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뢰시맨> (+4월 팬미팅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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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뢰시맨.
이 네 글자는 마법의 단어라 할 수 있다. 그냥 읽기만 해도 즉시 귓가에 울려 퍼지는 외침이 있기 때문이다. 지구방위대! 후뢰-시맨! 낭랑한 목소리에 이어 흘러나오는 경쾌한 리듬. 빠라빠라밤 삐용삐용 현란한 전주는 이제 막 유치원에 들어간 여섯 살 어린이의 마음을 뒤흔들고도 남았다. 나는 맹렬히 빠져들었고, 급기야는 후뢰시맨이 되겠다며 (아무도 모르는) 진지한 고민을 시작했다. 일단 변신 동작은 그럴듯하게 할 수 있었는데 문제는 우주로 사라졌다가 돌아와야 한다는 것. 지구에 태어난 지도 겨우 6년밖에 안 돼 간신히 적응 중인데 갑자기 웬 우주란 말인가? 하지만 후뢰시맨이 되려면 반드시 우주에 다녀와야 했다. <후뢰시맨>을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오프닝 노래가 시작하기 전 심금을 울리며 흐르는 그 멘트를...
어느 날 지구에서 다섯 명의 아이들이 우주로 사라졌다.
그로부터 이십 년 후...
지금 생각해도 눈물이 쏙 빠지는 이 멘트는 어찌나 장중하고 애달팠는지 볼 때마다 엄마 찾아 삼만 리를 하는 기분이었다. 게다가 나는 후뢰시맨이 되고 싶은 꼬마였으니 감동이 백 배는 더했다. 가만, 우주로 사라지는 건 둘째치고 이십 년이 흐르면 대체 난 몇 살이지? 백 단위 숫자를 간신히 셀까 말까 했던 그때, 이십 년이라는 단위는 태아 시절의 기억만큼이나 까마득한 것이어서 기겁을 하고 포기해 버렸다. '쾌걸보이 아지'가 되고 싶다는 소망에 이어 두 번째로 포기한 어린 날의 꿈이었다. 나중에 잠깐 <요술공주 샐리>를 꿈꾸었으나 아무래도 공주는 적성에 맞지 않아서 금세 내려놓았다.
아무튼 <후뢰시맨>은 그렇게 내 어린 날을 뒤흔들어 놓고 어느 날 스르륵 사라졌는데, 우주로 사라진 다섯 아이만큼이나 아쉽고 슬픈 퇴장이었다. 아니, 사실 <후뢰시맨>은 사라지지 않았다. 사람도, 이야기도, 기억도 모두 그대로인데 내가 어느새 훌쩍 자라 더 이상 후뢰시맨을 찾지 않게 된 것이겠지. 그럴 테다. 내 어린 날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던 어떤 시간들을 어느새 까맣게 잊고 앞으로만 내달리며 살고 있는 나를 볼 때 문득문득 그런 질문을 던져 보고 싶었다. 누구에게 묻는 것인지, 어디에 대고 말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일단 한번 이렇게 말이다.
잘 지내시나요, 저는 어른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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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우리의 후뢰시맨은 잘 지내고 있었던 듯하다. 최근 유튜브를 보다가 우연히 레드 1호와 블루 3호의 근황을 들을 수 있었고, 향수에 젖어 몇 가지 자료를 검색해 보다가 어마어마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바로 <후뢰시맨>이 한국 출시 35주년을 기념해 올 4월, 한국에 온다는 것이었다! 이른바 <후뢰시맨> 팬미팅인데, 아쉽게도 아직 홍보가 많이 안 된 것 같다. 자세한 팬미팅 티켓 구매처와 예매 방법은 여러 블로거님들께서 훌륭한 포스팅으로 올려놓으셨으니 참고하시면 좋을 듯하다. 아, 그럼 당신은요? 가십니까? 아 저는... 사실 고민을 많이 했다. 후뢰시맨을 직접 만나다니! 일생일대의 기회가 아닌가! 가려고 방법까지 열심히 알아보았는데, 결국 마음속 흠모의 대상으로 남겨 두기로 했다. 왜요? 가서 보면 좋잖아요! 좋긴 좋을 것이다. 하지만 그냥 왠지요. 멀리서 응원하며 그윽하게 바라보는 희미한 팬으로 남고 싶어서요. 무슨 뜻인지 아시는 분 계시겠지요.
아무튼 팬미팅 소식이 반가워서 써 보게 된 글이다. 무협과는 큰 상관이 없지만, 정의를 수호하기 위해 악의 무리와 싸우는 '다섯 명의 용사' 이야기이니 크게 다를 것도 없다. 그래서 나는 전대물들도 참 사랑하며 보았다. 정의를 수호하는 이야기 너무 뻔한데 정말 좋아해서요.
<후뢰시맨>의 내용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특이한 건 도입부 서사이다. 어느 날 갑자기 우주로 사라진 다섯 명의 아이들. 여기까지만 보면 슬프기 짝이 없는 이야기인데 반전이 있다. 이십 년이 흘러 이들이 지구를 지키는 용사가 되어 돌아온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구 정복을 꿈꾸는 악의 무리를 처단하기 위해 용감히 싸운다. 그럼 그렇지! 전대물은 어린이의 마음을 슬프게 놓아두지 않는다. 오프닝에서도 장중한 멘트가 끝나자마자 예의 '지구방위대!'가 터져 나오며 가슴을 벅차오르게 만든다. 흥분을 감출 길이 없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노래를 따라 부르고 난리를 피운 다음에 반쯤은 선 채로 보아야 제맛이 나는 비디오였다.
