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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주 Apr 13. 2022

이만하면 그만 이별할 때도 됐잖니

코로나 이야기 그만 쓰고 싶은 날들에 관한 짧은 기록


벌써 한 달이 되어가는 이야기이다.


3월 23일 수요일 아침. 눈을 떴는데 유난히 방이 건조했다. 봄이라 그런가. 가습기를 들여야 하나. 젖은 수건이라도 걸어 놓을 것을. 몸이 좀 찌뿌둥하기는 했지만 오래 쉬다가 갑자기 출근(그것도 겨우 일주일에 두세 번이지만)을 해서 그런가 보다 했다. 바쁘게 다음 날을 위한 준비를 하고 요새 다시 열을 올리고 있는 달리기도 마쳤다. 뿌듯하게 샤워를 하고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어 이만하면 모든 것이 괜찮은 하루다 싶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바로 3월 전국연합 학력평가 날이었다. 내가 맡고 있는 고2 학생들도 모의고사를 보는 날이라 시험 감독을 했다. 학교 내에서 확진자가 계속 발생해 온라인 수업으로 돌린 주간이었고, 다만 시험날이라 전면 등교가 한시적으로 적용된 날이었다. 내가 맡은 수업 타임은 총 3차시. 하지만 학교 사정상 한 시간을 더 들어가 총 4차시 감독을 하고 점심시간이 되어 퇴근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컨디션은 무척 좋았다. 한 정거장 앞서 내려 봄날을 느끼며 걷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문제는 그날 저녁부터 시작되었다. 뭔가 느낌이 좋지 않았다. 어느 순간 목이 따끔거리고 귀까지 약간 찌릿 울리며 아픈 듯한 느낌. 어, 뭐지? 어제오늘 너무 무리해서 걷고 뛰었나(런데이 앱으로 겨우 7일 차). 가만있자. 엥, 10만 보도 아니고 겨우 7000보 걸었는데?


이런 코로나 시국이 아니었다면, 그냥 아 또 목감기인가! 하고 대충 좀 쉬고 대충 상황 봐서 약 하나 먹어 보자 했을 테지만 덜컥 가슴부터 내려앉았다. 워매! 나 코로나인가?!! 당장 검색에 들어갔다. 코로나 초기 증상. 우다다다 뜨는 페이지들. 하여튼 이 검색이 내 조급증과 걱정병을 열 배로 증폭시키는 것 같다.


코로나 증상, 목 아픔 증상, 목 아픔 코로나, 코로나 증상 순서, 귀 아픔 코로나...


모든 증상에 코로나를 갖다 붙일 수 있었다. 그리고 심지어 그렇게 자동 검색어가 완성되기도 했다. 다들... 참... 힘든 시간을 보내고 계시는구나... 각종 후기들을 읽으면 읽을수록 내 증상과 비슷한 것만 같았다. 처음에는 가볍게 목이 칼칼한 정도로 시작. 이튿날은 좀 더 아픈 느낌. 하지만 일반적인 목감기와 크게 다를 바 없음. 이때부터 벌써 다른 증상이 함께 나타나 양성 판정을 받은 사람들도 있고 여러 날 비슷한 증상이 반복되다가 가족이나 주변인의 격리가 끝나고 나서야 양성 판정이 나온 사람도 있다고 했다. 대략적인 공통점은 모두 '목이 찢어질 듯이 아프고 칼날로 베는 듯한 인후통'이 왔다는 것. 많은 사람들이 '걸리면 느낌이 온다'라고 했다. 반면, 전혀 그렇지 않았다는 이들도 있어 더욱 종잡을 수가 없었다.


아, 망했다. 드디어 나도 걸려 버린 것인가! 하지만 대체 어디에서? 모든 약속을 취소하고 오직 집과 학교뿐인데? 음식조차 모두 포장해 오는데? 이게 웬 날벼락이란 말인가! 다행히 다음 주 화요일 전까지는 학교 수업이 없어 일단 최대 5일간 두문불출하며 상태를 살필 수 있다. 쿵쾅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자가진단 키트부터 해 보았다. 아, 몇 개 없는데 아깝지만 어쩔 수 없지. 경건하게 손을 씻고 콧구멍을 쑤셨다. 이제 망하라는 욕도 지친다. 코로나 썩을! 증상이 약해서 그런가. 아직인가. 음성. 빨간 한 줄. 휴! 오늘은 일단 됐고, 우선 쉬어 보자. 말끔히 씻고 자리에 누웠다. 쉬자! 쉬어야 한다! 아프면 안 돼! 잠을 자 보자! 아직 날이 환해서 그런지 잠은 오질 않고, 시험 감독을 하며 학생들 간의 접촉을 줄인답시고 한 장 한 장 직접 시험지를 나누어 주었던 내가 떠올랐다. 진짜 미치겠다. 이 똥 멍청아! 왜 그랬어! 지금 누가 누구를 위한답시고 정말! 아니, 내가 이렇게 목이 갑자기 아플 줄 알았나! 접촉점도 없고, 연락받은 것도 없단 말이지. 아니, 요즘은 가족 외에 다른 연락을 어차피 못 받는다고! 아니, 그래도 어쨌든 아무도 안 만났는데! 조심했는데! 집에만 있었는데! 아, 다들 그런다니까. 오죽하면 지하철에서 걸렸나 한다고요.


