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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나탈리즘(Antinatalism)

Better Never to Have Been

by 김시연
"나한테 이성이라는 게 왜 주어졌겠어요? 내가 불행한 아이들을 세상에 내놓지 않기 위해 그걸 써먹을 수 없다면 말이에요." 그녀가 돌리를 쳐다보더니,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하던 말을 이었다.
"그 불행한 아이들 앞에서 나는 항상 죄책감을 느끼게 될 거예요. 태어나지 않는다면 적어도 불행해지진 않잖아요. 하지만 아이들이 불행해지면 그건 오로지 내 탓이라고요." 바로 다리야 알렉산드로브나가 자기 자신에게 제시했던 논거들이었지만, 지금 그런 말을 들으니 납득할 수가 없었다.
"존재하지 않는 아이들 앞에서 어떻게 죄책감을 느낄 수 있을까?"그녀는 생각했다. 이어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일 내가 사랑하는 그리샤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경우에 따라 서는 그 아이한테 더 좋을 수도 있단 말인가? " 이 생각이 너무나 망측하고 기괴하게 느껴져, 그녀는 미친 듯 소용돌이치는 상념의 도가니를 떨쳐 버리려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나는 잘 모르겠지만, 그건 좋지 않아요." 그녀는 꺼림칙한 표정을 지은 채 이렇게만 말했다.
"그래요. 하지만 언니가 누구고 내가 누구인지는 잊지 말아줘요.··· 그뿐 아니라···" 안나가 덧붙였다. 자신의 논거는 풍부하고 돌리의 논거는 빈약하지만, 어쨌거나 그게 좋지 못한 생각이라는 건 인정한다는 듯한 투였다. "중요한 사실을 기억해 줘요. 나는 언니와 처지가 달라요. 언니 앞에 놓인 문제는 "더 이상 아이들을 갖지 않길 바라는가)이지만, 내 앞에 놓인 문제는 "아이를 갖길 바라는가 예요. 그건 차이가 커요. 내 처지에서는 그런 걸 바랄 수 없어요."


<안나 카레니나>에서 안나와 돌리(다리야 알렉산드로브나)의 대화로, 출산과 모성, 그리고 존재의 의미에 대한 깊은 철학적 논쟁을 담고 있다. 특히 안나의 대사는 러시아 문학이 즐겨 다루는 인간 존재의 윤리적 갈등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아이를 낳지 않음으로써 불행을 막는다

안나는 태어나지 않는 것이 불행을 예방하는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태어나지 않는다면 적어도 불행해지진 않잖아요.”

자신이 선택할 수 있다면 불행할 가능성이 있는 아이를 세상에 내놓지 않겠다고 말하며, 출산의 윤리적 책임을 강조한다. 이 논리는 실존주의적인 사고와 연결될 수도 있다. 즉, 존재하지 않는 것이 존재하는 것보다 나을 수도 있다는 사상이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현대적인 안티나탈리즘(antinatalism, 출산을 부정적으로 보는 철학)과도 연결될 수 있다.


안나의 입장에서의 맥락


사회적 고립과 절망

안나는 브론스키와의 관계로 인해 러시아 귀족 사회에서 완전히 배척당했다. 기존의 삶을 잃었고, 새로운 삶도 안정적이지 않으며, 이 관계 속에서 아이를 낳는 것은 더 큰 불행을 초래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불행한 경험 투영

안나는 자신의 삶이 파멸로 치닫고 있음을 직감한다. 자신처럼 사랑 때문에 고통받고, 사회적으로 버려질 아이를 만들 수 없다는 두려움이 존재한다. 결국, 그녀는 출산을 통해 더욱더 사회적, 정서적 압박을 받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여성의 선택과 책임

안나는 당시 사회에서 여성의 모성이 강요된 역할이었다는 점을 거부한다. 출산은 자신의 삶을 더 비참하게 만들 것이며, 이는 자율적인 선택이어야 한다는 태도를 보인다. 이는 현대 페미니즘이 논의하는 출산에 대한 여성의 자기 결정권 문제와 연결될 수도 있다.



돌리의 반응: 모성의 신성함과 존재의 가치


돌리는 안나의 논리에 동의하지 않는다. “존재하지 않는 아이들 앞에서 어떻게 죄책감을 느낄 수 있을까?”

돌리는 "이미 존재하는 아이들이 없었다면 어땠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이 생각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한다. 결국, “나는 잘 모르겠지만, 그건 좋지 않아요. “라며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표한다.


돌리의 입장에서의 맥락


전통적인 모성관

돌리는 이미 여러 아이를 키우고 있으며, 어머니로서의 역할이 자신의 정체성의 중요한 부분이다. 따라서 아이를 낳는 것이 인생에서 의미 있는 일이며, 안나의 논리는 그녀에게 받아들일 수 없는 사고방식이다.


삶의 가치를 신뢰

돌리는 삶이 본질적으로 가치가 있으며, 태어나는 것 자체가 축복이라고 믿는다. “그리샤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어떨까? “라는 생각이 너무도 충격적이어서 본능적으로 부정한다. 이는 기독교적 세계관, 특히 러시아 정교회의 영향이 반영된 생각일 수도 있다.


