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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주 Feb 04. 2022

컬러에 대한 단상

패션 무식자의 퍼스널 컬러 진단에 관한 짧은 기록



얼마 전 난생처음으로 '퍼스널 컬러 진단'이라는 것을 받아 보았다. 


퍼스널 컬러? 그게 뭐지? 패션, 컬러, 옷, 화장... 하여튼 뭔가 '뷰티'와 관련된 분야에는 관심도, 흥미도, 지식도, 재능도 전-혀 없는 나에게는 역시나 금시초문의 영역이었다. 언젠가, 사람의 피부톤이나 느낌에 따라 장점을 살리고 단점은 보완하는 옷 코디가 중요하다!! ...정도의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있으나! 그것도 뭘 좀 알아야 살리든지 말든지 하는 법. 나 같은 문외한에게 옷이란, 그저 추울 때 따뜻하고 더울 때 시원하면 되는 그런 정도의 필수템이라고 할까. 의식주 중의 '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하고 있는 '일'. 나는 이십 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약 십여 년 동안 학생들의 진로진학과 학습에 대해 강의를 하고 상담하는 사람으로 살아왔다. 책을 쓰고 나서는 작가라는 이름으로 특강에 나서기도 했고, 가끔은 입시 설명회나 진로 콘서트의 사회를 보기도 했다. 음악하는 친구들과 공연 그룹 '디아츠'를 결성하고 나서는 연주회의 해설가로 꾸준히 무대에 서 왔다. 이처럼 뷰티 관련 이슈에 아주 무심한 방관자로 살기에는 여러 모로 어려움이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나름대로 잡지도 사 보고, 쇼핑몰 구경도 해 봤지만, 필요에 의한 어쩔 수 없는 관심이라 그런지 금세 시들해지곤 했다. 무엇보다 옷을 구경하고 입어 보는 일이 내게는 즐거움이 아니라 괴로움에 가까워 패션 감각을 키우는 일은 '아주매우무척' 요원한 상태. 


그래도 어쨌든 살면서 때와 장소에 맞게 잘 차려입어야 하는 날들은 있는 법이어서- 나는 그때마다 어찌어찌 주변의 도움(과 희생)으로 그에 맞는 옷들을 간신히 구비해 얼렁뚱땅 살아(남아)왔다. 그럼에도 옷에 여전히 무감하고, 특히 컬러 배치랄까, 조화랄까 이런 부분들에 대해서는 보는 눈이 아예 0이라 내적으로 적잖이 스트레스를 받는다(관심이 없다고 스트레스를 안 받는 것은 또 아님). 뭐만 입고 나가면, 다들 그 옷은 거기에 안 어울린다고 피드백을 하니! 이를 대체 어쩌면 좋은가! 나는 이것밖에는 없는데! 그나마 이게 제일 낫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이야기를 하면 다들 어안이 벙벙해서 '설마, 농담이지?' 한다. 그럴 리가요. 나는 진심입니다. 진심이라구요, 이 사람들아. 흑흑.  



그러던 어느 날, 평소 이 같은 나의 행색(?)과 행태(!)를 몹시 안타까워하는 일만 이천 친구들 중 하나인 보희가 넌지시 '퍼스널 컬러 진단'이라는 것을 받아 보라고 추천했다. 예전에 받아 본 적이 있는데, 자신에게 무엇이 어울리고 어울리지 않는지 색감부터, 화장, 옷 코디까지 추천받을 수 있다고 했다. 오! 그렇다면 한번 시도해 볼까. 조언받은 대로 잘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영 감도 없는 상태로 남은 생을 계속해서 살아갈 수는 없다. 적어도 이 옷이 나한테 어울리는지, 제대로 맞추어 입은 게 맞는지 정도는 알아야 일을 할 수 있겠지. 그동안 옷을 못 입는 편인데도 생계가 끊어지지 않은 것은 아무래도 내 미친 강의력 덕분일까?? 하하하(미친 듯한 정신 승리).


