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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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초등학생이었던 시절 어느 주말의 일이다.
부모님이 청계천에 다녀오셨다. 보통 따라나설 법도 한데 그날은 만화영화를 보느라 그랬는지 집에 오빠와 둘이 남아 있었다. 복원 공사 이전의 청계천은 만물 시장처럼 거리마다 기기묘묘한 물건들을 펼쳐 놓고 파는 노점들이 많았다. 가끔 중고서점이나 비디오 대여점이 폐업하며 내놓은 물건들을 가져와 파는 사람들도 있었다. 먹거리를 파는 노점과 가게들도 많았고 전체적으로 흥성흥성하는 오일장 내지 유럽의 빈티지 마켓 느낌이 났다고 할까. 그런데 그날 집으로 돌아온 엄마의 손에 비디오테이프 두 개가 들려 있었다. 나에게 줄 선물이었다. 하나는 <작은 숙녀 링> 다른 하나는 <호소자 5>. 말씀을 들어 보니 전자는 엄마가 후자는 아빠가 고른 것이었다. 엄마께는 너무 죄송하지만...
<작은 숙녀 링>은 2번 보고, <호소자 5>는 200번 봤다. (두 비디오 모두 아직 집에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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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뭐가 그리 재미있었는가!!
<호소자>는 1986년에 대만에서 만든 영화로 1편부터 대략 7편 정도까지 나온 듯하다. 아마 1편이 흥행 대박을 쳐서 그 후로 죽 만들어진 것 같은데, 이 1편은 우리나라에서도 여러 번 방영이 되고 인기도 제법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방학이나 어린이날 등 특별한 시기에 특집 영화로 본 기억이 나는데 서양에 <나 홀로 집에>가 있다면 동양에는 <호소자>가 있었던 게 아닐까. (물론 <나 홀로 집에>의 아성이 더 어마어마하다)
<호소자>의 스토리는 작품 수가 많은 만큼 제법 다양하지만, 기본 토대는 비슷하다. 아국, 소호, 뚱보라는 이름의 아이들이 나오고 이들의 모험이 주된 내용이다. 1편은 산속에서 살며 할아버지의 엄격한 지도 아래 무술을 연마하던 삼 형제가 불만을 품고 세상 속으로 나와 할머니를 찾아간다는 이야기이다. 산에서만 살다가 도시로 처음 나온 셋의 좌충우돌 모험이 흥미진진했던 기억이 난다. 1편인 만큼 주연 배우들도 나이가 어렸는데 이들의 무술 솜씨가 아주 볼 만했다. 특히 둘째로 나온 소호(좌효호 배우)의 실력이 가장 뛰어났는지 다른 편들에서 주역이 되거나 7편인가에서는 단독 주연으로도 나온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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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 오늘 이야기해 보고픈 내용은 <호소자 5>이다. 나는 이 5편이 그 어느 편보다 재미있고 의미도 있다고 생각하는데 다른 편들보다는 덜 알려진 것 같다. 하긴 5편 정도 되면 뜨거운 관심도 식을 법하다. 그렇다면, 5편은 어떤 내용인가? 이 역시 스토리 자체는 어디선가 본 듯 익숙하다.
청나라가 멸망하고 군벌들의 세력 다툼으로 세상은 어지럽기만 하다. 그 와중에 세력을 장악한 서 장군은 노름으로(!) 자신이 보유한 군대를 죄다 잃고, 이를 되찾기 위해 돈이 필요해진다. 고민 끝에 6개국에 차관을 신청하는데, 저마다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거절한다. 이에 서 장군은 불명예도 씻고 돈도 구하려는 마음으로 국제 운동대회를 개최(!)하기로 한다. 이를 위해 유학파 감독도 초빙해 오는데, 문제는 선수들. 뜬금없고 갑작스런 운동대회에 참가할 선수들을 대체 어디에서 데려온담?
