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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주 Mar 27. 2023

코로나 이후 4년 만의 여행

2023년 겨울, 홋카이도 삿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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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오래되어 기억이 잊히기 전에 몇 자 적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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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초입에 홋카이도를 다녀왔다. 2030 시절 여행과 비즈니스로 일본에 여러 차례 다녀왔지만 홋카이도는 처음이었다. 여행을 준비하며 마지막 여행이 언제였던가 돌이켜 보니 2019년,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 참석 차 들렀던 유럽이 끝이었다. 그때 마지막으로 남았던 헝가리 부다페스트 일정을 취소한 후 귀국해 버렸던 것을 두고두고 후회했었다. 나는 당시 헝가리행 티켓과 숙박 예약을 취소하며 순진하게도 이런 생각을 했다.


마음만 먹으면 금방 다시 갈 수 있을 거야.


'즉흥형 인간'답게 무수한 여행을 그런 방식으로 시작하고 끝내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헝가리행 비행기를 눈앞에서 떠나보내면서도 당시에는 크게 아쉽지 않았다. 돈도, 체력도 거의 다 떨어졌으니까 이게 최선! 굿굿! 글쎄, 그게 최선이었을까? 당시에는 그렇게 여겼던 것 같다. 그러나 코로나가 터지고 이런저런 이유로 국경들이 꽉꽉 들어 막히자 속상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아오! 내가 미쳤지! 그때 왜 여행을 포기했담??

사람의 마음이란 게 이토록 간사하고 변화무쌍하고 그래서 쓰잘데기 없이 소소하다. 그때도 지금도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가'에 대해 찾고자 한다면 분명 그럴듯한 이유를 열 개 정도는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그 과정을 합리화라 부르든 어쨌든 지나간 일이니까, 하고 마음을 다잡으며 좋았던 순간들에 마음을 놓아 두는 수밖에 없다. 그래도 그해 봄이 참 아름다웠고 덕분에 즐거웠다,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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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코로나 시대가 왔다. 

아무도 부른 적 없지만, 끈질기게 달라붙어 4년 넘게 온 세상을 뒤덮고 있는 코로나. 

방법을 찾으면 어떻게든 코로나를 뚫고 다시 여행길에 오를 수도 있었겠지만 내게는 그럴 만한 재간도, 용기도 없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랬듯 그저 숨을 죽인 채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그저 살았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그 시간들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겠다. 그사이 많은 일들이 있었고, 내 글에서조차 솔직하게 밝히기 힘든 어려움들도 존재했다. 이번 홋카이도 여행은 그 시간들을 모두 겪어낸(혹은 겪어내고 있는 중인) 기념으로 다녀왔다. 날짜는 2023년 1월, 기간은 6박 7일, 장소는 홋카이도 삿포로, 멤버는 형신과 K 그리고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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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신치토세 공항을 빠져나와 삿포로를 향해 달리던 그 첫 순간을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터널을 지나던 열차가 갑자기 환한 빛 속으로 빨려들 듯 나아갔을 때, 눈앞에 펼쳐지던 온통 하얀 세상. '와, 눈이 많이 내렸다'의 차원이 아니라 이 세상의 기상 현상이란 오직 눈밖에 없다는 듯 눈 아래 눈, 눈 위에 다시 눈인 풍경. 말 그대로의 설국. 사람들의 체온과 입김으로 잔뜩 흐려져 바깥이 잘 보이지 않는데도 우리들은 창에 딱 붙어서 가만히 지나는 풍경을 바라보았다. 그건 참 이상한 감정이었다.  그렇게 한동안 말없이 있는데 뒷자리에서 문득 형신의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잘 왔다, 우리.

 


공항에서 삿포로 시내로 가던 열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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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 대체로 그렇듯이, 떠나오기 전에는 당연히 이런저런 고민이 많았다.

지금 여행을 떠날 때인가? 게다가 이런 시국(생각해 보면 늘 '이런 시국'이었지만)에 일본을? 안 간다고 큰일 나나? 아니면, 다녀온다고 해서 뭐가 크게 달라지나? 어쩌구저쩌구. '홀로 여행'을 극도로 좋아하는 1인답게 셋이서 떠나는 여행에 대한 걱정도 당연히 있었다. 그것은 나뿐만이 아니라 멤버 모두에게 해당되는 일이었다. 하고 있는 일도, 성격도, 취향도 몹시 다르기에 벌어질 수 있는 여행지에서의 곤란한 상황들에 대해서 미리 점검하고 준비했다. 대단한 것은 아니고, 1) 공통으로 참여할 것과 2) 각자 따로 할 것을 구분하는 일이었다. 가령, 나는 쇼핑의 ㅅ에도 관심이 없으므로 모든 쇼핑 일정에는 빠진다. 그렇게 빠지는 3일간의 자유 시간에 나는 하루는 일일 온천, 이틀은 서점과 홋카이도 대학 탐방에 나선다. 그러다 보니 또 홋카이도 대학은 다 같이 가 보면 좋을 것 같아 일정이 조정되었다. 


