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 '대고려, 그 찬란한 도전'
국립중앙박물관 '대고려, 그 찬란한 도전'
대고려, 그 찬란한 도전 GORYEO: THE GLORY OF KOREA
2018.12.04 ~ 2019.03.03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
2018년은 고려가 건국(918)한 지 1100주년 되는 해였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시기에 맞춰 고려 건국 1100주년을 기념한 전시를 선보이고 있다. 무려 2년간이나 준비했다고 하는데, 그만큼 평소에는 쉽게 볼 수 없었던 고려의 화려한 유물들이 미국, 영국, 일본 등에서 와 한 자리에 모인게 특징이다.
전시실은 총 4개로 나누어져 있다. 1전시실은 '고려의 수도 개경', 2전시실은 '1100년간의 지혜', '사찰로 가는 길', 3전시실은 '다점茶店, 차가 있는 공간', 4전시실은 '고려의 찬란한 기술과 디자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고려 110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답게 정말 많은 유물이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애착이 갔던, 보고 싶은 유물 몇 점을 소개하며 리뷰를 진행하고자 한다.
1실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던 유물은 '청자 투각 칠보문 향로'이다. 이 향로는 향이 빠져나가는 구멍과 향을 태우는 몸통, 이를 지탱하는 받침으로 구성되어 있다. 고려청자답게 우아하고 아름다운 비취색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향이 빠져나가는 부분은 투각(구멍을 뚫어 장식하는 방식)으로 되어 있는데, 너무나도 균형 있고 세련되어 보인다. 투각으로 표현된 무늬가 바로 칠보(七寶) 무늬이며, 가로 세로가 교차하는 지점에 하얀 점이 상감되어 있다. 몸통에는 연꽃잎이 있는데 자세히 보면 잎맥까지 표현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받침 부분에는 앙중맞은 토끼 세 마리가 있다. 토끼의 눈에는 철화기법이 사용되었다.
그다음으로는 '청자 사자 장식 향로'가 기억에 남는다. 전시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 송의 사신 서궁은 고려에 머문 후 '선화봉사고려도경'이라는 책을 남겼다. 이 책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산예출향도 비색이다. 위에는 짐승이 웅크리고 있고 아래에는 봉오리가 벌어진 연꽃 무늬가 떠받치고 있다. 여러 그릇 가운데 이 물건만이 가장 정교하고 빼어나다. 그 나머지는 월요의 옛날 비색이나 여주에서 요즘 생산되는 도자기와 대체로 유사하다.”
이 기록에 가장 부합하는 청자가 바로 '청자 사자 장식 향로'라고 학계는 추정하고 있다. 서궁이 표현했듯이, 뒷부분에는 사자가 웅크리고 앉아 있으며, 아래에는 연꽃이 받치고 있다. 역시 고려청자만의 비취색이 엿보인다. 향을 피우면 사자읭 입을 통해 연기가 나오도록 설계되어 있는데, 국보라 절대 그럴 수 없겠지만 실제 향을 피워보았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든다.
2실의 대장경 파트에 있는 '묘법연화경변상도 권 2'는 고려 전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작품이다. 이 작품 속 숨겨진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기 때문이다. 우선 표지는 사각형으로 그려진 칸 안에 제목이 있다. 보상화문으로 장식이 되어있고 테두리에는 금강저 무늬가 있다. 일반적으로 금강저는 불교 의식에 사용되는 도구로 악마를 물리치고 사람들을 지킨다는 의미가 있는데, 이러한 금강저가 사경으로 와 불법을 지킨다는 의미가 되었다. 이 변상도는 7권의 묘법연화경(법화경) 중 제2권의 내용을 담았다.