와! 어디선가 본 듯하다. <공포의 외인구단> 같기도 하고 일견 <뮬란>의 느낌도 난다. 그렇다. 이 작품도 이렇게 영화가 시작되고 그 후로는 선수들을 모으는 과정과 훈련, 대회 참가까지가 '승-전-결'의 전부이다. 그래서 스토리만 보면 '에이, 뻔하네!' 할 수 있다. 뻔하고 익숙한데 또 그만큼 재미가 있다. 이상하다. 뻔하고 익숙하면 재미가 없어야 하지 않나? 아니면, 내가 원래 돌려보기를 너무 좋아해서 아무리 봐도 안 질린 건가? 그럴 수도.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스토리는 뻔하지만 '여기에 나오는 선수들 각각의 캐릭터와 사연들이 참 흥미롭고 나름 찡한 것이 꽤 감동이 있더라!'라는 것. (물론 좀 어이없는 내용들도 많다)
아무튼 서 장군은 이래저래 주변에서 선수감을 찾아보는데 보유하고 있던 군대는 노름으로 다 잃었고 과거에 운동으로 이름을 날렸던 사람들도 이제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어린이들을 타깃으로 만든 영화이지만 이런 부분은 꽤나 의미심장하다. 서 장군은 할 수 없이 사단장 심득표에게 3일 동안 '잘 달리고, 잘 뛰고, 잘 싸우는' 사람들을 모으고, 잘 훈련시켜서 대회에 내보내라는 명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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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부터 엉망진창이다. 심득표는 포고문을 붙이고 저잣거리를 활보하며 선수를 찾기 시작한다. 이게 아주 코믹하다. 싸움이 나서 장대에 엉덩이를 찔린 남자가 그 충격으로 얼결에 성 위까지 뛰어올라 매달리고 마는데 그걸 본 심득표가 그를 높이뛰기 선수로 임명하는 식이다. 경극을 보러 가서는 도둑으로 물건을 훔치러 왔다가 얼결에 경극 배우들과 싸우게 된 청년이 창을 던지는데 이게 심득표를 스쳐 의자에 꽂히면서 또 투창 선수로 임명해 버린다. 정말 그 에피소드 하나하나가 골 때리는데, 결국 이런 식으로 어찌어찌 우당탕탕 모으고 모아서 '오합지졸 선수단'이 마련된다. 그리고 응원단은 일종의 요정 같은 곳에 가서 여인들을 데려온다. (아래 [여담] 참조)
결론적으로, 이 오합지졸 선수단은 눈물의(?) 훈련 끝에 제법 그럴듯한 선수들로 거듭나고 우여곡절 끝에 훈훈한 결말(?!)을 맺는다. 기억나는 장면은 훈련 과정에서 툭하면 '저력! 저력!'을 외치면서 서로를 북돋는 것이다. 당시에 이 '저력'이라는 말의 중국어 발음이 재미있어서 오빠와 둘이 따라하곤 했다. 그때는 '저력'이라는 단어가 지니는 진중한 뜻을 잘 모르고 그랬는데 '속에 간직하고 있는 든든한 힘'이라니. 커서 보니 참 무게감 있는 단어였다. 이 대사는 운동회 마지막 순서인 계주를 할 때에 마지막 주자가 지쳐서 뒤처지자 모두가 어느 순간 한마음으로 외치는 신호탄이 된다. '저력'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다 쓰러져 가던 주자가 조금씩 일어났음은 물론이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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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을 다시 떠올리고 정리하며 나는 줄곧 '쓸모없음'에 대해 생각했다. 오합지졸처럼 얼결에 모인 사람들이 삶에서 의외의 장면을 만나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고 합심하여 하나의 의미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 유독 마음에 남았다. 그러면서 새삼 '쓸모'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된 것. 쓸모란 무엇인가. 그것은 누가 결정하는가. 한 존재의 쓸모를 결정할 권리는 누구에게 있는가.
한때 '존재의 쓸모'에 대해 고민하다가 여러 날 밤을 새우기도 했다. 언젠가 랭던 길키의 <산둥수용소>에 대한 글을 쓰면서 이 고민에 대해 털어놓은 적이 있는데, 아직은 답을 찾아가는 중이다. 근래에는 '꼭 쓸모가 있어야 하는가? 쓸모 좀 없으면 어떤가! 우리 모두는 이미 존재만으로도 서로에게 의미가 되고 있다'라는 인식에 머물러 있다. 쓸모가 있건 없건 우리는 또 하루를 살아야 하고 주어진 현실을 어떻게든 이해해서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지만 내 모든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고 쓸모없이 느껴질 때에는 어찌할 수 없는 무력감에 젖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전 세계의 소식을 방 안에서 알 수 있는 이러한 시대에는 그래서 마음을 잘 다스리고 내적으로 평안을 유지하려는 노력이 더욱 필요한 것이리라. 아무리 나 자신에게 만족하고 의미를 부여하며 살아가려고 해도 바깥의 많은 것들이 내 생각 이전에 나를 파고들어 괴롭게 만드는 경우가 많으므로, 최대한 영향받지 않고 나 자신으로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수밖에.
