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급과 사회, 사랑과 욕망, 도덕적 갈등, 페미니즘, 서사 구조 및 문체
21세기 관점에서 본 <안나 카레니나>의 해석과 문학적 의의
레프 톨스토이의 장편소설 <안나 카레니나>(1877)는 19세기 러시아 귀족 사회를 배경으로 사랑과 가족, 도덕과 욕망의 문제를 깊이 있게 다룬 걸작으로 평가받았다. 출간된 지 14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이 작품은 현대 독자들에게 큰 울림을 주고 있으며, 수많은 재해석과 연구의 대상이 되고 있다. 21세 기적 관점에서 이 소설을 새롭게 해석하고, 작품의 문학적 기법 및 현대 문화에 끼친 영향은 무엇일까?
페미니즘 관점에서 본 안나의 캐릭터 분석
<안나 카레니나>의 주인공 안나는 19세기 가부장적 사회에서 개인의 행복과 여성의 자율성을 추구한 인물로 볼 수 있다. 당시 러시아 상류사회에서 결혼한 여성은 가정과 남편에게 헌신하며 사회적 규범을 지키기를 요구받았지만, 안나는 사랑 없는 결혼에 머무르길 거부하고 자신의 욕망을 따라 브론스키와의 사랑을 선택한다. 이러한 행동은 당대에는 용납될 수 없는 규범 위반이었고, 결국 그녀는 사회로부터 혹독한 대가를 치른다. 소설 속 사교계는 불륜을 저지른 안나를 철저히 배척하지만, 같은 행위의 남성인 브론스키에게는 관대하다. 이처럼 이중잣대로 대표되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은 도덕적 낙인을 감당해야 했다. 당시 러시아의 교회법상으로는 남편이 생존해 있는 기혼 여성은 이혼 없이 재혼할 수 없었으며, 이혼하지 않고 낳은 아이는 법적으로 남편의 자식으로 간주되는 부조리까지 있었다. 이러한 제약 속에서 안나가 겪는 좌절은 여성에 대한 사회적 권리 박탈로 인한 고통으로 해석되며, 안나 본인도 “그에게는 모든 권리가 있고 나는 아무 권리도 없다”는 깨달음에 절망한다.
톨스토이는 남성 작가이면서도 안나를 둘러싼 여성들의 현실과 심정을 놀랍도록 섬세하게 포착했는데 어떻게 이런 마음을 세밀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거지?라고 생각하면서 매장마다 놀라웠다. 소설에서 안나의 올케인 돌리는 남편의 바람으로 고통받는 인물로, 가정에 헌신하며 자신을 희생하는 전형적인 당시 여성의 삶을 보여준다. 돌리는 육아와 살림에 지쳐 자신을 돌볼 새 없는 삶을 한탄하며, 정작 자신의 욕망을 쫓는 안나를 보면서 부러움마저 느낀다. 이를 통해 작가는 가부장제 속에서 여성들이 겪는 희생과 갈등을 사실적으로 드러내고 있는데, 이러한 묘사는 현대의 페미니즘적 독해에서도 중요하게 강조된다. 일부 비평가들은 안나가 결국 비극적 결말을 맞이한다는 점에서 이 소설을 여성에게 가혹한 이야기로 보기도 하지만, 동시에 안나가 당시 사회 규범에 도전하고 자기 삶의 주도권을 쥐려고 한 점은 초기적 여성 해방의 한 모습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요컨대 안나의 비극은 개인의 잘못만이 아니라 그녀를 옥죈 사회 구조적 한계에서 비롯된 것이며, 이는 현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성찰을 불러일으킨다.
현대적 인간관계에 비추어 본 인물들의 관계 분석
이 작품에 등장하는 여러 인간관계는 현대 독자의 눈으로 보아도 매우 현실적이고 다양한 사랑의 모습을 보여준다. 우선, 안나와 브론스키의 관계는 열정적 사랑의 전형으로, 금지된 사랑의 황홀함과 위험을 동시에 드러낸다. 두 사람의 관계는 처음에는 격정적 로맨스로 빛나지만, 결국 사회적 압박과 상호 불신으로 파국을 맞는다. 이는 현대에도 흔히 볼 수 있는, 강렬한 사랑이 가져오는 불안정성을 연상시키며, 개인의 감정만으로 관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현실을 보여준다. 반면 키티와 레빈의 관계는 신중한 이해와 신뢰를 바탕으로 한 안정적인 사랑으로 묘사된다. 키티와 레빈의 사랑은 서로에 대한 깊은 이해에서 출발하여 결혼과 가정을 이룸으로써 결실을 보는데, 이러한 열정 대 이해의 대비는 작품 전체에서 두드러집니다. 안나-브론스키 커플이 열정적 사랑의 도취 끝에 비극을 맞이한 데 비해, 키티-레빈 커플은 서로의 본질을 존중하고 받아들이며 건강한 삶을 꾸려가는 이상적인 모습으로 그려진다.
이 두 커플의 대비는 곧 사랑의 두 얼굴을 상징한다. 하나는 자기 파괴적일 정도로 강렬하지만 사회와 충돌하는 사랑이고, 다른 하나는 상호이해에 기반하여 사회 제도 안에서 안착하는 사랑이다. 현대의 시각에서 보면, 안 나와 브론스키의 관계는 개인적 행복을 위한 용기 있는 선택으로 비칠 수도 있다. 오늘날에는 불행한 결혼에서 벗어나 새로운 사랑을 찾는 일이 당시보다 훨씬 자유롭고 흔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나가 처한 시대에는 이 결정이 사회적 자살이나 다름없었고, 실제로 그녀는 사랑을 얻는 대가로 명예와 가족, 심지어 생명까지 잃게 된다. 반대로 키티와 레빈의 관계에서 보듯, 현실과 타협하며 얻는 안정도 중요한 삶의 가치로 제시되는데 이러한 두 사랑의 결말은 현대의 우리에게도 많은 것을 시사한다. "개인의 열정과 행복 추구를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가?", "가정과 사회의 안정을 위해 어느 정도의 희생과 절제가 필요한가?" 하는 질문은 지금도 유효하다. 실제로 현대 사회에서도 혼외 관계나 이혼에 대한 시선은 많이 관대해졌지만, 여전히 그로 인한 가정 붕괴나 양육 문제 등의 현실적 어려움이 따른다. 안나의 선택과 좌절을 통해 독자들은 사랑과 결혼의 의미를 다시금 성찰하게 되며, 이는 오늘날에도 많은 드라마와 소설에서 반복되는 보편적 주제다.
