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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꽃의 숨결

슬럼프 속에서 피어난 꽃

꽃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계기

by 자명

어릴 때 그렸던 것들 말고 작품으로 처음 꽃을 그린 것은 슬럼프가 왔던 그 시기였다. 대학 4학년때부터 프리랜서 형태로 5년간 캐릭터작업을 하고 있었다. 종종 외주 작업을 하면서 캐릭터를 디자인하고 캐릭터가 들어있는 일러스트 작업을 했는데, 나는 깊은 슬럼프에 빠졌다. 내 작업이 무거운 짐처럼 느껴졌고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컴퓨터도 켜지 않았고, 미술재료들을 다 치워버린 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손끝에서 아무것도 태어나지 않는 시간이 이어졌다. 6개월이 지나서야 갑자기 무언가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나는'시각디자인'을 전공했기에 대학시절부터 계속 컴퓨터로 작업해 왔다. 나는 태블릿펜이나 마우스가 아닌, 어릴 적에 쓰던 수작업 재료가 그리웠다. 베란다에 아무렇게나 치워버린 재료들을 다시 꺼냈다. '어릴 적에는 연필소묘를 많이 했었는데...'라는 생각을 하면서 연필을 집어 들었다. 연필가루 냄새와 연필심의 사각거리는 그 소리, 그리고 손끝에 전해지던 감각은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워주는 힘이 되었다.


2015년에 그렸던 연필소묘 습작들 (캐릭터작업을 하던 당시에는 '줄리아킴'이라는 예명으로 활동중이었다)


그러나, 캐릭터 작업은 중단할 수 없었다. 한동안 작업을 하지 않은 나 자신에게 죄책감과 부담감이 몰려왔다. 모든 창작자들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잊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그 당시 만나던 남자친구에게 했는데, 그는 이런 말을 했다.

"일기장을 서랍 속에 넣어뒀다가 가끔 생각날 때마다 꺼내서 읽어볼 수 있잖아? 그렇게 오랜만에 만난 일기장 속의 일기를 읽으면 일기를 쓰기 싫었던 감정보단 그냥 재미있어. 너의 캐릭터 '아잉이'가 소중한 것을 나도 알고 있어. 하지만 네가 지금 힘들다면 잠시 놓아도 괜찮아. 이것은 그만두거나, 잊거나, 버리는 게 아니야. 그냥 잠시 일기장처럼 서랍에 넣어두는 거야. 그렇게 서랍에 넣어뒀다가 언제든지 다시 이어서 쓰고 싶을 때 다시 일기를 이어서 쓰면 돼."

나는 마음을 굳게 먹고 애증의 내 캐릭터를 마음속 서랍에 넣어두기로 했다. 언젠가 다시 서랍을 열기로 하면서.


그림을 더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2015년, 일러스트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연필 드로잉도 하고, 수채물감을 이용한 동화일러스트를 배웠다.

그 당시에 학원에서 혼자 그렸던 연필드로잉 습작 (2015)


그렇게 학원을 몇 개월 다니다가 또 다른 일러스트 학원으로도 발길을 옮기게 되었다. 이곳에서 만난 원장님은 내 그림에 커다란 영향을 주신 분이다. 학원에서는 연필로 인물 드로잉을 그렸다. 수채 일러스트를 배우고, 아크릴 물감으로 작업하는 법도 익히고, 디지털작업으로 이전에 쓰던 포토샵이나 일러스트레이터툴이 아닌 페인터 툴을 사용하며 그림의 폭을 넓혀갔다. 하지만, 이 시기의 나는 우울증과 싸우고 있었다. 힘든 시간이었지만 병원을 갈 용기도 선뜻 나지 않았다. 요즘에는 인식이 많이 바뀌었지만 이 당시만 해도 정신과에 간다는 자체가 꺼려지던 시기였다. '남자친구가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남자친구는 내게 "감기에 걸리면 나쁜 사람이 된 거야?"라고 물었다.

"아니."

내 대답에 그는 말을 이었다.

"'마음의 감기'라는 말 들어봤어? 몸이 감기에 걸리는 것처럼 마음도 감기에 걸려서 아플 수 있어. 마음이 감기가 걸렸을 뿐이야.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어. 내가 사랑하는 너는 아파도 아프지 않아도 그냥 너야. 병원에 같이 가줄까?"

그 말을 들은 나는 울컥했다. 덕분에 병원에 갈 수 있었다.


역시나 병원에서의 진단명은 '우울증'이었다. 상담을 하는 시간들은 도움이 많이 되었다. 문장 완성 검사는 평소에 생각해보지 않던 질문들로 몰랐던 나 자신을 발견하기도 했고, 마음 편안하게 이야기할 수 있고 그런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의사 선생님 덕분에 좋아지고 있었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의 공허함과 무기력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런 상태에서 나온 그림들은 모두 어딘가 모르게 어둡고, 꼬집어 말할 수 없는 슬픔이 담겨 있었다.

선인장 1 / 선인장 2 (2015 습작)
날개 / 도려낸 심장 (2015 습작)

그중에서도 페인터 툴로 그린 '선인장 소녀' 작업은 우울한 기분 속에서 시작되었다. 선인장 가시처럼 날카로운 외로움 속에서 소녀를 통해 내 감정을 표현했다. 비록 툴을 다루는 것이 미숙해서 완성도는 높지 않았지만, 그 그림들 속에는 당시 나의 솔직한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훗날, 이 작업들을 다시 작업하여 선인장 1, 선인장 2를 새로 그려냈다.(새로 그린 작업물은 나의 브런치북 시집 선인장소녀에서 볼 수 있다.)


