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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주 Dec 06. 2023

'이런 나'임을 인정하기로 한다

<삼국지> 조자룡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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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한때 60권짜리 만화책으로 나와 <삼국지> 읽기 돌풍을 일으켰고, 서울대 합격생이었는지 <삼국지>를 열 번인가 스무 번을 읽었다고 해서 또 크게 이슈가 됐었다. 유수 대학의 권장도서 100권 안에 꼭 들어가 있던 이 책은 그러나 제대로 읽으려면 시간이 꽤 필요하다. 만화만 해도 60권이요, 소설로도 보통 5권에서 10권 정도는 되는 장구한 대서사시이기 때문이다.


나는 초등학교 때 <삼국지>를 만화로 처음 만났다. (역시 시작은 만화!) 60권은 아니었고 엄마가 사 주신 5권짜리 얇디얇은 만화책 세트였는데 대체 어디에서 사 오신 건지 지금도 그 출처가 묘연하다. 뭔가 허술한데 알차고, 뭔가 부족한데 나쁘지 않은 퀄리티의 그 만화책은, 의외로 엄청 재미있어서 오빠와 둘이서 아주 아껴가며 오래 보았다. 만화이다 보니 주인공들이 좀 과장되고 재미있게 표현되었는데 가령, 제갈량은 얼굴이 달걀이었고(달걀형 얼굴 말고 진짜 정말 달걀!) 방통은 얼굴이 무려 밥통 모양이었다. 주유는 심지어 문어 얼굴을 하고 있었으니 당시 기억 때문에 나는 지금도 주유 하면 문어가 먼저 생각나는 부작용을 겪고 있... (이래서 첫인상이 중요한 걸까)

 

등장인물만 해도 족히 수백은 되고, 유비 삼 형제가 모이는 데만도 꽤 많은 지면이 소요되는 <삼국지>. 이에 대한 설명은 자세하고 훌륭한 다른 자료들이 무척 많으므로 오늘 나는 조자룡과 관련된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 보려 한다. (언제는 개인적인 이야기가 아니었는가마는) 어, 혹시 조자룡 좋아했나요? 아니, 무슨 말씀을! 그 옛날 사람을! 네에, 그것도 아주 많이요... 저의 오랜 이상형은 사실 조자룡이었습니다. 하하! (물론, 잠시 전조와 황비홍에게 다녀오기도 했죠.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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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도로 조자룡을 좋아했느냐면, 일단 <삼국지 무장쟁패> 게임에서 시작은 무조건 조자룡을 택했더랬다. (이 훌륭한 도스 게임을 저만 아는 건 아니겠져?) 그러다 자꾸 져서 나중에는 황충으로 잠시 갈아타기는 했지만. (에너지를 풀로 모아 불화살을 쏘면 얼마나 멋있었는지 모릅... 예.)


아무튼 '나는 상산의 조자룡이다!!'라는 그 등장 씬에 꽂혀서 틈만 나면 '나는 어쩌구의 뭐다!!'를 외치고 다녔고요. (아무도 듣지 않았) 게다가 5권짜리 만화책에서도 조자룡만큼은 높이 올려 묶은 포니테일 머리를 하고 얼마나 멋지게 그려졌는지 아주 오랫동안 흠모했다. 장판파 전투에서 아두를 품에 안고 무수한 적들을 물리친 이야기는 그 동경의 절정에 있었다고 할까. 나는 조자룡의 멋진(!) 모습을 더 자세히 보기 위해 드라마로 나온 <삼국지>도 아주 열심히 보았다. 조자룡으로 시작해 제갈량으로 끝났던 기억. 제갈량이 든 깃털 부채가 너무 인상적이어서 대체 어디에 가면 구할 수 있을지 고민해 보기도 했었으니. (지금 한번 찾아보니 세상에, 깃털 부채를 판매 중이네요?? 좋은 세상입니다.) 첨언하자면, 해당 작품은 1994년에 제작된 84부작으로 '삼국연의'가 원제이고, MBC에서 방영했다고 한다.


