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태주 Aug 31. 2021

우당탕탕 화이자 백신 1차 접종기

화이자 1차 접종에 관한 짧은 기록


8월 30일, 어제 '드디어' 코로나19 백신 1차 접종을 마쳤다. 화이자 백신이었고, 8월 중순에 10부제를 통해 예약한 날이었다. 한때 잔여백신을 예약하려고 이틀을 꼬박 매달리다 실패한 끝이라 그런지 차례가 다가왔을 때 걱정보다는 기쁨이 앞섰다. 오, 내게도 드디어 차례가!!


사실 백신 접종 당일보다도 오히려 10부제 예약 당일이 열 배는 더 떨렸다. 뭐 그런 것 가지고 떠느냐, 누구나 다 하는 거 아니냐 할 수도 있지만 워낙 'Ddong-hands’로 수십 년을 살다 보니 이런 것도 다 떨렸다. 그것이 무엇이든 티켓팅만 하면 자리를 놓치기는 당연지사요, 어쩌다 잡은 자리도 허접하기가 이를 데 없는 사람으로서 정부에서 아무리 '천천히 예약하셔도 다 하실 수 있다'라 전해 와도 믿을 수가 없는 것이다. 무엇을? 정부를?? 아니, 아닙니다. 저요. 저를요. 정확히는 제 손을요. 네.


그래서 10부제 당일에 외출을 했다가 급히 귀가해 저녁도 굳이 6시에 부지런히 다 먹어치우고 저녁 7시 무렵부터는 또 굳이 정자세를 하고 기다렸다. 시작은 8시부터인데도 굳이. 어디선가 모바일로 하면 더 빠르다고 해서 30분 전부터는 모바일로 예약 사이트를 들락거렸다. 아, 솔직히 이건 너무 오버인데?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라는 내면의 소리를 애써 못 들은 척하며 기다린 끝에 7시 58분이 되었다. 쿵쾅쿵쾅. 정말 근래에 이렇게 심장이 요동친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난리가 났다. 손도 좀 떨렸다(아니, 이래 가지고 남은 생을 어떻게 살겠...). 그때를 생각하니 지금도 또 좀 두근거린다.


어찌나 떨렸는지 미리 입력해 둔 URL을 실수로 59분에 터치해 버렸다. 앗...!! 망했...!! 으응...?? 그런데 어떻게 사이트가 열렸다. 운이 좋았다. 어라, 어라, 어라라 하면서 슉슉 진행이 되어서 인증도 바로 마쳤다. 앞에 250명이 대기하고 있다고 떴다. 어머, 그럼 나 지금 전국의 6일 생일자들 가운데 무려 251등이란 말인가? 내 생애 최고의 등수로군! 촤라락 진행이 되어 얼결에 병원 지정 순서까지 왔다. 집 근처에서는 두 군데만 갈 수 있었는데 모두 예방접종 센터였다. 조금이라도 더 가까운 곳에 가려고 날짜를 고르는 사이 슉슉 예약이 찼다. 이러다가는 8월을 넘기겠다 싶어서 그냥 조금 더 먼 센터로 30일 오전 9시로 완료했다. 그리고 보름을 기다려 1차 접종 날이 다가왔다.


바로 어제였다.


백신 맞기 사흘 전인 금요일 즈음 내가 맞게 될 백신 종류와 함께 접종일 안내 문자가 먼저 도착했다. 어차피 화이자와 모더나 둘 중에 하나였지만 그래도 궁금했었다. 화이자로군. 평소에도 격렬한 운동은 전혀 하지 않지만 주말은 괜히 더욱 몸을 사렸다. 그런데 하지 말라면 더욱 하고 싶은 법이라 일요일 저녁에는 갑자기 또 맥주를 한 잔 하고 싶은 것이다. 음, 전날은 괜찮지 않나? 아 근데 접종이 너무 첫 타임이야... 아, 금요일에 마실 걸... 아니야, 백신 맞을 때의 컨디션이 중요하다고 했어. 하여, 마음을 누르고 목욕재계까지 한 후 전날 일부러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 그날따라 창문을 열고 잔 게 화근이었는지 아침에 일어났는데 두통도 좀 있고 목까지 칼칼한 게 컨디션이 썩 좋지 않았다. 아, 망했네 망했어. 게다가 꿈까지 뒤숭숭해서 더 피곤했다. 꿈에서는 또 눈을 떴는데 접종 당일 아침 9시 30분인 것이다. 누가 보면 접종 못해서 환장한 사람처럼 나 접종해야 한다고 센터까지 울면서 뛰어갔는데(대체 왜 이러는 거임) 정장을 입은 분들이(벌써 꿈인 걸 알 수 있다) 문간에서부터 너무도 냉정하게 안 된다고 했다. 놓쳤으면 끝입니다. 원래는 '끝'까지는 아닐 테지만 꿈은 원래 좀 그렇게 극단적인 편이니까.


