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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빈 Jan 11. 2024

할머니의 사랑

어릴 적에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가끔 꿈에 나올 때가 있다.


처음 꿈에 나오신 건 돌아가신 직후였다.

꿈속에서 짐을 잔뜩 실은 리어카를 할아버지가 앞에서 끌고 할머니가 뒤에서 밀며 어딘가로 가던 중이셨다.

"할머니! 할아버지! 어디가? 나도 갈래!"

"저~기 멀리 가야 돼. 너는 갈 수가 없어. 저~리 가라."

그리고는 사라지셨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매일 우울했다.

나는 초등학생이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당시 나는 우울증이었던 것 같다.학교에서 말수도 적어졌다.

 쯤 두 번째로 꿈에 나오셨다.

꿈에서 할머니를 보자마자 안겼다. 어디 갔었냐고 따지며 펑펑 울었다.

할머니는 말씀하셨다.

"어디 안 가~ 우리 손주 놓고 내가 어딜 가나"

그러다가 꿈에서 깼는데 슬퍼서 엉엉 울었다.


세 번째로 꿈에 나오신 건 내가 중학생 때였다.

꿈속에서 학교 끝나고 집에 갔는데

할머니가 집 앞에 서 계셨다.

"여기 너희 집 아니야."

"우리 집이 왜 우리 집이 아니야?"

"이제는 너희 집이 아니야."

그 꿈을 꾼 이후 얼마 후에 우리 집은 전세사기로 경매에 넘어갔다. 아마도 이걸 미리 말해주고 싶으셨던 것 같다.


그 후 한동안 꿈에 보이지 않으셨다.
그러다 2023년 초, 오랜만에 꿈에서 할머니를 봤다.
할머니는 물청소하고 계셨다.
청소를 하시니까 피해서 지나가려는데 할머니가 밝은 미소로 말씀하셨다.

"여기 닦아놓은 길로 가라. 할미가 깨끗하게 닦아놓았으니까 이쪽으로 이렇게 닦아놓은 길로 지나가."

그래서 할머니말대로 그리로 지나왔다. 뒤돌아서 할머니를 봤는데, 할머니는 말씀하셨다.
"잘했다 잘했어."

할머니는 여전히 열심히 청소를 하셨고 나는 꿈에서 깼다. 할머니는 손녀 가는 길이 힘들지 말라고 길을 닦아두고 싶으셨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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