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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주 Nov 13. 2023

혼술하는 밤

와인, 빵과 치즈, 파인딩 포레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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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있어 보이게 제목을 썼지만 그냥 긴 하루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술 한 잔 했다는 소리다. 맛있는 빵을 선물로 받았고 빵과 어울리는 주종을 찾다가 와인 한 병을 사들고 들어왔다. 안주로는 빵과 치즈 그리고 어제 보다 만 영화 <파인딩 포레스터>. 한 병을 다 비우면 글이고 뭐고 농땡이 피우다 잠에 들 것 같아서 깔끔하게 반 병만 비웠다. (마라톤 준비하신다면서요??) 그래도 양심은 있어서 플랭크는 까먹지 않고 했다. 


영화는 오랜만이다. 마지막 영화가 뭐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영화관에서 마지막으로 본 게 설마 <해피아워>는 아니겠지? 2021년 12월에 본 영화인데? 한때 영화에 미쳐서 하루에 세 편씩 보고 살았던 적도 있는데 이렇게 뜸해질 수가! 코로나 이후로 안 가 버릇했더니 이렇게나 멀어져 버렸다. 올해가 가기 전 그래도 출근 도장을 한 번은 찍어 볼까. 형신이 12월에 재미있는 걸로 하나 보자고 했는데 제목을 잊어버렸다. 로맨틱 코미디였나? 그 작품으로 영화관 나들이의 포문을 다시 열어 봐야지.


아! 가장 마지막으로 본 영화가 생각났다. <패터슨>(2017)이다. 어느 무료한 오후에 TV 채널을 돌리다가 케이블 영화 목록에서 우연히 발견하고 보았다. 잔잔한데 울림이 있었다. 조만간 이 영화에 대한 리뷰도 한번 써 봐야겠다. (브런치는 영화 검색 및 입력 기능은 지원이 안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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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야기를 하니 문득 생각난다. 


한때 영화 포스터를 열심히 모았다. 벽에 거는 근사한 것들 말고 영화관에서 주는 리플릿 포스터들 말이다. 관람한 영화는 물론이고, 보고 싶은 영화에다가 때로는 안 볼 것 같지만 마음에 드는 포스터까지 정성스레 수집해 파일링 해 두었다. 그렇게 모은 게 40매짜리 파일로 두 권이었으니 앞뒤로 넣었다고 했을 때 도합 160매 정도는 되었나 보다. 그중 <파인딩 포레스터>도 있었던 것 같은데 가물가물하다. 아끼는 포스터들도 많았고, 몇 가지는 따로 빼서 방문 앞에 붙여 두기도 했다. 그러다가 이사 다니면서 정리한답시고 과감하게 버렸는데 갑자기 아쉽다. 나름의 역사인데. (영원히 미니멀리스트는 못 될 듯) 


아무튼 <파인딩 포레스터> 좋았다. 나이 든 대작가(하지만 은둔 중인)와 풋풋한 작가 지망생 청소년(하지만 주변에서는 글 쓰는지 잘 모르는)의 만남과 반목, 그 후의 유대는 <굿 윌 헌팅>이나 <죽은 시인의 사회>가 생각나는 익숙한 구성이었지만- 그건 그만큼 대중의 마음에 와닿는 '여전한 무언가'를 지닌 플롯이라는 뜻이겠지. 숀 코네리의 연기가 좋았고 2000년대 극 초반의 뉴욕 풍경이 인상적이었다. 내친김에 90년대~2000년대 초반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들을 좀 찾아봐야겠다. 그러고 보니 몇 해 전 문득 생각이 나 <내 사랑 컬리수>를 다시 보았는데 참 재미있었다. 어린 시절, 이 영화를 무척 좋아해서 열 번은 돌려 본 것 같은데 어떤 장면은 아주 생생하게 기억이 났다. 다시 봐도 흥미로웠던 작품. (정신 연령이 열 살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니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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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이면 아주 오래되지도 않았는데 왜 이렇게 그리운 마음이 들까 생각하다가 문득 22년 전이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22년 전이라니! 맙소사, 오래되었잖아? 22년 후에 다시 오늘을 돌이켜 보며 똑같은 소리를 할지도 모르겠다. 2023년이면 아주 오래되지도 않았는데 왜 이렇게 그리운 마음이 들지? 그러다 까마득한 마음이 되어 버리는 것이지. 어머! 벌써 22년이나 되었잖아? 하고. 


가만, 그럼 2045년인데 2045년이라니. 어떤 세상일지 가늠도 되지 않는다. 또 무엇이 얼마나 변해 있을까 혹은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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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하면, 쓸데없는 수다는 다 떤 것 같다. 그러니 이제 이 이야기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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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하루였다. 


멀리, 잠들어 있는 친구에게 다녀왔다. 도착하기 전 무엇을 사 볼까 하여 먼저 꽃집 앞을 서성였다. 그러다 결국 돌아섰다. 다음으로 먹을거리라도 좀 사 볼까 하여 편의점에 들어갔다. 무엇을 사야 할지 몰라 망설이다가 덜렁 물 한 병 사들고 나왔다. 작년에는 술을 한 병 들고 갔었다. 


이제는 편하게 아무것이나 먹을 수 있을 텐데- 


그러면서도 끝내 망설이고 마는 내가 좀 멍청하고 어리석게 느껴져서 돌아오는 길 내내 미안하고 쓸쓸했다. 그래도 힘을 또 내 보아야지. 함께 간 친구들과 맛있는 점심을 먹고 차도 한 잔 했다. 날은 추웠지만 햇살이 따뜻했다. 내년에는 좀 덜 추운 날을 골라 다녀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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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도록 평안하고 자유롭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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