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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주 Feb 22. 2022

코로나 시대, 힐링의 시공간 찾기

간이 욕조 사려다 호텔 다녀온 일화에 관한 짧은 기록


나는 대중목욕탕을 좋아한다.


매주 일요일 오후면  가족이 손에 손을 잡고  같이 향하던 그곳. 뭔가 목욕탕에 가서 때를 박박 밀고 탕에 들어가 물장난도 하고,  당시의 애착 인형 하나쯤 들고  머리도  감겨 주고 해야 비로소 일주일이 마무리되는 느낌이었달까. 아직 어렸던 오빠와 나는 가끔 때를 밀기 싫어 미적미적 꾀를 부렸지만 엄마의 등짝 스매싱  방에 자못 비장한 표정으로 각자의 최애템을 챙겨 문을 나서곤 했다. 이따 집에서 보자며 각자 아빠와 엄마를 따라 갈라지던  . 부지런히 탈의를 하고  안으로 들어서면 - 하고 밀려오던 뜨거운 공기. 어쩌다 안면 있는 동네 친구라도 만나면 반가운데 수줍고, 기쁜데 민망해서 쭈뼛거리며 인사를 하는  마는  하다가 슬그머니 서로의 애착 인형을 소개하며 신나게 놀았었지.  밀다가 아프다며 징징대고, 엄마가 잠시 한눈  사이에 도망가 얼른 이리 오라며 볼기짝을  번은 맞아야 끝나던 목욕.


끝나고 마시는 시원한 음료수가 아니었다면 그 시간을 지나기가 배는 힘들었을 것이다. 바나나 우유가 제일 맛있었지만 비싸서 자주는 못 먹고 주로 사이다 하나를 사서 엄마와 나누어 마셨던 기억이 난다. 어쩌다 바나나 우유를 먹는 날에는 어찌나 신이 나던지. 집까지 가는 길이 흡사 구름 위를 밟는 듯했다. 나는 오늘 바나나 우유를 먹었는데 오빠도 먹었을까. 얼른 가서 자랑해야지. 근데 혹시 나보다 비싼 거 먹은 건 아니겠지. 이런 혼자만의 대결을 펼치면서 집에 도착하면 아빠와 오빠는 버어어얼써 도착해 TV를 보고 있거나, 단잠에 빠져 있었다.


그런 기억이 아니라도, 목욕탕은 내게 복잡한 마음을 풀어내고 생각을 정리해 보는 힐링의 공간이어서 언제고 훅- 하고 들러 편안히 머물다 올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런데 이놈의 망할 코로나 때문에 지금 3년째 전혀 못 가고 있다. 특히 이렇게 건조하고 추운 겨울이면 아무리 매일 샤워를 해도 뭔가 찜찜하고 부족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는데, 그럴 때마다 목욕탕 생각이 간절한 것이다. 독립한 이후로 화장실에는 늘 욕조가 없었는데, 코로나가 이렇게 장기화될 줄 알았으면 어떻게든 좀 욕조가 있는 곳을 찾아볼 걸 그랬나 싶기도 하다.


그러다가 결국 찌뿌둥함을 못 참고 간이 욕조를 검색하기에 이르렀다. 아이들이 물놀이하는 커다란 튜브처럼 생긴 것도 있고, 좁고 깊은 우물 같은 것도 있다. 핀란드에서 씀직한 커다란 나무로 된 욕조도 있고, 아무튼 종류가 상당히 다양하다. 가격대도 천차만별이다. 하지만 막상 사려니 왠지 망설여졌다. 지금 있는 집의 화장실에 과연 들어갈까? 가장 작은 것으로 어찌어찌 구겨 넣는다 해도 변기와 마주 보고 있게 생겼는데. 아니면 완벽한 초근접 면벽 수행인데 이거 뭔가 심란해서 반신욕이 되겠나. 딱 한 번하고 어디 그늘에 처박아 두거나 물때가 껴 처치곤란이 되는 장면이 안 보고도 그려졌다. 간이 욕조 구매는 깨끗하게 포기.


