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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주 Aug 09. 2021

그해 여름에 나는 고3이었다

2002 한일 월드컵에 관한 짧은 기록


2020 도쿄 올림픽이 끝났다.

개최되기까지 말도 많고 곡절도 많았던 올림픽이 어제로 막을 내렸다. 로고 앞에 붙은 '2020'이라는 숫자를 볼 때마다 어쩐지 어색하고 묘한 느낌이 들었다. 2021년에 보는, 2020 올림픽. 조심스러우나 활기찬, 역동적이지만 숨죽인, 저마다의 방에서 따로 함께.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단어들이 기묘하게 어울렸고, 그래서 더욱 눈길이 갔다.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고, 반가웠으며 그래서 행복했다. 코로나 시대에도 우리는 여전히 하던 일을 계속하며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본 것 같아서. 메달 여부와 상관없이 용기를 내어 매일을 살았고, 다시 용기를 내어 최선의 경기를 치른 모든 선수분들께 깊은 감사와 존경이 담긴 박수를 보내드리고 싶다.


올림픽 이야기를 꺼내긴 했지만, 사실은 2002년 한일 월드컵 이야기를 해 볼까 한다. 뜨거웠던 여름, 하면 빠질 수 없는 기억이니까.


그래, 2002년 그해이다. 그해 여름에 나는 고3이었다.



고3이 뭔 대수라고.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고3은 힘들다. 삼십 년 전이나 십 년 전이나 일 년 전이나 지금이나 어느 해나 고3은 힘들다. 삶에서, 특히 대한민국에서(!) 안 힘든 세대가 어디 있겠냐만은, 유독 고3은 '더욱' 힘들게 느껴진다. '고3 = 입시 = 수험'이라는 공식이 너무도 강하게 박혀 있는 탓일까. 한국 사회가 부여한 일종의 마크(mark)나 낙인(stigma)일 수도 있겠다. 그런 생각도 잠시, 나도 어느 해인가에는 결국 열일곱이 되어 고등학교에 들어갔고 곧 고2가 되었고 어느새 고3이 되고 말았다.


지극히 평범한 매일을 보내고 단계를 밟아 차근차근 고3에 이르렀으므로 고3을 코앞에 둔 가을 무렵부터는 그런 말을 많이 들었다. '넌 이제 고3이야'. 오죽하면, 고2 때 펴낸 동아리 문집에서 '넌 이제 고3이야'라는 말을 엄청 들었다며 푸념처럼 끼적거려 놓았을까. 예예예. 알았습니다요. 저는 고3입니다요-_-;;  고3 파이팅! 말 드럽게 안 듣는 깐족 대마왕처럼 써 놨지만 사실 이렇다 할 사춘기 없이, 일탈도 한번 제대로 못 해 보고 고3이 되어 버리고 만 비운의(?) 학생이었다. 그러나 더 큰 비운은 고3이 된 그해 여름이 하필 2002년이라는 것이었다. 그렇다. 한일 월드컵이 열리던 그해 말이다.



축구가 뭐라고.


초등학생 때인가 중학생 때인가. 아마 그 무렵이었을 것이다. 월드컵 유치가 결정되고 나라 안팎이 들썩였을 때에도, 대망의 2002년이 다가올 무렵에도 나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축구? 축구라... 보면 재미있지만 안 봐도 뭐, 괜찮아. 이기면 좋지만 져도 뭐, 괜찮아. 이래도 저래도 괜찮다는 건 그에 대한 마음이나 생각이 크게 없다는 것이다. 호불호가 분명하다는 것은 그에 대한 관심과 마음이 그만큼 크다는 것. 불호도 관심의 하나이므로. 아무튼 그래서 오매불망 월드컵을 기다리던 친구들의 걱정 어린 기대에도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고3이 아니었어도 어차피 직접 가서 경기를 볼 것도 아니고, 매일매일 라이브 중계에 재방송에 하이라이트 편집에 스포츠 뉴스까지 TV만 틀면 거의 종일 볼 수 있을 텐데 뭐. 그리고 지금 그걸 볼 땐가? 솔직히? 공부해야지. 우리는 고3이잖아. 서울 올림픽 이후로 거의 이십여 년만의 국제적 대회가 열리는 거지만 뭐 어쩌겠어. 1988 그해에도 3 있었겠지.


