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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주 Feb 26. 2024

중고서점에서 내 책을 만났을 때

설마, 있었습니다 이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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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중고서점에 갔다가 내 책을 만났다. 꽤 유명한 체인인 이 중고서점은, 집에서 그리 가깝지는 않지만 산책 겸 다녀오기가 좋아 한동안 자주 들렀다. 구경'만' 하는 것을 목표로 두었지만 늘 실패. 항상 마음에 드는 책이 있었고 고심 끝에 두어 권을 골라 집으로 향하곤 했다. 요즘에야 인터넷 서점이 워낙 활황이고 아예 이북으로만 보는 인구도 크게 늘었지만- 책이라는 '물성'의 형질을 목도하고 그 무게감을 느끼려면 역시나, 서점이다. 


이날도 저녁나절 슬슬 걸어 서점에 갔다. 책을 손때 묻히며 보는 편이라 깨끗한 책이 별로 없지만, 드물게 깨끗한 책 세 권을 골라 가방에 넣었다. 나는 아마도 다시 안 보겠지만, 누군가 이 책을 발견하고 읽어 준다면 기쁠 것 같은 그런 책들이다. 내 손을 떠난 책들은 어디로 갈까. 누구에게로 가서 어떤 운명을 맞이하게 될까. 언젠가 책에도 운명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라는 문장만큼이나 무겁게 다가오는 '한 책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책은 어떻게 되었을까. 


언젠가 독서모임에서 읽은 책 한 권과, 이런 분야도 관심 좀 가져야지 하며 샀던 책('돈'과 '부'와 관련된 책이었는데 결국 다 읽지 못했다), 이제는 연이 닿지 않는 누군가가 주었던 책 한 권을 등에 지고 서점에 다다랐다. 책 읽는 인구가 줄어든다는 건 어느 나라의 발표였나 싶게 사람들이 북적였다. 책장 앞에 서서 신중한 눈빛으로 훑어보는 사람, 고심 끝에 한 권의 책을 골라 드는 사람, 이미 고른 책을 유심히 살피며 책장을 넘기는 사람. 저쪽에서는 어린아이가 책장 사이를 쏘다니며 깔깔대고, 뒤쫓는 엄마는 조용히 조용히를  연발한다. 엄마의 품에는 판형이 제각각인 그림책이 아기처럼 안겨 있다. 


먼저 카운터로 가 판매자용 순서표를 뽑고 기다렸다. 몇 가지 문구용품을 구경하는 사이 차례가 돌아오고 가뿐하게 계산을 마쳤다. 합해서 만 원이 조금 넘었다. 현금으로 받아 주머니에 넣고 동전이 짤랑이는 소리를 들으며 책장으로 향했다. 소설 코너, 시 코너를 지나 에세이 코너까지. 규모가 제법 큰 곳이라 에세이도 세세히 분류되어 있었다. 한국 에세이, 외국 에세이. 한국 에세이는 다시 명사 에세이와 추천 에세이로 나뉘었다. 흥미로운 제목들. 좋아하는 시인이 쓴 산문집 앞에서 오래 서성였다. 한 권을 사 가나 어쩔까 고민하며 휘휘 돌고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한 코너에 들렀다. 한국 에세이 ㄹ-ㅂ 코너. 설마, 있겠나. 에이, 설마.


설마, 있었구요. (예?)

설마, 진짜로 있었구요. 일단 반가웠습니다 (이왜진...?)


일단 반가워서 핸드폰 카메라를 켰다. 책 정리 중인 직원분의 눈을 피해 살짝살짝 찍었다. 책이 아주 깨끗했다. 새 책이나 다름없는 준수한 외양(?). 하얀색이라 그런지 역시 눈이 부시군. 하하하하. 나온 지 1년이 채 안 되어 그런지 가격도 중고서적 치고 꽤 비싼 편이었다. 내가... 살까? 마침 비슷한 언저리대의 금액이 주머니에 들어 있었다. 세 권을 보내고 한 권을 들인다면 내 책은 어떨까. 너무 좀... 그런가? 아니, 뭐가 그래. 내 새끼(?)를 내가 데려오겠다는데! (왜 흥분?)


가만, 그럼 이 책의 운명은 참 흥미롭게 된다. 태어나 어느 서점에 비치되었다가 첫 주인(어쩌면 두 번째?)의 책장에 꽂힌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그러고는 다시 서점이다. 근데 이제, 말하자면 위탁 기관이라고 할까. 새 주인이 알아봐 줄 때까지 얌전히 기다린다. 언제가 될지 모르는 '호명'을 기대하며. 비슷비슷하지만 사실은 전혀 다른 외양을 한, 전혀 새로운 운명을 기다리는 책들 사이에서 마침내 만난 다음번 주인이! 


무려 이 책을 쓴 원작자라면?


엄청나다, 엄청나! 이걸로 뭔가를 써 봐야겠다! 나도 모르게 수상쩍은 미소를 지으며 책을 다시 책장에 집어넣었다. 그때 문득 떠오른 기억 하나가 있었다. 그건 언제 어디에서였더라. 


그날도 이렇게 어느 중고서점에 우연히 들러 이 책 저 책 사이를 쏘다니는데 역시나! 내 책이 있었다. 첫 책인 <세상의 모든 ㅂ들을 위하여>였는데, 책 속지에 무려 이전 주인의 이름(본명이 아닌 닉네임 같았다)과 연락처가 쓰여 있었다. 개인 휴대전화 번호 말이다! 어멋! 이게 무슨 일이야? 개인 정보 보호 괜찮나? 아마도 책을 잃어버리면 쉬이 찾을 수 있도록 기록해 놓고는 그만 잊은 것 같았다. 오, 그렇다면 연락해 볼까. 당장 상상에 들어갔다.


