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태주 Aug 25. 2021

마스크 주문 병(病)

코로나 시대 마스크 구매에 관한 짧은 기록


엊그제 틈을 보다가 다시 마스크 100장을 주문했다.


작년부터 된통 앓고 있는 병, 바로 '마스크 주문 병'이 다시 스멀스멀 깨어난 까닭이다. 분명 100장을 구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뭔가 조금 줄어드는 기미가 보이자마자 또 100장을 주문했다. 한창 마스크 대란이 일었던 시절에는 품앗이를 하기도 했다. 손이 빠른 친구 M이 두 번이나 마스크 구매에 성공해 집으로 25장씩 총 50장의 마스크를 보내 주었을 때는 신이라도 영접한 듯 절로 무릎을 꿇고 마스크 더미를 끌어안았다. 마스크야, 네가 구세주로구나. 흑흑. 네 덕분에 밖으로 나갈 수 있어. 흑흑. 농담 아니고 정말 그랬다.


블랙 코미디도 아니고 이게 뭐란 말인가.   


마스크 대란이 진정된 후에도 한동안은 마스크를 구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하늘로 치솟은 가격 때문에 시골집에 100장, 우리 집 100장, 오빠네가 있는 미국에 수십 여장(그나마도 해외로 보내는 건 개수 제한이 있다고 했다)을 보내니 몇십만 원이 순식간에 훅 날아갔다. 아, 이건 여러 모로 타격이 크구나. 그나마 이렇게라도 구할 수 있어서 다행인데, 이마저도 못 구하는 사람들은 어떡하지. 환경은 또 어쩌면 좋지. 아니, 글쎄 그러니 지금 이 상황을 대체 어쩌면 좋단 말인가. 울적하게 중얼거리며 바깥의 풍경에 눈길을 두면, 대체 코로나 바이러스가 어디에 있다는 것인지 알 수 없게 하늘은 푸르고 햇빛은 찬란했다.


어느새 2년이 다 되어가는 일인데도 여전히 믿기가 힘들다. 지금의 일상이 마치 꿈인 것처럼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때가 많다. 거리의 사람들이 온통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있다는 것이, 그럼에도 시간은 여전히 흐르고 여느 때처럼 또 다른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이. 그러다 마스크가 떨어져 갈 무렵 덜컥, 하고 마음이 내려앉을 때 실감한다. 새롭게 도착한 마스크를 꺼내 정리하고 몇 장이나 되나 세어 보며 언제까지 쓸 수 있을까 헤아려 볼 때 비로소, 실감한다. 하루에 한 장씩 쓴다고 할 때 올해 겨울까지는 넉넉히 쓸 수 있으려나. 매번 이번이 마지막 주문이기를 바라지만 쉽지 않을 것 같다.


마스크 주문 병은 내게 스며든 불안의 반영이다. 

불안한 현재이고, 불투명한 미래이다. 한 장 한 장 새로운 마스크를 쓸 때마다 불안도 따라와 얼굴을 덮는다. 새 마스크에는 하루치의 불안이 담기고, 마스크 안에서 나는 내내 불안하다. 다 쓴 마스크를 꽁꽁 싸매 버릴 때 불안도 함께 내다 버리면 좋으련만. 한쪽에 쌓인 새로운 마스크들을 볼 때 문득 깨닫는 것은 내일은 내일대로 또다시 새로운 불안과 마주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아직 쓰지 않은, 가득 쌓인 마스크들을 볼 때 안심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불안이 커지는 까닭으로- 나는 여러 날 여러 번 마스크를 사고 끝내 쟁여 놓게 되었나 보다.


겹겹이 쌓인 마스크를 볼 때, 그 하나하나가 아직 채 건너지 못한 코로나 시대의 날들 같아서, 혹은 미세먼지 가득한 미래 같아서 답답하다. 눈만으로 보는 사람들의 얼굴은 웃는지 우는지 기묘하기만 하고, 옆 사람의 작은 기척에도 마음이 울퉁불퉁 일어나는 것을 보면- 코로나 시대를 지나며 얻게 된 가장 큰 병(病)은 '곁'을 잃은 것이리라. 서로의 '곁'들을 잃어버리고, 다른 방도가 없어 어쩔 수 없이 곁에 자리하게 될 때 마스크를 여미는 '신종 비극' 속 주인공들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극 속에서 오늘도 '극적으로' 버티고 있다.


버티다가, 집 근처 스터디 카페로 피신했다. 아랫집에 새로 이사 오는 분들이, 들어오기 전에 대대적으로 인테리어 공사를 한다고 했다. 어제부터 시작해 9월 중순까지 한다고. 와, 길다. 공사 기간 같은 건 그냥 잊어버리고 있어야겠다. 뭐, 많이 시끄러우려나 하고 버텨 보려고 했는데 실패. 귀청을 때리는 소음에 도망치듯 나왔다. 문제는 나와도 딱히 갈 곳이 없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이런 시절에 공공도서관에서 가서 책도 보고 사람 구경도 하고 공부도 하고 그랬는데 이제는 머물 곳도, 머물 시간도 극히 제한되어 많이 아쉽다.


스터디 카페에도 사람이 거의 없다. 한참을 조용한 가운데 책을 보고 이런저런 글도 끼적여 본다. 그러다 누군가가 사례라도 들렸는지 기침을 한다. 괜히 마음이 움찔한다. 몰래, 가려운 곳을 긁는 척 마스크 콧대를 눌러 여민다. 못 보았겠지. 당신을 의심해서 그런 건 아니에요. 우리 서로 상처 같은 건 받지 않기로 해요. 이런 시대잖아요. 그런데 이번에는 내가 재채기를 해 버렸다. 최대한 참아 보려고 했는데, 최대한 작게 안 들리게 하려고 했는데 재채기를 참을 수 있을 리가! 재채기가 안 들릴 리가! 대실패. 어깨를 움츠리고 괜히 눈치를 살핀다. 고개를 숙인 사람들은 말도, 표정도 없다. 눈에도 표정이 없다.


오후가 되니 괜히 미열이 오르는 것 같다. 설마 37.5도는 아니겠지. 스터디 카페에 비치된 온도계를 대 본다. 36.3도. 고장 났나. 미열은 기분 탓인가. 나는 정상인가. 비정상인가. 상상인가. 망상인가. 마스크를 여미고 손등을 이마에 재차 대어 보며 다음번 마스크는 무슨 색으로 살까, 어디에서 살까, 몇 장에 얼마나 하나 궁금한 마음을 애써 눌러본다. 집에 쌓인 저 놈의 마스크가 다 떨어져야 이 괴로운 시대가 끝나기라도 하는 듯이.

매거진의 이전글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헝가리 갔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