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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주 Jan 11. 2024

노플랜주의자의 갑자기 홍콩 (1)

2024년 1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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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고편(?)에서 밝혔듯이 1월 1일부터 5일까지 5일간 홍콩에 다녀왔습니다. 왜 갑자기 존댓말을 쓰느냐면! 그냥요... 뭐, 언제나 그렇지만 딱히 이유는 없습니다. 오늘부터 5일간 여행 이야기를 할 거니까 뭔가 색다르면 재밌고 좋잖아요? (어디가요? 뭐가요?)


아무튼 거두절미하고 시작합니다. 무목적 무계획자의 노플랜 홍콩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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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여행의 시작은 이렇습니다. 원래는 중국에 가려고 했어요. 이건 이유가 있습니다. 최근 다시 '무협'에 빠지다 보니 <장가계>를 너무 가 보고 싶은 거예요! 그런데 여차 저차한 이유로 일단 중국 여행은 불발이 됐고 그러면 일본 여행을 갈까 했는데 사실 제가 비즈니스 트립이랑 다 합해서 1n 번 정도 다녀왔거든요, 일본에는. 그렇다고 멀리 떠나기에는 또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뭐 그럼 이번에는 접을까 했는데요.


절친 R이 친구와 함께 홍콩에를 간다고 하는 겁니다. 홍콩? 홍코옹?? 그 소식을 들은 게 12월 초였나 그래요. 처음에는 저도 중국에 가려고 했으니까 오, 좋겠네! 잘 다녀와! 그랬는데 불발이 되고 12월 중순이 되자 괜히 마음이 그런 거죠. 아, 홍콩... 홍콩도 중화권이기는 한데. 홍콩 한 번도 안 가 봤는데. 그러던 어느 날 R이 은근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우리 비행기는 1월 1일 오전 9시에 출발해. 그리고 숙소는 OO 호텔이야.


그날 잠자리에 들려는데 귀에서 윙윙 R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죠. 우리 비행기는... 숙소는... 이리 눕고 저리 누워도 사라지지 않는 R의 목소리... 하, 그러면 뭐 어쩌겠습니까. 가야죠... (예?) 그래서 뭐, 예. 가게 됐습니다. 다른 시간, 다른 비행기, 다른 방 잡아서요. 그러고는 황급히 이유를 갖다 붙였습니다. 이런 걸 '급조되었다'라고 하죠.


서점! 홍콩에 서점이 많더라고! 서점 여덟 군데 돌고 오는 게 목표다! (물어본 사람?)


그렇게 12월 중순에 급하게 표를 끊고 숙소를 잡고 정확히 12월 31일 저녁 7시부터 짐을 싸기 시작해 다음 날 돈을 공중에 뿌리며(왜냐면 저가 항공을 비싸게 끊었기 때문이죠...) 날아오릅니다. 마침 그때의 사진이 있군요. (사진이 왕 크네요. 양해 부탁드려용.)


2024년 1월 1일 오전 9시 인천공항_괜히 이런 사진 한번 남겨 보는 거죠,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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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과 친구는 오전 9시 비행기를 타고 먼저 떠나고 저는 10시 가까이 되어 비행기에 탑승합니다. 부모님께는 언제나 그렇듯 한 사흘 전에 말씀드렸고, 엄마는 정확히 '뭐어? 이번엔 홍콩?'이라고 하셨습... 그러거나 말거나 저는 우당탕탕 떠났습니다. 뭐, 출발은 아주 무탈했습니다. 캐리어 비밀번호를 잘못 적어 가는 바람에 캐리어가 안 열린다며 이걸 부숴야 하나, 아니면 1부터 999까지 다 넣어 봐야 하나 어쩌나 쇼한 거 빼고는 다 괜찮았습니다. 이런 건 에피소드 축에도 못 끼죠. 예.