<후뢰시맨>은 시작부터 이렇듯 엄청난 서사를 보여 준다. 나는 감히 이 <후뢰시맨>이 그 어느 판타지보다 훌륭하고 빛나는 이야기 구조로 당시 많은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었다고 자부한다. 일단 시작부터 지구를 벗어나니까. 언젠가 이런 이야기를 친오빠에게 했더니 - 그는 대체 몇 편인지 모를 각종 전대물 시리즈를 모두 섭렵한 대단한 사람이다 - 후뢰시맨 이전과 이후로 세대에 걸쳐 진행된 전대물의 역사와 발전 방향에 대해 알려 주었는데 다 까먹었다.
그냥 나한테는 여전히 <후뢰시맨>이 캡이고 킹왕짱이고 대박이고 뭐 그렇다. 원래 첫사랑이 끝까지 가잖아요. <바이오맨>도 저한테는 차애였습니다... 아, <울트라맨>은 예외였어요. 그건 좀 다르잖아요? <울트라맨>으로 말하자면 비슷한 류로 <제트맨>이 있었는데 둘 중 하나를 꼽으라면 역시 <울트라맨>이죠. 예에. (그냥 놔두면 다음날 새벽까지 수다를 이어갈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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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하고, 다섯 명의 용사들 면면을 보면 흔히 레드가 1호, 그린이 2호, 블루가 3호였고 여자아이들을 타깃으로 했는지 옐로우가 4호, 핑크가 5호였다. 나는 이 색깔과 순서가 아주 마음에 안 들었는데 그 이유는 나의 최애 색깔이 블루였기 때문이다. 왜 1호가 레드인지, 왜 여자는 4호 아니면 5호여야 하는지 이해가 잘 안 갔다. 여자가 블루이고 1호면 안 되는 걸까? 그런 생각도 잠시 해 보았지만 여섯 살이 뭐 그리 깊은 고뇌에 빠졌겠는가. 그냥 주제가를 따라 부르며 3호의 멋진 모습에 감탄하기 바빴겠지. 아무튼 나는 후뢰시맨에 빠진 후로 오빠와 타협하여 사이좋게 내가 1탄 네가 2탄 이런 식으로 10탄까지인가 꾸준하게 비디오를 빌려 보았다. 시골집에 몇 탄인지 <후뢰시맨> 비디오가 하나 있는데 나중에 내려가면 가지고 와 틀어 봐야겠다. 집에 비디오 플레이어가 있거든요. 하하.
나중에 크고 나서 사실은 <후뢰시맨>이 일본에서 만든 영화이고, 우주에 다녀온 지구 용사도 아니었다는 걸 알고서는 꽤 놀랐던 기억이 난다. (심지어 후뢰시맨이 아니라 '플래시맨'이었다...!) 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자연스레 <후뢰시맨>을 잊었고 후뢰시맨이 차지하던 공간은 차례로 다른 만화나 영화, 소설 속 주인공들에게 넘어갔다가 사라졌다. 그렇게 얼마나 많은 어릴 적 영웅들을 품고 자라난 것일까. 내게는 없는, 대단한 힘을 가진 멋진 사람들을 보며 나도 자라면 언젠가는 저들처럼 멋지게 지구를 구할 수 있을까? 악의 무리를 처단하고 정의의 편에 서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그런 야무진 꿈을 꾸었던 것 같다.
자라고 보니 겨우 한 사람의 몫도 할까 말까 하는 그렇고 그런 어른이 되었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는 것만으로도 훌륭합니다. 짝짝짝. 그냥 한 사람 몫만 해도 대단한 거니까 착실하게 살아가세요. 짝짝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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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어른이 되었어도, <후뢰시맨>이라면 왠지 칭찬해 줄 것 같다. 잘 살아남았다고 앞으로도 힘을 내 보라고 말이다. 유튜브에서 본 레드 1호와 블루 3호는 여전히 멋졌다. 당시의 변신 포즈도 완벽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걸 보는데 왜 이리도 마음이 벅차오르는지. 꼭 삼십 년 전으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그래서 더욱 이번 <후뢰시맨> 팬미팅이 기대된다. 팬미팅에 나타날 수많은 어른들도 마음속에는 나와 비슷한 질문을 품은 채 살지 않았을까. 한 번쯤은 어린 날의 영웅을 향해 그렇게 묻고 싶었을 것 같다. 잘 지내시나요, 저는 어른이 되었습니다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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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많은 것들을 비워 내고 지운다고들 한다. 그러나 때로는 그런 시간마저 지우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바로 추억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기억이 서로의 기억이 되고, 이는 다시 어느 한 시절로 향하는 추억이 되어 생생하게 살아 돌아온다. 그렇게 추억은 시간을 넘어서는 힘을 가지게 된다.
다시 힘을 내 보아야겠다. 지구 용사들이 그랬던 것처럼 아니, 그 지구 용사를 바라보던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래서 머지않은 시기에 이렇게 말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잘 지내시나요. 그때처럼, 어른이 된 저도 잘 지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