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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주 Aug 16. 2021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헝가리 갔지

'Live For Today'에 관한 짧은 기록



오래전 잭 캔필드와 마크 빅터 한센의 저서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라는 책이 크게 베스트셀러가 된 때가 있었다. IMF 무렵이었다. 사회적으로 불안정하고 비극적인 일들이 계속해서 발생하던 때라 그랬을까. 이 책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널리 읽혔고, 적잖은 위로가 되었다. 원서로는 'Chicken Soup' 시리즈로 불렸고, 비슷한 시기 원제에 맞게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로 번역되어 나온 책들도 있었다. 나도 이 책을 구해 여러 번 읽고 끝내는 한 권 한 권 모았다.


그러니까, 중학교 때 즈음이었던 것 같다.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를 읽다가 '왜 기다리는가?'라는 편에서 나는 이른바 '심쿵'하는 경험을 했다. 무려 '자신의 꿈을 이루는 일에 대하여'라는 꼭지에서였는데, 그걸 읽고 나니 종일 그 생각만 났다. 오토바이 사고로 몸을 크게 다쳤지만, 새로운 꿈을 가지고 살아가는 글렌 매킨타이어라는 사람의 에세이였다.



글렌은 어려서부터 모험을 좋아하고 꿈이 생기면 기다리지 않고 바로 이루려는 아이였다. 늘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골몰하며 꿈을 좇아 살고자 했고, 그때마다 주변의 반대에 부딪혔다. 기다려, 너는 아직 어려! 기다려, 너는 아직 준비가 안 됐어! 기다려, 너는 아직 세상을 몰라! 기다려, 너는 아직 부족해! ...여기까지는 흔한 이야기다. 하지만 글렌은 그때마다 스스로에게 반문했다. '기다리라구?  기다려야 하지?' 그는 십 대부터 일을 하며 돈을 모았고 하고픈 일이 생기면 최대한 지체 없이 '그 일'을 향한 여정을 떠났다. 한 예로, 군용 가방을 실은 진흙투성이 오토바이 한 대가 <알래스카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고 적힌 큰 입간판 앞에 서 있는 광고를 보고 딱 1년 뒤 바로 그곳에서 사진을 찍었다. 훨씬 더 진흙투성이인 오토바이를 타고 똑같은 입간판 앞에서 말이다. 두 달 동안 2만 7천 킬로에 달하는 캠핑도 떠났다. 분명 그 시간 동안 말로는 다 못할 경험들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정식 경찰관이 되어 안정적으로 살아가던 중 오토바이 사고로 크게 다친다. 아내와는 이혼했고,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는 글렌이었다. '왜 기다리는가'라고 무수히 외치며 바로 '오늘'을 사는 데 진심인 사람 말이다. 사고는 어느 날 갑자기 비극적으로 찾아왔지만, 그는 굴하지 않고 사무직 경찰관으로 돌아갔고, 재혼을 했고, 컨설팅 회사를 운영하며 대중 연설가로 일하고 있다.


'내가 떠났던 그 모든 여행들, 내가 스치고 지나간 그 모든 길들을 회상할 때, 내 자신이 그런 여행을 해낼 수 있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인가 하고 나는 생각한다. 오토바이를 탈 때마다 나는 항상 내 자신에게 말하곤 했었다. 지금 실천하라. 설령 네가 지금 공해로 가득한 도시의 네거리를 지나고 있을지라도 네 주위의 모든 풍경을 즐겨라. 왜냐하면 넌 똑같은 장소에 두 번 다시 있을 수 없고, 똑같은 일을 두 번 다시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 2, 206p>



