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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주 May 13. 2024

늦봄에 오며가며 단상

우리들의 계절이 끝나지 않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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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시작하면, 금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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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이, 겁도 없이 6월로 내빼기 시작했다. 공기에서 여름 냄새가 나고 나무들은 뿌리까지 푸를 것처럼 뻗어나간다. 달력을 넘기며 날짜를 헤아려 보다가 그냥 덮어 버렸다. 시작도 끝도 없는 계절의 흐름 속에서 인간만이 분초를 다투며 살고 있다. 이제는 이 사회의 시간 단위가 분과 초까지 내려갔다는데 무엇이 삶을 그토록 잘게 부수어 내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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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칙적으로 쓰고 있다. 오전 9시에 나가서 1시까지 쓰고 돌아와 점심을 먹는다. '가기 싫어 증상'이 나타나기 전에 재빨리 운동을 갔다가 돌아온다. 나머지 시간은 해야 할 일이 있으면 하고, 글을 좀 더 보거나 아니면 책을 읽거나 별을 접는다. 그렇다. 종이 접기다. 주기적으로 별을 접고 싶은 시기가 돌아오는데 요즘이 그렇다. 아기별도 접고 엄마별도 접고 야광별, 파스텔별도 접는다. 잔뜩 접어서 빈 통에 넣어 두었다가 별 접기 시즌이 지나가면 버린다. 종이학도 접어 보고 다양한 걸 시도해 봤는데 별이 제일 간단하고 재미있고 무엇보다, 예뻤다. 지금까지 몇 개나 접었을까. 몇 백 개는 된 것 같다. 여름이 오면 별 접기 시즌도 끝나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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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검진을 계기로 식단을 바꾸어 보았다. 추천받은 채소 농장에서 신선한 채소를 한 박스 시켜서 소분해 정리하고 매 식사 전에 채소부터 먹는다. 그리고 다양한 잡곡을 섞은 밥. 먹고 나면 바로 일어나서 뭐든 한다. 일을 시작하면 내 의지대로만 움직일 순 없겠지만 일단 평소 습관이라도 이렇게 들여 보려 한다.  그 한 번이, 이 하루가 결코 작은 단위가 아님을 살아가며 점점 더 깊이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글도, 운동도, 사람까지도 한 번이 두 번으로, 두 번이 세 번으로 쌓이며 이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모해 간다는 걸 체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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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A 고등학교에 글쓰기 수업을 다녀왔다. 좋은 인연으로 2019년부터 매해 학생들을 만나고 있는데, 준비도 수업도 참 즐겁고 좋다.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꼭 반년 정도가 걸리는 '책 쓰기 프로젝트'인데 나는 매 회차 30분 미니 특강을 진행하고 남은 시간 동안 일대일로 참여 학생들과 글 쓰는 일을 논하고 지도한다.


글을 쓰고 싶어 오는 학생들의 눈을 볼 때, 많은 생각을 한다.


한때는 나도 그런 눈을 가진 학생이었을 것이다. 초중고 12년 동안 문예부였다. 다른 동아리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누군가, 내가 쓴 글을 좋다고 하면 그 한마디로 열흘을 살고 때로는 몇 년도 살았던 것 같다. 글을 잘 쓰는 친구들은 많았다.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그 이름들 중 현재 작가가 되었거나 계속해서 글을 쓰고 있는 친구들이 몇이나 되는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가끔 그들이 생각날 때 마음속으로 조용히 안부를 물어보곤 한다.


그중 E라는 친구와는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도 했었다. 누가 먼저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는지 선의의 경쟁을 해 보자며. 교복 치마가 세상 어색한 중1 초봄이었다. 그때 나는 마룻바닥이 번쩍번쩍 광이 나는 E네 집에 놀러 가 적잖은 문화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 그 애네 집에는 마루에 TV가 없었다. 거실을 가로지르는 엄청난 크기의 책장이 있었고 빈틈없이 빽빽하게 책이 꽂혀 있었다. E가 재미있다며 빌려준 책은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였다. 당연히, 읽은 적 없는 책이었다.


지고 싶지 않아서 집으로 돌아와 열심히 읽었다. 한스 기벤라트의 삶에서 재미는 못 찾았지만, 죽을 때까지 생각날 이름을 얻었다. 나는 여전히 그 책을 보면 E가 생각난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아마 이제는 희미해져 버린 이름 중 누군가도, 어쩌다 내 이름을 떠올리며 비슷한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다. 드러나지 않았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한때 작가를 꿈꾸며 땡볕 아래서 글제와 함께 무르익어 가던 우리들의 계절이 아직 끝나지 않았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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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책 쓰기 프로젝트에는 열여섯 명의 친구들이 참여했다. 나는 아득하도록 아름다운 글을 쓰는 아이들을 만날 때 내가 들었던 최고의 칭찬이자 응원을 꼭 들려준다.


너는 꼭 글을 썼으면 좋겠어.

계속해서 쓰기를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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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다.


나는 이런 말을 할 주제가 못 된다. 하지만 주제가 되어야지만이 말을 할 수 있다면 이 세상 인구의 몇 프로나 말이란 걸 하며 살 수 있을까. 좀 더 용기를 내어 보아도 좋을 일이다. 어차피 시간은 가고 우리 모두는 사라질 테니까. 그전에 어느 한순간이라도 내가 나로, 진심을 다해 살아보는 경험을 해 본다면- 이렇게 서로를 믿지 못하고 미워하며 깎아내리기 바쁜 사회가 되지는 않았을 것.


...이라는 편협한 생각을 또 한번 해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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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우리들 각자는 얼마나 용기를 내어 또 이 순간을 살고 있느냐는 말이다. 퇴근길에 사람들과 엉키어 집으로 돌아오며 그런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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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일이 아득하고 두려워질 때, 내가 얼마나 많은 시간을 걸어온 끝에 오늘에 닿았는지를 생각해 본다. 그냥 하루하루를 살았을 뿐인데 어느새 나는 마흔 번째 여름을 앞두고 있다. 그러니까, 앞으로도 지금까지 그래온 것처럼 그저 하루하루를 살면 몇 번째일지 모르는 마지막 여름에 도착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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