한편, 카레닌과 안나의 부부 관계도 현대적으로 조명할 가치가 있다. 카레닌은 아내의 배신을 알고도 한때는 기독교적 용서로 안나를 용서하고 이혼까지도 허락하려 했던 인물로, 겉으로는 냉정한 관료이지만 내면적으로는 명예와 도덕 사이에서 번민한다. 그의 반응은 현대의 관점에서 보면 상처받은 배우자가 겪는 내적 갈등을 잘 보여주며, 동시에 체면과 관용 사이에서 고민하는 복합적인 심리를 나타내고, 결과적으로 카레닌은 사회적 평판을 택하고 안 나와 끝내 갈라서지만, 그의 고뇌는 인물들을 선악 이분법으로 그리지 않은 톨스토이의 현실감을 부각한다. 이러한 점에서 작품 속 인물들은 모두 자신만의 논리와 감정을 지닌 입체적 인간으로 그려지는데, 이는 현대의 우리 인간관계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모습이다. 누가 절대적으로 옳고 그르다기보다 각자의 입장에서 최선을 다하지만 충돌을 피할 수 없는 것이 인간관계의 비극이라는 통찰을 이 소설은 제공하며, 그렇기에 21세기 독자들도 각 인물에게 공감하고 논쟁을 이어간다.
계급과 사회 구조: 19세기 러시아와 현대 사회의 비교
톨스토이는 <안나 카레니나>를 통해 19세기 러시아의 계급 질서와 사회 구조를 사실적으로 그렸는데,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귀족 계층으로, 그들의 생활양식과 가치관은 당시 상류사회의 모습을 반영하며 사교 모임, 무도회, 경마 대회 등은 귀족 사회의 일상이며, 이러한 사회적 공간에서는 체면과 평판이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겼다. 안나가 남편을 떠나 연인과 지내기 시작했을 때, 그녀는 이전에 누리던 사교계의 특권을 모조리 상실하고 공공연한 비난과 배척에 직면하는 반면 브론스키처럼 남성 귀족은 같은 행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클럽 활동이나 사회 참여에 별다른 제약을 받지 않았는데, 이는 당시 남성과 여성에게 적용되는 이중적 사회 규범을 보여주며, 이처럼 작품은 성별에 따른 불평등뿐 아니라 계층적 특권의 문제도 드러낸다.
또한 경제적 계층과 도시-시골의 대비도 중요한 요소다. 레빈은 귀족 출신이지만 도시의 관료사회에 어울리지 못하고 시골에서 농민들과 함께 생활하며 농사를 짓는 인물로 그려진다. 그는 이상적인 농촌 공동체를 꿈꾸며 당대 러시아의 농민 생활과 토지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지는데, 이는 19세기 후반 러시아의 농노 해방 이후 변화하는 사회상을 반영한다. 레빈의 생활은 화려한 도시 생활과 대비되며, 자연과 조화로운 삶의 가치를 보여주며 이러한 대비 속에서 톨스토이는 귀족 계급 내부의 가치관 차이까지 세밀하게 묘사한다. 한편, 키티의 초기 선택에서 드러나듯이 신분 차이도 당대 결혼에 큰 영향을 미쳤치고 키티 자신을 사랑하는 레빈의 청혼을 한 번 거절하는데, 이는 레빈이 그녀의 가문이 속한 사교계에서 다소 동떨어진 시골 귀족이었던 점도 작용했다. 키티의 어머니는 레빈보다 브론스키가 더 어울리는 배우자라고 여길 만큼, 귀족 사회 내부에서도 가문과 평판이 중시되었다. 이런 장면들은 19세기 러시아의 계층 의식과 혼인 문화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현대 사회와 비교하면, 겉보기에는 시대 차이가 크지만 오늘날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법과 제도 면에서 남녀평등이 보장되고, 신분제가 해체되어 결혼도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에 따른다. 이혼과 재혼 역시 흔한 일이 되었고, 안나 시대처럼 법적으로 아이를 빼앗기거나 사회적으로 완전히 추방당하는 일은 드물지만 여전히 현대 사회에도 보이지 않는 계급과 편견이 존재한다. 경제적 지위나 사회적 배경에 따라 사람들의 결혼이나 인간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고, 특히 일부 문화권에서는 이혼한 여성이나 싱글 엄마에 대한 차별적 시선이 남아 있기도 한다. 배우자 선택에서도 경제력이나 학벌 등 사회적 조건을 고려하는 현실은, 형태만 바뀌었을 뿐 옛 귀족 사회의 결혼 거래를 연상시키기도 하다. 또한 명예와 체면을 중시하는 문화는 지금도 남아 있어서, 사회적 평판을 이유로 개인적 행복을 희생하는 경우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안나 카레니나> 속 19세기 러시아의 사회 구조와 현대를 비교해 보면, 비록 시대적 상황은 달라졌어도 개인과 사회의 힘겨루기라는 큰 틀은 이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톨스토이가 그린 계급과 성별의 제약은 오늘날 우리 사회의 성차별, 사회적 낙인, 계층 격차와도 통하는 면이 있어서, 독자들은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성찰하게 된다.
도덕적 갈등과 개인의 선택: 현대 윤리와의 비교
<안나 카레니나>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도덕적 딜레마에 직면하고, 각자의 선택에 따라 삶이 크게 달라지는 모습을 보인다. 이러한 도덕적 갈등은 현대 사회의 윤리적 딜레마와도 일맥상통하는 바가 있는데 안나는 사회적 도덕(혼인의 신성함, 가정의 의무)과 개인적 행복(진정한 사랑을 추구할 권리) 사이에서 갈등한다. 그녀의 선택 - 즉 개인적 사랑을 위해 도덕률을 어기는 행동 - 은 당대의 윤리에 비추어 죄악으로 간주되었지만, 21세 기적인 시각에서 본다면 이는 개인의 정당한 행복 추구로도 이해될 수 있다. 오늘날 우리는 결혼이 불행하면 이혼을 선택하고 새로운 삶을 찾는 것을 용인하지만, 그것이 가져올 여러 윤리적·감정적 파장 역시 여전하다. 예컨대 안나에게는 자신의 행복뿐 아니라 아이에 대한 책임, 배우자에 대한 의리도 고려 대상이었듯이, 현대 사회에서도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이 다른 가족 구성원에게 미칠 영향에 대해 고민하는 것은 마찬가지이며, 안나가 아들을 두고 떠날 때의 죄책감과 고통은, 오늘날 부모가 자신의 삶을 위해 가정을 떠날 때 느낄 법한 감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카레닌 또한 커다란 도덕적 갈등을 겪는 인물이다. 정부 고관인 그는 체면과 도덕의 수호자로서 배신한 아내를 응징해야 한다는 사회적 압력과, 한편으로는 인도적 용서와 가족의 안녕을 생각하는 개인적 신념 사이에서 번민한다. 결국 그는 한 차례 용서를 선택하지만, 주변인의 영향으로 마음을 바꾸어 이혼을 거부하고 안나를 멀리하게 되는데, 이 과정은 개인의 양심과 사회 규범이 충돌하는 윤리적 딜레마를 극명하게 보여주며, 제삼자인 독자마저 누구의 편을 들어야 할지 고민하게 만든다. 톨스토이는 이러한 문제를 도식적으로 판단하지 않고 인물들의 내적 논리에 따라 전개하므로, 독자는 인물 각자의 입장에서 옳고 그름을 자문하게 되고 실제로 영국 심리학회(BPS)에서도 “톨스토이는 안나라는 인물을 독자가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게 창조했으며, 그녀의 행동의 옳고 그름에 대해서는 독자 스스로 판단하도록 남겨둔다”라고 평했다. 이는 작가가 독자에게 도덕 판단의 몫을 넘기는 서술 태도를 취함으로써, 소설 읽기가 하나의 윤리적 성찰 과정이 되게 한다.
