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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주 Sep 10. 2021

나는 문득 편지를 썼었다

차마 부치지 못한 편지에 관한 짧은 기록



기어코, 가을이 되어 버렸다.

나는 가을을 좋아하지 않는다. 좋아했다가 싫어진 것이 아니라 그냥 오래전부터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워낙 여름을 좋아하고 사랑해서 그랬을까. 그 여름의 끝에 가을이 온다는 것이 크게 달갑지 않았다. 선선해지는 만큼 쓸쓸했고, 아름다운 만큼 슬펐다. 그래서 가을을 좋아하지 않았다. 너무 아름다워서, 가끔은 무척 슬펐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아끼고 좋아하던 사람들이 모두 가을에 떠났기 때문이다.




내가 아끼고 좋아하던 사람들은 모두 가을에 떠났다.


왜 가을이었을까. 왜 이토록 아름다운 계절이었을까. 물어보고 싶었다. 답을 듣고 싶었다. 아니, 아무 말을 안 해도 좋으니 그저 마주 앉아 나란히 음악이라도 들으며 우리들에게 주어진 순간들을 걷고 싶었다. 마냥 계속해서, 계속해서. 해가 떠올라 질 때까지. 다음 날의 해가 다시 떠올라 다시 질 때까지.


누구에게나 이별은 있다. 예기했던 이별이든, 예기치 못했던 이별이든 우리들은 모두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빈자리를 남기고 떠날 것이다. 내 자리도 언젠가는 기어코 비어 버릴 것이다. 언제 자리가 따뜻했었냐는 듯 순식간에 삶의 온기는 사라지고, 내 빈자리를 맴돌던 사람들도 하나 둘 저마다의 시간을 머물다가 기어코 떠나 버릴 것이다. 순서는 아무도 모른다. 조금 빠르고 조금 늦게, 다소 이르고 다소 느지막하게. 지금은 그 차이가 너무나 크게 느껴져도, 먼 우주의 눈으로 보면 찰나일 것이다. 한 걸음, 두 걸음의 차이일 것이다. 50미터, 100미터의 차이일 것이다. 어제와 오늘, 오늘과 내일의 차이일 것이다.


그렇지만-

사는 동안이 너무 길어서, 길게만 느껴져서 어쩔  없이 오랫동안 아플 수밖에는 없는 것이다. 빈자리에 남은 자들의 슬픔과 아픔은 오래도록 그곳에 머물러 있다. 나는 삼십 대를 지나는 동안  곁을 떠난 사람들이 못내 그립고 아쉬워, 오래도록 빈자리 주변을 맴돌고 있다. 이제  떠나와도 좋으련만. 올해는 멀리 떠나야지 선선히 멀어져야지 하면서도 끝내 다시 붙들고 만다. 기억하고 싶어서다. 어떻게 잊을 수가 있겠는가. 그냥  안에  자리들을 마련해 두고 이따금씩 불러 보며 사는 것이다. 오래도록 같이.

  



여름이 되고 하늘의 눈이 제법 푸르게 물들어가던 7월의 어느 새벽에 나는 문득 B에게 보내는 편지를 썼었다. B와는 곧잘 편지 같은 걸 주고받았었다. 책 귀퉁이에도 쓰고, 카드에도 쓰고, 메모지에도 쓰고, 편지지에도 쓰고. 그림 같은 것도 그리고, ㅋㅋㅋ 같은 초성도 썼다. 읽으면 그냥 웃음이 났다. 그러다 어느 때는 코끝이 다 맵도록 찡해서 오래 두고 보다가 깊숙이 넣어두곤 했다. 그는 오래 아팠지만 늘 씩씩했다. 그의 친구라는 것이 내게는 큰 자랑이었다. 그는 정말, 정말로 멋진 사람이었다.


B도, 가을에 떠났다.


가을의 하늘이 자꾸만 깊어지는  그래서인가 보다. 아름다운 사람들이, 아름다운 시절에 떠나서 그런가 보다.  아름다운 사람들은 이렇게 일찍들 떠나는 것일까.  그런지는 아무도 모르겠지. 떠난 이들조차 모를 것이다. 누구에게도 물을  없고, 묻는다 해도 답을 들을  없는 질문 같은  어떻게 해야 할까. 그걸 모르겠어서 나는 글을 쓰고 편지를 썼었다. 그날 새벽 여기에 올리고 누웠는데 마음이 너무 아팠다. 물리적인 아픔이었다. 계절이 여러  바뀌었으니 괜찮을  알았는데 아니었다. 그래서 황급히 다시 이곳으로  글을 내렸다. 흔적을 지우고 나니 아픔은 가셨지만 슬픔은 오래도록 남았다.


나는 아직 나의 애도를 다하지 못했다. 애도를 다하고 이 모든 시간들의 의미를 깨닫기 위해서는 내 전 생애가 필요할 것 같다. 이렇게 남은 자로서의 몫은 계속해서 커져만 가고, 내 남은 생애를 다해도 부족한 것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모두들 이해해 주겠지. 내가 힘껏 살았다는 것을 말 안 해도 알겠지. 나는 그래서 정말로, 최선을 다해 살고 싶다. 말로는 허랑방탕하다고 스스로를 평하지만, 사실은 최선을 다하고 싶어서 내가 할 수 있는 한 열심히 살고 있다. 지금 당장 눈에 보이는 결과는 없어도 내게 주어진 매일을 최선을 다해 살고 있다.


그렇게 살아도 부족한 건 어쩔 수 없다. 사람이니까.

나는 그저 이번 생에서 내게 주어진 것들을 기억하며 매일을 살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또 그렇다고 해서 너무 비장하게 살지는 않을 것이다. 천성부터가 비장과는 거리가 멀다. 상황이 어쩔 수 없이 나를 비장하게 만들 때가 있지만, 워낙 장난기 있고 웃긴 걸 좋아하고 마침(?) 그에 맞게 허술한 면도 꽤 되기 때문에 비장보다는 '환장'에 가깝고, 웅장보다는 '굉장'에 가깝다고 할까. 뭐, 이렇게 사는 나를, 내 나름대로 좋게(?) 보고 있기 때문에 이만하면 괜찮은 것으로 하자(...?!). 내가 타고난 대로, 순리를 거스르지 않고 살면 그게 나의 최선이겠지. B도 나의 이런 면을 제일 좋아했으니까, 이해해 줄 거다. 그렇지? 맞지? (이거 보고 있는 거 다 알아. 빨리 대답해 줘.)



뭐 이렇게 정리되지 않는 글이 다 있나 싶다.

어느 날에는 이 글조차 왜 썼지 하며 후회할까. 이런 글 위의 방황조차 내가 이 시간들을 견디고 지나는 방법이겠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견딜 수 없는 순간들이 찾아오고, 그럴 때마다 각자의 방식으로 그 순간을 지나는 것일 테니. 누구에게든, 내 작은 이 방황들이 아주 사소한 위로라도 되었으면 좋겠다.


혹시 가까운 누군가를 떠나보내셨나요.

저도 그래요. 그래도 우리,

가끔씩 말할 수 없이 슬퍼지더라도

우리, 같이 살아요.




B에게 썼던 편지를 언젠가는 그에게 보낼 수 있기를 희망한다.

편지의 맨 끝에 내가 정말로 건네고 싶었던 말이 있다.


그곳은 어때.

이제는 아프지 않고 내내 평안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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