이 책을... 중고서점에 파셨군요... 왜죠... 간직할 정도는 아니었나요... - 원작자로부터 


뭐야, 이런 음흉한 느낌은? 미쳤군! 완전 스토커잖아. 나는 얼른 책을 덮고 다시 곱게 넣어두었다. 그래! 읽어 주신 게 어디야!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내심 좀 서운한 마음도 들었다. 그때는 책을 낸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라 좁디좁은 마음에 그랬다. 연락처까지 적으셨는데 왜 내놓으셨어용. 끝까지 데려가기에는 좀 그랬나용. 흑흑. 그런데 내 이야기를 들은 친구가 그랬다. 야! 축하한다! 많이 팔렸나 보네! 돌고 돌아 또 다른 주인한테 가면 좋지!


어머? 듣고 보니 정말 그렇잖아? 이런 현명한 친구 같으니라고! 과연 그랬다. 나는 왜 이렇게 생각이 짧을까. 사실 내 책을 중고서점에서 만나려면 다음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1. 내 이름으로 나온 책이 있을 것

2. 누군가가 그 책을 샀을 것

3. 그 책을 다 읽고 중고서점에 팔았을 것

4. 팔린 그 책이 내 발길이 닿는 중고서점에 진열되어 있을 것 

5. 내가 그 책을 발견할 것 


진짜 어마어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5단계의 과정을 모두 거쳐 내 눈앞에 당도해 있는 책이, 순간 엄청 멋있어 보였다. 아무도 모르지만 내가 아니까 괜찮아! 나랑 내 친구들이랑 우리 가족이랑 친척이랑 시골집 개 엄지도 아니까(아, 솔직히 얘는 모르겠다) 괜찮아! 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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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씩 웃으며 두 번째 책을 다시 꺼내 휘휘 넘겼다. 모든 문장들에 애정이 있지만 특히 좋아하는 문장을 찾기 위해서였다. 다시 봐도 정말 명문이다. (제가 이렇게 메타인지가 훌륭한 사람입니...)

극복 말고 행복!!! 언제나 어디서나!!!_<배움의 배신> 217p


이 문장은 마음이 안 좋아 한창 정신의학과 상담을 받던 2018년 가을에 집에 가며 떠올린 말이었다. 그날 의사 선생님은 내가 '극복'이라는 말을 자주 쓴다고 했다. 그냥 어떤 일을 하면 기분이 좀 좋아지는지, 울적할 땐 뭘 주로 하는지 질문받았을 뿐인데 그때에도 나는 엉뚱한 대답을 하고 말았던 것. 몰랐다. 내가 그런 말을 자주 쓰는지. 그에 대한 답이 가히 장관이었다.


아, 예에. 그럴 때는... 제가 저를 좀 잘 다스리고... 예에. 추스르고 그래서 잘 극복하면 될 것 같아요. 극복하고... 극복해야죠. 예. (이게 무슨 말이죠...?)


극복은 뭔 극복. 진짜 삶이 극기훈련도 아니고 나는 왜 툭하면 극복해야 한다고 중얼거리고 있을까. 누가 나에게 이런 짐 같은 마음을 주었나. 개인인가? 사회인가? 아니면 또 다른 우주적 존재인가? 그런 생각 끝에 젤리를 하나 사 먹고 - 왕꿈틀이었는지 마이구미였는지는 생각이 안 난다 - 가뿐히 극복했다. 아니, 극복이라는 단어를 지워 버렸다. 그 대신 선택했던 단어가 행복. 


ㄱ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ㅎ이라 '행복'이라는 단어가 멀게 느껴졌던 걸까. 손끝에 가장 빨리 닿는 게 극복이라 나는 그토록 손쉽게 극복이라는 단어를 집어 들곤 했을까. 지나고 보니 그렇게까지 애를 쓰지 않아도 괜찮았을 것 같은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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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길어졌다. 아무튼 그래서 무척 반가웠다는 이야기다. 나를 훨씬 가볍게 만들어 준 날들에 대한 이야기라서, 극복보다는 행복 쪽으로 더 가까이 갈 수 있도록 도와준 책이라서 반갑다. 누구신지 모르지만 곱게 읽은 후 다시 세상으로 내보내 주셔서 고맙습니다. 또 다른 누군가가 이 책을 발견하고 혹시나 책장에 들이게 된다면 그만큼 저의 이야기들이 좀 더 오래 세상에 머물며 여행하는 것이겠지요. 


책장에 반듯하게 꽂아 두고 책등도 한번 다정하게 쓸어 준 후 가볍게 돌아섰다. 그리고 시인이 쓴 산문집 하나를 들고 카운터로 향했다. 집에 돌아와 새 책에 안온한 자리를 마련해 주고 눈으로 책장을 한 번 훑었다. 모든 책들에는 나름의 이야기가 있다. 책의 안에도 밖에도 의외로 지극한 서사가 있는 셈이다. 그래서 책에도 운명이 있다고 하나? 


모든 운명은 이야기를 품고 나아간다. 


결말은 어떻게 될까? 내 이야기의 결말까지 같이 갈 책들은 무엇일까 궁금해하며 그 하루의 막을 내렸다. 아직 만나지 않은 책들이 더 많으니까 그때까지 행복하게 기다려 보기로 한다. 극복 말고 행복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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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다.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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