가슴에 콱 와 박힌다, 는 게 이런 걸까 싶을 정도로 글렌의 이야기는 아주 오랫동안 내 삶의 지침처럼 마음에 남아 있었다. 다른 건 다 잊었어도 이 이야기만은 계속해서 생각이 났다. 할까 말까 망설일 때마다 글렌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사실 들어본 적도 없으면서). '왜 기다리는가? 모든 순간은 한 번뿐이다.'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이미 결론은 나 버린 것과 같았다. 그게 무엇이든 일단 하고 봤다. 그 결과 대학 졸업 후 많은 곳을 떠돌았고, 재정은 늘 위태로웠으며, 당장 다음 달을 걱정해야 하는 날들도 길었지만- 즐거웠고, 행복했고, 내가 진짜로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풀숲을 헤치듯 헤매고 다닌 그 이십 대의 시간들 동안 나는 진짜로 살아 있었다. (머지않은 시기에 거쳐온 그 길들에 대하여 하나씩 천천히 풀어낼 수 있기를, 버킷 리스트 삼아 여기에 적어 놓는다.) 


오늘 문득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얼마 전 <CLOUDS>라는 영화의 예고편에 뜬 'Live For Today'라는 카피를 보고 갑자기 '왜 기다리는가?'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CLOUDS>는 작년 가을에 개봉한 영화로, 동명의 곡을 세상에 남기고 하늘로 떠난 '잭'이라는 고등학생의 실제 이야기를 담았다. 보고 싶은데 한국에서는 개봉을 안 한 것 같다.


'Live For Today'는 사실 너무나 뻔한 말이다. 글렌의 일화도 사실 뻔한 스토리다. 듣고 있자면, 아니 지금 그걸 누가 모르나? 몰라서 못하나? 나도 안다, 알어! 이런 생각들이 불쑥 치밀어 오른다. 마치 고전소설에서 '권선징악'이요, '인과응보'이며 '사필귀정'이니라... 하는 말 같다. 그렇지만 뻔한 말들이 계속해서 회자되고, 위급한 순간들마다 빛을 발하는 것은 분명 어떤 이유가 있을 것이다. 말에도 이런 수식을 붙일 수 있다면, 이런 말들이야말로 '클래식'이겠지.


그렇지만 확실히 매번 실행하기란 쉽지 않다. 내게는 2019년 봄, 헝가리 여행이 그랬다.


2019년 봄에 나는 <볼로냐 아동 도서전>이 너무 보고 싶어 가진 돈을 싹싹 긁어 모아 이탈리아로 훌쩍 떠났었다. <엣눈북스> 출판사 대표님께서 귀한 기회를 주셔서 스텝으로 참여했고, 4일 동안 정말이지 황홀한 시간들을 보냈다(언젠가 그 이야기도 남겨 보자). 그리고 나간 김에 앞뒤로 일정을 잡아 친구 소라가 공부하고 있던 프랑스 파리, 네덜란드 암스테르담과 아른험, 데벤테르에 들렀다. 그 뒤로 원래는 헝가리 부다페스트 일정도 일주일간 잡아 두었다. 다른 나라들은 방문 목적이 분명했지만 헝가리만은 그렇지 않았다. 그냥 '가고 싶어서' '질러 버린' 일정이었다. 떠날 때에는 의기도 충천하고, 자금도 나름대로 여유롭고, 시간도 넉넉했으므로 아무런 문제 없이 행복하게 일정을 시작했다. 그런데... 파리와 볼로냐를 거쳐 네덜란드에서 좋은 시간을 보내고 헝가리로 이동할 즈음이 되자 갑자기 '아, 그런데 나 계속 이렇게 살아도 되나?' 이런 생각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새삼스러운 일이었다. 왜냐하면 계속해서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왜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을까. 별다른 목적의식 없이(그놈의 목적의식) 저질러 버린 일정이기도 했고, 돈도 거의 떨어져 갈 무렵이라 아무래도 마음이 조급해진 까닭일 테다. 지금 이럴 때가 아닌데, 어서 가서 다시 일을 시작해야 할 텐데. 생각은 불길처럼 번져 나갔다. 남들은 결혼하고 아이도 키우고 직업적 성취도 쌓아가는데 나만 계속해서 이렇게 살아도 될까. 올해는 당장 이렇게 산다고 해도 내년에는 또 어떻게 하나. 비교하는 마음이 한번 들기 시작하자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그 생각은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았고, 나는 이런 결론에 다다라 버린다.


