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백이 나타내는 나의 모습들
요즘 들어 그런 아쉬움이 많이 든다.
너무 막막하게 보여서, 쪼그라드는 바람에 못해 본 일들.
그때는 소중한 줄도 모르고 놓쳐버린 기회들.
온 맘을 다해 부딪히지 못했던 미지근한 순간들.
처음 이 곳에 집을 보러 왔을 때,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레이아웃이었다.
우리 동네는 나무와 전선 사이로 보이는 하늘이 이쁘다.
어쩌면, 나는 그런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원래부터 구멍이 많은, 채워지지 않는 여백이 많은 사람.
그리고, 때로는 그게 나를 규정짓는 것 같기도 한다.
소심하고 주저하는 모습은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지만,
딴딴하지 않고 성글고, 물렁한 심성도 못 마땅하지만,
그래도 어쩌겠는가. 이게 난데.
편의점 앞에 앉아, 맥주를 마시는 아저씨들 사이에서 딸기 우유를 먹으며
레이아웃이 이쁜, 우리 동네를 그리다.
"내 마음 한가운데는 텅 비어있었다. 지금까지 나는 그 텅 빈 부분을 채우기 위해 살아왔다.
사랑할 만한 것이라면 무엇에든 빠져들었고
아파야만 한다면 기꺼이 아파했으며
이 생에서 다 배우지 못하면 다음 생에서 배우겠다고 결심했다.
하지만 아무리 해도 그 텅 빈 부분은 채워지지 않았다. 아무리 해도.
그건 슬픈 말이다. 그리고 서른 살이 되면서 나는 내가 도넛과 같은 존재라는 걸 깨닫게 됐다.
빵집 아들로서 얻을 수 있는 최대한의 깨달음이었다. 나는 도넛으로 태어났다.
그 가운데가 채워지면 나는 내가 아니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다. "
-김연수 , <청춘의 문장들>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