그래도 목욕탕에 대한 욕구는 쉽사리 사그라들지 않아 틈나는 대로 이런저런 키워드를 넣어 검색에 열을 올렸다. 어디 하루만 딱, 1시간만 딱 다녀올 수 있는 곳 없나? 뭐라고 찾아야 하지? 개인 욕탕, 프라이빗 목욕탕, 개인 욕장...? 그러다가 어느 순간 눈에 들어온 정보들이 있었다. 근교의 어느 한 호텔에 대욕장이 있고, 혹시 꺼림칙하다면 욕조가 딸린 방을 예약하는 방법이 있다는 첩보(가 맞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순간 외마디 비명처럼 감탄사를 내뱉었다. 오오! 욕조! 오오! 욕장! 오오! 목욕! 누가 보면 한 3년은 목욕의 ㅁ 근처에도 못 간 사람처럼 감탄을 거듭하며 결국 몇 개의 탐방기를 정독하다가! 갑자기 삘이 꽂혀 예약을... 예약을 해 버렸다... 간이 욕조 3만 원을 아끼고, 대신 트윈룸 1박을 9만 원에 결제하는 용감무쌍... 아니, 용감무식한 선택! 그것도 바로 며칠 후 월요일에 묵는 뭐 그런... 아무튼 그런 선택.


투숙 당일. 싱글룸에는 욕조가 없다고 해서 혼자인데 굳이 또 트윈룸을 예약한 나는, 혼자 쓰려니 아무래도 돈이 아까워서 절친 Ra에게 연락을 했다. 그것도 체크인 3시간 전에, 빨래를 돌리며 점심으로 뭘 먹을까 고민하고 있던 친구에게, 혹시 오늘 바쁘지 않으면 호캉스 비슷한 거 하지 않으련? 하고. Ra는 전화 직후로부터 정확히 4시간 만에 짐을 싸 들고 호텔방에 나타났다.  


아니, 대체 여긴 왜 갑자기 예약한 거야?

아... 그게... 목욕탕... 욕조 검색하다가...


Ra는 뭔가를 잘못 들었나 하는 얼굴을 나를 보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근데... 다음부터는 적어도 24시간 전에는 얘길 해 주겠니? 나도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니까. 뒷머리를 북북 긁으며 그러마 다짐을 했다. 근데 나도 내가 이럴 줄 몰랐지. 욕조 검색하다가 호텔에 와 있을 줄은. 내가 목욕탕 가는 일에 이토록 진심일 줄은. 그렇다면, 그놈의 목욕탕은 그래서 어떻게 되었나 하면... 체크인 후 곧바로 대욕장에 가면 아무도 없을 것이라는 예측과는 달리 몇 분이 계셔서 서로 놀랐다(모두 같은 생각이었군). 최근 확진자의 급증으로 대욕장 내에서도 마스크를 상시 착용해야 했다. 그토록 기다렸으나 막상 들어가니 아무래도 불안해서 잠깐만 있다가 얼른 나왔다. 결국 저녁에 방에 딸린 욕조에서 반신욕을 하며 아쉬움을 달랬다. 코로나 시대에 위안이 되어주는 시공간을 찾기란 쉽지 않구나.


그런데... 생각해 보니 목욕탕(혹은 찜질방)이 좋은 건, 목욕 용품을 챙겨 가서 씻고- 같이 간 사람들과 괜히 이런저런 쓸데없는 수다도 떨고, 그러다 평소에는 잘 못하던 속 얘기도 좀 하고- 나와서는 구운 계란과 시원한 음료도 한 잔 마셔 주고- 그렇게 반짝반짝 빨간 볼을 하고 젖은 머리칼을 휘휘 날리며 개운하게 걸어오는 그 모든 시간이 좋아서인 것 같다. 그냥 탕에 몸을 담근다고 그때의 기분 좋음이 살아오는 것이 아니라. 아니, 그냥 코로나 이전의 그 모든 일상들이 그리운 것 같다. 보고 싶고, 그립고, 다시 만나고 싶고.


언제나 다시 오려나. 그 상쾌하고 개운한 순간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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