헝가리는 뭐, 다음에 또 오면 되지. 지금은 돈도 아끼고 시간도 아끼자. 얼른 돌아가서 뭐든 다시 하자.


그렇게 나는 2019년 4월 중순에 '헝가리 부다페스트행 비행기표와 숙박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버린다. 그때는 그게 잘한 결정인 줄로만 알았다. 그렇게 아낀 일주일과 그만큼의 돈이 내게 무슨 큰 소용이라도 있는 듯이. 물론 그때에도 글렌의 쟁쟁한 목소리가 안 들린 것은 아니다. '왜 기다리는가? 지금 가! 언제 다시 온다고!' 나는 전에 없이 맞섰다. 이봐요! 나도 이제 삼십대라구요. 그것도 무려 중반! 지금 이 하반기가 나한테 얼마나 중요한데요! 헝가리도 물론 가 보고 싶지만, 여행이야 뭐, 당장 안 가면 죽는 것도 아니구, 당신 말마따나 이것도 다 뜻이 있겠죠.


그렇게 마음 한구석에 남은 찜찜함을 애써 털어 버리며 나는 한국으로 씩씩하게 돌아왔다. 그리고 반년이 지나 '그 뜻'을 알았다. '코로나의 습격'이었다. 씩씩하게 돌아왔던 나는 그때만 떠올리면 내 자신의 멱살을 쥐고 되게 한번 흔들고 싶다. 씩씩거리며. 글렌이 옳았다. 물론 그 여행을 안 갔어도 나는 여전히 살아 있다. 안 간 시간은 또 그 나름대로 어떻게 잘 살았다. 헝가리를 다녀왔다고 해서 뭔가가 아주 크게 변했을 리도 없다. 하지만, 크게는 아니어도 작게는, 소소하게는, 희미하게는 무엇인가가 변했을 것이다. 인감도장을 찍듯 쾅! 하고 내려 찍히는 거대하고 선명한 경험도 있지만, 그래서 평생 잊히지 않는 경험도 있지만, 대체로 경험이라는 것은 아주 작고 소소하고 희미한 '무엇'들이 쌓여 체화되듯 스미는 게 아니던가. 애기들 장난감 도장처럼. 별 하나, 별 둘, 별 셋처럼. 잘못 찍히기도 하고 반절만 찍히기도 하지만 어느 날 돌아보면 무수히 반짝이는 별무리처럼 그렇게, 경험이란 것은 말이다.   


2019년 봄은 한 번이었다. 2020년 봄도, 2021년 봄도 딱 한 번이었다. 그 말은 앞으로 내가 지날 몇 번의 계절들도 결국 단 한 번일 것이라는 얘기다. 그 단 한 번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코로나로 잔뜩 얼룩지기만 했다고 생각했는데, 가만히 들여다보니 이 시간에도 소중한 것들이 많이 쌓였다. 그립고 보고픈 사람들의 소식, 만날 날을 기다리는 마음, 언젠가는 가 보자 하고 걸어 둔 풍경들 그리고 태어나 자라고 있는 수많은 아이들까지. 이만하면 되었지 싶다. 작은 방 안에서, 좁은 책상 위에서 주로 엎드려 보냈지만, 반짝이는 별무리들로 충분히 행복한 여름이었다.



이렇게 나는 십 대도, 이십 대도 훌쩍 지나고, 삼십대마저도 이제 거의 끄트머리에 다다랐다. 그러나 여전히 글렌의 말을 신봉하고 있다(헝가리가 아쉽기 때문만은 아니지 않기가 쉽지 않지만 아무튼). 잭이 남긴 'Live For Today'라는 말을 마음 한편에 다시 깊숙이 새겼음은 물론이다. 여전히 지금을 사는 일은 어렵고, 순간을 사는 일은 더욱 어렵지만 어떻게든 이 여름을 지난 것처럼 가을도, 겨울도 지나 보겠다. 지금은 기다려야 할 때지만, 그 기다림 속에서도 계속해서 마음을 건드리는 어떤 말들에 대해서는 깊이깊이 들여다볼 작정이다. 기다리면서, 기다리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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