현대 사회에도 여러 가지 윤리적 난제들이 존재하는데, 가령, 개인의 행복 vs. 공동체의 규범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안나의 고민은 오늘날 커리어를 위한 개인의 선택 vs. 가족에 대한 책임, 정체성 추구 vs. 사회적 시선 등의 문제와도 통하며, 작품에서 스티바(안나의 오빠)가 보여주는 태평한 부도덕성 - 아내 돌리를 배신하고도 가정의 평화를 바라는 모습 - 은 현대에도 찾아볼 수 있는 이기적 행동과 합리화의 전형이다. 돌리는 남편의 잘못을 용서하고 가정을 지키는데, 이러한 희생적 선택 역시 오늘날 많은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부분으로 결국 <안나 카레니나>는 한 여성의 스캔들을 넘어, 각기 다른 도덕적 가치관의 충돌과 선택을 그린 작품이며, 이러한 충돌은 시대를 초월하여 우리에게 보편적 질문을 던진다.
“과연 어떤 선택이 진정 옳은 것인가?"
개인의 행복은 어디까지 인정되어야 하고,
사회의 규범은 어느 선까지 유연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 말이다. 이러한 윤리적 물음에 대해 작품은 명시적 해답을 내리기보다, 복잡한 삶의 양상을 사실적으로 펼쳐 보임으로써 우리 스스로 생각해 보게 한다. 이처럼 안나의 이야기에서 촉발된 도덕적 성찰은 21세기 독자들에게도 큰 의미를 지니며, 우리가 사는 현대의 윤리적 풍경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정신적 고통과 심리 분석: 현대적 관점에서 본 안나의 내면
톨스토이는 인물 내면의 심리 변화를 포착하는 능력이 탁월한 작가로, <안나 카레니나>에서도 안나를 비롯한 인물들의 정신적 고통과 갈등을 매우 현실적이고도 깊이 있게 묘사했는데 글을 읽다 보면 한 문장 안에서 사람이 저렇게까지 마음이 변할 수 있나. 한 순간 표정 속에서 담을 수 있는 반어와 아이러니와 팔라독살을 톨스토이 이상 할 수 있는 작가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특히 안나의 내면은 소설 후반부로 갈수록 불안과 절망, 질투와 광기의 색채를 띠며 급격히 흔들리는 장면을 현대 정신분석적 관점으로 보면, 안나는 심각한 우울증과 불안 장애 증세를 보인다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남편과의 관계를 단절하고 사회적 지위까지 잃은 채, 그녀는 자신의 모든 행복을 브론스키와의 관계에 의존하게 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로 인해 브론스키를 잃을까 봐 전전긍긍하며 극심한 불안감과 집착을 드러낸다. 작품 속에서 안나는 불면증과 신경증에 시달리며 수면제(아편 팅크 등)에 의존하는 모습도 보이는데, 이는 현대 의학으로 진단하면 분명한 우울 증상의 일부부 같다. 사랑에 관한 한 합리적 판단이 어려워지고, 점차 고립되어 친구도 사회도 없이 고독 속에 갇힌 안나의 심리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우울 환자의 전형을 연상시키며 그녀는 출산 후 심각한 건강 악화와 함께 일종의 산후 우울증까지 겪었다는 해석도 가능하며 실제로 안나는 딸(안니)을 낳은 후 그 아이에게는 애정이 거의 없고 오직 이전 결혼에서 낳은 아들(세료자)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슴 아파하는데, 원하지 않은 출산과 모성 상실이 그녀의 정신적 불안정을 가중시켰다고 볼 수 있디.
안나의 심리적 붕괴 과정을 톨스토이는 몇몇 인상적인 장면을 통해 보여주는데 그중 하나가 환청과 환각의 장면인듯하다. 소설 후반부에 안나는 브론스키가 자신을 떠나려 한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극도로 흥분한 상태에서, 기차역으로 가는 마차 안에서 어떤 농부가
“모든 것을 다 똑같이 짚어봤자…”
라고 중얼거리는 것을 환청으로 듣습니다. 이 환청은 그녀의 불안한 무의식을 드러내는 장면으로 해석되며, 그녀가 현실검증력을 상실해 가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마침내 안나는 달리는 열차에 몸을 던져 생을 마감하는데, 이 자살 장면 직전까지 이어지는 의식의 흐름 묘사는 톨스토이 작품 중에서도 매우 이례적일 만큼 분열적이고 단편적인 사고의 전개를 보여주며 안나의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들은 논리가 끊기고 감정의 격랑만 남은 채 요동치는데, 이러한 서술 방식은 마치 후대의 모더니즘 작가들(예로 버지니아 울프나 제임스 조이스)이 구사한 의식의 흐름 기법을 방불케 한다. 실제로 독자들 중에는 “안나의 마지막 부분은 마치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을 읽는 듯 현대적”이었다는 평하는데, 이는 톨스토이가 인간 심리의 혼란상을 표현하기 위해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기법을 활용했음을 보여준다.
현대의 정신의학으로 본다면, 안나의 이런 최후는 주변의 몰이해와 낙인 속에서 깊은 우울에 빠진 환자가 적절한 도움을 받지 못해 벌어진 비극으로 볼 수 있는데 그녀는 자신이 사랑했던 세상 모든 것으로부터 버림받았다고 느낀 나머지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된다.
