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첫 단편영화 <썸머타임>을 완성했다. 그냥 각본에만 참여한 게 아니라 나의 시나리오로 내가 감독으로 진행한, 모든 현장을 지휘한 진또배기 첫 영화다! 그리고 오늘은 그 단편영화에 대한 경험을 정리하고자 한다. 요약하자면 "눈물을 너무 많이 흘린 불행한 경험"입니다. 아니 그렇다고 영화까지 불행하단 건 절대 아니니 끝까지 읽어주세요^^)/
일단 거두절미하고 나는 영화인을 꿈꾸고 있지는 않다. 언젠가 영화 현장에서 일해야지 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내게 영화는 좋은 유희거리, 엔터테인먼트였다. 항상 영화를 '소비'하는 사람으로 살길 희망했지 한 번도 '공급'하는 사람을 바란 적은 없었다. 그러다 취미로 H교육센터에서 진행하는 강의를 듣게 됐고 이게 시작이었다.... (불행이 7할 보람이 3할)
"영화하면서 행복한 적이요? .... 있었나?"
봉준호 감독님인지? 박찬욱 감독님인지? 굉장히 유명한 감독님의 인터뷰였다. 영화하면서 행복한 순간이 언제냐 물으니 그런 게 있었는지 모르겠다고 대답한 것이다. 그걸 보고 나는 "영화가 좋아서 영화인이 되신 거 아닌가?"라고 생각했다. 이해가 잘 안 됐다는 말이다. 근데 해보니까 그 말이 너무 이해가 된다.
작품을 향한 애정은 감독만 있어요
어쩌면 당연한 말일 수도 있겠다. 교육센터의 커리큘럼은 굉장히 타이트했다(심할 정도로) 수강생 10명 이상이 모두 6주 안에 자기 단편영화를 만들어야만 했다. 감독/스태프를 겸하면서 동시다발적으로 촬영을 진행하는 것이다. 그러니 다른 감독의 작품에 애정을 쏟을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A작품 준비에 2주밖에 주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어떻게 애정을 쏟고 일일이 하나하나 뜯어고치고 한단 말인가? 아니, 해야 한다면 할 수도 있지만 쉽지 않다. 창작하는 사람으로서 그런 행위를 수 작품 연속으로 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애정이란 정량으로 계량할 수 없고 오직 정성적으로만 측정이 가능하니까... 그러다 보니 내 작품에 대한 애정은 나만 있고, 애정 없는 판단에 기반한 피드백만 받게 된다. '당신과 작품을 만들어가고 싶으니까 이 부분을 수정해 보자'라기보다는 '시간 없고 이건 별로니까 빼자' 식이랄까. 서로가 서로에게 그런 말을 하게 된다. 창작이란 마이너스가 아닌 플러스의 영역이라고 생각하는데.
가깝진 않지만 안 볼 사이도 아니라서
단편영화 작업에서 제일 힘들었던 건 인간관계였다. 나는 진짜 무덤덤girl이고 인간관계에서 타격을 잘 받지 않는다. 잘 싸우지도 않는다. 기계인간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인데... 이번 영화작업에서는 정말 너무 괴롭고 힘들어서 밤에 혼자 운 적이 꽤 있었다. 강아지랑 할머니 영상 말고 진짜 사람 때문에 운 건 5년 만인 것 같다....
만약 감독과 스태프가 고용관계로, 돈이 오고 가는 관계였다면 차라리 편했을 거다. 책임관계가 명확하고 지시나 피드백도 깔끔하게 오갈 테니까. 그런데 동기들과 함께하는 단편영화라서 그런 점이 굉장히 모호했다. 우리는 같은 동기고, 같은 배를 탄 동료인 줄 알았는데(?) 막상 현장에 오니 협력하는 느낌은 잘 들지 않았다. 내 영화는 한여름, 야외에서 촬영했다. 힘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더운 여름날 땀이 줄줄 흘렀던 일보다 더 힘들었던 건 내 귓가에 들리는 누군가의 한숨과 원망을 감추지 못하는 얼굴. 인간과 인간 사이의 더위가 더욱 힘들었다. 그래서 나도 스태프들에게 상냥하지 못했던 것 같다. 평상시 소설가로서 나오지 않는 내 모습이 자꾸 튀어나와 심적으로 너무 괴로웠다. 그렇다고 "좀 더 잘해주시면 안 되나요?"라고 따져 묻지도 못하는 것이, 계속 얼굴을 보고 같이 활동해야 하는 사람이다 보니... 아무튼 이게 참 힘들고 어려웠고, 난 아직 미숙한 사람이더라고. 지금도 생각하면 너무 괴로워.. 영화 찍는 동안 주변인들이 "영화 잘 마무리하고 있어?"라고 하면 늘 풀죽었던 기억뿐.