아, 캐리어는 어떻게 열었냐면- 잘못 적어 간 번호와 비슷한 앞뒤 번호를 일일이 돌려 보다가 어느 순간 열었습니다. 울 뻔했습니다. 캐리어 부수고 야시장에서 하나 사려고 했거든요. 이때의 걱정은 프런트에 망치 있냐고 어떻게 말하지? 였습니다. 이상한 사람 같잖아요. (뭐, 그렇다고 안 이상한 건 아닙니)  


숙소 사진은 겨우 한 장 있습니다. 첫날 캐리어 안 열려서 절망하느라 사진을 찍을 새가 없었어요. 침대가 정돈되어 있을 때 사진을 찍을 생각은 없나요? 네... 숙소 뷰가 아주 좋았는데요. 첫날에는 그런 것도 안 보이고 이제 망했다는 생각밖에는 안 들었습니다. 야시장에 가서 뭐부터 사야 하나 할 즈음에 캐리어가 열렸고 그 순간 괴성을 지른 건 제가 아닙니다. 제 안에 있는 어떤 몹쓸 자아가... 네.


5일간 머문 숙소_멋진 뷰를 자랑하지만 첫날에는 그런 것도 안 보이고 그저 이제 망했다는 생각밖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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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캐리어를 열고, 이 소식은 R과 친구에게도 전해집니다. 멋진 J형 여행가 R은 '전날 짐을 싼 자'에게 벌어질 수 있는 일이라고 따뜻한 조언을 해 주었습니다. 고개를 한껏 끄덕거렸지만 그렇다고 이제부터 짐을 전전날 싸거나 전전전날 싸지는... 않을 거잖아요? 네, 글쵸. (엄금쪽, 40세)


무계획에 아무런 생각이 없는 자는 그러면 이제 어떻게 여행을 시작할까요? 일단 첫날은 홍콩 지리에 익숙해져야 하니까 세 번째 홍콩에 온 R과, 친구에게 의지해 봅니다. 어디를 간다고 하면 무조건 고개를 끄덕이며 따라나서는 거죠. 그렇게 저는 <린흥귀>에 가서 딤섬 비슷한 것을 먹고 어딘지 모를 길을 따라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라는 곳에도 가 봅니다. <린흥귀>는 여행 전 R이 제게도 말해 준 곳이라는데 기억에 남을 리가 없죠. 친구 말을 등한시하는 게 아니라, 저는 왕 길치에 미맹에 가깝도록 미식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죠. 그냥 다 맛있고 다 좋은 사람이 접니다. 아, 근데 <린흥귀>는 그 '전참시'에도 나온 걸 저도 스치듯 봤어요.  그러고 보니 어렴풋 기억이 납니다. 그... 딤섬 그릇이 수북하게 나오면 사람들이 각자 먹고 싶은 걸 알아서 가져오고, 그러면 서빙하시는 분들이 네모네모가 잔뜩 그려진 바둑판식 종이(일종의 빌지)에 해당 딤섬에 맞는 도장을 찍는 식이죠.


재밌는 것은, <린흥귀>가 그날 하필 간판을 가려 놨더라고요? 그래서 그곳인 줄도 모르고 어쩌다 보니 들어갔는데 바로 <린흥귀>였습니다. 그런데 브레이크 타임 직전에 가서 몇 가지 맛밖에 못 보았어요. 그래도 꽤 맛있었어요! 먹는 데 열중해서인지 저는 그나마도 사진이 없습니다. 그런데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차(茶)였어요. 처음에는 구수하고 은은하니 괜찮았는데 나중에는 어찌나 진하게 우려졌는지 흡사 사약 같았죠. 이거 먹으면 죽는 게 아닐까, 라는 으스스한 농담을 하며 아껴(?) 마셨습니다. 맛은 좋았어요.


식사를 마치고 어딘가로 나왔고, 아래와 같은 풍경을 마주했습니다. 저는 광분하여 (아무렇게나) 사진을 찍었습니다. 이것이 홍콩의 풍경이다!! 라고 제 맘대로 해석하며- 사진이 비뚤어져 보이는 것은 착각... 이 아니라 제가 어깨가 좀 비뚤어져서 그래요. 추후에라도 수평을 맞출 생각은 없나요? (2)편부터 맞추어 보겠... (오늘은 안 하겠다는 소리)


홍콩의 택시는 강렬한 빨간색, 기억에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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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런 사진도 있군요. 누가 봐도 홍콩 아닙니까??? 이 사진은 왠지 길이 비뚤어져 보이는군요. 예, 맞아요. 길이 비뚤어졌습니다. 제 잘못은 하나도 없지요... (노 양심)