“브론스키에게는 모든 권리가 있고 나에게는 하나도 없다”
안나의 절규에는 그녀를 옭아맨 사회적 억압과 그로 인한 무력감이 담겨 있는데, 이는 현대 심리학에서 말하는 학습된 무기력이나 사회적 고립이 주는 절망과도 연결된다. 한 심리학 평론가는 “톨스토이는 추락하는 한 여성의 모습을 강렬하게 그려내 우리로 하여금 그녀를 이해하고 동정하게 만든다”라고 하면서, 안나의 비극은 단순한 치정으로 당시 사회의 정신적 폭력에 희생된 결과라고 해석했다. 흥미로운 것은, 작중에서 톨스토이가 안나의 관점뿐 아니라 주변 인물들의 시선까지 교차해 보여줌으로써 사회적 여론의 압박감을 독자에게 체감하게 한다는 점으로 예컨대 파티 장면이나 친구들의 대화 속에서 드러나는 안나에 대한 부정적 평가들이 축적되면서, 독자들은 안나가 느낄 심적 중압감을 함께 느끼게 되며 이러한 서술을 두고 “톨스토이가 의식의 흐름 기법을 활용해, 소문과 비난이 안나를 짓누르는 과정을 묘사한다”는 분석이 있다. 다시 말해 여러 인물의 내면의 목소리를 보여주는 방식으로 안나를 향한 사회의 시선을 서술함으로써, 집단 심리가 개인의 정신에 미치는 폭력을 효과적으로 그려냈다.
결국 안나의 정신적 고통은 그녀 개인의 성격이나 판단력 부족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데 시대의 산물이자 사회적 억압의 반영일 것이다. 안나가 견뎌야 했던 심리적 중압감 - 사랑을 선택한 대가로 모든 것을 잃어야 했던 공포 - 은 현대적 관점에서 볼 때 정신 건강의 문제로서 공감되며, 오늘날이라면 안나는 우울증이나 불안장애로 진단되어 치료와 지지를 받으면 되는 정도였을지도 모른다. 이처럼 톨스토이의 심리 묘사는 시대를 앞서갈 만큼 인간 내면에 대한 통찰이 뛰어났기에, 21세기 독자들도 안나의 내면을 정신분석적으로 재해석하며 그녀의 비극을 새로운 시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이 단순한 시대극이 아니라, 인간 보편의 심리 드라마로 거듭나게 하는 힘이라 할 수 있다.
복합적 플롯과 다층적 서사 구조
<안나 카레니나>는 두 갈래의 주요 줄거리가 교차 진행되는 복합적 플롯 구조를 가지고 있다. 하나는 안 나와 브론스키, 카레닌 사이의 비극적 삼각관계이고, 다른 하나는 레빈과 키티의 연애와 결혼 이야기다. 이 두 줄거리는 표면적으로는 각기 독립된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소설 전반에 걸쳐 교묘하게 병렬 배치되어 서로 대조를 이루면서도 주제적으로 호응한다. 예를 들어, 도입부에서 안나가 오빠 스티바의 집을 방문해 그의 깨진 결혼을 중재하는 사건이 나오는 동시에 , 키티와 레빈의 어긋난 구혼 에피소드가 전개되는데, 한쪽에서는 불륜과 가정 불화가, 다른 한쪽에서는 청혼과 실연이 그려지며, 사랑과 결혼을 둘러싼 다양한 양상이 한 무대에 올려지는 셈이다. 이렇게 다층적 서사를 통해 톨스토이는 러시아 상류사회 삶의 여러 측면을 폭넓게 조망하며 안나 이야기의 무대는 주로 상트페테르부르크와 외국 등 도시와 사교계이고, 레빈의 이야기는 모스크바와 시골 농장 등 전원과 농촌 공동체로써 도회적 삶과 농촌적 삶, 세속적 가치와 목가적 가치가 대비되며, 소설은 한 인물이나 한 관점에 치우치지 않고 입체적 현실을 구현한다.
또한 이러한 이중 구조 덕분에 작품의 주제의식이 더욱 풍부하게 드러나며 두 줄거리 모두 겉으로는 행복을 찾아가는 사랑 이야기로 보이지만 안나의 길과 레빈의 길은 극명하게 갈린다. 안나는 기존 질서를 거부하고 개인적 열정을 따르다가 파멸에 이르고, 레빈은 방황 끝에 전통적 가치(가정, 신앙, 노동)를 받아들여 안정을 찾아간다. 이렇게 대조되는 결말을 통해 소설은 사랑과 삶에 관한 두 가지 선택지를 모두 탐색하며 흥미로운 것은, 소설 후반부로 가면 갈수록 안나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줄고 레빈의 영적 각성이 부각되어, 일각에서는 “안나가 자기 이야기의 주인공임에도 불구하고 조연처럼 느껴진다”는 평가도 있다. 이것은 톨스토이가 애초에 두 주인공을 염두에 두고 작품을 설계했기 때문인데, 전통 소설에서 한 인물의 영웅담을 따르는 것과 달리 다수의 주인공을 내세워 여러 삶의 단면을 병렬적으로 다룬 점은 당대에도 파격적인 서술 기법이었다. 이러한 다층 구조는 현대의 복잡한 서사에 익숙한 독자들에게도 큰 흥미를 주며 현대 소설이나 드라마에서 여러 인물군의 이야기가 교차하는 방식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쉬운데, 톨스토이는 이미 19세기말에 그러한 기법을 구사하여 서사적 풍요로움을 성취한 것이다.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서술되지만, 톨스토이는 각각의 주요 인물에 따라 시점과 어조를 미묘하게 조율한다. 예컨대 안나의 심리를 묘사할 때와 레빈의 내면을 다룰 때, 또는 사교계에서의 장면과 농촌에서의 장면에서 화자의 어조와 분위기는 달라지며 이는 독자가 모르는 사이에 각 인물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게 만드는 효과를 내며, 결과적으로 하나의 소설 안에 여러 개의 하위 세계가 공존하는 느낌을 준다. 이러한 다성적(polyphonic) 구성은 이후 근대 소설의 발전에도 영향을 미쳤는데, 문학평론가 미하일 바흐틴이 도스토옙스키 소설을 “다성악적”이라고 평했던 것처럼, 톨스토이의 이 작품도 다양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합창곡에 비유할 만합니다. 다시 말해, <안나 카레니나>는 플롯의 직조 면에서 당대 사실주의 소설의 정점을 보여줌과 동시에, 복수의 인물과 가치를 나란히 배치하는 근대소설적 실험을 선보인 작품이기도 하다.
