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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주 Nov 21. 2023

받아들임과 내려놓음

<판관 포청천> 진가장원 편

* 미미한 스포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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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관 포청천>은 1994년 당시 공중파 무협 드라마로는 드물게 공전의 히트를 친 대인기 드라마였다. 아마 제목만 들어도 '아! 그 작두를 대령하라!'라며 고개를 끄덕일 사람들이 많을 테다. 당시 열한 살이었던 나도 그 덕분에 친구들이랑 포청천 흉내 많이 내고 다녔다. 주로 작두를 대령하라며 딱지나 지우개를 날려 대는 게 일이었다. 가끔은 전조가 되겠다며 봉 비슷한 건 다 휘두르고 다녔으니 그때에도 여자 역할은 딱히 하고 싶지 않았나 보다.    


찾아보니, 한국에 들어온 1993년도 작품은 대만 CTS에서 제작했고, 우리나라에는 1994년 하반기부터 방영되었다. 그때가 제법 선명하게 기억난다. <판관 포청천>은 정규 편성되기 전, 추석 명절 특집 파일럿으로 방영되었고 나는 그걸 본방으로 보고 완전 푹 빠져 버렸다. 여러 에피소드 중 '진가장원' 즉, '가짜 장원 사건' 편이었다. 이 파일럿이 의외로 큰 인기를 끌면서 KBS에 정규 편성된 것으로 알고 있다. 매주 금요일 밤에 방영되었고 이걸 보려고 다들 귀가를 서둘렀다고 하니 외화 치고는 인기가 참 대단했다고 하겠다. 전체 시청률 1위도 여러 번 했던 걸로 안다.  


파일럿 프로그램이 방영되었을 당시 우리 가족은 진주에 살고 있었다. 명절을 맞아 서울 할머니 댁에 방문한 시기에 우연히 본 것이었는데 사촌 오빠들과 어른들 틈에 끼어 본방 사수할 수 있었던 것을 지금도 무척 다행스럽게 여긴다. 이때의 기억이 얼마나 강렬했는지 나는 그 후로도 빼놓지 않고 모든 에피소드들을 웬만하면 다 보았고, 특히 <TV 포청천>이라는 제목으로 나온 소설책까지 두 권 보유하고 있다. 하나가 이번에 다룰 <가짜 장원 사건> 편, 다른 하나는 <청룡주> 편이다. (이러다 생활사박물관 차리겠네...)


여러 편의 내용들 중 특히 <진가장원>을 골라든 이유는 제일 첫 번째로 본 작품이기도 하지만 그 내용이 오늘날에도 꽤나 많은 시사점들을 던져 주기 때문이다. 물론 어린 날에는 그냥 '주인공 불쌍해', '저 나쁜 천벌 받을 놈!'이라는 생각만 가득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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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관 포청천>의 <진가장원> 편은 다른 에피소드들과 마찬가지로 어느 날 포증(포청천) 앞에 억울함을 호소하는 거지 아이 하나가 나타나면서 시작된다. 비가 내리는 어느 날 밤, 거리를 지나는 포청천 앞에 무릎을 꿇고 읍소하는 거지 아이가 나타난다. 이름은 '소기아'. 얼핏 봐서는 남자인지 여자인지 분간이 잘 안 된다. 아이의 소원은 하나다. 얼마 전 알게 되어 자신이 돌보고 있는 한 남자(소기아가 '가련이'로 이름을 지어 준다)의 억울함을 밝혀 달라는 것.


'가련이'라는 사람은 눈이 멀고 말도 못 하고 손마저 쓸 수 없도록 아주 크게 다친 채로 소기아의 앞에 나타났다. 원래 무엇을 하던 사람이었는지 과거는 묘연한 채다. 거의 다 죽게 된 것을 소기아가 데려와 간신히 살려 놓았는데, 어느 날 새 장원의 혼례 축하연에서 얻어 온 음식을 주자 먹지는 않고 눈물만 흘렸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소기아가 이 사연을 포청천에게 고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축하연의 주인공은 이번 과거에서 새 장원으로 뽑힌 '주근'이었다. 그는 과거에 급제한 후, 왕승상(조정의 충직한 신하로 <배추도사 무도사>의 무도사 같은 캐릭터)의 사위까지 되어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가련이가 바로 이 '주근'을 고발한다. 그가 '가짜 장원'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진짜 장원이 따로 있다는 말인가?