자룡은 연의에서나 정사에서나 후대 사람들의 기억에서나 참 빛나는 사람이다. 흠이 거의 없다. 정의로웠고 충직했으며 올곧고 반듯했다. 나도 그렇게 살고 싶었다. 옳다고 믿는 의를 향해 전진하듯 사는 삶. 백가쟁명 하는 시대 속에서도 의기 있게 한 사람만을 따르며 마땅히 해야 할 바를 하는 삶.


내 그릇도 모르고- 참 그런 꿈을 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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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조자룡 하면 떠오르는 기억.


나는 조자룡을 흠모하다 못해 스타트업에서 일할 때 내 이름을 아예 '자룡'으로 정해 버렸다. (예???) 그래서 1년 반 동안 동료들이 나를 실제로 '자룡'이라고 불렀다. (예... 그래요. 예...) 그때 우리는 직책이나 영어 이름 대신 뭔가 의미 있는 걸로 서로를 칭해 보자는 데 합의, 각자가 원하는 일종의 롤 모델? 이상향? 그런 대상을 이름으로 삼기로 했다.


사실 이름이란 게 그렇다. 내가 지닌, 가장 추상적이고 느슨한 형태의 규정이자 삶의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붙는 가장 강력한 형태의 규정. 누구도 스스로 결정할 수 없었으나 오랫동안 나를 지배하는 단어. 그런 만큼 스스로 '불리고픈 이름으로 불리는 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건 다분히 매력적인 일이었다. 그래서 새 식구가 오면 모두들 무엇으로 부르게 될지를 굉장히 궁금해했다. 나 포함 원년 멤버들도 조금은 쑥스럽게(기왕 본명들을 다 알고 있었으므로) 이제부터 저는 OO로 불러 주세요- 하며 소위 닉네임을 나누었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그렇게 우리들은 애니메이션과 영화의 주인공부터 소설 속의 인물, 음식과 물건의 이름까지 종류도 다양하게 서로를 부르기 시작했다. 나는 그렇게 자룡이 되어 인생의 어느 한 시기를 잠시나마 자룡으로 살았다. 그건 참 신기한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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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처음부터 '자룡'은 아니었고 원래는 '조운'이었다. 조자룡의 이름이 '운(雲)'이니까 조운으로 해야겠다 마음먹고 그렇게 주변에 알렸는데 다들 그 이름이 어려웠는지 때때로 조금씩 틀리는 것이다. 자운 혹은 조은으로 불리며 며칠을 살다가 안 되겠다 싶어서 바꾼 게 자룡이었다. 그래도 나름(?) 여자인데 자룡은 좀 그런가... 라는 생각도 잠시, 나는 금세 자룡으로 불리는 일에 익숙해졌다. 그러니까, 자룡이고 나발이고 그냥 직장인이 되어 버렸던 것인데, 가끔 '자룡!' 이렇게 불릴 때 번뜩 정신이 돌아와 무척 부끄러운 것이다. 뭐가? 자룡이라는 이름이? 아니요. 그럴 리가요.


부끄러운 건, 저요. 제 자신이요. 전혀 자룡답지 못한 저 말입니다. 이름만 '자룡'을 갖다 쓰면 뭐 할까. 나의 태도가, 그릇이, 품이, 수용성이 그리고 삶이 전혀 그렇지 못한데. 어느 순간, 나는 자룡으로 살고 있는 내가 무척 부끄러웠다. 나이를 먹고 몸은 자랐지만 왠지 마음은 전혀 자라지 못해 자룡 발끝에도 못 가는 느낌. (너무나 당연) 일희일비하고 롤러코스터같이 들쑥날쑥한 하루를 사는 것은 스무 살 때와 전혀 다르지 않다는 생각에 무척 괴로웠다. 물론 겉으로 보이는 나는 많은 게 달라져 있었다. 공부도 했고 사회 경험도 쌓았고 경력도 늘었다. 과거에 비해 좋아진 것도 많았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수치 즉 양적으로 표현되는 것들이지 질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글쎄. 이마저도 포장하자면 얼마든지 포장이 가능했지만 늘 들키고 말았다.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에게.