모성의 본질적 사랑

돌리는 모성(母性)이 아이들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하는 것이라는 점을 믿는다. 출산의 과정은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삶을 창조하는 신성한 행위이며, 이는 어떠한 논리적 사고로도 판단할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철학적 해석: 존재와 선택의 문제

이 장면에서 톨스토이는 존재의 의미, 생명의 가치, 출산에 대한 선택의 윤리적 문제를 다룬다.


실존주의적 관점

안나의 논리는 장 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나 알베르 카뮈(Albert Camus) 같은 실존주의 철학자들이 제기하는 존재의 불합리성, 고통, 선택의 문제와 연결된다. 그녀는 삶이 본질적으로 고통스럽다고 믿으며, 태어나지 않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카뮈의 <시지프 신화>에서 삶의 부조리를 인식하고도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과도 연결될 수 있다.


안티나탈리즘(Antinatalism)

안나의 사고방식은 현대 철학의 안티나탈리즘(반출산주의, Antinatalism)과 유사하다. 철학자 **데이비드 베너타(David Benatar)는 <태어나는 것은 해롭다(Better Never to Have Been)>에서 삶은 본질적으로 고통스럽기 때문에 태어나지 않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한다.

안나의 말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다.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고통을 물려주는 행위이며, 이를 선택할 권리가 있어야 한다는 논리이다.


기독교적 관점

반면, 돌리의 태도는 전통적인 기독교적 가치관과 연결된다. 기독교에서는 생명은 신의 선물이며, 모든 존재는 가치가 있다고 본다. 돌리가 안나의 논리를 거부하는 이유는, 그녀가 아이의 존재 자체를 선(善)으로 보기 때문이다.


문학적 의미: 안나와 돌리의 대비


안나 카레니나 다리야 알렉산드로브나(돌리)

자유를 갈망하는 여성 전통적 가정의 상징

사회적 압박과 불안 속에서 살아감 가정을 지키며 전통적인 가치에 충실함

출산을 거부하고 불행을 피하려 함 출산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음

고통과 절망을 기반으로 사고 희망과 사랑을 기반으로 사고


안나는 사랑과 자유를 쫓아갔지만 결국 사회적 배척을 받고 불안 속에 살며 출산을 거부한다. 반면 돌리는 모성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찾고, 가족을 지키며 삶을 긍정한다. 결국, 이 대비는 톨스토이가 『안나 카레니나』를 통해 던지는 가장 중요한 질문 중 하나이다

“사랑과 자유를 위해 사회적 규범을 거스를 것인가?”
“삶의 의미는 개인의 선택에 있는가, 아니면 전통적인 가치 속에서 발견되는가?”


안나의 선택은 잘못된 것인가?


안나의 입장은 사회적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는 부분이 많지만, 당시 러시아 사회에서는 받아들여질 수 없는 사고방식이었다. 톨스토이는 안나를 단순한 비난의 대상으로 만들지 않고, 그녀의 사고방식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도록 묘사한다. 그러나 작품 전체의 맥락에서 보면, 안나의 길은 고통과 파멸로 이어지는 길이며, 돌리의 전통적 가치관이 보다 안정적인 삶으로 이어진다. 결국, 이 논쟁의 답은 독자에게 남겨진다.

안나의 선택이 잘못되었는가? 돌리의 생각이 절대적으로 옳은 것인가?

<안나 카레니나>는 이러한 질문을 던지면서, 사랑, 도덕, 선택, 삶의 가치에 대한 깊은 성찰을 이끌어내는 걸작으로 남아 있다.



안티나탈리즘(Antinatalism)


안티나탈리즘(antinatalism)은 출산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철학적 입장을 의미한다. 이 사상은 인간의 출생이 본질적으로 해롭다거나 비도덕적이라는 관점에서 출산을 선택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안티나탈리즘은 단순한 출산 반대가 아니라, 존재와 윤리에 대한 철학적, 윤리적, 실존적 문제를 포함한다.


삶은 본질적으로 고통스럽다

안티나탈리스트들은 인간의 삶이 본질적으로 고통과 불행으로 가득 차 있으며, 존재하지 않는 것이 존재하는 것보다 낫다고 주장한다. 특히, 출생은 개인이 원해서 선택하는 것이 아니며, 부모의 결정으로 강요된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만약 태어나지 않았다면, 어떠한 고통도 경험하지 않았을 것이다.”


출산은 비도덕적인 행위일 수 있다

아이를 낳는 행위는 결과적으로 고통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은데, 이런 고통을 감수하게 만드는 것은 비도덕적이라고 본다. 출산을 하지 않는 것이 더 윤리적이며, 더 이상 인간을 태어나게 하지 않는 것이 고통을 줄이는 길이라고 주장한다.


