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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주 Feb 07. 2022

온 가족이 MBTI를 해 보았다

가족들의 MBTI 결과에 관한 짧은 기록




온 가족이 MBTI를 해 보았다. 아부지 빼고. 


아부지는 아마 첫 질문에서 어엉??? 아, 그게 뭐여?? 그걸 해서 뭐 해??? 하며 끄응 돌아누워 주무실 것이다. 참고로 우리 아부지의 생활 패턴은 약간 '스님'과 같아서, 저녁 8시면 주무시고 새벽 2시면 일어나신다. 스님도 이보다는 늦게 주무시고, 늦게 일어나실 듯... 


아부지 MBTI는 수줍음과 내향성 및 계획성의 정도로 추정해 보건대, IIII 즉, I만 4개거나 JJJJ 즉, J만 4개가 아닐까 싶다. 


농담이고, ISTJ로 추정된다. 극 이과 성향(보물 1호: 공구함과 못 세트)에 엄청난 계획맨이시기 때문이다. 이것이 맞는 해석일까? 사실 MBTI를 잘 모른다. 오래전 오빠네 부부가 결혼을 한 그해 여름에 제주도로 부모님을 모시고 넷이 여행을 떠난 적이 있다. 그때 아부지께서는 꼭 가 보고 싶은 곳을 인터넷으로 찾아 10곳 넘게 우선순위대로 정리해 오셨다고(으악! 난 못해). 그러던 중 여행 이틀째인가에 갑자기 배탈이 나셔서 그날 일정을 그럼 취소할까요 하니 오늘이 바로 8번에 있는 주상절리라 꼭 가야 한다고 기어코 다녀오셨다고 한다. 윽. 나 같으면 오오 이런 날도 있는 거지 하며 누워 있거나, 아아 이것도 다 뭔 의미가 있겠지 주변이나 돌자! 하며 당장 합리화에 들어갈 텐데 말이다. 두고두고 회자 중인 에피소드이다.    


아무튼 MBTI를 해 본 결과, 엄니랑 새언니가 같은 ISFJ로 나왔다. 오!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16가지 유형 중 같은 유형이 나오다니! 예전부터 정말 찰떡궁합인 고부지간(이 두 단어가 붙은 게 왜 이리 생경하지...?)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이유가 있었군!(처음에는 그냥 재미로 했는데 어느새 맹신 중) 실제로 엄니는 취향에서부터 가치관,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와 생각까지 모녀지간인 나보다 며느리인 언니와 더 잘 맞는다. 그래서 나는 가끔 농담으로, 아 엄니는 언니 같은 딸을 바라셨을 텐데 정말 죄송합니당! 사과를 하고, 엄니도 말씀으로는 하하하 웃으시며 에잉 무슨 소리야 하시지만 그렇다고 또 딱히 부정하시지는 않는다. 그리고 결론은 늘 '그래도 너를 키우면서 재미있었다'라고. 음...? 재미를 드리는 딸이라. 그래, 뭐 하나라도 드릴 수 있어 다행이다. 


오빠는 TTTT로 예상되었으나(오직 논리와 이성으로 쌓아 올린 40년 인생...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ISTP로 나왔다. P가 나온 것이 신기해 J 쪽 아니었냐고 하니, 언니가 오빠는 완전 P예요 했다. 오, 그렇구만. 그럼 예전 가족여행 때 엑셀 파일로 정리하여 들고 온 여행 일정표는 언니의 작품이었을까? 한 일정당 제3안까지(문 닫을 경우를 대비하여) 적혀 있던 표를 보고 정말 크게 놀랐었다. 단 한 번도 그렇게 여행을 다녀본 적 없던 나는, 틈만 나면 개인 시간을 위해 탈출을 시도했지만 결국 실패. 일정표에 순응하며 빈틈없이 알찬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다는 후문. 부모님은 매우 만족하셨고, 특히 아부지는 정확하고 체계적인 일정에 크게 기뻐하셨다. 그런 여행도 나름대로 의미 있고 좋았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못함... 그렇게 다닐 수 없음... 이번 생에는 불가능... 