에휴... 이게 다 무슨 의미인지.


벌떡 일어나 입을 크게 벌리고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여전히 목이 칼칼하고 아프다. 나는 어렸을 적 귀를 앓은 적이 있어 감기가 오면 목을 타고 귀로 올라가는데, 그래서 그런가 귀도 계속해서 찌릿찌릿 아팠다. 아, 혹시 이거 대상포진인가? 주제에 또 대상포진도 앓은 적이 있어 조금 피곤하면 예전에 포진이 났던 쪽이 부르트고 아프다. 누가 보면 일주일에 수업만 60시간 하는 줄 알겠네. 왜 이렇게 유난인지. 그렇게 뒤숭숭한 채로 그날 밤을 보내고 다음 날이 되었다. 그런데 오전 즈음 지난주에 방문한 병원에서 단체 문제가 왔다. 원장님의 개인 사정으로 금주 휴무합니다. 휴무?? 금주 휴무??? 개인 사정이라고 한다면??? 설마...!! 에이, 아니겠지. 아니 그렇지만 이런 상황에 개인 사정이라고 한다면... 하... 정말 눈물이 앞을 가린다. 흑흑.


2주 전 오른팔과 엄지손가락의 통증으로 집 근처 정형외과에 가서 주사를 맞고 충격파 치료를 두 번 받았었다. 별다른 건 아니고, 펜을 쥐는 행동을 반복적으로 오래, 너무 힘을 주어 열심히 해서 그렇다고 물리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꾸준히 다닐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고 하니 단시간 내에 빠르게 효과를 볼 수 있는 충격파 치료를 말씀해 주셨고 난생처음으로 그런 치료를 받아 보았다. 손을 최대한 쓰지 말라고 하는데 그게 어떻게 가능한가... 아무튼 그렇게 치료 잘 받고 나름 호전이 되어 지난 토요일 방문을 끝으로 안 가게 되었는데 맙소사! 그러니까 5일 만에 문자가 온 것이다. 코로나로 인한 휴진인지 아닌지 알 수는 없었지만 아무튼 이런저런 상황이 겹치고 몸까지 안 좋으니 상상은 나래를 달고 멀리멀리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원래도 걱정이 많은 편이지만 코로나 시대 되고 나서 '상상 코로나'만 몇 번을 앓았는지 원.


5일이면 증상이 충분히 나타나고도 남나? 아니, 이럴 시간에 키트를 일단 다시 해 보자. 가슴이 미친 듯이 뛰었다. 키트를 하기 전 종합 비타민을 먹고, 레몬차, 꿀물, 도라지청을 차례로 마셨다. 지금에 와서 무슨 의미인가 싶지만. 건강도 벼락치기로 챙기는 타입. 면봉을 코로 들이밀기 전에 우선 정성껏 기도를 했다. 한참 늦은 기도 같지만 신이시여 제발 도와주세요. 걸려도 지금은 안 돼요. 방학. 7월이요. 아니 8월이요. 아니, 아니 입이 방정이라고 그냥 지나갈 수 없을까요. 착하게 살게요. 제발, 제발. 기도를 마친 후 정성 들여(?) 코를 쑤시고(?) '아놔 진짜 코로나 가만 안 둔다'를 반복 재생으로 중얼거리며 용액을 떨어뜨렸다. 15분이 영겁과도 같았다. 하지만... 너무나도 선명한 한 줄. 다시 음성.


하... 아직인가.