인간은 자연과 사회에 해를 끼친다

환경적 관점에서도 출산은 비판받는다. 인간이 많아질수록 자원이 고갈되고, 환경 파괴와 기후 변화가 심화된다. 따라서 출산을 멈추는 것이 자연과 지구를 보호하는 길이라고 주장한다.


비존재는 고통이 없기에 더 낫다

안티나탈리즘의 핵심 논리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 고통을 겪는 것보다 낫다”는 것이다. 이는 실존주의나 불교적 무(無)의 개념과도 연결될 수 있다.


안티나탈리즘의 대표 철학자들


안티나탈리즘은 단순한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철학적 기반을 가지고 있다. 대표적인 철학자들의 논리를 살펴보자.


데이비드 베너타(David Benatar)

현대 안티나탈리즘 철학의 대표적 인물로 <Better Never to Have Been: The Harm of Coming into Existence (태어나지 않는 것이 더 낫다)>가 저서로 있다. 그의 핵심 논리는 “고통과 쾌락의 불균형”이다.

존재하는 사람은 고통과 쾌락을 모두 경험한다.

존재하지 않는 사람은 고통을 경험하지 않으며, 쾌락을 경험할 필요도 없다.

따라서, 존재하지 않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아르투어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

독일 철학자로, 삶은 본질적으로 고통이며, 존재 자체가 괴로움이다라고 주장했다. 그의 철학은 불교적 관점과 유사한데,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출산을 하지 않는 것이 더 낫다”라고 본다. 그는 인간의 삶이 의지(Wille)의 지배를 받으며, 끝없는 욕망과 결핍 속에서 고통받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결국, 존재하지 않는 것이 인간이 겪을 고통을 예방하는 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페소아(Fernando Pessoa)

포르투갈의 작가이자 철학자로, “삶은 태어난 순간부터 잘못된 선택이다”라는 비관주의적 견해를 가졌다. 그는 출생 자체가 선택의 결과가 아니라는 점에서 출산을 부도덕한 행위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안티나탈리즘과 관련된 문학 및 예술

안티나탈리즘적 사고는 문학과 예술에서도 자주 등장한다.


레프 톨스토이 – <안나 카레니나>

안나가 “출산을 선택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옳은가?”를 고민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안나는 “태어나지 않는다면 적어도 불행해지지 않는다”라고 말하며, 삶의 고통과 출산의 윤리를 고민하는 전형적인 안티나탈리즘적 사고를 보인다.


알베르 카뮈 – <이방인>과 <시지프 신화>

실존주의 철학자인 카뮈는 인간 존재의 부조리를 강조했다. <이방인>에서 주인공 뫼르소는 삶과 죽음에 대한 무관심을 보이며, 삶이 꼭 필요하다고 믿지 않는다. 시지프 신화>에서는 “삶은 무의미한 반복이며, 이 부조리를 깨닫고도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에밀 시오랑 – <생존의 불편함>

루마니아 철학자로, 삶 자체를 “재앙”으로 규정했다. 그는 출생을 “비극의 시작”으로 보고, 인간이 태어나지 않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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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에서의 안티나탈리즘


오늘날 안티나탈리즘은 철학적 논쟁뿐만 아니라 사회적, 환경적 문제와 연결되어 논의되고 있다.


기후 변화, 자원 고갈, 생태계 파괴 등을 이유로 출산을 멈춰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BirthStrike”라는 운동에서는 기후 위기를 이유로 출산을 거부하는 여성들이 등장했다.


유전자 질환이나 유전적으로 물려줄 수 있는 질병이 있다면, 아이를 낳는 것이 비윤리적이라는 주장도 있다. 장애, 정신질환, 빈곤 등이 대물림되는 문제를 고려했을 때, 출산을 거부하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일 수 있다는 논리이다.


일부 사람들은 삶의 고통과 사회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 개인적으로 더 나은 선택이라고 본다. 현대 사회에서는 자발적 무자녀주의(Childfree movement)와 연결되기도 한다.


반론과 논쟁


삶에는 고통뿐만 아니라 즐거움과 의미도 존재한다. 따라서 삶의 가치를 부정하는 것은 지나친 비관주의적 사고라는 반론이 있다.


출생을 하지 않는 것이 윤리적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미 존재하는 우리는 출생의 혜택을 누리고 있다. 따라서 존재하는 사람이 새로운 생명을 막을 권리가 있는가?라는 윤리적 논쟁이 있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는 번식 본능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출산을 완전히 거부하는 것은 자연의 법칙과 모순된다는 반론이 있다.


안티나탈리즘은 단순한 출산 거부가 아니라, 삶의 본질, 윤리적 선택, 환경적 책임 등을 포함하는 철학적 사유이다. 삶을 비관적으로 보는 입장에서는 “태어나지 않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라는 논리가 설득력을 가진다.

그러나 삶의 가치를 긍정적으로 보는 입장에서는 “존재하는 것이 의미 있다”는 반론이 강력하다.


결국, 안티나탈리즘은 삶과 존재, 출산의 의미에 대한 철학적 논쟁을 불러일으키며, 현대 사회에서 윤리적 문제로 지속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사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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