나는 예나 지금이나 빼박 INFP로 나온다. 처음 MBTI를 했던 것이 고2 여름방학. 진로체험 차 간 복지관에서 처음으로 이 검사를 접했고, 그때 나왔던 결과가 INFP였다. 그때는 음, 이런 게 있군 하고 넘겼고, 그 후 NGO에서 일할 때 한 번 더 해 볼 기회가 있었는데, 이번에는 ENFP가 나왔다. 아마 I와 E가 직무환경에 따라 조금씩 왔다 갔다 했나 보다. 그리고 스타트업에 다닐 때, 동료들끼리 서로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한 번 더 실시했다. 그때 다시 INFP가 나왔다. 그래서 지금은 대충 INFP이겠거니 한다. 



요사이 특히 MBTI가 붐인 것을 보고, 왜일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자기 자신 혹은 타인이라는 존재를 이해하는 여러 가지 방법 중 그래도 좀 더 구체적이고 체계적으로 잘 설명되어 있어 그런 것일까. 혹자는 어떻게 이 다양한 사람들을 겨우 16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느냐고 반박하고, 또 다른 이는 그래도 4가지로 나뉘는 혈액형 구분보다는 낫지 않느냐고 한다. 둘 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복잡한 존재인 사람을 단순하게 이렇다 저렇다 단정 지어 말하기는 어렵겠다. 다만, 대체로 이런 편이더라 하는 경향성 정도로 생각하며 그 스타일을 한번 파악해 보는 것은 충분히 의미가 있지 않을까. 스타트업에서 MBTI 검사를 통해 서로의 업무 스타일과 표현 방식에 대해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나니 그 후로는 일하는 것도 그렇고 의사소통에서도 큰 도움을 받았던 기억에 비추어 보건대.


여담으로, 지난번에 쓴 한 이력서에서 MBTI를 물어 꽤나 놀랐던 기억이 있다. 풍문으로 그런 경우도 있다고는 들었는데 정말로 그것을 물어보니 조금은 고민이 되었다(왜 당당히 INFP라고 말을 못 해! 나는 INFP다! INFP가 나다! 왜 말을 못 하냐고!). 사실 일을 할 때는 저도 매우 계획적으로 하거든요. 특히 시간 약속은 강박적일 정도로 잘 지키는 편이고요. I형이기는 하지만 무대 공포증도 없고, 수줍음과 초조함을 숨기고자 모르는 사람 앞에서 막 1분에 59초씩 쉬지 않고 떠들 수도 있습니다... 물론, 집에 가서는 이 멍청아! 왜 TMI를 남발했어? 왜 그랬냐고! 라며 머리를 박고 괴로워하지만- 아무튼요. 


문득, 무엇 하나에 갇혀 다른 면을 놓치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마음을 크게 열고 시선을 제대로 두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어디선가 인간은, 자기 자신은 복잡하고 다양한 면을 가진 존재로 인식하면서 정작 타인에 대해서는 유독 쉽게 정의 내리고 간단히 파악할 수 있는 존재로 여긴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확실히 그런 것 같다. 그러나 사실로 말하자면, 타인이야말로 가장 알 수 없고 복잡한 존재가 아닌가. 자신이 누구인지 스스로를 아는 데만도 한평생이 걸리는데, 타인을 아는 일은 말할 것도 없겠다. MBTI를 비롯한 다양한 검사들과 각종 SNS 등 자신과 타인에 대한 정보가 넘쳐나는 이 시대야말로- 어쩌면 '서로에 대해 가장 모르는 시대'가 아닌가 싶다. 누구에게나 있는 달의 어두운 뒷면을 잊지 말고 내면을 잘 읽도록 좀 더 천천히 보고 듣고 읽는 것도 방법이겠다. 


반성과 다짐병이 새해에는 좀 사라지려나 했는데 영 글렀다. 아무튼, 온 가족 MBTI 알아보기는 의외로 재미있고 유쾌했다. 음... 아부지도 한번 해 보시라고 일단 권유라도 해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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