그 결과 6일 동안 다음과 같은 곳들을 갔다. 


1일 차: 홋카이도 대학(공통)

2일 차: 비에이 일일 투어(공통)

3일 차: 서점(개별)

4일 차: 조잔케이 온천(개별)

5일 차: 오타루 탐방(공통)

6일 차: 서점(개별)


2023 비에이


그중에서도 비에이에서의 하루는 정말 예상치 못한 특별한 순간들을 안겨 주었다. 아침부터 계속해서 눈이 내리더니 홋카이도에서도 근래 보기 드문 눈폭풍이 몰아닥친 것. 대체 이런 악천후에 어떻게 운전을 하나 싶을 만큼 어려운 상황에서도 버스는 앞으로 나아갔고, 우리들은 말로는 다 못할 풍경들을 보았고, 무사히 숙소로 돌아왔다. 지금 생각하면 꿈을 꾸었나 싶을 정도로, 살아서 이런 풍경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기쁘고 감사했다. 그곳에서 우리들은 함께 있었지만, 각자 자신만의 시간을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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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간의 일정을 보면 알겠지만, 우리들은 무엇을 하겠다 하는 굳센 다짐 없이 그저 시간을 흘려보냈다. 글쎄, 내가 없는 동안 형신과 K의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나는 시간을 슬렁슬렁 많이 흘려보냈다. 


이렇게 오래 한 곳에 있어도 되나 싶을 만큼 넉넉한 시간을 서점에서 보냈다. 

서점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보고 싶었던 풍경들을 마음껏 보았다. 

온천을 오가는 버스 속에서 수첩에 의미 없는 낙서를 하기도 했다. 

그러다 한 노부부의 대화를 긴히 엿듣기도 했다. (물론, 무슨 말인지 거의 못 알아들었다.) 

온천에 있던 한 자판기에서 어린 꼬마가 뽑아 먹은 음료수를, 나도 몰래 따라서 뽑아 먹기도 했다.  

두어 권의 책을 사들고 삿포로 시내에서 형신과 K를 만났을 때는 고작 반나절 못 본 건데도 너무 반가웠다. 

서로 무엇을 샀느냐며 쇼핑백을 들추어 볼 때는 조금 겸연쩍기도 했다. 

서로의 구매 물품에 관심이 없다 못해 해저 이만 리 수준임이 너무도 명백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형신과 K의 옷들은 입기라도 하지, 나는 필시 다 못 읽을 원서를 또 쟁이듯 샀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금세 잊을 풍경들을 보기 위해 떠나고, 

다 못 읽을 외국의 서적들을 구경하다가 충동 구매하기 위해 떠나고, 

얼마간 실패하고 후련하게 성공할 이국의 음식들을 맛보기 위해 떠나고, 

아무튼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지만 그 모르는 순간들을 위해서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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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만의 여행은 그렇게 끝났다. 


여행을 떠나 있는 중에도, 줌으로 소설 합평에 참가했다. 동료들의 글을 제대로 읽지 못했지만 합평에 빠지고 싶지 않았다. 형신과 K가 시내 구경을 나간 사이 나는 숙소에 홀로 남아 벽에 등을 대고 컴퓨터를 켰다. 이어지는 그들의 응원. 잘 듣고 열심히 써라. 맛있는 간식 사 올게. 맥주도! 


홋카이도라니! 너무 좋겠네요. 글감 많이 담아 오세요. 


그 말씀대로, 글감을 많이 '담아' 왔는지는 잘 모르겠다. 시간을 계속해서 흘려보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젠가 이곳에도 썼지만 '어떤 시간들'은 분명히 흐르지 않고 쌓인다. 눈이 쌓이듯. 홋카이도에서의 일주일도 내게 그렇게 쌓였으리라 믿는다. 그렇다면 글감을 많이 '담아' 온 것이 맞겠다. 언제 어떤 방식으로 글이 될지 모르나, 여전히 내 안에 존재하고 있는 그 희고 푸르던 시간들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하며 계속해서 써 볼 작정이다. 계속해서.  (끝)


비에이의 희고 (좌) / 삿포로 시내의 푸르던 풍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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