그렇게 여름이 되고, 나는 왠지 '고3 치고는' 공부를 잘 안 하는 학생이 되어 있었다. 아니, 내가 생각한 고3은 이런 게 아닌데? 그해 4월 5일 일기에 '미쳤어?? 이제 고3이잖아!! 고3의 시간이 흐르고 있어!!'라는 구절을 끼적여 놓았던 게 생각난다. TV에서 너무 수석한 사람들의 공부 방법만 봐서 그런가 고3에 대한 환상이 무지막지하게 컸나 보다. 나는 내가 고3이 되면 막 밥 먹는 시간, 화장실 가는 시간도 아까워하며 책상에만 있을 줄 알았는데. 그러기에는 엉덩이가 너무 가볍지, 나는. 게다가 호기심도 많아서 밖에서 뭔 소리만 들리면 뛰쳐나가 '뭔데요'를 연발하니 중3인지 대3인지 알 수가 없는 상황에서 그만 여름이 되어 버리고 만 것이다.


그리고...

축구는 정말, 너무 재미있었다. 세상에, 이렇게까지 재밌고 최고이고 환상적일 줄 몰랐다. 전국이 빨간 물결로 뒤덮이고, 슛 하나에 바깥공기가 들썩이는 건 예사였다. 대학은 가야겠고 공부도 해야겠는데 우리나라도 16강 진출은 해야지. 어떡하지. 괴로운 가운데 수시 접수일이 다가왔다. 수시가 도입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라 데이터가 많이 없었을 그 당시, 한 반에서 수시 원서를 쓰는 학생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너는 무조건 수시를 써야겠다.


나의 내신 성적과 모의고사 성적을 비교해 보신 고3 담임선생님은 재차 강조하셨다. 너는 무조건 수능 없는 전형으로 가야 해. 형편없이 낮은 모의고사 성적 때문에 안 그래도 고민이 많았는데 달리 방도가 없었다. 고등학교 입학 후에도 하고 싶은 것들을 따라 이것저것 많이 저질러 놓아서 외부 활동은 그런대로 봐 줄만 했다(이를 테면, 십 대 말의 난리부르스 공연이라던가... 문학 공모전이라던가... 봉사활동 시간 준다고 해서 얼결에 참여한 유관순 열사상 선발대회에서는 심지어 수상도 했다). 그럼 수시를 써 볼까요 해서 1학기 중간고사가 끝난 6월 즈음부터 원서 작성에 들어갔다. 기막힌 타이밍으로 월드컵도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와아아아아아!!!


...라는 함성 소리만 들려도 방문을 열고 뛰쳐나왔다. 왜요왜요뭐요왜요!!!! 그러면 안방에서 볼륨 소리를 작게 해 놓고 TV를 보시던 엄니는 우리나라의 선전을 흥분된 목소리로 전해 주시곤 했다. 그 당시 주말 부부셨던 터라 아부지는 거의 집에 안 계셨고, 대학교 2학년이던 오빠는 시청이며 광화문이며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느라 집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그리고 오늘 집에 못 들어간다는 전화는 꼭 내가 받아 부러운 마음이 하늘을 뚫곤 했다). 그리고 나는... 자기소개서 한 줄 쓰고 월드컵이 궁금해서 집중 안 되고, 입학 원서 반절 쓰고 함성 소리에 뛰쳐나가고...의 반복이었다. 준비가 잘 될 리 없었다. 그래도 어떻게 꾸역꾸역 준비를 이어나갔다. 자기소개서를 고치고, 1차가 통과한 다음의 이야기겠지만 아무튼 영어 면접을 준비하고, 논술도 써 보며 하루하루를 지났다. 게임 스테이지를 깨듯 하루하루 해야 할 일들을 쳐내고 있을 때, 우리나라 대표팀도 한 계단씩 올라가기 시작했다.  


