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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렉처 ARTLECTURE Feb 04. 2019

존 레넌 전시가 알려주지 않은 3가지 이야기

존 레넌 전시가 알려주지 않은 3가지 이야기

<Imagine 존 레넌> 전 리뷰 




락 음악은 좋아하지만 비틀즈의 팬은 아니다. 비틀즈의 음악을 들으려고 노력은 몇 번 했다. 락을 좋아한다면서 비틀즈를 안 들어봤다고 얘기하는 건, 냉면을 좋아한다면서 평양냉면은 안 먹어봤다고 고백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일이었으니까. 평양냉면 매니아인 내 친구 한 녀석은 공교롭게도 비틀즈의 광팬이다. 


그런 일종의 부채감 반, 호기심 반으로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는 <Imagine 존 레넌> (부제: 음악보다 아름다운 사람) 전에 다녀왔다. 존 레넌의 불우했던 유년기부터 바야흐로 대중 음악사의 역사를 써 내려가던 비틀즈 시기, 이후 세기의 연인 오노 요코를 만나 평화와 사랑을 부르짖던 사회운동가로서의 삶까지 레넌의 인생을 총체적으로 잘 다룬 전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전시가 존 레넌에 대해 충분히 다루지 못한 부분들이 있다. 그게 아쉽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지만. 존 레넌에 대해 무수히 많이 남아 있는 역사적 사료와 사실들을 한정된 전시 공간에서 모두 다룰 수도 없고, 전시의 기획 의도와 맞지 않는 부분은 과감히 빼는게 맞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술관을 나와서도 존 레넌의 삶에 대해 더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그들을 위해 남겨 둔다.


존 레넌 전시가 (잘) 알려주지 않은 3가지 이야기다. (비틀즈의 팬이라면 이미 알고 있을 테니 볼 필요가 없다!)




존 레넌을 암살한 마크 채프먼은 존 레넌의 광팬이 아니다


전시에서 존 레넌은 자신을 부르는 팬의 소리를 듣고 뒤돌아 보았다가 총에 맞은 걸로 묘사되어 있다. 실제 그를 암살한 마크 채프먼이 레넌의 광팬이라는 썰이 있다. 근거는 크게 3가지다. 첫째, 그의 집에서 비틀즈 앨범이 발견되었다. 둘째, 그는 레넌처럼 일본인 아내가 있었다. 셋째, 암살이 있기 5시간 전 채프먼은 레넌의 친필 사인을 받았다.


첫번째의 경우, 해당 앨범은 마크 채프먼이 아닌 아내의 것으로 밝혀졌다. 그가 비틀즈의 음악을 듣긴 했지만 제일 좋아한 건 다른 아티스트였다. 두번째는 우연의 일치에 불과하다. 일본인 아내가 있고 비틀즈를 듣는다고광팬일까? 마지막은 채프먼의 사인 집착 경향 때문이다. 실제 채프먼은 사인을 안 해주기로 유명한 스티븐 킹의 사인을 끈질기게 요구해 받아낸 적이 있다. 


마크 채프먼이 존 레넌을 죽인 결정적 동기는 레넌의 반기독교적 발언 때문이다. 레넌은 "예수보다 비틀즈가 유명하다"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희대의 망언으로 손꼽힌다), 이는 열렬한 기독교 신자이자 정신 이상 증세가 있던 채프먼의 증오를 샀다. 채프먼은 젊은 시절 선교사로 활동하며 레바논에 간 적이 있다.  


그러나 채프먼이 존 레넌만 타겟으로 삼은 건 아니었다. 그는 폴 매카트니나 데이빗 보위 등 다른 유명인들도 죽여야 한다는 망상에 사로 잡혀 있었다. 존 레넌이 죽게 된 건 그에게 접근하기가 쉬웠기 때문이다. 집 앞에서 팬들에게 사인을 해 줄 정도였으니까. 마크 채프먼은 존 레넌이 암살 당한 다음 날 데이빗 보위가 출연하는 브로드웨이 쇼의 앞자리를 예매해 놓았다. 레넌이 집에 틀어 박혀 있었다면 보위가 희생양이 되었을 지도 모른다. 




'잃어버린 주말' 시기에 존 레넌은 다른 연인을 만났다




세기의 사랑에도 부침은 있는 법이다. 요코와 레넌이 별거 하던 시기를 '잃어버린 주말(Lost Weekend)'이라고 칭한다. 이 때 레넌은 '홀로' 캘리포니아 LA로 떠났다고 전시는 기재하고 있다. 물론 레넌이 홀로 떠났을 수 있겠지만, 그가 캘리포니아에서 정말 혼자 살았던 건 아니다. 당시 레넌은 요코와 자신의 비서였던 중국계 여성 메이 팡과 동거했다.


