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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청예 Jul 19. 2023

10대는 아이돌 덕질을 하지 않는다?

첫 번째 교육봉사 후기



청소년, 아동을 대상으로 교육봉사를 시작했다.

계기는 간단하다. 명색이 청소년 소설을 쓰는 사람이고, 단행본도 출간한 사람인데 돈만 기부를 하는 걸로는 그들의 세계를 진실로 보듬는다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 나는 언제나 말보다 행동이 중요한 사람이다. 집에서 소설 한 페이지 타이핑 하는 것보다 그들을 위해서 실제로 해줄 수 있는 일을 >직접< 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늙고… 병든… 몸이지만 용기를 내 자원봉사 포털에서 교육 봉사 프로그램을 찾았다.


앞으로 매주 1회씩, 봉사를 다녀온 후에 후기를 남겨보고자 한다. 이상향은 최소 3개월 동안 봉사를 가는 것이지만….이 글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


아무튼 첫 번째 봉사 후기다.


1) 초등학생이 올 줄 알았는데.

허락받고 찍었어요


대학생 때도 멘토링 봉사를 많이 해봤던 나는 당연히 현장에서 초등학생과 매칭이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세상에나. 오늘 갔더니 중학생, 그것도 중학교 3학년 친구랑 매칭이 돼버렸다! 식은땀이 삐질삐질 났다. 중학생이 싫어서? 아니다. 초등학생이 배우는 국영수는 그~나마 가방을 벗고 다닌 지 오래된 나도 가르쳐줄 수 있지만 중학교 3학년 친구가 배우는 수학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뜨악 망했다 싶었지만 애써 태연한 척 웃었다.


선생님은 답지 좀 보고 있을게~^^
요즘은 답지가 어떤 식으로 구성되나~
이런 바보 같은 거짓말을 하면서.


삼각함수? 코사인? 탄젠트? 오 마이 갓. 기억 저너머에서 십수 년간 한 번도 고개를 들지 않던 이론들이다. 어떻게든 가르쳐주긴 해야 하는데… 나도 나름 중학생 때는 전교 8등까지 찍어본 사람인데 너무 당황해서 눈이 좌우로 미친 듯이 흔들렸다. 첫날부터 어떻게 이런 시련이.


허락받고 찍었어요


아주 오래전에 플래시로 들었던 삼각 함수 노래를 재빨리 복기하면서 겨우겨우 기억을 찾아갔다. 다행히 답지를 보며 어른의 임기응변을 발휘한 덕에 망신은 면할 수 있었다. 16세 친구가 이건 어떻게 해요?라고 물어볼 때 눈알로 재빠르게 답지와 문제를 광속 스캐닝해서 겨우 답을 해줬다. 하지만 왠지 속으로는 “이 쌤은 좀 바보 같아.”라고 생각했을지도 몰라. 미안해… 쌤이 글만 쓰느라 수학은 놓고 살았어…. 우리 다음부터는 제발 영어 하자…. 차라리 나랑 토익 할래?!



2) 저 아이돌 안 좋아해요


흔들리던 눈이 제자리를 겨우 찾게 되자 용기를 내 스몰토크를 시도했다.


밥은 먹고 왔어?
ㄴ네. 000에서 먹었어요
와~! 맛있는 거 먹었네!(공복이라 부러움)
ㄴ네(문제 푸는 중)
그리고 뭐 하고 왔어?
ㄴ친구랑 카페 가서 놀았어요.
아아~ 그렇구나


친구는 친절했지만 서로 초면이다 보니 딱히 할 얘기가 없었다. 10대 친구에게 “오늘 날씨 참 좋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이것 봐, 정말 글과 현실은 다르다니까. 청소년 소설을 쓰면서 그들의 세계에 가까워졌다고 믿었지만 막상 마주하니 대화 진도조차 못 나가는 나를 발견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여러 가지 대화를 시도했다. 틱톡 이야기를 하며 웃기에, 아이돌 이야기를 꺼냈다. 10대 친구들은 아이돌을 좋아한다는 편견이 있었기 때문이다.


전 아이돌 안 좋아해요.
제 주변에 덕질하는 애들 없어요.
우린 차라리 배우를 더 좋아해요.


띠용!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답이 돌아왔다. 자신은 아이돌에 관심이 전혀 없어서 덕질을 하지 않고, 친구들도 마찬가지라는 것. 물론 이 친구들의 경우이지 모든 10대가 그렇단 건 아니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 ‘청소년=아이돌에 관심이 많음’이라는 어떠한 공식이 있었는데 이 친구 덕에 깨졌다. 10대지만 아이돌에 흥미가 없고 오히려 연기자들을 더 좋아한다는 것.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요즘은 체육 시간에 어떤 수업을 하는지, 주로 어떤 식으로 연락을 주고받는지. 많은 삶이 나의 예측과는 달랐다. 인터넷 자료 조사에서 알 수 없었던 내용이었다. 또한 내가 소설 속에서 상정해 뒀던 주인공보다 어떤 때에는 더 어리게 느껴지고, 또 어떤 때에는 더 성숙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현실을 살아가는 10대의 모습은 다양했다. 덕분에 지금 쓰고 있는 소설 속의 틀린 고증들을 재빨리 고칠 수 있었다.


3) 쌤 전 대문자 E에요.


삼각함수 문제를 다 끝내자 친구가 대뜸 인스타 맞팔을 요청했다. 나는 극 내향인이라 초면에 누군가와 맞팔을 좀처럼 하지 않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맞팔이 돼있고, 친구가 내 인스타 모든 게시물에 좋아요까지 눌러줬다(아놔ㅋㅋ) 나보다 훨씬 더 성격이 좋은 친구라 내가 더 많이 배운 하루였다.


긴장이 많이 됐던 첫 봉사지만 쾌활한 친구 덕에 잘 끝낼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니, 별 일 하지 않았음에도 기진맥진해져 허겁지겁 밥을 먹었다. 그리고 최연소 인스타 팔로워에 당혹스러워하며(ㅋㅋ) 다음 봉사 때는 더 적극적으로 말을 걸어야지… 생각하게 됐다. 다음엔 어떤 친구를 만나게 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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