전국은 광란의 도가니처럼 들끓었다. 그사이 나는 고심 끝에 지원 대학을 결정했고, 인터넷으로 원서를 접수했고, 접수에 필요한 서류를 내러 대학을 방문했다. 학교에서는 효율적인 접수를 위해 같은 대학을 쓴 학생들 서류를 한 사람씩 몰아주어 각자 한 대학씩 맡아 다녀왔다. 내가 맡은 곳은 S대였는데(당연히 그 S대 아님) 아침부터 잔뜩 흐리고 비까지 떨어지는 날이었다. 그날이 선명히 기억에 남은 것은, 서류가 젖을까 노심초사한 까닭도 있었지만 '미국전'이 열리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아아, 이기면 좋겠다. 대학 원서 접수야 어떻게든 되겠지 뭐. 그나저나 미국전이 걱정인데!! 대학에 도착해 원서를 내고 대학을 둘러본 뒤 맥도날드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가게 내 손바닥만 한 TV 앞에 사람들이 우글우글 몰려 있었다. 경기는 0대1로 우리가 지고 있었다. 아, 지고 있구나... 원서 접수 날 지면 왠지 우울할 것 같은데... 아니야, 이런 징크스 같은 걸 만들지 말자. 중얼거리며 식사를 하고 경기를 좀 더 보다가 영 진전이 없는 것 같아서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런데 얼마나 갔을까. 집으로 가는 지하철 속에서 세상에, 동점골 소식을 들었다. 그때는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이므로 실시간으로 소식을 알기가 어려웠는데 어떻게?? 지금도 신기한 일이지만, 바로 지하철 안내방송을 통해서였다.


(지직- 뾱!) 아아, 여러분!! 지금 우리나라가 동점골을 넣었습니다!!!!! (뚝!)


나는 분명히 들었다. 기관사 님의 흥분된 목소리를. 근데 옆에 같이 계시던 엄니는 깜박 졸으셨는지 못 들으셨다고, 네가 잘못 들은 것 아니냐고 하셨다. 아니, 정말이라니까요? 우리가 동점골 넣었대요! 그래? 그걸 방송으로 해 준단 말야? 후다닥 집으로 돌아가 확인해 보니 정말이었다. 후반전 종료를 십여 분 앞두고 안정환 선수가 동점골을 넣은 것이다. 와아, 대단하다! 오늘 극적으로 동점골을 넣은 것처럼 내게도 좋은 소식이 있었으면, 잘 되었으면 제발. 제발.


뭔가 좋은 기운이 있는 날 같아서 마음이 한껏 부풀고 설렜다. 좋은 소식이 있으려나?? 기대하며 기다렸지만 아쉽게도(과연 '아쉽게도'일까) 그날 원서를 접수한 대학은 고배를 마셨다. A ㅏ... 느낌은 좋았는데 말이다.



6월 말에 월드컵은 끝났다.


뜨겁게 달아올랐던 시청 광장이며, 광화문 앞 일대의 거리도 다시 일상의 풍경으로 돌아갔다. 아니, 돌아가려고 애썼다. 여름 내내 전국을 달구었던 뜨거운 열기는 쉽사리 사라지지 않고, 가을 너머까지 잔잔하게 이어졌다. 여운이라고 해야 하나. 아쉬움이라고 해야 하나. 사람들 사이를 휘감았던 어떤 기운 같은 것들이 월드컵이 끝난 후에도 이따금씩 툭툭 튀어나오곤 했다. 그래서 2002년 그해에는 많은 사람들이 꽤 오랜 시간을 묘한 흥분과 여운 같은 일렁임 속에서 보냈던 것 같다. 나의 경우, 어쩌면 고3이어서 그랬을 수도 있겠다. 하나의 결과를 보기까지 지속되던 불편과 긴장, 이것만 아니면 다 즐겁고 행복할 것 같은 마음. 공부를 해도 안 해도 걱정인 매일. 지나고 보니 그래도 그때가 재미있고 즐거웠던 시절 같다는 생각은  2002년이어서일까, 월드컵이어서일까, 학창 시절을 돌아보는 전형적인 '라떼 어른'의 마음이어서일까. 어느 쪽이든 기억에 남은 한 해임이 틀림없다.


