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다른 오늘을 쌓아간다
-
요새 가끔씩 중얼거리는 말이다. 특히 복근 운동을 하기 싫어서 마음이 저만치 내뺄 때 자주 내뱉는다.
지금 안 하면, 영원히 안 한다.
뭘 또 '영원히'씩이나. 그렇기는 하다. 오늘 안 하면 내일 하면 되고 모레도 있고 말이다. 그런데 확실한 건, 지금 생각났을 때 안 하면 미루고 미루다 결국 안 하게 되더라는 것. 그렇게 밀리고 밀리면 '습관화'가 되는 일은 또 저 멀리 사라져 버리게 된다. 안녕, 내 것이 될 수도 있었던 좋은 습관들아.
그렇게 놓친 좋은 습관들이 문득문득 생각날 때가 있었다. 그때 그만두지 말고 계속했다면 지금쯤 어땠을까? 뭔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소용없는 질문을 던지며 아쉬워하던 순간들이 많다. 운동도 그중 하나였고, 피아노도 그랬다. 딱 그만큼의 열정이었겠지만 어리석게도 가끔 그런 후회를 했다. 특히 이십 대 시절에는 뭔가에 꽂히면 화르륵 달려들었다가 식으면 뒤도 안 돌아보고 떠났던 터라 더 그랬다. 제대로 안 할 거면 안 해! 라는 멍청한 생각으로 날려 버린 좋은 기회들도 꽤 있었다. 그러나 언제까지 후회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십 년 후에도 똑같은 생각을 반복하고 있다면 이야말로 비극이겠지.
그래서 작년에 달리기를 다시 시작했고 평소 관심이 있었던 분야도 더 미루지 않고 공부를 시작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잘 안 되는 날도 많지만 이 모든 건 '완벽주의'만 버리면 된다. 앞으로 나아가려는 사람의 발목을 제일 강하게 붙들고 늘어지는 게 완벽주의 같다. 특히 평소 생각이 많고 걱정이 많은 나 같은 사람한테는 아주 쥐약이다. 많이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는지 일 하나를 시작할 때면 어김없이 완벽주의 기질이 발동해 버린다.
세상에 '완벽'이 어디에 있다고. 마침 계기도 있었고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해 보고 싶어서 요 몇 년간 책도 보고 여러 영상들도 찾아봤다. 그러다 최근 한 영상에서 '완벽주의 대신 완료주의를 택하라'라고 조언하는 말을 들었다. 크게 공감했다. 나는 심지어 완료도 제대로 못하는 날이 많으므로, '완료주의가 안 되면 일단 시작이라도 하자'는 쪽으로 노선을 좀 더 수정했다. 이를테면, '시작주의'랄까. 그런데 여기에서 끝나면 과거의 내 과오를 되풀이하는 격밖에는 되지 않는다. 과거에도 '시작'만큼은 끝내주게 해 왔으니까. 그렇다면 뭐란 말인가? 이와 관련해 작년 12월 4일에 메모로 남겨둔 글이 있다.
어제와 다른 하루를 살고 그 하루를 반복해 나가면 된다. 어제와 다른 하루를 연장해 나가는 것이다. 그러면 된다. 어렵지 않다. - 2023. 12. 4
솔직히 어렵지 않다는 건 내가 나를 위로하기 위한 약간의 허세다. 어제와 다른 하루를 사는 일은 확실히 쉽지 않다. 어제 잘하고 오늘 잘했어도 내일 또 빼먹고 안 할 수도 있다. 그게 운동이든 그림 그리기든 어학이든 뭐든 말이다. 그렇게 일주일, 한 달을 안 하게 되면 그럼 그렇지 하고 손을 놓게 된다. 과거의 나는 그랬다. 하지만 한 달을 못했으면 뭐 어떤가. 그만큼의 공백이 신경 쓰이고 아쉽겠지만 빨리 털어버리고 지금이라도 해야지 별 수 있는가. 한 달이 두 달로, 두 달이 반년으로 길어지면 그야말로 문제다. 그냥 생각날 때 빨리 해 버리는 게 답일 수도 있겠다.
그래서 요새는 아침에 눈을 뜨면 그냥 바로 옷을 갈아입고 헬스장으로 간다. 오전에 운동을 해치우고 집에 와서 그날 하루 해야 하는 일들을 시작한다. 물론 어제는 눈비가 몰아치길래 미루다가 오후에 '간신히' 갔다. 역시나... 사람은 쉽게 안 변한다. '각고'의 노력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일을 시작하면 하루 일정이 뒤바뀌니 또 어떻게 될지 잘 모르겠지만 그때까지는 해야 할 일을 하고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며 이 시간을 지나가 보려 한다.
-
글을 맺기 전에 책 이야기를 조금 더 해 보자면- <스토너> 이후 <고통을 말하지 않는 법>을 펼쳤다가 마음이 너무 아파서 몇 장 못 읽고 덮었다. 아직은 이 책을 읽을 준비가 덜 된 것 같다.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경험이 있는 분들은 신중히 보시면 좋겠다. 나도, 더 나중에 보려고 책장 깊은 곳에 넣어 두었다. 그 대신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를 읽고 있다. 내용은 좋은데 아쉬운 점은 종이의 재질. 약간 코팅지라고 해야 하나? 백색으로 반짝이는 재질이라 빛에 반사되면 글자가 잘 안 보이고, 종이의 질이 좋아서인지 책 자체도 꽤 무겁다. 아마 토마스 산체스의 그림 때문에 일부러 이런 재질을 택한 것 같다. 물론, 그림은 매우 훌륭하다. 부지런히 읽고 또 서평을 써 봐야겠다. 이 책 외에 두 권의 소설을 더 읽고 있다. 덕분에 영상 보는 시간이 많이 줄었다. 유튜브 프리미엄도 '마침내' 해지했다. 역시 '익숙함'을 벗어나는 일이 관건인 듯하다. 하나의 익숙함을 벗어나 또 다른 익숙함으로.
아, 그리고 <비정성시> 각본집이 한국에서도 발간된다 하여 펀딩에 참여했다. 2월 말에 만나볼 수 있을 듯하다. 책이 도착하면 이 이야기도 또 다른 편에서 자세히 써 보고 싶다.
-
어제는 눈비가 몰아치더니 오늘은 날이 맑아서 아침부터 기분이 좋았다. 사람의 마음이란 이렇게 날씨 같아서. 밖에 다녀오는데 햇살이 마치 봄처럼 반짝여서 조금 설렜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괜히 문간에서 시간을 긋다가 들어왔다.
봄에는 또 어떤 사람들을 만나고 어떤 이야기들을 듣게 될까. 어제와는 다른 오늘을 하루씩 차곡차곡 쌓아서 봄으로 봄으로 신나게 걸어 들어가 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