사설이 길었다. 아무튼 그래서 지난주에 진단을 받았고, 나는 신세계를 경험했다. 평소 어떤 색을 선호하는지(나는 '프러시안 블루'에 미친 자다), 화장할 때 어떤 색을 제일 많이 쓰는지(처음 선물 받은 게 브라운 계열의 색조 화장품이라 그것만 쭉 이어 쓴 지 어언 8년) 묻고 이어서 여러 컬러를 대어 보며 가장 잘 맞는 색감을 찾았다. 어떤 컬러를 입는가에 따라 얼굴빛이 휙휙 바뀌는 것이 신기했다. 내가 제일 많이 한 말은 '옊? 엥?? 옛?! 예에?!! 아니! 진짜요?!' 진단대로라면, 나는 그동안 망한 코디를 고수하며 내 맘대로 입어 왔던 것... 짙은 청색과 블랙에 환장한 사람이라 그것들로만 주로 돌려 입었는데... 내가 좋아하는 그런 색들은 나한테 아주 안 어울린다고. 짙은 브라운 계열의 색조도 헤어와 피부톤에 잘 안 맞는다고 했다. 웁스... 아무래도 주변 사람들의 시력 저하에 내가 한몫 크게 해 온 것 같다.


진단 결과,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봄 라이트가 나왔다. 옛? 봄 라이트 컬러면... 어떤 걸까요?! 주로 파스텔처럼 흰 색감이 많이 들어간 민트, 부드러운 핑크, 옅은 노랑? 아무튼 그런 컬러들을 입을 때 느낌이 산다고. 오... 진짜 싫어하는 색들이다... 단 한 번도 호감을 가져 본 적이 없는 색들이다... 물론 그런 옷들이 있기는 했다. 친구들이 알뜰 장터처럼 옷들을 교환할 때, 너는 이런 옷이 어울릴 거라며 밝은 색감의 옷들을 선물해 주곤 했는데 한두 번 입고는 잘 안 입게 되어 옷장에 고이 모셔만 둔 옷들. 가끔 입고 나가면 오? 얼굴이 좋은데? 요즘 뭐 좋은 일 있어? 이런 이야기들을 듣기도 했지만 밝은 옷을 입으면 뭐, 당연히 얼굴도 밝아 보이겠지 정도로 생각했지 그게 설마 옷 때문이라고는...?! 그날 나는 선생님의 친절하고 프로페셔널한 설명과 꼼꼼한 조언에 크게 감탄하며, 한편으로는 반성과 다짐을 거듭하며 돌아왔다.



집으로 와 옷장을 열어 보니 블랙이 81%, 화이트가 9%, 블루가 6%, 그레이가 3%, 예의 그 봄 라이트가 1% 정도 되는 것 같다. 과연 내가 많은 경우에 99%를 버리고 1%를 선택할 수 있을까? 아직 미지수이지만, 새로운 시도를 해 보는 것도 좋겠지. 이제 2월이고, 곧 봄이 올 테니. 봄에는 역시 봄빛 옷이 어울리겠지. 20대에도 안 하던 시도를 30대 후반에 하려니 힘이 들지만, 인생에 늦은 게 어디 있는가. 시작하면 다 나의 타이밍이고 나의 때겠지. 


그렇다면, 2월에는 파스텔톤의 옷이라도 한 벌 사러 나가 볼까. 근데 쇼핑할 생각을 하니 왜 벌써 귀찮지. 사람은 참 안 변한다. 그래도, 1%라도 조금씩 달라지면- 그렇게 변화의 폭을 넓혀 나가면 어느 순간 꽤나 달라져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그동안의 익숙한 99%를 버리고 대신 새로운 1%를 택하는 것도 결국은 용기이고, 노력이겠다. 결국 변화란, 그렇게 용기와 노력이 더해진 끝에 나타나는 결과일 수도. 


패션에 관심이 전혀 없지만 1%의 용기를 그러모아 새로운 시도를 해 본 나를 칭찬한다. 근데 이제... 날이 아직 몹시 추우니 일단 쇼핑은... 쇼핑은 다음에 하자.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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