안타깝게도, 실상 우리는 세상 속에서 너무나 많은 평가를 받고 있고, 그로 인해 쓸모를 '결정당한다'. 특히 자본주의 사회에서 쓸모란, 주로 경제적 가치로 갈음되는 듯하다. 경제적 가치가 있으면 그것이 무엇이든 매우 쓸모가 있고 그렇지 않으면 점점 쓸모가 줄어들다가 희박해지고 사라지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는 걸 우리들은 이미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그렇지 않지만은 않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돈이 전부는 아닌데 전부가 아니라고 하기에는 또 전부인 것처럼 보이는 세상, 이라는 말과 비슷한 맥락일까. 그러니 이 무슨 말장난 같은 소리인가. 그래, 차라리 말장난이었으면 좋겠다. 모든 것이, 모든 존재의 이유가 '쓸모의 유무'로 결정되고 마는 세상이 아니기를 간절히 바란다. 앞에서도 언급한 바, 쓸모 좀 없으면 또 어떤가. 인간이 사회적 동물임을 상기해 볼 때, 우리는 이미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서로에게 위안이 되니 말이다. 그리고 지금 당장은 쓸모없어 보여도 혹시 아는가. 어느 순간에 불현듯 찾아온 어떤 기회가 기막힌 쓸모를 만들어 낼지. <호소자 5>의 선수단처럼 말이다.
시간이 지나야 뚜렷해지는 풍경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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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마지막이다. 영화가 끝나면서 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리듬이 흥겹기도 하고 뭔가 마음을 좀 때리는 게(?) 있다. 이걸 무엇이라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8, 90년대 금지곡 같은 느낌도 있고 투쟁할 때 부르는 노래의 느낌도 난다. 가사도 같이 나온다. 옮겨 보자면 아래와 같다.
아무리 내가 송충이 같고 무식해도 웃지 말아요
당신이 지금은 대단해도 나는 내일 용이 될 거요
비디오가 끝날 때 마지막으로 모든 인물들이 다 뛰어나와 얼싸안으며 이 노래가 나온다. 그러고는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는데 이야말로 쓸모의 속성을 잘 나타내지 않았나 싶다. (물론 송충이도 용도 각자의 자리와 쓸모가 있는 거겠지만) 아무도 그 사람의 과거와 현재로 미래를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쓸모도 그렇다.
[여담]
어린 시절에는 그냥 지나쳤는데 다시 보니 이 작품, 여성의 역할과 그 비중이 희미하다. 아예 없다고는 할 수는 없지만 역할이 고정되었고 캐릭터도 여성 중에는 입체적인 사람이 없다. 옛날 영화라 더 그렇겠지만 이후의 작품들을 돌이켜 보아도 무협이나 고전극에서 여성의 역할과 비중이 강조되었던 작품이 얼마나 있었는가 보면- 의외로 잘 기억나지 않는다. 예를 들어, 한국 고전소설만 하더라도 여성이 주역이 되는 경우는 손에 꼽는데 이마저도 남장 여인으로 등장하여 전쟁 등으로 공로를 인정받고 나중에 여인임이 밝혀지는 식이다. 물론 시대적, 인식적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겠지만 독자와 관객으로서 옛날 작품들을 볼 때 아쉬움은 남는다. 음, 그래도 시대가 변화하면서 다양한 캐릭터들이 나오고 그 외연도 넓어진 듯해 그건 참 다행이라는 생각. 그러고 보면 몇십 년 아니, 몇 년 사이에도 인식의 변화가 두드러지는 것 같아서 놀랍다. 남녀를 떠나 다양한 인간 군상을 다루는 좋은 스토리들이 많이 탄생했으면 한다.
* 다음은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에 대한 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