수평을 모르는 자, 그냥 올립니다. 귀찮은 거 아닙니...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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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는 영화 <중경삼림>에 나왔다는데 저는 너무 오래전에 봐서 그런지 생각이 잘 안 났어요. 그런데 검색해 보니 아! 하고 기억이 났습니다. 어, 그런데 영화에서랑은 사뭇 다르군요. 뭐랄까요. 일단 사람이 너무 많고 반짝 전구도 너무 많습니다. 2만 개는 달린 것 같아요. 없으면 더 멋질 것 같다는 생각을 잠시.


여기 제 사진도 한 장 있습니다. R은 금손이에요. 저는 똥손이죠. 그냥 똥손 아니고 핵똥손이라 제가 찍으면 쓸 수 있는 사진이 없습니다. R의 눈에는 자가 달렸고 풍경과 인물을 보는 순간 소위 '각'이 나오죠. 저의 경우, '킥'이 나옵니다. 정확히는 제가 찍은 사진들에 킥을 날리고 싶… 아무튼 R이 멋진 사진을 열 장 찍어 주었고, 그중 이 사진을 올려 봅니다. 눈이 왜 이렇게 작냐고 묻지 마세요. 눈을 감은 겁니다. (사실 떠도 뭐, 비슷합니다.)  저는 눈을 자주 감죠. 열 장 찍으면 세 장 정도는 감습니다. 자주 명상에 빠지는 타입이랄까요...... (헛소리가 취미)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 감상하다가 고도의 명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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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은 이게 다입니다. 예? 서점 가신다면서요? 아, 서점 갔죠. 다섯 군데 갔습니다. 아주 기쁘고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첫날에는 못 갔어요. 도착하고 어쩌고(캐리어랑 싸우고) 하니까 해가 금방 지더라구요. 서점은 원래 한 여덟 군데를 체크해 놓았는데 세 군데는 못 갔어요. 그래도 다섯 군데를 간 게 어딘가요! 인생은 긍정적으로 살아야 합니다. 새해부터 연습해 보려구요.


첫날, 기억에 남은 장면이 있습니다.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 근처의 한 커피숍에 들어갔는데 주인이 참 친절했어요. 커피도 맛있구요. 끝날 때까지 커피를 마시며 쉬는데 아르바이트생으로 보이는 앳된 친구가 유창한 영어로 이렇게 묻더군요. '한국에서 오셨어요?' 그래서 그렇다고 하니,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대요. 요즘 한국 사람이 왜 이렇게 많이 오는지, 여기에 어떤 볼 게 있는지 잘 모르겠다고 그러더라구요. 길지 않은 영어(짧은 영어라고 쓰기 싫은 자)로 음식과 문화, 다양한 볼거리가 있어서 오는 것 같다, 라고 했는데 그냥 씩 웃고 말더라고요.


근데 그 웃음이 왠지 좀 슬픈 거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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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많은 것을 보거나 너무 많은 것을 생각하지는 말자, 라고 다짐해도 잘 안 되는 때가 있죠. 한 나라의 역사를 볼 때 특히 그렇습니다.


이 광막한 우주 속 '창백한 푸른 점' 하나인 지구 속에서 다 같은 지구인이라는 의식을 가진다면- 이라고 중얼거리며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근데 잠이 안 오길래(잠이 안 오면 글을 쓰면 되지 않음...?), 홍콩에 가면 이런 노래를 들어줘야 한다며 오빠가 추천해 준 <홍콩의 밤> 노래를 틀었는데, 등려군 님의 목소리가 무척 반가웠습니다. 하지만 조금 듣다가 껐지요. 역시 밤에는 <월량대표아적심> 아니겠습니까? 달빛이 대신하는 마음이란 어떤 걸까. 그런 걸 생각하다가 그윽하게 잠들었... 을 리가 없고, 핸드폰으로 유튜브 보다가 잤습니다. (노트북은 왜 갖고 왔는지)


영화 <첨밀밀>을 다시 한번 보고 싶네요. 다들 행복하세요. 오늘도, 내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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