섬세한 심리 묘사 기법
<안나 카레니나>는 줄거리의 드라마틱함뿐 아니라, 인물들의 심리 묘사가 탁월한 작품으로 톨스토이는 인물의 마음속 생각과 감정을 마치 그 안에 들어갔다 나온 듯이 섬세하게 그려내는데, 이는 자유간접화법과 의식의 흐름 기법의 초석을 보여주는 대목으로 평가된다. 예를 들어, 안나가 브론스키를 향한 사랑과 죄책감 사이에서 번민할 때, 그녀의 머릿속 논리가 어떻게 굴절되는지, 감각과 인상이 어떻게 변화무쌍하게 흘러가는지를 문장 하나하나에 담아낸다. 특히 안나의 질투심이 극대화되는 대목이나 레빈의 고백 전후의 심정 변화를 다룬 부분 등에서는 독자가 그들의 가슴속에 직접 들어앉은 것처럼 생생한 심리 체험을 하게 되는데, 이러한 심리 묘사는 사건의 겉모습보다 내면의 풍경을 중시하는 근대 문학의 특징을 미리 보여주는 것으로, 19세기 러시아 소설이 프랑스의 사실주의나 영국의 빅토리아 소설과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작중 인물들의 내적 독백이나 마음속 대화를 전달하는 방식이 중요한데 톨스토이는 때때로 등장인물의 생각을 직접 인용부호 없이 서술자 어조로 섞어내는데, 독자는 문득 이것이 서술자의 말인지 인물의 속마음인지 헤아리며 두 번 세 번 다시 읽게 된다. 이러한 자유간접화법(free indirect speech)은 이후 프로스트나 조이스 등 20세기 작가들이 본격적으로 발전시킨 서술 기법으로, <안나 카레니나>에서는 그 효시를 엿볼 수 있다. 특히 안나의 최후 장면에서 드러나는 두서없는 생각의 나열과 급작스런 심경 변화의 서술은 의식의 흐름 기법의 선구적 사례이지 않을까? 한 문학 연구자는 톨스토이가 안나의 마지막 순간을 그리며 보여준 그 단편적 사고의 열거에 주목하여, 이것이 이후 근대문학이 추구한 인간 의식 세계의 직접적 포착과 맥을 같이한다고 분석했으며, 톨스토이는 아직 “의식의 흐름”이라는 용어조차 없던 시절에 이미 인물 내면의 복잡한 심사를 언어로 포착해 내는 대담한 시도 했다.
이러한 심리 묘사의 성과는 독자로 하여금 인물에 깊이 공감하게 만드는 힘의 원천이다. 예컨대 돌리가 남편의 부정으로 느끼는 분노와 수치심, 레빈이 구혼을 거절당했을 때의 모멸감과 허탈감, 안나가 브론스키의 마음이 식었을지 모른다는 공포에 휩싸여 느끼는 심장의 동요 등은 시대를 초월하여 읽는 이의 가슴을 파고든다. 톨스토이의 심리 묘사는 이처럼 인간 보편의 정서를 정확히 짚어내기 때문에, 현대 독자들도 19세기 러시아 귀부인의 고민에 몰입하여 자신의 일처럼 느끼게 되며 또한 작가는 심리를 묘사할 때 흔히 감각적 이미지와 은유를 동원하여 추상적인 감정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한다. 예를 들어 안나가 불안에 떨 때는 주위 사물이 일그러져 보이고 귀에 기묘한 소리가 들리는 식으로 묘사하거나, 레빈이 키티에게 다시 프러포즈하러 갈 때는 마치 전쟁터로 나가는 군인처럼 긴장된 심정을 묘사하기도 한다. 이런 세밀한 터치는 독자의 상상 속에 생생한 심리극을 펼쳐지게 하며, 톨스토이 소설을 읽는 즐거움을 배가시킵니다. 결국 <안나 카레니나>가 세계 문학사에서 심리소설의 백미로 손꼽히는 이유는, 겉사건보다 인간 마음의 진실을 집요할 만큼 파고드는 이 심리 묘사 기법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톨스토이는 이 소설에서 상징적 장치를 교묘히 활용하여 주제를 강화하고 인물의 내면 상태를 암시하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이 기차의 상징성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 부분을 가장 좋아한다. 소설의 처음과 끝에 등장하는 기차는 안나의 운명을 예고하고 결말을 수렴하는 파국의 상징으로 그려지는데 안나는 모스크바로 오는 열차에서 처음 브론스키를 만나고, 그 직후 역 플랫폼에서 한 철도 노동자가 기차에 치여 죽는 장면을 목격한다. 이는 안나 이야기의 서막에 드리운 불길한 그림자로 해석되며, 실제로 안나는 마지막에 달리는 기차 아래로 몸을 던져 생을 마감한다. 작품 속 여러 대목에서 기차는 냉혹하고도 돌이킬 수 없는 운명의 힘을 나타낸다. 산업화의 상징인 쇠붙이 기차는 톨스토이가 보기에 인간성과 자연을 거스르는 차가운 근대 문명의 힘이었고, 사랑에 모든 것을 건 안나를 짓눌러버린 것도 바로 그런 시대의 흐름이다. 스파크노트 분석에 따르면, 톨스토이는 작품 속에서 “train”이라는 단어를 프랑스어로 사용해 “걷잡을 수 없이 가속되는 해로운 흐름”을 표현하는데, 실제로 안나는 브론스키의 바쁜 사회활동을 두고 “저렇게 가다간 몇 년 안에 얼굴도 못 볼 거야”라고 불평한다. 여기서 기차는 멈출 수 없는 진행, 통제 불가능한 변화의 속도를 상징하며 이는 곧 안나의 불안과도 연결된다. 결과적으로 기차는 안나를 새로운 사랑으로 이끌어간 힘이면서 동시에 그녀를 파멸로 운반한 존재로, 양가적 상징을 띠고 있다. “기차가 사람들을 새로운 곳으로 실어 나르듯, 안나도 기차역에서 피어난 열정에 실려 일상과 가정을 떠나버렸다”는 분석처럼, 기차는 안나의 일탈과 운명 모두를 의미한다.
