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으로 건너가던 시절에 관한 짧은 기록
그날.
오전에는 논술, 오후에는 면접시험이 있었다.
여름의 한가운데였고, 전국에서 모인 고3들 사이에서 나는 평소보다 이만 배 정도는 더 위축되어 있었다. 아니, 왜 다 교복이지? 나만 빼고 싹 다 교복이야. 혹시 내가 못 보고 지나친 필수사항 같은 게 있었나? 교복 안 입은 사람들은 10점 감점이라거나, 아예 탈락이라거나.
그럴 리 없었지만, '사실은 그렇다'라고 해도 믿을 수밖에 없을 정도로- 그 고사실의 수험생들 대다수는 깔끔하게 교복을 차려입은 채였다. 그런 자리 배치를 뭐라고 하더라. 원형 회의실? 대강의실? 강단을 중심에 두고 반원으로 둥글게 자리한 계단식 책상들 가운데 하나. 내 이름이 붙은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맙소사'만 연발하고 있을 즈음 들려온 목소리가 있었다. 뙤약볕 끝에 쏟아진 소나기도 그렇게 반가울 수는 없었을 것이다.
- 아, 뭐야... 다 교복이네...
원서 접수 순서였을까. 어떤 원리로 그렇게 앉았는지 모르겠지만 우연찮게도 목소리의 주인공, J는 내 뒤편 대각선으로 앉아 있었고, 덕분에 그냥 사라지고 말았어도 좋을 그 한 마디가 기어코 내 귓속을 파고든 것이었다. 칼 선 빽(白) 바지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짙푸른, '해저 이만 리'색 와이셔츠를 입고(면접 본답시고 또 새로 샀지), '지금 논술 시험이 문제가 아닐지도 몰라'라는 생각에 초조해하던 나는- 흡사 이산가족 상봉이라도 하듯 고개를 홱 돌렸다. 아니나 다를까. 교복 무리 속 군계일학의 자태로 사복을 입은 J가 앉아 있었다. 뭘 입었더라? 그날의 공기, 햇빛, 온도는 꽤 선명한데 이상하게도 J가 입었던 옷은 어쩐지 희미하다.
- 우리만 사복이네요?
누가 먼저였을까. 정확치 않은 기억 속에서 우리 중 누군가가 먼저 말을 건넸다. 말 전에 눈이 먼저 인사했던가. 그 반대였던가. 서로의 눈과 말이 엇비슷하게 마주치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어색하게 웃어 버렸다. 약간은 난처해하고 얼마간은 안심을 하며. 그 순간만큼은 '우리'가 주는 안도감이, '우리만' 속에 숨은 난처함을 슬쩍 이겨 버렸던 것도 같다.
어쩌면 오늘 이 시험이 제법 괜찮은 결말을 향해 가고 있는 중일지도 모르겠다.
J를 발견하고 어색하게나마 웃어 버린 순간에 잠시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난관은 또 있었다. 시험 감독관이 들어오고 엄숙한 가운데 시험 시 주의사항 같은 것들이 나열되는데 어라, 샤프를 사용해도 된다니! 쾌재를 부르며 필통을 뒤져 보니...? 아뿔싸! 한 번도 빼놓지 않았던 지우개가 하필이면 절체절명의 순간에 뵈질 않는다. 다급하게 가방을 뒤져 봐도 마찬가지. 지우개 귀퉁이, 도막 하나쯤은 어디서 나올 법도 한데, 가방 속에는 순 쓸데없는 종이 나부랭이들만 가득하고 그러는 사이 시험 시작 시간은 서서히 다가왔다. 하아- 나도 모르는 새 한숨을 내쉬며 볼펜을 꺼내 딸각딸각 손을 가만두지 못하고 초조하게 굴고 있으려니 뒤에서 톡톡 내 어깨를 건드리는 손 하나가 있었다.
- 지우개 없어요?
다시, J였다.
- 네에... 어디로 갔는지 하필 오늘 같은 날... 없네요...
뭔가 부끄러운 부분을 들켜 버린 것처럼 시무룩하게 중얼대자 J가 씩 웃더니 제 필통에서 칼을 꺼낸다. 그러더니 책상 위에 올려두었던(엊그제 산 것임에 틀림없는) 반짝이는 새 지우개의 가운데를 거침없이 갈라 두 동강 내 버렸다. 엇! 할 새도 없이 내 손에 퐁당 떨어진 절반의 지우개.
- 그걸로 써요.
얼결에 받아든 지우개를 손에 쥐고 어쩔 줄 몰라하다가 꾸벅 인사를 했다. 아, 정말 고마워요. 잘 쓸게요. 휘릭 고개를 돌려 앞을 보니 이제 정말 시험이 코앞이다. 장내는 더욱 고요 속으로 빠져 들고 그날 나는 백지 위에서 그 어느 때보다 신나게 어떤 문장들을 쓰고 지우며 제법 흡족한 답을 써냈던...가? 말았던가? 아무튼 언제 지나갔는지 모르게 시간이 다 되고 답안지마저 걷어간 후 모두들 총총히 사라지는데, 나는 부러 느지막하게 짐을 챙기며 호시탐탐 뒤편을 노렸다.
