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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주 Nov 21. 2022

새겨져 흐르지 않는 시간이 있다

열일곱 살들의 <나> 전시회


나의 열일곱은 난리법석이었다. 


세기말을 뚫고 찾아온, 그러나 무엇이 어떻게 돌아갈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미지의 해 2000년. 밀레니엄 새해에 나는 고1이 되었고 당연히 가리라 믿었던 집 앞의 여고가 아닌 저 멀리 있던 - 사실 어디에 있는지도 잘 몰랐던 - 한 남녀공학에 입학한다. 이미 오빠가 2년째 다니고 있던 고등학교였지만 '흔한 남매'답게 그러거나 말거나 별 관심이 없어 학교에 관해서는 잘 몰랐다. 남녀공학이라는 것, 전교생이 삼천 명에 육박하는 큰 학교라는 것, 학교 외관이 화려해 영화나 뮤직비디오의 촬영 장소가 되기도 했다는 것. 딱 그 정도. 


입학하고 보니 남녀 분반이었고, 한 학년에 무려 20반까지 있었고 - 그것도 한 반 45명 내외로 - 원래 남고였다가 뒤늦게 여학생을 받아 여자반 5개 반, 남자반 15개 반의 성비가 제법 불균형한 학교였다. 학교 식당이 아주 컸고 급식이 맛있었던 기억. 학교가 워낙 크다 보니 학생회도, 동아리도, 축제도 아무튼 뭐든지 많고, 크고, 복잡하고 그리고 재미있었다. 복잡해서 재미있었을까. 고등학교 생활이 재미있을 거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그래서인가. 아니면 지나고 난 기억이라 그런가. 재미있고 설렜고 즐거웠다. 학업 스트레스는 컸지만 그것을 상쇄하고도 남을 추억들이 매달, 매년, 매 순간 쌓이는 기분이었다. 


언젠가 다른 글에서 썼던 난타 공연, 시화전, 고1 때 강촌으로 떠났던 엠티, 매년 만들었던 문집. 궁금한 게 많은 열일곱들은 틈만 나면 모여 앉아 내일은 뭐 할까, 다음 달은 어떻게 보낼까 궁리들이 많았다. 글 쓴다고 모여서 작당 모의나 하고 도넛 가게에 죽치고 앉아 음료 한두 잔에 몇 시간을 그냥 그렇게 흘려보냈다. 축제 준비를 한다며 밤 열 시가 넘도록 학교에 숨어서 뭔가를 오리고 붙이고. 경비 선생님께 걸릴까 봐 숨소리도 제대로 못 내고 빛이 새어 나간다며 창문마다 검은 색지를 갖다 붙이고. 왜 몰랐겠는가. 그냥 눈감아 주신 것이겠지. 그때 하염없이 틀어놓고 들었던 크라잉넛의 <밤이 깊었네>는 그때에도 그런 상념을 불러일으켰다. 나중에, 아주 나중에 이 노래를 들으면 지금 이 순간이 기억날까. 아마도 그렇겠지. 과연 그랬다. 


축제 공연이 끝나고 텅 빈 공연장에 둘러앉아 눈물을 찍어내며 내가 다 잘못했고 미안하고 고마웠다며 신파극도 찍고. 이 모든 과정은 문집이라는 기록으로 남아 지금까지도 나를 참- 일렁이게 만든다. 부끄럽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한데 또 한편으로는 너무나 열일곱다워서 그때가 좀 부럽고 그립기도 하다. 그때로부터 꼭 22년이 흘렀고, 나는 어떤 인연들의 끝에 다시 학교에 와 이번에는 교단에 서서 2022년의 열일곱들을 본다. 


9월부터 11월까지 두 달 동안 1학년 아이들 7명과 함께 '자아탐색 프로그램'에 참여할 기회가 있었다. 나는 담당 교사로 방과후 수업이 진행되는 동안 아이들을 챙기고 지켜보고 담당 강사 선생님과 소통하는 임무를 맡았다. 수업이 끝날 무렵에는 간식도 넣어 주고(제일 중요한 임무). 다른 학교들에서는 주로 강사였기에 이런 역할의 전환이 신기하기도 하고 흥미로웠다. 소설로 치자면 1인칭 주인공 시점이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바뀐 기분이랄까. 다양한 직업을 전전하는 일은 무척 고단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렇게 새로운 시각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생겨 좋다.


아이들은 <나와 자존감>이라는 주제로 학교 근처의 한 창작 공간에서 일주일간 전시회를 열었다. 전시 주제부터 포스터, 소품, 공간 구성까지 어느 하나 아이들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열일곱 해를 살며 느낀 '나 자신'과 '나의 세계'를 저마다의 시선과 방식으로 그려냈다. 글과 그림, 사진, 엽서, 스티커와 포스터, 평소 자신의 애장품과 버킷 리스트. 공간은 따스했고 전시는 여운이 깊게 남았으며 지나가는 날들은 아름다웠다. 이 모든 과정을 함께 기획하고 이끈 것은 단연 강사 선생님. 그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의 도전 의식과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통해 나도 많이 배웠다. 


이 열일곱의 날들을 아이들은 어떻게 기억할까. 서로가 함께한 시간들은 어떤 모습으로 새겨졌을까. 아주 어릴 적에는 시간은 흐르는 것이라 여겼고, 좀 더 자랐던 어느 날엔가는 시간은 쌓이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은 '어떤 시간은 흐르지 않고 새겨진다'라고 믿는다. 


이 날들이 아이들의 기억 속에 오랫동안 남기를. 그리하여 괴롭고 힘든 미래의 어느 날에 무엇에도 기댈 수가 없을 때 이 시간들에 기대어 천천히 그 순간을 넘어가기를. 내가 자주 그러하듯이. 그런 생각을 하며 오늘도 시간을 새기는 마음으로 아이들을 본다. 흐르지 않고 새겨지는 시간들은 어디에 고이는 걸까. 어느 곳에 머물며 지나간 시간들을 아직 살아 있는 침묵으로 증언하는 것일까. 전시회장을 돌아 나오며 방명록에 한 자 한 자 자취를 남겼다. 


빛나는 시간을 함께할 수 있어 정말로 기쁘고 감사합니다. 60일간, 방과후에 모여 자신을 찾고 고민하며 나눈 흔적이 이렇게 아름답게 남아 모두와 공유되어서 큰 감동입니다. OO고에서 그리고 자기 자신 안에서 마음껏 자신을 향해 달리며 더 많은 세상을 보고 듣고 느끼며 성장해 나가기를. 깊어지기를. 그리하여 끝내 자기 자신에 다다르기를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모두와 만나 행복했습니다.  - 2022년 11월 15일 화요일 오후 다섯 시.


우리 모두 끝내 자기 자신에 다다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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