자연과 농촌도 중요한 상징적 의미를 띱니다. 톨스토이는 작품에서 도시 문명에 대비되는 자연의 이미지를 통해 순수함과 조화의 가치를 역설합니다. 레빈이 있던 시골 농장 풍경, 들판에서 농민들과 함께 건초를 쌓는 장면, 키티가 독일의 자연요양지에서 몸과 마음을 추스르는 대목 등은 모두 정화와 재생의 공간으로 묘사되며, 특히 레빈이 대지와 접하며 노동할 때 느끼는 건강한 기쁨과 평화로움은, 상류사회에서 안나와 브론스키가 겪는 불안과 분열과 뚜렷이 대비되며 이러한 대비를 통해 작가는 자연 속 삶의 아름다움과 인공적 사회의 부조리를 동시에 부각합니다. 예를 들어 경마 장면에서 브론스키가 장교 경마대회에서 애지중지하던 말을 타고 나갔다가 잘못 착지하여 말(프로루)을 죽게 만드는 사건은, 표면적으로는 스포츠 경기의 한 장면이지만 더 깊은 상징을 지니며, 이때 쓰러진 말 프로루는 안나 자신 혹은 브론스키와 안나의 관계를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아름답고 값비싼 말을 자기 욕망대로 부리다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한 브론스키의 행동은, 안나와의 관계에서 결국 그녀를 파멸로 몰고 가는 모습을 예고하며, 실제로 브론스키가 말의 등에 잘못 앉는 바람에 사고가 난 것처럼, 안나와의 사랑도 그의 방식과 판단의 오류로 인해 파국을 맞는다. 스파크노트는 “말 경주의 말 프로루는 안나를 뜻하며, 당시 간통 상황에서 여성만 압도적으로 위험에 처했음을 상징한다”라고 설명한다. 남성인 브론스키에겐 경주(사랑)가 하나의 모험이나 놀이였지만, 여성인 안나에게 경주는 목숨을 건 질주였다. 결국 프로루의 죽음이 브론스키의 과오로 인한 불필요한 희생이었듯이, 안나의 죽음 역시 “아름다운 한 생명의 부질없는 낭비”로 여겨지며, 이런 상징 장치를 통해 톨스토이는 작품의 비극성을 더욱 심화하고, 독자들로 하여금 인간관계의 부조리와 사회적 불평등에 눈뜨게 만든다.
사회적 공간들도 저마다 상징적 의미를 갖고 있다. 무도회장(사교계)은 한때 안나가 가장 빛나던 무대였으나, 브론스키와 사랑에 빠진 이후로는 키티에게 절망을 안겨주고 자신의 평판 추락의 발단이 된 장소로 연회와 오페라 극장 등도 안나에게는 더 이상 안락한 공간이 아니며, 유명한 오페라 극장 장면에서, 안나는 용기를 내어 사교계에 복귀해보려 하지만 귀부인들의 노골적인 냉대와 조롱을 받고 모욕당하는 장면은 내가 겪은 것처럼 상황에 빠져들게 한다. 이때 화려해야 할 극장 상석이 안나에게는 공격과 수치의 공간으로 돌변하는데, 그녀가 사회로부터 추방되었음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반면 가정이라는 공간은 돌리나 키티에게는 힘겨워도 지켜야 할 삶의 터전으로 그려진다. 안나는 가정의 울타리를 벗어났을 때 해방감을 맛보지만 곧 안정감을 상실하고, 키티는 레빈과 함께 꾸린 가정에서 성숙과 행복을 찾는다. 특히 키티와 레빈의 결혼 생활은 레빈의 영적 성장과 맞물려 철학적·종교적 의미까지 띠게 되는데 레빈이 결혼을 통해 개인주의를 넘어 타인과의 연대를 깨닫고, 아내와 아기를 통해 삶의 의미를 되찾는 결말은 가정이라는 제도의 긍정적 가치를 상징한다. 이는 안나가 갈망했지만 이루지 못한 온전한 사랑과 가정의 대조물로도 해석된다. <안나 카레니나>에서는 장소와 사물이 단순한 배경을 넘어, 인물들의 내면 상태와 작품의 주제 의식을 비추는 거울 역할을 한다. 기차는 파멸과 변화의 힘으로, 자연은 치유와 진실의 공간으로, 사회적 장소들은 수용과 배척의 지표로 기능하며, 이러한 상징적 레이어들이 소설을 더욱 풍부하고 의미심장하게 만든다.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적 요소 비교
<안나 카레니나>는 러시아 리얼리즘 문학의 정점에 서 있는 작품으로, 현실의 인간 군상을 꾸밈없이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리얼리즘의 특징이라 할 사실성, 일상성의 중시, 도덕적·사회적 문제의 제기 등이 이 작품에 오롯이 드러나며, 실제로 톨스토이는 이 소설에서 전쟁이나 혁명 같은 거대한 사건보다는 가정 불화, 연애, 사교 모임, 농사 일지처럼 평범한 일상사에 초점을 맞췄다. 이러한 평범한 사건들이 인물들의 운명을 좌우하고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과정이 사실적으로 전개되며, 이는 곧 리얼리즘의 핵심 정신을 보여주며, 작품 속 사건과 대화, 배경 묘사 등은 톨스토이 시대 러시아 상류층의 생활을 구체적으로 재현하고 있어서, 독자들은 마치 한 편의 사회사 기록을 읽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이런 면에서 <안나 카레니나>는 “꾸며낸 것 같지 않은 진짜 삶의 모습”을 담아내려 한 리얼리즘의 성과물이라 할 수 있다. 작품은 도덕과 신념, 제도 등의 문제를 노골적 주입 없이 인물들의 삶 속에 녹여 제시함으로써, 독자가 스스로 현실 문제를 생각하도록 유도하며 이런 기법은 리얼리즘의 교육적 기능과도 맞닿아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처럼 전형적인 리얼리즘 소설이면서도 <안나 카레니나>에는 모더니즘적 기법의 단초들이 엿보인다. 앞서 언급한 의식의 흐름에 가까운 서술이나 다각적인 내면 독백의 활용은 전통적 리얼리즘에서 보기 힘든 혁신적인 기법으로 특히 안나의 자살 장면에서 톨스토이가 보여준 비연속적 심리 묘사와 주관적 체험의 극대화는, 20세기 모더니즘 문학이 추구한 방향과 맥을 같이한다. 물론 <안나 카레니나>는 전반적으로 볼 때 구조와 문체 면에서 고전적이다. 시간은 선형적으로 흐르고, 서술자는 명확한 존재감을 지니며, 사회 현실에 대한 비판 의식도 직접적으로 읽히며, 이런 점에서 볼 때 이 소설은 엄연히 리얼리즘 소설이며, 모더니즘 소설처럼 실험적이거나 파편화된 형식을 취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인간 의식의 심층을 파고드는 태도만큼은 톨스토이가 누구보다 앞서 있었고, 훗날 모더니즘 작가들이 그의 작품을 높이 평가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실제로 버지니아 울프는 톨스토이를 가리켜 “모든 소설가 중에서 가장 위대하다”라고 했고, 마르셀 프루스트나 제임스 조이스 역시 그의 사실적이면서도 심오한 심리 묘사에 큰 영향을 받았다. <안나 카레니나>가 “폭발적으로 신선한 문체 덕에 지금 읽어도 현대적”이라는 평은, 이 작품이 지닌 과도기적 성격을 잘 요약한다. 다시 말해, 19세기의 가치관과 생활상을 그렸으면서도 그 표현 기법은 당대의 틀을 부수고 미래의 문학을 예고하는 면모가 있는 것이다.
