대 초반, 강남 테헤란로를 처음 갔을 때랑 무척 비슷하다.

넓은 대로, 시원한 가로수들, 번쩍거리는 고층 건물.

작은 지갑을 손에 들고 점심을 먹으러 나온 직장인들이 무척 멋있었다.

'커다란 건물의 회전문을 열고 출근하는 직장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생각을 하며 누가 봐도 '시골에서 방금 올라온 아가씨'같은 표정으로 두리번거리며 걸었다.


지금의 나는 비록 회전문이 있는 건물로 진입하진 못했지만,

작은 지갑을 들고 거리로 나온 직장인들을 보면 '맨날 점심 메뉴 고르는 거도 일이지.'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익숙해져 버린 것이다.







파리에서 놀라워하는 나의 모습을 보는 일은 즐거웠다. 

커다란 나무를 바라보면서도, 열기도 힘들 것 같은 큰 문을 보면서도,

길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넓은 정원을 거닐면서도.


나의 놀라움은 대부분 경험 부족과 촌스러움에서 오는 것이었고, 

압도되었던 파리의 크기마저 금세 익숙해질 테지만

눈으로 보기 전엔 가늠할 수 없었던 넓은 세상을 만난다는 사실이 기쁘다.

몰랐던 넓은 세상을 조금씩 조금씩 만나며 놀랄 것이다.


그 후로 몇 번 '파리는 어떤 것 같아요?'라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의 첫마디는 이것이었다.

'모든 게 무척 크고... '


아. 커다랗고 멋진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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