당시 나는 스타트업의 공동 CEO로 일하며 겉으로는 아주 멋지게 잘 지내고 있었다. 급여 수준도 가장 높았고, 동지애를 기반으로 의기투합한 동료들도 배울 점이 많은 사람들이었다. 일도 재미있었다. 하지만 늘 마음 한가운데가 뻥 뚫린 듯 허전하고 헛헛했다. 왜일까. 뭐가 문제일까. 그러다 어느 날 깨달았다. 신사업을 구상하며, 모두 각자 하고 싶은 사업을 그려 보자는 말에 오랫동안 답을 못했다. 답을 못 찾아서 그런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내 안에는 답이 없었다.


그래서 없는 답을 급히 만들고 아무렇지 않은 듯 나를 꾸미고 포장하고 다시 답을 만들어 내다가 결국 지쳐 버린 순간에 문득문득 자꾸만 어리고 못난 내가 튀어나왔던 것. 일이 다 그렇지. 누가 그렇게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산다고. 그거야말로 어리고 못난 모습이다. 마인드다. 그걸 고쳐야 해.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게 잘 되지 않았다. 내 안에 없는 답을 하며 살려니 자꾸만 탈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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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반이라는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나는 '글을 쓰며 살겠다'라는 말을 꺼냈고 기꺼이 응원해 준 사람들 덕분에 회사를 나와 지금껏 이렇게 살고 있다. 불안하지만 자유롭게, 괴롭지만 신이 나서.


자룡으로 사는 일은 내게 맞지 않았다. 내게는 그만한 기개도 충만한 자신감도 없었다. 조자룡에게는 옳은 일을 하겠다는 결의와 언제라도 유비 휘하에서 목숨을 바치겠다는 다짐이 있었지만 내게는 그런 게 없었다. 글을 쓰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과 다짐은 늘 있었지만, 세상에 꺼내어 놓는 데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 재능에 대한 걱정과 회의도 회의지만, 무엇보다 주변의 평가와 시선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현실적인 문제도 간과할 수 없었고.


하지만 '내가 살고 싶은 나'를 발견하고 그것으로 사는 일만큼 현실적인 게 또 있을까. 이게 현실적인 게 아니라면 대체 무엇이 현실적인 이야기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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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룡으로 살 때 함께 일하던 모모(미하엘 엔데의 작품 <모모>의 주인공)가 내게 해 주었던 말을 잊지 않고 있다. 속이 깊은 그녀는 내 마음을 헤아리며 이렇게 말했다.


자룡으로 못 살면 어때요. 지룡이나 찌룡으로 살면 어때요. 그게 자룡의 본 모습이라면, 그대로 그렇게 살면 되죠.


그래, 나는 나대로 살면 되지. 내가 나인 걸 어떡한담. 이게 나인 걸. '이런 나'임을 인정하고 살아야지. 자룡이 아닌 찌룡인 사람이, 자룡이 될 수는 없지. 아니 무슨 절체절명의 순간도 아니고, 목숨이 경각에 달린 것도 아닌데 이렇게나 무겁게 반응할 일인가? 그 닉네임 하나 정한 걸 가지고? 그러게나 말이다. 그런데 내게는 그랬다. 그냥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다. 타인의 눈에는 별것도 아닌 것이 그 사람에게는 별것이다 못해서 아주 중차대한 문제가 되어 버리는 그게 바로 사람이고 삶이다. 모두 <은전 한 닢>이라는 수필을 기억한다면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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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길어졌다. <삼국지>에서 조자룡에서 스타트업을 거쳐 '나'까지 왔다. 내게는 느슨하지만 강력하게 연결된 서사이다.


이 글을 쓰려다가 이문열 평역의 <삼국지>를 다시 읽고 있다. 5권짜리 만화 다음으로 만난 이 10권의 소설은 나를 대흥분시켰고 아주 오랫동안 빠져들어 읽었다. 10대에 읽고 20대에 읽은 후 30대는 그냥 건너뛰었는데 마흔을 맞아 다시 한번 읽어야겠다.


다음은 김용의 대작 <영웅문> 의천도룡기(중원의 별)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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