또한 이 작품은 사실주의와 사색적 철학의 접목이라는 측면에서도 독특한데, 레빈의 사유 과정이나 농민과 나누는 대화, 마지막 부분에서 레빈이 인생의 의미를 깨닫는 독백 등은 서사적 리듬을 깨고 사상소설처럼 흘러가는 부분인데, 이는 리얼리즘의 범위를 넓혀주며, 당시 많은 리얼리즘 소설들이 사회 고발과 풍속 묘사에 치중했다면, 톨스토이는 거기에 더해 인간 존재의 목적이나 신앙의 문제 같은 철학적 주제를 과감히 집어넣었고 이로써 <안나 카레니나>는 한편으로는 에밀 졸라나 19세기 사실주의 작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모더니즘 소설이나 실존주의적 소설에서 다룰 법한 심오한 내면 탐구를 보여준다. 이를 두고 전통과 혁신이 만나는 지점에 있는 작품이라는 뜻으로 전환기의 걸작이라고 부른다. <안나 카레니나>는 리얼리즘의 외투를 입고 모더니즘의 속내를 살짝 비춘 소설로 볼 수 있으며 현실에 뿌리를 두고 있으면서도 표현의 새 지평을 연 점에서, 이 작품의 문학사적 의의는 더욱 크다.
21세기 문학과 미디어에서의 재해석
<안나 카레니나>는 21세기에도 다양하게 재해석되고 재창조되고 있다. 문학 작품으로서의 위상은 두말할 나위 없이 높아서, 전 세계 작가들과 독자들이 끊임없이 이 작품을 인용하고 변주해 왔다. 특히 영화와 드라마 등 미디어로의 각색이 활발히 이루어졌는데, 시대극으로 원작을 충실히 재현한 작품들부터 배경을 현대화한 파격적 각색까지 그 스펙트럼이 넓다. 21세기 들어서도 여러 차례 영화화가 되었는데, 가장 주목받은 것은 조 라이트 감독의 영화 <안나 카레니나>(2012)입니다. 이 영화는 연극 무대를 활용한 독특한 미장센으로 화제가 되었고, 키이라 나이틀리가 안나 역을 맡아 호평을 받았는데, 이 영화는 원작의 줄거리를 따르면서도 안나의 심리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데 공을 들였으며, 무엇보다도 현대적 문제의식을 담아내려 노력했다. 키이라 나이틀리 본인도 이 작품을 통해 안나를 다시 읽었다며, “사회 규범은 바뀌어도 집단이 개인을 희생양 삼는 행태는 여전하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그녀는 현대의 젊은 관객들에게 안나의 이야기가 낯설지 않음을 강조하면서, “오늘날 이혼을 한다고 아이를 빼앗기거나 사회에서 추방당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잘못이 있으면 여성이 더 가혹한 비난을 받는다”라고 지적했다. 또한 “사람들이 특히 여성의 성(sexuality)을 문제 삼아 수치심을 주려 하는 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라고 언급하며, 안나에게 가해진 사회적 수치심이 현대에도 다양한 형태로 존재함을 짚었다. 이처럼 영화 <안나 카레니나>는 시각적 아름다움뿐 아니라 이러한 페미니즘적 각성을 담아내어, 고전의 현대적 부활을 이루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외에도 러시아, 영국, 미국 등에서 제작된 TV 드라마와 뮤지컬, 연극 등이 꾸준히 나왔다. 현대적으로 각색된 사례로는 미국의 한 작가가 쓴 <안나 K>라는 소설이 있는데, 이는 <안나 카레니나>를 모티프로 한 현대판 이야기로, 뉴욕의 상류층 한인 가정 딸 “안나 K”가 부유한 약혼자를 두고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지며 겪는 스캔들을 그린 소설이다. 이런 식으로 배경을 현대 사회로 옮긴 리텔링을 통해, 원작이 다루던 사랑과 배신, 사회적 압력의 테마가 오늘날 어떤 양상으로 나타나는지를 탐색하는 시도들이 있습니다. 또한 SF나 판타지 같은 전혀 다른 장르 속에서도 안나 카레니나의 플롯을 차용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그만큼 이 이야기가 보편적 서사 구조로 통한다는 방증일 것이다.
현대 문학에서도 톨스토이의 영향력은 지대하다. 수많은 작가들이 <안나 카레니나>를 오마주 하거나 작품 속 인물의 이름을 인용하며, 이 고전을 향한 경의를 표하곤 합니다. 예컨대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소설 <1Q84>에서 “모든 행복한 가정은 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는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을 변주하여 작품의 모티프로 삼았다. 이처럼 “행복한 가정은 모두 닮았다”는 명제(이른바 안나 카레니나 원리)는 문학을 넘어 사회과학 담론에서도 인용될 만큼 유명해져 있다. 현대 소설 중에는 부부간의 갈등과 외도를 다룬 작품들이 즐비한데, 이를테면 이언 매큐언의 <속죄>, 줄리언 반스의 <사랑 등급표>, 또는 국내 작가의 작품들까지 그 계보를 거슬러 올라가면 안나 카레니나에 닿아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불륜 소설 혹은 결혼의 함의를 탐구하는 소설의 원형 중 하나가 바로 이 작품이기 때문이다. 많은 현대 작가들이 “안나 카레니나 이후로 간통을 소재로 이보다 깊이 있는 작품은 나오기 어렵다”라고 말할 정도로, 톨스토이의 통찰력과 표현력은 넘어서기 힘든 기준이 되었다.
현대적 작품과의 비교: 사랑과 욕망의 테마
21세기 문학작품들 중 <안나 카레니나>와 주제적 공명을 이루는 것들을 꼽아보면, 주로 사랑, 욕망, 결혼의 의미를 탐구하는 작품들이다. 한 가족의 해체와 여성의 자아 발견을 다룬 엘레나 페란테의 <나의 눈부신 친구> 연작이나, 전통적 결혼생활의 공허함을 그린 리처드 예이츠의 <작은 아파트들> 같은 작품에서도 안나 카레니나의 그림자를 발견할 수 있다. 이들 현대 작품은 여성 인물들이 사회적 제약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행복을 찾아 분투하거나, 가부장제적 결혼의 한계를 폭로한다는 점에서 안나의 서사와 맞닿아 있다. 또한 사회적 스캔들과 그에 따른 파장을 그린 이야기들도 일종의 “안나 카레니아적” 테마를 반복한다. 요즘 대중소설이나 드라마에서도 부정한 관계로 인한 비극은 흔한 소재로 등장하지만, 깊이나 무게감 면에서 <안나 카레니나>와 비교하면 가벼운 멜로드라마로 흐르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톨스토이의 작품이 지닌 심리적·사회적 통찰의 밀도는 쉽게 따라가기 어려운 기준으로 남아 있다.