아니, 이러면 마치 코로나를 기다리는 것 같잖아. 지금 시험 감독만 안 했어도 겸허히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는데 일단 아니 됩니다. 진짜 한 학기만 좀 봐주세요. 저는 그렇다 치고 우리 아이들 학교 와서 공부해야 돼요. 저도 온라인으로 공부해 봤지만 공부 그거 참 쉽지 않습니다. 와서 졸더라도 일단 얼굴 보고 얘기하는 게 훨씬 낫거든요. 아, 제가 조금 꼰대 같기는 한데요. 아니, 꼰대가 되었는데요. 예, 사실 지금 왕꼰대인데요. 아무튼 코로나는 지금 좀 봐 주십쇼, 예?


누구한테 얘길 하는 건지. 뒷머리를 북북 긁으며 이 방 저 방을 우왕좌왕 왔다 갔다 하다가 어느 순간 한숨을 푹 쉬며 에라이 모르겠다 벌렁 누워 버렸다. 인공지능 스피커 클로바에게 <90년대 가요 틀어 줘> 하니 싹싹하게도 익숙한 멜로디들을 내보낸다. 토이의 <여전히 아름다운지> 뱅크의 <가질 수 없는 너> 터보의 <회상>... 그러다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이 빠른 비트로 흘러나왔다. 그래, 코로나야. 진짜 우린 너무 잘못된 만남이다. 잘못됐어. 제발 이제 좀 떠나가 주라. 이만하면 그만 이별할 때도 됐잖니. 후!


한번 코로나 같다는 생각이 들어와 박히자 이내 머릿속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생각과 의식이 이렇게나 무섭다. 목이 아프기 시작한 날부터 나는 무조건 이 목을 낫게 할 요량으로 종합감기약과 쌍화탕을 먹고, 따뜻한 물을 수시로 마시며 좋은 음식들을 챙겨 먹기 시작했다. 정말 하루에 조금 뻥을 보태 물을 5리터씩은 마신 것 같다. 혹시 바이러스가 몸속에 침투했다면 어떻게든 내 보낼 심산으로 물을 마시고 또 마셨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느낌이 없지 않았지만 아직 소를 다 잃지는 않았으니까! 아직 기회가 있으니까! 부지런히 내 몸의 이상을 가늠해 보며 코로나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고 그에 맞게 움직일 채비를 했다.


나의 이런 부산한 움직임을 최근 코로나에서 완치된 L에게 전하니- 푸하하 웃으면서 L은 단박에 이랬다.


야! 너 코로나 아니야.

엥, 어떻게 확신하누?

코로나는 그렇게 밝고 건강한 목소리로 이야기할 수 없어.

아니, 그래도 이게 목이 아픈데...

야, 코로나는 '목이 아픈데' 정도가 아니라니까. 목이 타는 것 같고 일단 기침이 심해서 말을 못 해.

아, 그랬지...

그리고, 코로나면 웃을 수 없다. 웃음이 안 나와.


좀 전에 무슨 얘기로 서로 깔깔대며 웃은 후에 L이 진지하게 그랬다. 나는, 코로나라고 하기에는 너무 건강하고 밝은 목소리로 대화를 했고, 웃었고, 그러므로 나의 목은 그냥 '갑작스런 기후 변화와 긴장, 무리로 인한 환절기 감기'일 거라고. 그 말을 들은 순간부터 갑자기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긴장이 스르르 녹는 것 같았다. 야, 너 명의 같다. L은 하하하 웃었다. 오랜만에 본래의 목소리를 되찾은 L이 말했다. 코로나가 참 많은 걸 가르쳐 주었다, 친구야. 그래, L의 말처럼 코로나는 마치 매복한 전투병처럼 갑자기 들이닥쳐 이 시대를 전혀 다른 세상으로 만들어 놓고 아직도 떠나지 않은 채 계속해서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마치 변검처럼. 어느 순간 얼굴을 바꾸어 버리는 그 가면술처럼.  


전화를 끊고 다시 입을 벌리고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몸이  이러는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여전히 모르겠다. 그래도 세월이 흐르며 이전보다는 제법  알아들을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시절이 되면서 오히려 하나도 모르게 되어 버렸다. 나이를 먹으면 그래도 어느 정도내가 나를  알아차릴  있다고, 나에 대한 단서를 제법 찾아가는 중이라고 스스로를 위안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아무튼 그렇게 5일간 예정되었던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집에 틀어박혀 셀프 격리를 했다. 집에 있는 동안  자고 영양가 있는 음식들을 챙겨 먹고 틈틈이 스트레칭을 하며 나는 거짓말처럼  나았다. 목도, 귀도  이상 아프지 않았다. , 뭐였지.  그랬지. 코로나였는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나아서 다행이다. 이제 이런 이야기는 그만 쓰고 싶다. 정말로. 진짜로. 진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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