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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창연 Sep 12. 2016

원룸 일기

내 삶에서 가장 낯설다는 기분이 들었을 때



그런 느낌을 아시는지? 

허겁지겁 내리고 보니 엉뚱한 기차역에 내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의 기분 말이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낯선 곳에 홀로 서서 고개를 돌려보아도 어디로 가야 할지 전혀 알지 못한다. 처음으로 세대주가 된 내 기분이 그랬다. 


보라매공원 후문 근처의 4층 건물, 좁은 계단을 올라 3층 복도 끝에 있는 302호. 여기가 나의 집이다. 누워서 팔을 쭉 뻗으면 1미터 남짓 남는 7평의 직사각형 원룸. 왼편에는 세탁기와 맞춤형 싱크대가, 오른편에는 옷장과 냉장고가 벽을 채웠다. 책상 앞 창문을 열면 파란 하늘 대신, 옆 건물의 빨간 벽돌이 빼곡하게 보였다. 첫날, 방바닥에 앉아있으니 희미하게 들어오는 오후 햇살과 함께 낯선 기분이 나를 덮쳐온다. 나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에 도착해 있었다


2013년 5월, 6년간 함께 살던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외할아버지가 삼촌네로 합치면서 따로 나와 살게 되었다. 근사한 남자 친구도, 넉넉한 전세자금도 없는 상태에서 인터넷 카페를 통해 급하게 집을 알아봤다. 일을 마친 뒤, 집을 둘러보고 오는 길엔 번번이 눈물이 터졌다. 

내가 가진 돈으로 구할 수 있는 평수들이 턱없이 작아서 울고, 보러 간 집의 벽지가 너무 낡아서 울고, 그나마 마음에 들던 집을 코앞에서 놓치고 울었다. 그러지 않으려고 했는데 자꾸 신세 한탄이 되었다. 이렇게 초라하고 막막한 느낌이라니. 이게 나의 서른둘이라니.

내가 생각한 서른둘은 이런 것이 아니었다. 결혼까지는 아니더라도 미래를 약속한 남자는 있을 줄 알았고, 혼자 살더라도 넓고 근사한 오피스텔일 것이라 생각했다.


한 달을 돌아다닌 끝에 이사 갈 집을 구했다. 초여름의 뜨거운 햇살 아래 300여 권의 책과 4박스의 계절 옷을 3층으로 옮겼다. 박스를 껴안고 좁은 계단을 오르내리니 땀이 비 오듯이 쏟아졌다. 

이사가 끝나고 부모님이 고향으로 내려간 뒤 상자를 풀어 조금씩 짐을 정리했다. 처음 며칠은 책을 분류해 책장에 넣고, 그다음에는 철 지난 옷들을 정리했다. 냄비와 그릇을 정리해 싱크대에 넣고, 시장에서 산 계란과 우유를 냉장고에 채우고, 구석구석 쓸고 닦으면서 나는 알게 되었다. 결국 이것도 내 인생이라는 것을 말이다. 


언젠가는 누군가의 아내가 될 수도 있고, 엘리베이터가 있는 아파트에서 살게 될 날이 올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지금의 원룸도 내 인생의 일부분이다. 마음에 들지 않고, 계획했던 모양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방을 쓸고 닦는 2주 동안 낯선 기분은 조금씩 사라졌다. 


삶이라는 여행을 얼마나 더 해야 이런 낯설고 외로운 기분이 사라지게 될까? 그런 날이 올까? 종종 뜻하지 않게 우리는 낯선 곳에 도착한다. 엉뚱한 기차역에서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한 채 우두커니 서 있기도 한다. 아마 내게 앞으로도 여러 번 그런 낯섦이 찾아들 것이다.


어쨌든, 나는 낯선 곳에서도 어딘가로 걸어갈 것이고, 방을 쓸고, 삶의 구석구석을 쓰다듬을 것이다. 이렇게 초라해도 결국은 내 삶이니까.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이니까. 그리고 낯선 길을 한 발씩 걸어가는 것만이 인생을 받아들이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어떤 꾸밈이나, 회피함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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