그랬다. 가련이의 본명이 바로 '주근'. 공교롭게도 새 장원이 된 '주근'과 동명이인이었다. 포청천은 입에 붓을 물고 글씨를 써 자신의 이름을 '주근'이라 밝힌 '가련이'에게 묻는다. 그러면 네가 바로 장원이라는 것이냐? 가련이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자 포청천의 호통이 벼락처럼 내리친다.


거짓말하지 마라!


깜짝 놀란 가련이 아니, 주근이 바닥에 엎드리며 눈물을 흘린다. 포청천은 퇴청 후에도 근심에 잠겨 있다. 상대는 왕승상의 사위다. 게다가 황제가 직접 장원으로 택한 사람이 바로 지금의 장원 '주근'. 그런데 온몸을 크게 다친 신원불명의 남자 하나가 웬 거지 아이와 함께 나타나 진짜 장원이 본인이라며 억울함을 호소한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조정이 발칵 뒤집어질 일이다. 이야기는 뒤로 갈수록 흥미진진하게 몰아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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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에 약스포라고 쓰긴 했지만, 결말을 알아도 사실 크게 관계없기는 하다. <판관 포청천> 시리즈가 대체로 그렇듯 억울한 자의 사연을 '어떻게' 풀어나가는지가 관건이기 때문이다.


원래 두 명의 '주근'은 일면식이 없는 상태에서 과거를 보러 가다 만났다. 여러 사연(가짜 장원 주근이 뱀에 물려 다 죽게 된 걸 진짜 장원 주근이 구해 주었다)으로 둘은 의형제까지 맺는데, 형 주근은 과거를 며칠 앞두고 몸이 아파 그만 시험을 못 보게 된다. 한편, 동생 주근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홀로 떠나고, 장원에 급제한다. 이를 축하한다는 명목으로 동생 주근을 불러 독을 탄 술을 대접하고 형 주근은 그렇게 원래 진짜 장원이었던 동생 주근의 자리를 빼앗아 대신 장원 행세를 한다. 이름이 똑같았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독을 탄 술을 먹이는 걸로 모자라 아예 그 술을 얼굴에 부어 버린다. 정말 잔인한 장면이다. 그러면서 형 주근은 억울해 미치겠다는 얼굴로 이렇게 외친다.  


난 너보다 능력도 재주도 많은데!

네가 장원이면 난 대체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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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예기치 못한 일들이 참 많이 발생한다. 인간의 계획이 무용해지는 순간이다. 가짜 장원이 된 '주근'도 그랬을 것이다. 누구보다 열심히 준비하고 기다려 온 과거 시험.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된다. 그런데 그 얼마 안 남은 날들 사이에 그만 큰일이 벌어진다. 눈앞이 깜깜하고 절망스럽기만 하다. 한 치 앞도 모른다는 표현은 이럴 때 쓰는 것일 테다. 게다가 의형제가 된 주근이 장원이 되다니!


이런 일은 정도와 형태만 다르지 살아가는 동안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 그러하므로 여기서부터가 중요하다. 남은 건 이미 벌어진 일에 대하여 어떤 태도와 관점을 취할 것인가의 문제라는 것이다. 가짜 장원 주근의 마음도 이해는 된다. 자신은 시험조차 치르지 못했는데, 같이 며칠을 보내며 친해진 타인이(의형제가 되었다고는 하지만) 덜컥 장원으로 뽑히다니. 장원 급제를 목표로 공부에 매진한 그에게는 얼른 받아들이기 어려운 결과일 것이다.


하지만 어쩌겠나. 일은 벌어졌고 가혹하지만 현실은 현실이다. 받아들이지 못하면 끝없는 괴로움 속에서 헤매게 될 뿐이다. 물론, 사람이기 때문에 '나도 시험을 봤었더라면'이라는 가정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실제로 시험을 치렀더라면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었겠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 이후로 이어질 가정도 소용없는 일이다. 그런데 가짜 장원 주근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저 자리에 내가 있었더라면!