놀라운 건 메이 팡과 레넌의 관계를 주선한 게 요코 본인이었다는 점이다. 요코는 자신의 비서인 팡에게 레넌이 널 좋아하니 '육체적 관계'를 맺어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사실 둘의 결혼 생활은 레넌의 주체할 수 없는 바람기 때문에 처음부터 순탄치 않았다. 요코가 메이 팡에게 레넌과 만나라고 말한 건ㅡ아무리 그래도 일반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렵겠지만ㅡ아예 모르는 사람보다는 자신이 잘 아는 사람이랑 바람을 피는 게 좀 더 낫다는 나름의 판단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레넌과 팡은 1년 여의 캘리포니아 생활을 마치고 함께 뉴욕으로 돌아온다. 레넌은 요코로부터 걸려오는 전화를 한동안 받지 않았지만, 딱 한 번 요코를 만나러 가더니 더 이상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마성의 여자...) 요코와 레넌은 재결합 후 바로 아이(션 레넌)를 가지게 된다. 아들이 태어난 후, 레넌은 전시에 소개된 것처럼 가정적인 남자로 '환골탈태'한다. 그의 과거 행보를 돌이켜 보면 참 믿기 힘든 반전이다.




오노 요코는 레넌의 피 묻은 안경을 전시한 적이 있다


전시 중반부에서 레넌이 죽을 때 착용했던 피 묻은 안경을 촬영한 사진을 볼 수 있다. 요코가 레넌 사후에 직접 찍었는데, 그녀는 이를 자신의 앨범 <SEASON OF GLASS>의 자켓에 넣었다. 안경과 물잔 너머의 맨하탄 풍경이 흐릿하고 음울하게 표현된, 레넌을 잃은 요코의 슬픔이 느껴지는 잘 찍은 사진이었다. 하지만 기분이 조금은 찝찝했다. 죽은 자의 물건을 태우는 대신 음반 표지에 넣는 게 흔한 일은 아니니까.  



오노 요코는 2009년 뉴욕에서 열린 <John Lennon: The NYC Years> 전에도 레넌이 암살 당하던 날 입었던 피 묻은 옷가지와 안경을 전시한 적이 있다. 2013년에도 요코는 레넌의 피 묻은 안경 사진과 함께 총기 사용에 반대한다는 트윗을 올렸다. 이처럼 요코가 자신의 작품 활동에서 레넌의 유품을 활용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나타내는 사람들이 꽤 많다. 너무 지나치지 않냐는 것이다. 일부 비틀즈 팬들은 요코가 레넌의 죽음을 이용해 명성과 부를 취하고 있다며 비판한다.


요코의 작품 활동에 대한 이러한 논란은 사실 예술과 외설의 경계에 대한 해묵은 논쟁과도 일부분 맞닿아 있다. 암살 당한 자의 피 묻은 안경은 그 자체로 끔찍하며, 레넌의 가족을 포함해 그를 기억하는 많은 사람들의 상처를 상기시키는 유품이다. 사람들이 보통 유품을 태우는 이유는 망자를 추모하는 의미인 동시에 죽음에서 비롯되는 여러 불편한 감정들을 잊기 위함이기도 하다. 요코처럼 30년이나 유품을 그대로 보관하고 이를 대중들에게 지속적으로 공개하는 건 분명히 일반적이지는 않다.


그러나 한편으로 레넌의 안경은 단순한 유품을 넘어서 미국의 끔찍한 총기 제도와 인간의 폭력성을 상징하는 오브제이기도 하다. 요코의 앨범 자켓 사진이 예술적인 건ㅡ그녀가 사진을 잘 찍기도 했지만ㅡ무엇보다 그 안경이 레넌이 암살 당했을 때 착용했던 실제 안경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그 사진을 촬영한 게 레넌의 연인이자 그의 죽음을 눈 앞에서 목도한 요코라는 사실은 작품의 무결한 진실성을 담보한다. 이런 맥락에서 레넌의 피 묻은 안경 사진은 암살로 파괴된 요코의 삶을 나타낸다. 따라서 요코의 작품이 레넌의 죽음을 이용하고 있다는 비판은 그래서 성립되기 어렵다. 그녀가 선택한 적 없는, 미망인의 삶에 대한 도덕적 비난이 되기 때문이다. 


전시의 부제처럼, 존 레넌은 그의 음악으로만 설명하기엔 분명히 어려운 사람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굳이 전시가 끝나고서 자료를 더 찾아볼 일도 없었을 것이다. 레넌이 죽은 지 벌써 40주년이 되어가지만 그가 살았던 시대와 지금의 시대는 그리 다르지 않다. 그를 죽음으로 내몰았던 폭력적인 현실은 여전하고, 그가 부르짖었던 이상향은 아직도 요원하다. 비틀즈나 락 음악의 팬이 아니더라도 이번 전시는 분명히 볼 만한 가치가 있다.


전시안내:https://artlecture.com/project/2345




아트렉처 에디터_박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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