으어어 하면서 눈을 뜨니 아침 7시 30분이었다. 정말로 늦어 버릴까 봐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후다닥 달려 나갔다. 백수가 과로사한다더니 접종 한번 가는데 왜 이렇게 피곤한 건가. 나만 이런가. 다들 이런가. 왠지 나만 이런 듯. 울적한 마음으로 버스에 올랐다. 컨디션이 저조하니 뭔가 그때부터 각종 백신 후유증과 부작용들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돌이키기에는 너무 늦은 것 같았다. 적어도 접종 3시간 전에는 연락을 하라고 했는데, 너무 일찍 예약을 하는 바람에 그마저도 틀렸어. 접종 3시간 전이면 새벽 6시인데 누가 나와 있겠어. 아, 오후 1시쯤으로 하는 건데! 괜히 쓸데없는 오기를 부려서! 아침 9시 첫 접종에 1등으로 가겠다며! 자책하며 버스에서 내려 터덜터덜 걸었다. 그래도 너무 딱 맞춰 가면 좀 그런 것 같아서 나름 넉넉히 잡고 출발한 시간이 오전 8시 15분. 센터 부근에 이르니 8시 35분 즈음되었다. 그런데 멀리서 보니 왠지 좀 한산해 보였다. 음? 설마 문 안 연 건가? 코로나 검사 때처럼 길-게 줄 서서 기다리다가 9시 땡! 하면 들어가는 건가? 걱정 아닌 걱정을 하며 입구인 뒤쪽으로 향하니... 내 생각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그렇다. 나는 잠시 잊고 있었던 것이다. 대한민국이 어떤 나라다?

빠름의 나라, 빠름빠름의 민족, 뭐든지 빠르게 빠르게 해 버리는 사회...!


8:40 am 센터 도착: 걱정이 무색하게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었음.

8:42 am 손 소독, 열 체크, 2층 입장: 곳곳마다 안내 요원이 있어 두어 걸음만 떼면 저절로 순서가 진행됨.  

8:45 am 신분증 체크, 번호표 받음, 문진표 작성: 12번 받음(1등은 무슨), 큰 홀에서 문진표 작성 후 확인.

8:47 am 번호 호명에 따라 자리 이동, 예진 시작: 의사 선생님이 문진표를 보며 간단히 문진, 주의사항 설명.

8:49 am 주사실 입장: 주사 놓아주시는 선생님께서 다시 한번 주의사항 확인 후 접종(주사 정말 1초).

8:50 am 접종 완료 후 15분 대기: 주사실을 나오니 바로 대기실로 안내, 15분이 세팅된 스톱워치 받음.

9:05 am 15분 관찰: 15분 알람이 울리고 이상 없어서 나옴.


나가려고 일어서는데 정확히 39번 번호표를 목에 건 한 분이 대기실로 들어오셨다. 9시 05분에! 39번!


다시 집으로 오려고 버스를 기다리는데 그때  9 10분이  되었다. 25 만에 모든 것이 끝났다. 백신을 맞기 위해 오래 기다린  치고는 너무 순식간에 휘리릭하고 끝나 버린 느낌. 맞고 나니 속이 시원했다. 맞고 나서 아프지 않을까, 증상은 어떨까 조금 걱정이 되기는 했지만 그보다는, 오늘의  예방 접종 센터를 운영하기 위해 애쓴 사람들의 노력이  크게 마음에 들어왔다.  동선을 연구해 짜고, 자리를 마련하고 안내 요원을 배치하고 안내 사항을 연습하고, 수정하고 재배치하며 모든 것이 겹치지 않는 동시에, 최대한 효율적으로 ‘무사히진행되도록 얼마나 애를 썼을까. 대학에 있으면서 다른 업무들보다도 면접이나 고사가  진행되도록 운영하는 일이  힘들고 제일 신경 쓰였는데 그래서 그런가. 어제도 그런 것들이  기억에 남았다.


아무튼 이렇게 1차 접종이 끝났다. 화이자 백신의 경우, 1차보다는 2차 후유증이 크다는 후기가 많았다. 친구들도 1차는 오히려 괜찮고 2차 때가 더 아팠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가. 접종 후 하루하고도 약 10시간 그러니까 총 34시간이 지난 지금 나는 딱히 이렇다 할 증상은 없다. 주사를 맞을 때도 특별히 아프게 느껴지지는 않았고(아픔은 가다실 9 2차 주사가 좀 더 강하게 느껴졌다), 맞고 나서 팔이 좀 우릿하고 묵직한 느낌은 들지만 그 외에 별다른 증상은 없다. 미열이 있거나 두통, 오한, 몸살기가 있는 사람도 있다고 하는데 아직까지는 괜찮다. 두통도 오히려 어제 주사를 맞고 나니 괜찮아졌다. 하루를 자고 나니 여전히 주사 맞은 곳에 뻐근한 기운은 남아 있다. 가끔 팔을 못 드는 사람도 있다고 하는데 움직임도 자유로운 편이다. 다만, 만세를 하듯 팔을 높이 들면 쑤욱- 하고 깊숙한 통증은 조금 있다. 그래도 아 여기 주사를 놨지 하는 느낌 정도.


2차는 백신 수급 문제 때문인지 원래의 3주를 쭈욱 넘어 6주 후인 10월 중순에 맞는다. 그 전후로 별다른 일 없이 잘 지나가기를. 모두가, 이 시절이, 더 이상의 피해와 문제없이 흘러가기를.




  



 


매거진의 이전글 마스크 주문 병(病)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