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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주 Mar 02. 2023

왜 졸업 앨범 사진은 늘 망하는 걸까

근황 토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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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글이 언제였는가 되짚어 볼 필요도 없이 또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 버렸다. 이 글 역시 당장 완성해야 하는 원고를 뒤로 하고 쓰는 글임은 물론이다. 나는 대체 왜 이렇게 생겨먹은 걸까. 2023년은 이렇게 살지 않기로 했는데. 하지만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무슨 일이 일어나고야 만다지.


나는 언제나처럼 여전히 '이렇게' 살고 있다. 오늘이 3월 2일이라서 갑자기 입학을 한 듯, 개학을 한 듯, 새 학기를 시작한 듯 나도 덩달아 쓰기 시작한 것은 아니다. ...아니, 사실 맞다. 뭔가를 시작하기에 새 봄만 한 것이 없으니까. 이러다 또 사라지려고? 아니라고 딱 잘라 말하기는 어렵지만, 최대한 안 그래 보려는 것이 올해의 목표이다. 다행히 당분간은 그러지 않을 것 같다.


드디어 두 번째 책 원고를 완성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한 줄씩 꼼꼼하게 읽으면서 편집자 님과 함께 퇴고 작업 중이다. 출간은 올 6월 말에서 7월 초가 될 것 같다. 물론... 이대로 책이 되어도 좋은가, 라는 울먹한 마음이 하루에도 '스물네 번씩' 든다. 첫 책 이후로 5년 만에 나오는 책이라 그런가. 그때보다 곱절은 더 걱정이 된다. 그러나 첫 책 때에도 그랬듯, 이 세상에 있는 사람들 중 한 명 정도는 내 글을 읽고 마음속의 아주 작은 공감 버튼 하나 정도는 눌러 주시겠지. 아주 오래전에 잊었다고 생각했던 그리운 사람이 생각 나도 좋고. 행여 책이 잘 안 되더라도... 전 재산을 털어서 내가 다 사들이면 되니까 걱정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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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한 해는 요 몇 년 중 가장 행복했다. 엄마는 내가 그 '수많은 곳들'을 다니면서 이렇게나 불평불만 없이 조용하게 잘 지낸 게 처음 같다고 하셨다. 그런가? 내가 그렇게나 불평불만이 많았나? 머쓱하게 뒤통수를 긁으며 생각해 보니 그런 것도 같다. 대학원, 시민단체, 공공기관, 사기업, 스타트업, 대학교를 거쳐 들어간 고등학교는 뭐랄까. '봄비가 잔뜩 내리고 난 후 활짝 갠 풀밭' 같았다. 아직 촉촉하고 풋풋해서 정신없이 쏘다니다 보면 나도 모르게 비에 젖어 감기에 걸리기 쉬운 풀밭. 그래서 몸도 마음도 아픈 적이 많았는데, 그마저도 아이들이 예뻐서 훌훌 다 털어 버릴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참 좋은 선생님들을 많이 만났다. 그래서 올 2월로 계약이 종료되고 학교를 나올 때 참 많이 아쉬웠다. 학교 현장을 떠나는 것보다도 우선 사람들을 떠나는 것이 안타까울 정도로, 작년 한 해 그곳의 사람들과 함께한 기억이 참 좋았다.


이런 경험을 좀 더 일찍 했다면, 나도 다른 친구들처럼 곧바로 교직에의 길로 나아갔을까.

그렇다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이 길고 긴 방황의 길을 일찌감치 마무리 지었을까.