변상도 우측에는 석가가 불법을 설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석가의 가슴에는 만(卍) 자가 있고 가석, 아난, 사천왕, 여러 보살 등이 석가의 설법을 듣고 있다. 좌측에는 상, 하단으로 나누어 두 가지 이야기가 있다. 좌측 상단은 불타는 집의 이야기이다. 집에는 불이 나고 있고 아귀, 독사, 뱀, 지네가 넘쳐난다. 위험한 상황 속에 아이들이 대피해야 하는데 아이들은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집 앞에는 아이들의 탈출을 위한 세 가지의 소, 사슴, 양이 끄는 마차가 대기하고 있다. 이는 아이들이 탈출하기 위한 방법(소, 사슴, 양)이 다를 뿐이지 탈출이라는 결과는 같다는 것으로, 수행 정도에 따라 극락으로 가는 방법이 다를 뿐이지 극락엔 도달한다는 결과는 다르지 않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즉 능력에 맞게 구제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좌측 하단은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이다. 가난한 집의 자식으로 태어난 아들은 집을 나와서 굉장히 불우하게 살다 너그럽고 돈이 많은 집에 일하는 사람으로 들어가게 된다. 나중에 알고 보니 자신이 일하고 있던 집의 주인이 아버지였고,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그 재산을 아들이 다 물려받게 된다는 내용이다. 이 그림은 부처님은 아버지처럼 자비를 베풀 준비가 되어있는데 우리가 아버지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면 소용없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다. 부처의 설법을 듣고 열심히 수행하면 보상을 받는다는 가르침을 주고 있다. 이런 재미있는 이야기가 담긴 변상도를 눈앞에서 직접 볼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특히 머리카락보다 얇은 붓을 이용하여 금니로 세밀하고 정교하게 가득 채운 모습이 인상적이다. 화려하고 장식적인 이 변상도는 금니로 세밀하고 가득 차게 표현했다는 점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불상 파트에서 만난 '수월관음도(메트로폴리탄 소장)'도 정말 아름다웠다. 수월관음도는 달과 물가 위에 앉아 있는 관음보살을 그린 그림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고려의 수월관음도는 달이 표현되어 있지 않거나, 잘 안 보이는 경우가 많은데 이 작품은 달에 그려진 토끼가 보일 정도로 뚜렷이 표현되어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관음보살은 보관을 쓰고 있고, 보타락가산(인도의 남쪽 바다 가운데 떠 있는 상상의 산)에 앉아 있다. 아래에는 물이 흐르고 있다. 보관에는 화불이 있고, 정병에는 버드나무가지가 있는데, 관음과 버드나무 가지는 수월관음도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도상이지만 경전에서 그 연관성을 찾을 수는 없어 고려 수월관음도의 특징적인 모티프라고 할 수 있다. 아래 쪽에는 선제동자가 그려져 있는데 일반적인 수월관음도와는 달리 선제동자가 관음의 시선에서 빗겨나 있다. 또한 공양하는 인물상이 아래에 그려져 있기도 하다. 일본 다이토쿠지 소장 수월관음도를 보면 위쪽에 청초(꽃을 문 파랑새)가 그려져 있고, 아래쪽에는 관음의 시선을 빗겨나간 선제동자와 공양자상이 그려져 있다. 이례적인 모티프가 두 그림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것을 통해 메트로폴리탄 소장본이 다이토쿠지 소장본의 모사본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메트로폴리탄 소장본이 좀더 선의 표현이 느슨하며, 인물이 단순화 되었으며, 세밀한 묘사가 감소했다는 점을 근거로 하고 있다.
불상 파트를 지나 통로로 가기 전 만날 수 있는 '아미타여래도'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다. 아미타가 독존으로 그려진 작품으로 죽은 영혼을 서방정토로 인도하는 내영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 가슴에는 만(卍) 자와 손에는 법륜이 금니로 표현되어 있다. 붉은 가사 위에는 연화당초원문이 금니로 새겨져 있다. 이 아미타여래도를 중심으로 좌우측에는 중국 불화가 많이 전시되어 있다. 중국 불화와 고려 불화를 비교해 보며 고려불화만의 독자성을 찾아보라는 의도로 추정된다. 우선 색의 사용에서 그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중국 불화는 흰색을 섞어 쓴 (일본 불화도 마찬가지이다.) 듯 한 색감이 보이는데 비해 고려 불화는 비교적 원색에 가까운 색이 쓰였다. 빨간색, 파란색, 초록색이 특히 많이 쓰였음을 알 수 있다. 게다가 피부색 표현을 보면 중국 불화는 색이 그대로 쓰인 듯한 느낌인데 고려 불화는 은은한 느낌을 준다. 이는 배체법이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배체법은 비단을 뒤집어 뒷면에 색을 칠하면 앞쪽으로 색이 은은하게 퍼져 나오는 기법이다. 다음으로는 금니의 사용이다. 중국 불화는 아미타의 가사나 두광 등에 금니가 사용되지 않았는데 비해 고려 불화는 화려하게 금니로 장식적 표현을 하고 있다.
대고러젼은 동선이 복잡하고 너무 많은 작품을 한 곳에 전시하려 했다는 평이 있기도 하다. 소개하지는 못했지만 통로의 '지장보살도', 4실의 '기마도강도', '은제금도금표주박모양병', '청동은입사포류수금문정병' 등 좋은 작품들이 많다. 아직 대고려전 관람하지 않았다면 한 번쯤 꼭 가볼만한 전시이다.
아트렉처 에디터_정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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