한편, 현대에 들어 여성 주인공이 억압적 결혼을 탈피하고 자유를 찾아가는 이야기의 결말은 더 이상 죽음이나 파멸로 그려지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는 사회 분위기가 변한 덕분이기도 하지만, 창작자들이 의식적으로 기존 서사를 뒤집으려 노력한 결과다. 예를 들어 20세기 초의 작품인 케이트 쇼팽의 <깨우침(The Awakening)>에서는 주인공이 결국 바다에 몸을 던지는 비극으로 끝났지만, 21세기 작품에서는 비슷한 상황의 인물이 독립을 쟁취하고 새 삶을 시작하는 결말로 긍정적 전환을 맞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극적 러브스토리는 여전히 매혹적이어서 많은 현대 작품들이 안나 카레니나의 계보를 잇는 파멸적 사랑을 다루곤 한다. 단, 톨스토이와 달리 현대 작가들은 그 책임을 한 사람의 도덕성에 돌리기보다, 사회 구조나 인간 소통의 부재 같은 요소로 이유를 확장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는 톨스토이가 이미 19세기에 보여준 시각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사실 <안나 카레니나>도 안나 개인의 성격 탓만으로 그녀의 비극을 설명하지 않았고, 환경과 사회의 몫을 충분히 드러냈다. 그러므로 현대 작품들이 사랑과 욕망을 논할 때 만일 보다 복합적인 관점을 취한다면, 그것은 이미 톨스토이적 전통을 따르고 있는 셈이 된다.
현재 사회에서의 지속적인 의미
왜 <안나 카레니나>는 지금도 유효한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앞서 논의한 모든 요소를 아울러 생각해 볼 수 있다. 먼저, 이 작품이 다루는 주제의 보편성을 들 수 있는데 사랑과 결혼, 가족의 의미, 개인 행복과 사회적 책임의 충돌, 성별에 따른 불평등, 인간의 내면 갈등 등은 시대를 막론하고 인간사에 존재하는 문제들이다. 19세기 러시아 상류층의 삶을 그린 이 소설이지만, 그 속의 갈등 구조나 감정선은 21세기의 우리 삶에도 생생히 재현된다. 현대 독자들은 안나의 고뇌에서 자유를 향한 인간의 보편적 갈망을 읽고, 레빈의 방황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현대인의 얼굴을 발견한다. 둘째로, 톨스토이의 문학적 완성도 덕분에 이 작품은 시대를 넘어 감탄을 자아낸다. 뛰어난 서사 구성, 살아 숨 쉬는 캐릭터들,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상징들, 인간 심리에 대한 통찰 등은 문학 작품으로서 세월의 풍화에 견딜 내구성을 부여한다. 실제로 2007년 노턴 출판사가 실시한 설문에서 <안나 카레니나>는 “125명의 작가들이 뽑은 최고의 문학 작품” 1위로 선정되었고, 2009년 뉴스위크의 “세계 최고의 명저 100선”에도 포함되는 등 , 오늘날까지도 전 세계적으로 최고의 소설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이는 이 작품이 지닌 예술적 가치가 보편적으로 인정받고 있음을 의미한다.
셋째로, <안나 카레니나>는 끊임없는 대화와 성찰을 이끌어내는 작품으로 작품을 읽은 후에도 인물들의 선택에 대해 토론하고, “만약 안나가 지금 시대에 살았다면 어땠을까?”를 가정하며 상상한다. 이러한 풍부한 해석의 여지가 작품을 살아 있게 만든다. 예컨대 어떤 이는 안나를 두고 “순수한 사랑을 위한 투쟁의 선구자”로 보기도 하고, 또 다른 이는 “자기 욕망에 취해 주변을 불행하게 만든 이기적 인물”로 비판하기도 한다. 심지어 “안나 카레니나가 페미니즘 소설인가, 반(反) 페미니즘 소설인가”에 대한 논쟁마저 계속되고 있다. 이처럼 한 작품이 세기를 넘어 다양한 관점으로 재해석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작품이 깊이 있고 복합적이라는 반증이다. 톨스토이는 특정한 교훈을 강요하지 않고 삶을 있는 그대로 펼쳐 보였기에, 각 시대 독자들이 자신들의 가치관으로 작품을 대화상대 삼을 수 있게 되었다. 21세기에도 우리는 이 소설과 대화하며, 그 속에서 우리 자신과 사회를 비추는 거울을 발견한다. 이는 고전이 지니는 힘이자, <안나 카레니나>가 지금도 의미를 지니는 이유라고 본다.
끝으로, 감정적인 공감과 카타르시스도 빼놓을 수 없는데, 안나의 비극적 최후는 읽는 이를 가슴 아프게 하지만, 그 파멸의 서사는 일종의 경고나 깨달음도 안겨준다. “이렇게까지 불행해지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하고, 행복한 삶의 조건에 대해 생각하게 만듭니다. 톨스토이는 소설의 첫 문장에서 이미 행복과 불행의 비밀을 암시했다. 그 말대로 행복한 가정들의 모습은 대개 비슷할지 모르나, 이 작품을 읽는 각자에게 행복을 지키기 위한 통찰은 제각기 다르게 다가올 것이다. 누군가는 안나의 선택에서 경솔함을 경계할 것이고, 누군가는 레빈의 깨달음에서 삶의 의미를 찾을 것이다. 이처럼 독자의 삶과 맞닿는 교훈을 주면서도, 결코 설교하지 않고 이야기의 힘으로 깨닫게 하는 것이 <안나 카레니나>의 문학적 위대함이다. 그리고 이러한 힘이야말로 21세기에도 안나의 이야기가 꾸준히 읽히고 각색되는 원동력이라 할 수 있겠다.
결론적으로, 레프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는 21세 기적 관점에서 재조명해 볼 때, 당대의 사회상을 넘어 인간 보편의 이야기로 자리매김하는 작품으로 현대의 우리는 이 소설에서 여성의 자유와 억압, 사랑의 환희와 고통, 사회 제도의 부조리와 개인의 고뇌를 읽어내며, 동시에 그러한 주제들을 빚어낸 톨스토이의 문학적 기법과 예술성에 감탄하게 된다. 이 작품이 지닌 풍부한 의미망과 정교한 서술은 시대를 뛰어넘어 여전히 빛을 발하고 있으며, 영화나 현대소설 등의 매개를 통해 새로운 세대와도 끊임없이 소통하고 있다. “모든 시대를 통하여 가장 훌륭한 소설”이라는 찬사가 결코 과장이 아닌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안나의 이야기는 과거의 산물이자 현재의 거울이며 미래에도 유효한 질문으로 남아, 우리에게 영원한 사색거리를 제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