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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주 Nov 14. 2023

무협 에세이를 시작하며

무협은 인스타와 쌍벽을 이룬다

언제부터였을까.

딱히 언제라고 할 수 없는 먼 기억. 그러니까 꽤 오래전부터 나의 주된 관심사 중 하나는 바로 ‘죽음’이었다. 의료 분야에 있는 것도 아니고, 관련 공부를 한 것도 아니면서 나는 언제부터 죽음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걸까.


그렇게 묻는 친구에게 언젠가 농담처럼 ‘그건 무협 때문이야’라고 한 적이 있다. 여섯 살 무렵인가. 어쩌다 보게 된 어린이 무협 드라마를 시작으로 무협 소설과 영화들에 푹 빠지면서 툭하면 찔리고 찌르고 죽고 살아나는 장면들을 많이 보아서 그런가. 그 전설 같은 이야기들을 보며 왜 저 사람은 죽어야 할까, 왜 이 사람은 살았을까 그런 게 늘 궁금했다. 사람의 목숨이 한순간에 사라지고, 죽었던 사람이 우여곡절 끝에 살아나고. 물론 개연성 없는 전개들도 많았지만 그때마다 나는 잠시나마 삶이란 무엇이고, 죽음이란 또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던 것 같다. 그리고 무협 드라마에 꼭 빠지지 않던 장중한 음악들도 알게 모르게 영향을 미쳤다. 드라마가 시작될 때면 웅장하게 흐르던 타이틀곡의 가사들은 또 얼마나 심오한 것이었는지. ‘한 잔 술에 시름을 잊고 산처럼 무거운 삶을 벗는다’처럼 어딘가 익숙하지만 서늘한 문장들을 읽으며 혼자 전율하곤 했다. 그래서 고등학교에 들어가 처음 만든, 문예 동아리 문집에 ‘다시 태어나면 고대 중국의 무술인’이 되겠다고 진지하게 적었던 그런 순간도 있었다. 그건 아직 유효한 꿈이다. 꿈에서나 이룰 수 있겠지만.  <세상의 모든 ㅂ들을 위하여> 37-38p


무협을 좋아하는데 직접 쓸 재간은 없고 무협에 대한 이야기, 재미있게 본 무협 소설, 좋아하는 무협 드라마 정도는 이야기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서 거두절미하고 시작해 보려 한다. 소설과 영화, 음악이 이리저리 뒤섞이고 때로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였다가 주제가 OST 이야기였다가 가끔은 후뢰시맨이나 우뢰매 이야기를 할 수도 있다. 한마디로 다짜고짜 들쑥날쑥 중구난방 얼렁뚱땅 우당탕탕일 거란 소리다. 그런데 그러면 또 어떤가. 원래 좋아하면, 두서가 없어지게 된다. 좋아하는 마음과 질서 정연함은 잘 어울리지 않는다.


내가 무협 이야기를 할 때 그렇다는 걸 자주 깨닫는다. 무협 이야기를 하면 즐겁고 신이 난다. 무협을 보며 알게 된 사실들, 깨달은 것들을 나누고 싶어 좀이 쑤신다. 이런 이야기를 왠지 나만 알면 안 될 것 같고 모두와 나누고 싶어진다. 하지만 친구들은 제발 혼자만 알고 있기를 바라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그냥 나 혼자 이곳에서 떠들어 보기로 했다. 그동안 내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을 인내심을 가지고 잠자코 들어준 수많은 친구들에게 감사와 경의를 표하며. (무협 에세이라는 좋은 아이디어를 준 진지에게 특히 감사)


언젠가 친구가 인스타에는 '삼라만상'이 있다고 했다. 무협도 그러하다. 인물들이 태어나고 자라 성장하고 부딪힌다. 삶의 비의를 풀어내느라 분투하며 괴로워한다. 사랑하고 미워하며 어제의 적과 동침하고 오늘의 벗과 이별한다. 정(正)과 사(邪)를 구별하고 진짜와 가짜가 뒤섞인다. 정상에서 나락으로 떨어지고 떨어진 자리에서 철학이 탄생한다. 신의와 배신이 뒤엉키고 새로운 세대의 출현이 예고된다. 그렇게 한 세상이 저물고 삶은 계속해서 이어진다.


결국 모두 다 '사람과 세상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를 보고 무엇을 취할 것인가는 각자의 몫이다. 그러하므로 나는 이제부터 <무협 에세이>를 통해 내가 발견한 나의 몫에 대하여 소탈하게 이야기해 보려 한다.


고등학교 졸업 기념 문집에 남발된 TMI_그 와중에도 무협 사랑 대금 사랑은 잊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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