저 자리가 내 것이어야 했는데!

저 자리는 내 것이다! 빼앗겼다! 억울하다!

난 너보다 재주가 많고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그러니 넌 사라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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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잘못된 결론이자 파국의 결정이다. 드라마라 극단적으로 설정된 감이 있지만, 그렇다고 아주 비현실적으로만은 느껴지지 않는다. 솔직히 말하면, 올해 나온 뉴스 어디에선가는 한 번쯤 본 구조 같기도 하다. 사람의 마음이 한 번 비뚤어지면 어떤 결말로 치닫는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섬뜩한 부분이다.


형 주근은 글은 잘 썼을지 몰라도 다른 하나에서 동생 주근에게 크게 밀렸다. 바로 인격이다. 형 주근을 사로잡고 있는 감정의 밑바닥에는 이런 생각도 자리하고 있을 것. '내가 볼 때 쟤는 별거 아닌 것 같은데!' 이와 같은 극단적인 우월감은 부족한 자기 이해에서 시작된다.  그는 자기의 그릇을 몰랐다. 아니, 인정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그는 자기 자신을 다스리는 데 실패했고, 분노와 욕망을 제어하지 못한 나머지 자신을 살려 준 두 명의 은인을 해쳤다. 글은 그 사람의 반영이다. 세상의 모든 일들이 대체로 그러하지만 언어를 다루는 일은 특히 그러하다. 아무리 빼어난 글로 세상을 놀라게 해도 인격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그건 그저 글자에 불과할 뿐. 가짜 장원이었던 주근은 한순간의 잘못된 선택으로 이 모든 것을 놓쳤고 망쳐 버렸다.


일그러진 욕망의 말로는 대체로 이와 비슷하다. 자신과 타인 그리고 주변의 세계 모두를 파괴한다.


나는 어렸을 적 이 작품을 보고 왜 착한 일만 한 진짜 장원 주근이 저렇게 가혹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 내가 다 원통하고 답답해서 죽을 지경이었다. 특히 초반에 두 명의 주근을 거두어 보살핀 나무꾼 할아버지가 나오는데, 가짜 장원 주근은 자신의 범죄가 탄로 날까 봐 이 나무꾼마저 죽여 버린다. 정말 악행의 끝을 달린다. 나중에는 진짜 장원 주근의 억울함이 풀리고 소기아와 함께 그간의 고생을 회복할 만한 대우를 받지만 상처받은 몸과 과거의 시간들을 어떻게 보상받을 수 있을까.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 진짜 주근은 받아들였겠지. 자신에게 벌어진 일을. 용서까지는 모르겠지만, 모든 게 밝혀지고 회복의 절차를 밟을 때에 더 이상 고통받지 않기로 '결정'했겠지 싶었다. 그건 마지막에 주근이 환하게 웃는 모습에서 알 수 있다. 과거에 매이지 않기로 선택하면 된다. 어렵지만,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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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최상의 에너지 상태는 평화이고, 이는 모든 욕망이 없는 상태'라는 말을 들었다. 깨달음이 있었다. 아, 평화라는 건 역시 욕망과 함께 찾아올 수 없구나. 갖은 욕망 속에서 번민할 때에 나는 왜 평화롭지 못한가 괴로워했는데,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아무것도 내려놓지 못하면서 평화를 바라는 건 참 바보 같은 일이었다.


아직 살아가야 할 날들이 남은 자로서(얼마나 남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섣불리 모든 욕망을 내려놓겠다 단언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왕이면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내려놓으면서 살 수 있기를 바란다. 내려놓지 못하고 괴로워하며 남과 세상을 탓하는 사람으로 살기보다는, 끊임없이 내려놓고 잘 안 되어도 또 내려놓고 받아들여 끝내 평화로운 자로서 살아갈 수 있기를 희망한다.  


* 다음 편은 명절이면 단골로 방영되던 영화 <호소자>에 대한 글입니다 :)


* 마침 <아시아앤 스튜디오> 유튜브에 포청천 <진가장원> 편 요약이 있어 참고가 되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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