또 하나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

아직 월드컵이 한창 진행 중이던 어느 날 오후, 윤리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문득 그러셨다.


여러분, 지금 시청 광장 가고 싶죠?

네에! (아니, 이 당연한 걸!)

여러분도 광화문 가서 소리 지르고 싶죠?

네에에! (두말하면 입 아프지!)


근데요, 여러분. 붉은 악마 현상. 이거 잘 생각해 봐야 해요. 무섭다는 생각은 혹시 안 드십니까?

예에?? (멍.......)


우리들은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순간 멍하게 선생님만 쳐다보았다. TV에 붉은 옷을 입은 사람들의 물결이 넘쳐나고 굉장한 응원 소리가 전국을 뒤덮을 때마다 일견 자랑스러운 마음도 가졌던 것이 사실이니까. 내가 저 자리에 가지 못한 것이 안타까울지언정 무섭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 보지 않았던 십 대들. 우리들은 그때 처음으로 하나의 현상이 지닌 이면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 안경에 가려져 있던 선생님의 눈빛이 번쩍하고 날카롭게 빛나던 것이 떠오른다.


그리고 월드컵의 열기에 가려져 당시에는 주목받지 못했던 많은 사건, 사고들이 그해 여름에도 있었다. 물론 보도가 되고 이슈도 되었으나, 워낙 거대한 물결이 몰아쳐, 하나의 풍경에 한뜻으로 몰입하느라 놓쳐 버린 중요한 사건, 사고들을 생각할 때 새삼 그 오후, 윤리 선생님의 말씀이 떠오르는 것이다.


무섭다는 생각은 혹시 안 드십니까?



이렇게 살아도 될까. 이대로 괜찮은 걸까. 나는 지금 제대로 보고 있는 걸까. 무수히 많은 풍경들과 언어들, 소리와 빛깔들 사이를 잘 읽어내고 있는 걸까. 그럴 때마다 '무섭지 않느냐'던 윤리 선생님의 말씀이 떠오르는 것이다. 어느 때는 월드컵 풍경의 끝에, 또 어느 때는 월드컵 풍경보다도 먼저.


그리고 핑크 플로이드의 명반 <Dark Side of the Moon>의 표지도 떠오르는 것이다. 프리즘을 통과한 빛이 여러 갈래로 퍼져 나가는 그 그림이.


일상을 살며, 달의 어두운 뒷면을 보기란 쉽지 않다. 애써서 보고 들으려고 노력해 봐도 잘 되지 않을 때가 많다. 또, 어떤 시간은 지나고 나서야 그 의미를 간신히 깨닫게 되므로 그런 때는 아무리 보려 해도, 잘 보이지 않고 잘 들리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고 포기해 버릴 수도 없는 일이다. 물론, 모든 것의 '앞뒤좌우위아래'를 매번 보고 살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어느 순간에는 사는 일을 잠시 우뚝 멈추고 고개를 갸웃거려 볼 필요는 있는 것이다. 내가 지금 보고 있는 빛이 대체 몇 갈래로 나뉘어 어떻게 퍼져 나가는지 한 번쯤은 말이다. 달의 어두운 뒷면이 몰래 감추고 있는 풍경이랄지, 진실이랄지 무엇이랄지 뭐 그런 것들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볼 겸.


올림픽 이야기를 하다가, 고3이었던 이야기를 하다가, 월드컵 이야기를 하다가 결국 달의 어두운 뒷면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 글의 허랑방탕한 얼개에 대해서는 길게 적지 않겠다. 이미 너무 길어졌으므로. 이 또한 이 글이 지닌 어두운 뒷면이겠지. (뭐라는 건지)


날이 덥다. 그래도 입추에 들면서 바람 끝에 가을 느낌 같은 것들이 성급히 묻어오기 시작했다.


가을 느낌 같은 것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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