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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주 Jan 04. 2022

일 년 중 제일 열심히 사는 날

모든 해의 1월 하고도 세 번째 날에 관한 짧은 기록


일 년 중 어느 날일까. 내가 제일 열심히 사는 날은.

그런 날을 꼽을 수 있을까 싶지만 확실히 나는 모든 해의 1월 3일을, 제일 열심히 살았던 것 같다. 1월 3일? 왜? 다른 의미 있는 날이 얼마나 많은데, 왜 하필이면? 이상하고도 애매하게 1월 3일이란 말인가?


가령, 12월 31일은 어떤가. 마지막 날이니까 일단 할 일만 대충 줄 세워 봐도 일정이 빼곡하게 들어찬다. 한 해를 돌아보고 반성하고 다짐하고 버킷 리스트만 해도 백 개는 세울 수 있을 듯하다. 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열심히 안(못) 산다. 한 해를 돌아보다가, 반성을 하다가, 다짐을 반복하다가, 버킷 리스트를 쓰다가 그만 딴 길로 샌다. 에잇! 모르겠다. 이렇게 또 한 살 먹는구나. 지금에 와서 이런 게 다 무슨 소용인가. 연기 대상이나 보자. 카운트다운이나 하자. 차라리 내일 먹을 떡국의 만두 개수에 대해 고민하자.


그렇다면, 역시 1월 1일 아닌가. 뭐든, 1일이 열심히 살기에 가장 좋다. 하물며 1월의 1일이다. 무려 첫 번째 달의 첫 번째 날이란 소리다. 그것이 무엇이든 지금부터 하루도 빼놓지 않고 한다면 365일을 할 수 있고, 하루에 만 원씩만 모아도 365만 원을 모을 수 있고, 1킬로미터씩만 걸어도 365킬로미터를 걸을 수 있다. 364나 366보다는 365가 입에도 착 붙는다. 1년 365일. 라임도 딱 떨어진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1일이다. 너무 1일? 이건 또 뭔 개똥 같은 변명인가? 너무 1일이라니?! 모르겠다. 출발 신호를 기다리며 스타트 라인에 서 있을 때는 긴장감도 있고 왠지 파바박 달려 나가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막상 신호가 울리자 주춤거리며 눈치를 살피고 있는 기분이다. 왠지 오늘은 신문 구독을 시작해도, 헬스장을 끊어도, 스터디 플래너를 주문해도 온 세상이 다 나를 놀릴 것만 같다. '야, 새해라고 용쓰는구나. 그래, 언제까지 가나 보자 흥흥' (실제로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도 괜히 혼자 이런 생각을 슬쩍하며 멋쩍어하는 것이다. 그러는 내 안의 넌 대체 누구?)


, 그럼 1 2일인가, 역시? 이런저런 말도  는 이유로 어영부영 이틀을 보내고 나면 어느새 2일이 찾아와 있다. 이크, 벌써 새해가 이틀이나 지난 것이다. 하지만 대체로 1 다음 날까지 이어서 쉬게 되는 경우가  있으므로 2 역시 그렇고 그렇게 보내게 된다. 게다가 1일이 지나고 나면  그런지 '시작 특수' 느낌이 절반은 줄어든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 그러다 결국 ' 뭐했다고 벌써 2일이람' 연발하며 뭐든 어제 시작하지 않은 나를 은근히 탓해 보는 것이다. 2일부터 카운트라니 뭔가 '느낌'(그놈의 느낌) 살지 않는군. 마치  정각 9시에 시작하려고 했는데 어쩌다 보니 애매하게 9 5분쯤  느낌이랄까. 이때의 가장 현명한 판단과 행동은 그때부터라도 시작해 55 동안 뭐라도 열심히 하는 것이지만  같은 '개똥 완벽주의자' 굳이 55분을 기다려 10 정각을 다시 목표로 삼는 것이다. 지금까지 꾸준히 그래 왔으니 제법 많은 시간을 날린 셈이다. 그렇게 날린 시간들이  나이가 되어 쌓인 걸까.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나이를 많이 먹었을  없어)


자, 그럼 이제 남은 것은 1월 3일이다. 위와 같은 사고의 과정을 거쳐 나는 늘 3일을 제일 열심히 살았다. 특히 고3이 되던 해 1월 3일은 정말이지 끝내줬다. 그해에 처음으로 스터디 플래너라는 것을 사서 꼼꼼하게 하루 일과를 적으며 단 1분도 허투르게 쓰지 않고 뭔가를 했던 기억이 난다. (너무 오래전이라 기억이 꽤 미화된 것일 수도 있다) 올해는 또 마침 3일이 월요일이다. 월요일. 뭔가를 결심하고 시작하기에 너무 좋은 날. 그래서 근 100일이나 쓰지 않았던 글을, 작심하고 쓴다. 매일 뭔가를 쓰겠다는, 더 이상 기록을 미루거나 쓰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것이 무엇이든 일단 써 보겠다는, 그리하여 살아보겠다는 다짐 그 비슷한 것을 하러 들어왔다. 거창하고 식상하다. 그냥, 오랜만에 돌아온 자리가 쑥스럽고 반가워서 굳이 길게 하지 않아도 될 말을 길게 적어 보았다. 늘 그래 왔듯 나의 일상 속 사소한 순간들을 잊거나 잃기 전에 무엇으로든 남겨 보겠다는 다짐. 그냥 그런 것을 하러 왔다. 그러기에 너무 좋은 날 아닌가, 1월 하고도 세 번째 날은.



