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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주 Feb 13. 2022

내가 참 별로인 날의 행동 패턴

우울함을 날릴 수 있는 몇 가지 방법에 관한 짧은 기록


살다 보면 그런 날이 있다. 내가 나인 것이 참 별로이고 싫은 날.


그런 적이 한두 번도 아닌데, 이런 감정은 별로 학습이 되지 않는지 그때마다 처음인 것처럼 마음이 아프고 상처를 받는다. 재미있다. 내가 나한테 상처를 받다니! 나이가 어리다면 왜 그런지 몇 가지 또렷한 이유를 좀 찾아볼 수 있을 텐데. 예를 들면, 사춘기인가(정작 사춘기는 지나고 나서야 그때가 사춘기였음을 알게 되는 것 같지만), 청춘이라 그런가, 20대는 위태하다더니 역시...! 와 같은 생각들. 혹은 나이가 좀 더 들어 7080을 바라보는 문턱에 서 있다면 조금 나을까. 뭐, 이런 날도 있는 거지 하거나 어쩌겠나! 이게 나인 것을... 하면서 혀라도 몇 번 차고 돌아서면 잊을까(엄니께 여쭈어 보니 전혀 그렇지 않다고 단호히 말씀하심...).   


하지만 인생에 그런 게 어디 있는가. 누군가의 말처럼, 오늘 하루는 모두가 처음 살아보는 새날이고, 그러니까 '오늘의 나'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른다. 매일같이 마주해도 처음 만나는 새로운 하루의 나이기에 문득문득 낯설고 어색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잘 살다가도 문득 말이다. 미치도록 바쁘게 지나간 어느 날 하루 그 밤에 문득 말이다.


그런 요즘이었다. 열심히 뭔가를 하고는 있는데, 대체  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고 그렇다고 아무것도  한다고 하기에는 조금 억울한 상태. 눈에 보이는 것도, 보이지 않는 것도 아닌 애매하고 모호한 상태. 누군가에게 내어 보일 것도 없이, 먼저  스스로 충족감을 느낄 만큼의 뭔가가 있었으면 좋겠는데 당장은 보이질 않으니 조금 답답하다. 답보 상태인  같다.

예전 같으면, 뭐 이런 시기도 있는 거지 하며 어떻게든 잘 지나갔을 텐데 이제 곧 불혹을 앞두고 있어서인가. 가끔 조급해질 때가 있다. 다들 이 나이 즈음되면 어쨌든 뭔가를 이루고 살아가는 것 같은데, 나는 그동안 무엇을 한 걸까 자책하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내가 하는 일이, 교육도 그렇고 글도 그렇고 한눈에 성과가 드러나기 어려운 분야이기는 하지만 가끔 이런 마음이 찾아올 때면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무겁게 가라앉는다.


그렇지만 어쩌겠는가.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닳고 닳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유효한 그 말을 믿어야지. 이미 여러 번 그런 시기를 겪었고, 그때마다 무사히 잘 떠올랐으니 이번의 나도 그러하리라는 믿음을 가져야지. 그러니까, 내가 나를 믿어야지. 물속에 빠졌을 때는, 오히려 온몸에 힘을 빼고 다시 떠오를 때까지 가만히 물에 몸을 맡기는 것이 낫다고 들었다. 깊은 호수에 빠진 것처럼 먹먹하고 어둑한 마음이 들 때도 마찬가지겠다. 살겠다고 온몸에 힘을 주고 있으면 힘만 들고 빠져나오는 것은 외려 더딜 것. 어떻게든 가만히 내가 있는 곳의 물살을 느끼며 떠오를 때까지 기다려 보자.


그래서! 내가 나인 것이 별로이고 싫은 날의 행동 패턴을 만들었다. 


먼저 뜨거운 물로 말끔하게 샤워를 한다.

누구 결혼식에라도 가는 듯이 정성을 들여 꾸민다.

아끼는 예쁜 귀걸이도 단다.

좋아하는 향수를 뿌린다.

약속에 늦기라도 한 것처럼 총총히 집을 나선다.

가장 먼저 오는 버스를 탄다.

적당히 거리 구경을 하며 얼마간 달린다.

눈짐작으로 대충 여기다 싶은 번화가에 내린다.

난생처음 보는, 볕이 잘 드는 카페를 찾아 들어간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아인슈패너 한 잔을 시킨다.

홀짝홀짝 느릿느릿 마신다.

창밖을 구경한다.

날이 알맞게 어두워지면 조금 걷는다.

약간 피곤하다 싶을 때 다시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온다.

그날 하루에 대한 글을 쓴다.

일찍 잔다.


예전에도 가끔 이런 하루를 보낸 적이 있다. 바람도 쐴 겸 사람 구경이나 하고 오자 하는 가벼운 외출인 줄 알았는데, 이제야 어렴풋이 깨닫는다. 내 마음이 힘들어 무겁게 가라앉은 날이었구나. 얼마 전 이런 패턴으로 하루를 보냈다. 마음이 천천히 떠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밤이 되어 따뜻한 이불 속에 들어갔을 때 그날 하루의 모든 것이 감사했다.


가끔 불안하고 조급해도, 당분간은 물살에 몸과 마음을 맡기고 흘러가 보기로 한다. 떠오르고 나면, 이 한적하고 고요한 하루들이 그리워 저 깊은 호수의 어두운 평안을 그리는 날도 있을 테니. 문득, 그래도 내가 한없이 좋고 멋진 날보다 내가 참 별로이고 싫은 날이 더 많은 게 아직은 다행스럽게 여겨진다. 어떻게든 이 하루를 다시 제대로 살아 보려고 발버둥 치는 움직임이 차라리 다행스럽다. 이 같은 움직임도, 스스로에게 무한반복으로 던지는 위안도 어쨌든 나에 대한 믿음의 한 종류일 것이다. 그렇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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