- 아, 저기... 고마워요. 진짜 잘 썼어요, 지우개.
- 아, 뭘요.
뒤편의 기척에 얼른 말부터 던졌다. 가방을 메고 일어서던 J가 웃었다. 나도 덩달아 일어났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귓가에 선명한 그 말은 누가 먼저 던졌을까. 시간이 지나고 지나 희미한 기억의 끝에 남은 것은- 그것이 그날 우리가 나눈 마지막 대화였다는 것뿐.
- 우리, 신입생 오티에서 만나요.
- 정말 오티에서 꼭 봐요, 우리.
그런 날이 있었다.
아주 더운 여름의 한가운데였고, 8월이었다. 발표가 난 건 그로부터 열흘쯤 후였을까. 논술 시험을 치고 학생식당에서 밥을 먹고 덜덜 떨며 면접을 마치고 망했다는 생각에 눈물을 뿌리며 집을 돌아간 후 나는 이따금 J 생각을 했다. 잘 봤으려나. 나는 망했지만 그 애는 잘 봤을 거야. 잘 됐으면 좋겠다. 오티장에서 나를 찾다가 실망하는 J의 얼굴을 그려 본 것도 같다. 오티장에 없는 나를 보며 그 애는 무슨 생각을 할까. 아쉬워할까. 아니, 아예 기억하지 못하려나. 반대의 경우도 생각해 봤다. 오티장에 들어서는 나... 우선 시작부터가 상상이 잘 안 됐다. 역시- 둘 중 하나가 된다면 내가 아닌 그애겠지.
그리고 나는 어쩌다 보니 합격을 해 버렸고, 여름의 끝자락에 덜컥 예비 대학생이 되어 버렸다. 합격증을 찾으러 간 날, 학교를 돌아 나오며 나는 내내 J 생각을 했다. 그 애는 어찌 되었으려나. 오티에 가면 볼 수 있을까. 징검다리에서 소녀를 기다리던 소년의 마음으로, 조약돌을 만지작거리듯 지우개 도막을 이따금 손 안에서 굴려 보곤 했다.
그 여름으로부터 오랜 시간이 지났다. 그렇게 들어간 대학에서 나는 많은 과목들을 수강했고, 덕분에 학위증도 손에 쥐게 되었지만- 어쩌면 대학에서의 4년보다 그날 그 짧은 순간, J가 내게 보여준 호의에서 더 많은 것을 배웠던 것 같다. 숨 막히는 긴장감 속에서, 경쟁자임이 분명한 낯선 이에게 선뜻 자신의 무언가를 내어 줄 수 있는 마음의 깊이, 라고 할까. 단 몇 초. 쑥스럽게 몇 마디를 주고받은 것이 전부인데 그 아이는 어쩌면 그렇게 순간을 천 길의 깊이로 달아 내 앞으로 온 것일까.
어떤 순간은, 한 생애에 달하는 시간보다 더 많은 것을 보여 주기도 한다.
그것이 비록 아주 짧고 희미한 순간이라 해도 분명하게 보이고 마는 것이다. 한 생애가 살아온 삶의 방식 같은 것이, 걸어온 길 같은 것이, 그리하여 그 사람이 걸어갈 길 같은 것이.
시험장 속의 J가 어떤 옷을 입고 있었는지는 여전히 희미하다. 그저 고개를 돌렸을 때 쑥스럽게 웃고 말았던 우리 사이의 안도가 아주 따뜻했다고, 그렇게 기억될 뿐이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일은 많은 것들이 희미해졌지만, J가 입고 있던 연분홍빛 니트만큼은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다. 굵은 실로 짠 연분홍빛 니트. 그 옷을 입고 앉아 있던 J는, 오티장에 느지막하게 들어서는 나를 발견하고는 번쩍 손을 들며 환하게 웃었다.
- 오티장!
그러고 보면 어떤 한 사람과 연을 맺게 된다는 건 어마어마한 일이다. 일부러 그렇게 하라고 해도 할 수 없을 만큼의 순간들이 쌓이고 쌓여 우연이 겹치고 겹쳐 이루어진 결과라고 하면 너무 운명론에 치우치는 걸까. 그렇다면 나는 어찌할 수 없는 운명론자인 걸로. 아무리 생각해도 그 여름날의 J가, 그 오티장의 J가 내게는 운명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열아홉에서 스물로 건너가던 그해 여름, J를 만난 순간에 나는 비로소 길었던 십 대를 마무리하고 어른들이 살고 있다는 저 건너편 강으로 건너갈 채비를 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 강을 무사히 건널 수 있도록 가장 단단한 노를 쥐여 주었던 J와 벗들에게, 다정한 사람들에게 오늘도 ‘안도와 평안’이라는 시간이 도착해 있기를.
마치 어떤 여름날처럼 따뜻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