좋은 배우들, 좋은 스태프
그럼에도! 좋았던 사람들은 있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해준 배우들과 성실히 도와준 스태프에게는 고마운 마음이 있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의 작품에 투입됐을 때는, 나도 사람이다 보니 조금이라도 더 성실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티 안 났을 수도 있지만...ㅋㅋ)
편집 피드백 없이 종료된 커리큘럼
이건 정말 할 말이 태산인데 결과적으로 나는 교육센터에서 제공하는 편집 피드백을 받지 못했다. 단편영화 교육 수강하려는 분들, 이 점은 꼭 체크하세요. 거기 적힌 커리큘럼을 다 제공받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더라고요(분노) 비대면 피드백도 못 받았다.(답장이 안 옴...) 참고로 교육비는 200만 원이었다.
전반적으로 불행했던 경험
영화에 열정있는 사람들을 보았고, 우수한 역량을 가진 사람들도 보았다. 새로운 세계를 구경한 느낌이라 흥미로웠다. 또한 적당~히 개인소장용 영상을 찍고 온 것이 아니라 실제 장비로 영화를 촬영하고 완성하는, '진짜 영화' 경험을 한 것이니 후회하지 않는다. 근데 후회하지 않는다는 말이 행복했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이제 '영화'라는 단어 뒤 내가 혼자서 펑펑 울었던 새벽들을 잊을 수가 없어... 계속 잊히지 않으면 병원에 가봐야겠다. 아무튼 나는 어렵고 힘든 마음 속에서도 도망치지 않았고 내 작업물을 완성했다. 이건 대단해. 칭찬해.
완성된 영화 <썸머타임>은?
썸머타임 영화는 미숙하지만 내 선에서는 편집이 끝났다. 롱폼과 숏폼 두 가지 버전이 있는데 둘 중 무엇을 최종으로 할지 아직 정하지 못했다. 정한 다음에 유튜브 링크든 어디든 올려놓고자 한다. 주제는 '한국 내 외국인(중국인) 차별'이다.
앞으로 영화를?
더 만들고 싶다. 내 마음의 사기가 다 꺾이지는 않았다. 그런데 영화를 위한 영화보다는 '소설'을 위한 영화를 만들고 싶다. 그리고 이제 한 번 해봐서 알겠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ㅋㅋㅋㅋ) 썸머타임을 찍은 이후 많은 창작자 친구들에게 "저 영화 만들고 싶은데 관심 있나요!"를 밥 먹듯이 말하고 다녔다. 또 하겠다는 이야기지요. 물론 긴~ 휴식을 가진 후에!
그냥 각본만 쓰는 게 어떨까?
전업 작가다보니 각본 집필만 담당하는 게 가장 전문적일 수도 있겠다. 실제로 주변 소설가분들은 상당수가 각본/집필 작업만 참여하신다. 하지만 나는 내 영화를 만들고 싶다. 궁극적으로는 '시각적 창작물'을 만들고 싶다. 내게는 그런 역량도 있고.
ps. 이렇게 영화로 힘들었을 때 <오렌지와 빵칼>의 좋은 소식들은 나를 심적으로 지탱해줬다. <오렌지와 빵칼> 후기를 써줬던 독자님들... 제가 영화를 만들며 너무 괴롭고 힘들고 눈물이 났을 때 독자님들의 후기가 저를 한 명의 창작자로서 버틸 수 있게 해줬습니다. 정말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