2016년 초까지 학원을 다녔고, 일러스트레이터그룹 '산그림' 등록심사에 포트폴리오 작품을 80여 점 제출했다. 그리고 심사에 통과하여 정회원이 되었다. 학원을 졸업하고 다시 혼자 그리게 되었다.

시기의 나는 그림을 찾아가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과정에서 내 손에 손으로 느끼는 촉감을 더하고 싶었 수작업 재료를 집어 들었다. 연필의 묵직한 무게, 종이 위를 스칠 때 들리는 사각사각한 소리, 그리고 물감 냄새까지. 그런 아날로그적인 감각은 내가 그림을 그리는 이유를 더 분명히 깨닫게 해 줬다. '내가 지금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실감을 더 강렬하게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오랜만에 손에 든 색연필은 나를 설레게 했다. 이 시기에는 다른 것들도 그렸지만 디저트를 주로 그렸다.


2016년에 그린 색연필드로잉 습작 / 카페 사장님께 선물했던 그림


디저트를 그리 것은 재미있었다. 크림의 질감, 빵의 부드러움, 그 위에 얹힌 작은 장식들까지 하나하나 세밀하게 그려내며 몰입의 즐거움을 맛보았다. 하지만 점점 더 새로운 대상을 그리고 싶어 졌고, 자연스레 나의 관심은 꽃으로 옮겨갔다.


2016년에 그린 색연필드로잉 습작


꽃을 그리니까 기분이 환기되는 것 같았다. 꽃을 계속 그리자는 생각을 했고, 이 시기에 우연인지 필연인지 '보태니컬 아트'라는 장르를 알게 되었다.

보태니컬 아트(Botanocal Art)는 '식물학 예술'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보태니컬 일러스트레이션(Botanical illustration)에서 유래된 장르로 예술적 요소가 추가된 식물학적인 그림이다. 우리말로는 '식물 세밀화'라고도 한다.

보태니컬 아트를 접하면서 내 그림은 더 성장했다. 색연필로 그린 내 꽃그림들은 세밀한 묘사가 더해졌다.

수선화 (종이에 색연필, 2017. 김예빈 作)
목련 (종이에 색연필, 2017. 김예빈 作)

그렇게 꽃을 그리기 시작했고, 이 시기에 그린 꽃들은 길가의 꽃들을 사진으로 찍은 뒤에 사진을 보고 그리는 식이었고 별다른 의미 없이 그냥 소소한 나의 행복이었다.

전시실에서의 목련 그림 모습


그러다 문득, 오래전 2008년에 서울 홍대 앞에서 미술학원을 다닐 때, 같은 학원을 다니던 어떤 언니가 떠올랐다. 그 언니는 언제나 밝고 긍정적인 모습으로 상냥했는데, 종종 학원에 꽃을 사 오곤 했다.

그날도 밝은 목소리로 "안녕하세요! 안녕~"인사하며 꽃 몇 송이와 함께 들어왔다. 원장님이 언니에게 물었다.

"그 꽃은 뭐야? 오늘 무슨 날이야?"

"아니요, 그냥 예쁘잖아요~"

언니는 흥얼거리며 꽃병에 꽃을 꽂아두었다. 그러면서 내게 말했다.

"너무 예쁘지?"

나는 말했다.

"근데 금방 시들잖아요."

"자신의 역할을 다 하고 시드는 건데 뭐. 그 자체가 예쁘잖아. 그리고 오늘 내 기분이 좋아지잖아. 이런 꽃을 볼 수 있는 것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데~"

그 말은 내게 깊게 와닿았다. 꽃은 그 아름다움으로 사람에게 행복을 준다. 그렇게 제 할 일을 다 하고 시든다. 시든 꽃은 자신의 할 일을 다 해낸 모습이다.


그 언니를 떠올리며 나는 새하얀 간판에 'Mari'라고 쓰여있는 동네 꽃집에 갔다. 누군가를 위한 선물용 꽃다발이나 꽃바구니, 꽃화분을 산 적은 있어도 이렇게 선물할 일도 없는데 가는 것은 처음이었다.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 나를 위한 꽃을 샀다. 꽃의 향은 내 코를 기분 좋게 했고 꽃을 한 아름 품에 안고 집에 오는 길은 행복했다.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게 되었고, '언니는 이런 기분이었던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이후, 꽃집에서 사 온 꽃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길가에 핀 식물과 꽃집에서 사 온 꽃까지 여러 식물들을 그렸다. 식물을 그림에 담는 순간은 행복했다. 시든 꽃조차도 나에게는 아름답게 보였다.

부들 (종이에 색연필, 2017. 김예빈 作) / 튤립 (종이에 색연필, 2017. 김예빈 作)
카네이션 (종이에 색연필, 2017. 김예빈 作) / 원추리 (종이에 색연필, 2017. 김예빈 作)


꽃집을 자주 가다 보니 플로리스트 언니와 친해졌다. 주 1~2회 꼬박꼬박 갔고, 갈 때는 언니 거까지 커피를 2잔 사들고 가서 우리는 함께 꽃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꽃에 담긴 색감, 향기, 형태, 그리고 사소한 이야깃거리들까지 모든 대화가 즐거웠다. 길가에 피어있는 식물을 그리는 것도, 꽃집에서 꽃수다 떠는 시간도, 꽃을 사 와서 그리는 시간도 즐거웠다. 러한 순간들이 반복되면서 나를 짓누르던 우울함은 조금씩 희미해져 갔고 나는 더 이상 우울증 약을 먹지 않아도 병원을 가지 않아도 괜찮았다.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 나를 위한 꽃. 나에게 내가 주는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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