그런 생각을 한 퇴근길이 있었다. 하지만 이 역시 나의 선택. 어느 쪽이든 아쉬움은 남는 법이니까. 학교로 갔다면 내가 달리 간 길 위에서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과 풍경들을 결코 보지 못했겠지. 다른 길 위에서의 시간들 덕분에 지금까지 살아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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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그렇고, 오늘 글의 제목이 왜 '이 따위(?)'인가 하면-

작년 상반기는 시간 강사로, 그리고 하반기는 기간제 교사로 일하면서 말 그대로 '어서 와, 교사는 처음이지?'로 인해 참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는데 말이다. 그 가운데 가장 큰 시행착오는 아무래도 '졸업 앨범'의 사진이 아닌가 한다... 어쩜 이렇게 졸업 앨범은 참으로 일관되게 못 나오는지? 멀리 유치원부터(눈을 반쯤만 뜨고 찍었음) 초등학교(백팔번뇌에 휩싸인 보살상 같음), 중학교(100년 된 동상 같음), 고등학교(북한군 장교 같음)까지 변함이 없다. 이쯤 되면 얼굴의 문제라고 생각할 법도 하지만 나는 꿋꿋하게 외부에서 원인을 찾는 중. 사실 나도 찍어야 하는지 몰라서 멍 때리고 있다가 다른 선생님들께서 어서 가서 찍고 오라고 알려 주셔서 후여후여 다녀왔다. 그날 마침 정장 비슷한 옷을 입고 있기는 했는데 옷이 문제는 아닌 것으로 판명됨.


아이들의 졸업 앨범에 (아마도 영원히?) 남는다고 생각하니 긴장이 팍 되어서 아주 곱게 화장을 하고 갔는데 곱다 못해 밀가루 수준으로 바르고 갔나 보다. 모르겠다. 잘 기억이 나지 않는 걸 보면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그렇게 달려가서 찍고 온 후에 졸업 앨범 일은 또 까맣게 잊고 지내던 어느 날. 이번에는 사진을 확인하러 오라는 메시지를 받았다. 몇몇 선생님들이 확인하러 가신다고 같이 가자고 하셨는데 나는 그때 확인을 꼭 해야 할까 싶어 안 가겠다고 했다. 왜 그랬어. 그때 갔어야지. 그럼 적어도 패왕별희는 아니었을 거 아냐. 후회가 취미, 나 자신 혼내기가 특기.


그렇게 시간은 속절없이 흐르고 나는 사실 졸업 앨범을 볼 기회가 없었는데, 마침(하필) 내 옆자리 부장님이 3학년 담임이시라 어쩌다가 보게 된 것이다. 졸업식 전전날에 우연히, 그놈의 졸업 앨범을. 보지 말았어야 했다. 솔직히 볼까 말까 망설였는데 또 이놈의 호기심을 못 이겨서 슬쩍 펼쳤다가 오 마이갓! 얼른 덮었다.


엄... 잘 나왔는데요?

녜? 부장님? 저요? 저 말인가요?


나는 보았지. 부장님의 동공지진. 학교를 떠나게 되어 많이 아쉬웠는데, 앨범 사진을 보고 아쉬움이 많이 진정되었다. 이런 사진을 남기는 것은 이번 한 번으로 족해. 얘들아, 안녕. 고마웠고 즐거웠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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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1년 간의 학교 생활을 잘 마쳤다.

바로 다른 학교에서 교직을 다시 이어갈까도 많이 고민했고, 실제로 몇 학교들에서 연락을 받아 참 감사했다. 그러나 고심 끝에 상반기는 책 작업을 마무리하고 다른 작품을 쓰는 데 좀 더 몰입해 보기로 했다. 또다시 집에 들어앉은 딸을 위해 엄마아빠는 오늘 새 김치를 바리바리 싸들고 올라오셨다. 집에서 밥 해 먹으려면 김치가 있어야 한다고. 그래서 지금 김치만 다섯 종류가 되었다. 엄마는 졸업 앨범 속의 내 사진을 무척 궁금해하셨지만 차마 휴대전화 안에 남길 수가 없어 내 머릿속에만 남겼다. 후후.


올해도 힘내 보자. 무엇이든 맛있게 먹고 즐겁게 읽고 힘을 내어 쓰고 그리고 기도하자. 올해를 살아갈 나와 모두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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