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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주 Jul 29. 2021

이 시절에도 끝이 있을까

'이 시절에도 끝이 있을까'와 같은 끼적거림에 관하여


날씨가 모처럼 흐리다.


사계절 중 여름을 가장 좋아하지만, 요즘 같아서는 이놈의 계절을 어디 신문지 같은 데 꽁꽁 싸매서 멀리 던져 버리고 싶다. 극지방으로는 가지 않게 조심해서. 그렇다면 어디로 던져야 하나. 아무래도 지구 밖으로 던져야겠다. 태양이라면 이게 웬 떡이야 하고 꿀꺽 삼키겠지. 여름의 무더위쯤이야 태양의 간에는 기별도 안 갈 것이다. 그렇게 던져 버리고 나면 얼마간은 좋아하다가 겨울이 오면 또 춥다고 난리를 치겠지. 큰일 났군! 여름을 던져 버려서 어떡하나! 기왕 이렇게 된 거 겨울도 던져 버리자 해서 겨울마저 던져 버리고 나면 봄과 가을만이 남을 텐데, 그러면 좋을까. 가장 좋은 계절로 봄과 가을이 꼽히곤 하는데 정말 달랑 두 계절만 남으면, 좋을까. 아무렇지도 않을까. 비로소 행복할 수 있을까.


모처럼 날씨가 흐려 어제보다 살만 하니 쓸데없는 생각이 줄을 잇는다.

더우면 덥다고, 추우면 춥다고 툴툴거리는 일상을 이제는 좀 벗어날 때가 됐는데. 선조들의 시조에 '매화'나 '소나무'처럼 계절을 타지 않는 자연물들에 대한 예찬이 왜 그렇게 많은지 비로소 알겠다.


그러니까, 선조님들도 힘드셨던 것이다. '사람'이기 때문에.


계절은 계절대로 타고, 정쟁에 휘말리고, 속고 속이고, 미워하고 슬퍼하고, 괴로워하다 유배도 당하고, 유배지에서 분노도 하고, 할 일이 없으니 글을 쓰며 읍소도 하고, 궁궐이 그립다 애원도 하고, 그러다 나는 괜찮다 아무렇지도 않다 원래 이렇게 살려고 했다 자기 위안도 하고, 자기 연민에 빠졌다가 다시 나라 걱정도 하고, 그러다 보면 다시 화가 솟구치고, 그런데 또 생각해 보면 이것도 다 뜻이 있는 것 같고, 그래서 가만히 주위를 둘러보니 변함없이 매화는 피고(꼭 눈 속에 핀다), 소나무는 사시사철 독야청청 푸른 것이다.


잘 안 되는 것일수록, 꼭 그래야 한다고 새기고 싶은 것일수록 기록으로 남기는 것은 아닐까. 허구한 날 비슷한 다짐과 깨달음 같은 것들을 주르륵 늘어놓는 나처럼, 조상님들도 그러셨던 것은 아닐까. 유배지에서 분통을 터뜨리며 화를 버럭버럭 내다가 다시 마음을 다스리며 그래도 이렇게 살지 말자, 저 매화를 닮아 보자, 저 소나무처럼 살아 보자, 흐르는 물처럼 흘러가 보자 다짐하고 꼭꼭 눌러 한 자 한 자 시를 지었을 풍경을 그려 보면, 조금은 위안이 된다. 시대와 상황은 다르지만, 무엇을 마음 놓고 할 수 없는 이 시간이 조금은 닮은 듯도 해서.


같은 상황이더라도 무엇에 주목하고 무엇을 느끼는가에 따라 그 결과가 다르겠지. 사람이기 때문에 힘들고 어렵고 괴로운 것은 당연하겠지만, 또 사람이기 때문에 이를 애써 떨치고 좋은 것에 의미를 두고 좋은 일들을 그리며 순간순간을 넘어가는 것이겠지.


이 시절에도 끝이 있을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꼭 끝은 있다고, 끝나고야 말 거라고 열심히 믿으며 그렇게 말하고 다녔는데 사실 잘 모르겠다. 그렇게라도 안 하면 정말로 끝나지 않을 것 같아서 일부러 더 그래 왔나 싶을 정도로 요즘에는 확신이 스스스 사라지고 있다. 하지만, 끝나든 끝나지 않든 결국 우리는 또 살아가야 하고, 어떻게든 살 수 있을 테니까. 아직 방법은 잘 모르겠지만 그래서 막막할 때는 주위도 보고 땅도 보고 하늘도 한 번씩 보면 기운이 날 것이다. 또 오늘처럼 모처럼 흐린 날에는 선조들의 시와 문장들을 읽고 이런 '쓸모는 없지만 남겨 두면' 언젠가는 읽힐지도 모르는, 끼적거림들도 좀 만들어 가면서.  


21세기형 신개념 유배지에서 모두들 어떻게 지내고 계신지.

얼굴 한번 본 적조차 없는 모든 이들의 안부가 문득 궁금해진, 어느 흐린 여름날 오후에 몇 자를 적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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