코로나 시국이 길어지면서 프리랜서로 다시 야심차게 일하려던 나는 말하자면 직업을 거의(?) 잃었다. 그동안 내 생계를 이어준 일은 주로 중고등학교에서 진로진학 강의를 하고 드문드문하게 독서나 글쓰기 수업을 맡는 것이었다. 책을 내고서는 문학이나 책에 대한 특강도 가끔 진행했지만, 주된 생계는 진로진학 강의 쪽 일로 이어갔다. 그런데 코로나가 들이닥치면서 학교가 비대면 수업으로 전환하고 가장 먼저 외부 인력을 줄이거나 온라인 강의로 전환하면서 일이 거의 뚝 끊어지다시피 했다. 간신히 잡힌 일정들도 갑작스런 확진자 발생으로 급히 취소되거나 무기한 연기되는 일이 잦았다. 재작년에 입학사정관 일을 마무리하고 다시 프리랜서로 일하려던 계획에 큰 차질이 생긴 것이다. 2021년 정도면 코로나도 좀 사라지고 그렇지 않더라도 위드 코로나가 되면서 상황이 더 나아지리라 생각한 것은 단단한 착오였다.


음, 이럴 줄은 몰랐는데 말이다. 글쓰기로는 아직(그리고 어쩌면 영원히) 생계를 이을 수준이 못 되기 때문에 열심히 구직활동을 했다. 그런데 잘 되지 않았다. 여러 이유가 있겠다. 첫 단추가 그러하여 주로 학교의 문을 두드렸는데, 쉽지 않았다. 어느새 많아진 나이 때문인지, 학교 쪽으로는 거의 쌓지 못한 경력 때문인지 아니면 둘 다인지 잘 모르겠다. 아마 둘 다일 테지. 나이는 많은데, 나이에 비해 현저히 부족한 경력 때문이겠지. 오랜만에 하는 공부도 몸에 잘 붙지를 않았다. 그래서 아주 잠시 잠깐 찰나의 순간에 후회라는 것을 했었다. 나도 친구들처럼 졸업하고 바로 임용고사를 준비할 걸,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사립학교에 원서를 내 볼 걸, 그게 아니라면 기간제 교사라도 열심히 할 걸. 도전한다고 해서 딱 그렇게 되리라는 보장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가지 않은 길에 대해 잠시 그런 바보같은 생각을 했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가려다 안 간 길, 못 가 본 길이 너무나 많았다.


하지만 가지 않은 길은 내 길이 아니다. 내가 걸어간 길만이 내 길이다.


그리고 너무나 분명한 것은, 나는 다시 돌아가도 그런 십 대, 그런 이십 대, 그런 삼십 대를 거쳐 지금의 '이런 삼십 대 후반'에 이르리라는 것이다. 애초부터 '그런 나'이기 때문에 '이런 내'가 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어쩔 수 없다. 자, 그럼 해도 소용없는 후회는 그만하고, 앞으로를 생각해 보자. 이제 어떻게 할까? 진짜로 어쩐담? 가장 확실한 해법은 결국 준비하며 기다리는 것이다. 어떤 문이든 계속해서 두드려 보고, 때가 오기를 기다리는 것. 글을 쓰고, 생활을 하고 간간이 들어오는 일에 감사하며 차분히 이 시간을 지나되 가끔은 와라라라락 우지끈 퉁탕 큰소리도 내 보는 것. 무엇보다 코로나가 좀 잠잠해지고 학교들 문도 다시 열려 활발히 일할 수 있기를.   


그런 시간을 거쳐 다시 1월이 되었고 3일은 여전히 내가 가장 열심히 사는 날이다. 올해도 그렇다. 확실히 3일에 가장 많은 생각과 행동과 다짐을 했다. 그간의 침묵을 깨고 다시 브런치로 돌아와 용기를 내어 쓰기 시작한 것이 가장 의미 있는 일이다. 물론 그 사이 변한 것도 있다. 예전 같으면 어찌 되었든 우당탕탕 마무리해 3일 자정에라도 글을 업로드했겠지만, 나이를 먹으며 좀 더 여유로워진 것인지?(는 핑계) 3일에 야심차게 시작한 글이 4일 밤이 되어서야 마무리되었다. 그렇다. 벌써 1월의 네 번째 날이 된 것이다. 4일 밤이니 이제 곧 5일이 밝을 것이다. 다섯 손가락 안에 꽉 들어찬 새로운 달을, 시작의 달을, 열심히 살기에 좋은 달을 다시, 살아 보자.


살아 보자.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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